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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5.23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11편(IOC올림픽평가위원/IOC Evaluation Commission Member 2008 경이로운 실사현장이야기/Beijing2008편 Part III) 2
  2. 2021.05.22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10편(IOC올림픽평가위원/IOC Evaluation Commission Member 2008 최종보고서 秘話 Part II)
  3. 2021.05.21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9편(IOC올림픽평가위원 IOC Evaluation Commission Member라는 자리와 숨겨졌던 뒷이야기 Part I) 1
  4. 2021.05.19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8편(국제무대에서 태극기 휘날리다)
  5. 2021.05.17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7편(향후 아시아대륙 주도권 아시아올림픽평의회 OCA중심축 장악)
  6. 2021.05.15 IOC, 2032년 올림픽 호주 Brisbane2032 예비 조직위 관계자들 및 호주 정부대표들과 와 3일 간 최종검증회의개최 발표, 확정기정사실화 초읽기
  7. 2021.05.15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4편(태권도기사회생과2012년올림픽유치경쟁 현장 및 스포츠외교인재육성)
  8. 2021.05.15 윤강로 스포츠외교 에피소드 3편(38년간 성취한 10가지 진기한 기록/Rocky Yoon’s Life-long 10 Contribution Records Through Sport Diplomacy)
  9. 2021.05.12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6편(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역경 극복과 부산명예시민증 제78호)
  10. 2021.05.10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5편(한국스포츠외교의 중상모략과 고질적 병폐)
스포츠 외교2021. 5. 23. 12:16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11(IOC올림픽평가위원/IOC Evaluation Commission Member 2008 경이로운 실사현장이야기/Beijing2008Part III)]

 

 

다시 시계를 돌려 2008년올림픽 최종 결선진출 5개 유치도시 실사 방문시절로 되돌아가 보자.

 

2008년 올림픽 유치도시의 IOC 총회에서의 설명회(Presentation) 순서는 무작위 추첨(random drawing)으로 결정하지만 유치도시 방문일정은 시간절약(time effective)과 항공 일정상의 방문 편의(for travel convenience sake)를 고려하여 잡는다. 보통 가장 먼 지역부터 시작하는 것이 관례로써 중국의 Beijing2008, 일본의 Osaka2008, 캐나다의 Toronto2008, 터키의 Istanbul2008, 그리고 프랑스의 Paris2008 순서로 방문이 짜였다.

 

IOC 평가위원 개별 항공 일정 등이 IOC 사무국과 상호협의 하에 정해진 후 비즈니스클래스 왕복항공권이 사전에 지정항공사를 경유하여 지급되었다.

 

모든 IOC 평가위원들에게는 가장 먼 거리였지만 필자에게는 가장 가까운 거리인 베이징에 도착한 날짜는 2001 221일 오후였다. 대한항공 직항 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베이징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중국 당국에서는 필자를 최고 VIP급으로 분류하여 일반 출입국 수속 대를 통하지 않고 번쩍이는 신문기자 카메라와 TV카메라 세례를 한편 받으면서 또 트랩까지 마중 나온 투밍대(Tu Mingde) 중국 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을 비롯한 Beijing2008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의 안내 겸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다른 IOC평갸위원들과 함께 공항 귀빈실로 모셔졌다(?).

 

(베이징 국제공항 트랩까지 마중 나온 Tu Mingde 중국 NOC사무총장<우측 1>, 필자<우측 2>, 필자 바로 뒤에 Wei Jizhong 중국 NOC부위원장 겸 OCA경기분과위원장 등 중국 Beijing2008유치위원회 관계자들)

 

 

중국 특유의 귀빈 접대를 받으면서 TV 인터뷰를 마치자, 간이 공항입국 수속절차를 대리로 끝내고 필자의 짐을 찾은 뒤 곧바로 공항 귀빈 주차장에 준비된 고급 승용차로 안내되어 중국여성 의전요원이 자동차 앞자리에 수행 자격으로 앉고 필자 옆자리에는 투밍대(Tu Mingde) 중국 올림픽위원회(COC) 사무총장이 동석하였다.

 

중국 공안에서 배려한 듯한 에스코트 선도 차량이 필자가 탄 자동차를 인도하였다. 마치 중국 국빈이 된 느낌이었다.

 

2000년 당시만 해도 한국 주재 중국대사관으로부터 1년짜리 중국 복수비자 발급대상은 장관급 이상이었다. 필자는 2000 1225일자로 Liu Qi 베이징시장 겸 2008년 하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공한을 받았다.

 

IOC 평가위원(IOC Evaluation Commission Member)인 필자를 중국의 심장부 국경에 정식초청하며, Beijing 체재 기간 동안 Host로서 성의를 다하겠다는 내용과 비자발급 편의 안내문이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필자는 다음해 221일 베이징 도착이라서 2월 초순경 비자발급 신청을 할 작정으로 미루고 있었는데, 2월 중순 어느 날 한국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필자에게 예의를 차린 어조로 「중국 비자발급을 해드릴 테니 직접 오시지 마시고 직원에게 대신 심부름시키면 그 자리에서 발급해 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IOC실사방문을 마치고 출국 장에서 필자를 영송하는 중국 Beijing2008유치 응원 학생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체육회 지정 여행사 직원에게 부탁하였고, 말 그대로 당일 그 자리에서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그것도 1년짜리 복수비자로. 여행사 직원 말에 의하면 한국인으로서 상당히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예우라고 놀라워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숙소인 베이징 반점(Beijing Hotel)에 도착하고 안내된 방은 스위트(Suite)룸으로 VIP 용인 듯싶었다.

 

방에서 여장(travelling kit)을 풀고, 시간에 맞추어 동료 IOC 평가위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만찬 장으로 가서 다음날부터 진행될 평가실사회의에 대한 사전회의와 더불어 식사시간에 맞게 합류한 Beijing2008유치위원회 간부들과 상견례 겸 환담을 하였다. 다음날 아침 7시에 IOC 평가위원단 조찬 겸 내부회의에서 오전 830분부터 시작되는 첫 방문지 첫 브리핑 대비 전략회의였다.

 

Verbruggen 위원장은 개별 평가위원 소관 주제와 관계없이 18개 모든 항목에 걸쳐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많이 해줄 것을 주문하였다. 필자의 전공은 질문 그 자체였다.

 

필자는 그 당시까지 20여 년간 10개의 동·하계올림픽대회, 동·하계아시안게임, IOC 총회, ANOC 총회, OCA 총회 참석 등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몸에 밴 각종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역대 올림픽조직위 및 국제 스포츠 계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은 그야말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무장된 사람이었다.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 국제통으로 20여 년간 동하계올림픽 및 아시안게임 등에 빠짐 없이 한국선수단 섭외임원 겸 단장대행으로 각국선수단장회의에 단골회의대표로 활동하였다)

 

첫날 첫 회의 첫 주제부터 필자의 질문공세가 Beijing2008유치위원회 측 주제별 발제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나 보다.

 

두 번째 날 회의가 끝나고 저녁 리셉션장에서 미모의 중국여성이 필자에게 다가와서 2일간의 회의를 브리핑 룸 옆방에서 폐쇄회로 TV모니터를 통해 생중계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의 눈부신(?) 활약상에 경의와 감탄을 표한다고 하고 나서, 다음날이 그 여성의 주제발표 순서인데, 질문할 내용을 미리 귀띔해주고 질문을 하더라도 쉽게 다루어 달라는 요청 아닌 애교성 애원(?)이었다.

 

마음 약하고 부드러운(?) 남자인 필자는 그 여성의 주문대로 예상 질문내용도 미리 알려주고 질문도 쉽게 하였음은 불문가지였지만, 확인요망사항(Point of Clarification)은 집고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그 여성 프리젠터는 필자가 질문하는 줄 알고 볼멘소리로 다시금 전날 밤 약속한 바를 공개적으로 오픈하기도 하는 촌극이 벌어져 장내의 긴장된 분위기를 밝게 해 주기도 하였다.

 

회의 3일 차에는 강택민(장쩌민) 중국 주석도 예방하여 악수도 하고 환담도 하고 사진도 함께 촬영했다.

 

(중국국가 주석 궁에서 장쩌민 주석과 함께)

 

국빈급에게만 공개한다는 여름궁전(Summer Palace)과 천안문 근처의 자금성(Forbidden city) 성곽 망루에도 안내되어 올라가 기념촬영도 하였다.

 

(베이징2008현지 실사 기간 중 방문한 여름 궁전과 자금성 망루에서 IOC평가위원들과 함께)

 

올림픽 경기장 예정지 뿐만 아니라 교통통제센터, 기상센터, 수질관리센터, 첨단 디지털 센터 등등 모든 곳에서 올림픽 개최 열기가 펄펄 끓고 있었다.

 

(Beijing2008유치도시 현장 실사 방문 중인 IOC평가위원들/좌로부터 Francisco Elizalde 필리핀 IOC위원 겸 IOC위원후보선출위원회 위원장, Sergey Bubka IOC집행위원 겸 IOC선수위원장, Els Van Breda Vriesman네덜란드 출신 국제하키연맹<FIH>회장<추후 FIH회장자격 IOC위원선출>, 필자, IPC대표, Simon Balderstone호주 환경 전문가 등)

 

 

주제별 발제자들도 전세계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12억 인구 가운데 선별, 총동원하는 등, 발군의 영어 구사능력과 탁월한 지식 등에 힘입어 IOC 평가위원단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기에 충분하였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부터 매일 아침 운동을 습관으로 삼아왔다. 태권도, 평행봉, 철봉, 달리기, 배드민턴,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 체조, 단전호흡 등을 즐기는 편이다. 베이징에 체재하는 동안 아침 5시 반에 기상하여 호텔 내에 있는 아침 6시에 개장하는 헬스장(Fitness Center)으로 가서 스트레칭 등으로 몸 풀고, 러닝머신(영국: running machine/미국: treadmill) 위에서 30분 이상 달리기를 한 후 땀이 비 오듯 하면 나머지 정리운동을 하고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도 한 뒤 객실로 돌아와 샤워하고 일정에 임하곤 했다.

 

(인천동산고재학시절 평행봉 대에서)

 

유럽에서 중국까지 날아온 위원들이 대부분이어서 시차적응 등으로 아침 운동하는 위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날 아침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 장대높이뛰기(pole vault)의 세계기록 보유자인 「나는 인간 새」 세르게이 부브카(Sergey Bubka) IOC 집행위원 겸 IOC 선수분과위원장(우크라이나 NOC 위원장 겸직)이 헬스장(Fitness Center)에 등장하였던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운동에 임하였다.

 

헬스장(Fitness Center)에는 헬스 기구들 사이에 마침 실내용 짧은 거리 트랙(Track)이 구비되어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부브카(Bubka)와 함께 주행하는 모양이 되었다.

 

한참을 도는데, 아무리 필자가 운동을 습관화해 왔다고는 하지만 세계육상선수권자와 보조를 맞추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한국인 특유의 오기와 집념으로 숨이 턱까지 차 올라왔지만 소리 죽여 입으로 내쉬면서 지친 기색을 표출하지 않은 채 끝까지 부브카 뒤를 따라붙자, 그제서야 부브카도 내심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2006년 서울 COEX개최 ANOC총회/IOC집행위원회 및 SportAccord회의 기간 동안 양평 소재 필자가 개장한 평산스포츠박물관을 방문한 Sergey Bubka IOC집행위원 겸 우크라이나 NOC위원장과 함께)

 

 

부브카는 잠시 멈추고 필자에게 다가와 「몸의 균형을 맞추고, 한쪽으로 쏠린 근육 밸런스(balance)를 위해 트랙 반대방향으로도 뛰자」고 제의하였다.

 

필자는 힘이 들었지만 쾌히 응하고 부브카 뒤를 다시 따라붙었다. 마치 「말아톤」을 하는 심정이었다.

 

「백만 불짜리 파트너」와 「끝내 주는」 운동을 한 셈이었다.

 

부브카는 정리운동을 하면서, 필자의 회의장에서의 활력적인 분위기 창출과 다양한 올림픽 관련 지식수준과 운동을 좋아하는 면이 모두 마음에 든다면서, 앞으로 IOC 평가위원 5개국 방문기간 동안 매일 아침 같이 운동하자고 제의하였다.

 

(IOC평가위원 시절 동고동락한 Sergey Bubka와 함께)

 

이러한 부브카와 필자가 시작한 아침운동에는 Hein Verbruggen IOC 평가위원장, Gilbert Felli IOC 올림픽대회 총괄수석국장 등 4, 5명이 함께 참여하여, 5개국 평가 방문기간 동안 환자 발생 없는 강철 같은 IOC 평가위원군단으로서 정력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당시 사마란치(Samaranch) IOC 위원장의 평가에 의하면 잡음이 생기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업무수행을 훌륭히 치러낸 역대 가장 뛰어난 IOC 평가위원단이란 찬사도 들었다.

 

 

…To Be Cont’d…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1. 5. 22. 09:38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10(IOC올림픽평가위원/IOC Evaluation Commission Member 2008 최종보고서 秘話 Part II)]

 

 

2008년올림픽 5개 결선 진출(Short-listed) 유치후보도시 실사평가 방문을 모두 마치고 최종 보고서 작성을 위하여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 집결한 IOC 평가위원회 위원들은 사마란치(Samaranch) IOC 위원장의 따듯한 환영과 뼈를 깎는 듯한 길고 힘든 작업에 대하여 치하와 격려와 감사의 말을 들었다.

 

(Samaranch IOC위원장이 IOC평가위원회 위원들 개개인에게 모두 감사 표시로 IOC휘장 세트를 선물하였다/좌로부터 Samaranch IOC위원장, Francisco Elizalde 필리핀 IOC위원<옆모습>, Tommy Sithole 집바브웨 IOC집행위원 겸 ANOCA사무총장, 필자)

 

사마란치(Samaranch) IOC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역대 올림픽대회 IOC 평가위원회 중 아무런 잡음도 없고 평가위원들 간의 화합과 친목 돈독 정도가 최고라고 들었노라고 칭찬하여 주기도 하였다.

 

이어서 그는 최종 보고서 작성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여 임하되, 정식 분량 보고서 외에 A4 한 장~두 장짜리 축약보고서도 함께 작성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다.

 

(IOC본부에서 Samaranch IOC위원장과 IOC평가위원회2008위원들 전체와 기념 촬영/좌측에서 7번째가 Hein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 바로 옆이 Samaranch IOC위원장, 필자는 우측 앞줄에서 세번 째)

 

 

이유인 즉, IOC 위원들 대다수가 정식 분량의 최종평가 보고서를 숙독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바, 최소한 축약본이라도 읽게 하려는 의도라고 간단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드디어 IOC 평가위원회 위원 전체가 IOC 본부 집행위원회 회의장에 모여 23일간 최종평가 보고서 작성 작업에 돌입하였다.

 

5개 도시 별 18개 항목별 조사 평가 내용은 각 유치도시 실사 방문기간 동안 중간 정리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사실에 입각한 기술적인 평가(technical assessment)를 그대로 반영시켰다. 회의 마지막 날에는 각 유치도시 별 최종평가 결론 내용 작성이었다.

 

이 결론 내용(Conclusion)은 유치도시 평가보고서의 핵이므로 정확하고 종합적인 검토와 촌철살인의 집약된 평가와 세심한 주의가 모두 요구되는 극도로 예민하고 첨예한 화룡점정 격의 한판이었다.

 

최종 결론 부분(Conclusion) 내용의 초안을 잡아야 하는데, 평소 영연방(Common Wealth) 세력인 영국의 Craig Reedie IOC 위원과 호주의 환경전문가인 Simon Balderstone이 이구동성(in unison)으로 본인들의 모국어가 영어이므로 초안 담당을 하겠노라고 선수를 치고 나왔다.

 

딱히 반대할 명분도 없고 해서 그대로 인정되었다. 자칭 영어가 모국어란 이들 두 전문가는 5개 유치도시 최종 결론 중 마지막으로 묘사되는 한 줄을 놓고, 어떤 도시에는 「will」을, 또다른 도시에는 「would」를, 또는 「could」와 「can」을 뒤섞어서 표현하였다.

 

필자는 발언을 통해 「문법적으로 동사의 용법을 가지고 뉘앙스(nuance)를 무리하게 처리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한 단어가 주는 영향력(impact)을 공정하게 반영해야 하므로 「would」면 「would」로, will」이면 「will」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Verbruggen 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위원들이 필자의 취지에 동의하여 「can」이나 「will」 대신 「could」와 「would」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같은 영연방국가인 캐나다의 유치후보도시인 토론토를 의식한 듯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외신에 집중 거론되었던 중국의 인권문제를 Beijing2008 유치와 연관시켜 문건화하여 결론 맨 끝부분에 삽입할 것을 강력 주장하였다.

 

필자는 유일한 아시아대표로서 베이징이 정치적인 사안으로 부당하게 공격받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해당 문건 삽입에 대하여 강력히 반대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자, 이 두 명의 전문가들은, “만일 외신이 집중 거론하고 있는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일언반구(a single word)의 표현도 결론 부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우리 IOC 평가위원회가 여론을 전혀 반영시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라는 취지로 필자의 견해를 반박하였다.

 

(Craig Reedie 영국 IOC위원 겸 NOC위원장<국제배드민턴회장 역임, 추후 WADA회장 역임>과 IOC평가위원시절 함께)

  

그러면서 대안적인 표현으로서 “Should the Game be awarded to Beijing, the human rights issue would be an on-going debate in the period leading up to the Games(만일 2008년 올림픽대회 개최지가 Beijing으로 정해진다면, 인권문제는 대회 개최 시까지 끈질긴 토론 거리로 쟁점화될 것이다)”라는 문구를 제시하면서, 이 문구를 Beijing2008유치후보도시편 결론 맨 마지막 부분에 넣어서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갑자기 무거운 정적(gloomy silence)이 회의실에 감돌았다. 필자는 Verbruggen 위원장에게 “우리 IOC 평가위원회는 IOC 집행위원회로부터 기술적인 측면(technical aspects)만 평가(evaluate)하도록 소임을 부여 받았으며, 정치적인 사안은 취급하지 말 것(The Commission is not allowed to touch upon any political issues)이란 지침을 받은 바 있고, 실제로 각 유치도시 실사평가 방문 말미에 행한 각국 기자회견 때마다, 위원장께서도 정치적 질문에 대하여 「우리 영역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더구나 대안으로 제시한 표현 문구는 투표권자들인 IOC 위원들에게 마치 북경에 표를 던져 개최도시로 선정이 되면 인권문제가 2008년까지 계속 골칫거리로 IOC를 괴롭힐 것이니, 북경은 바람직한 개최도시 후보가 아니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것 같은데, 이는 불공정한 처사로서, 향후 감당치 못할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많으니, 이러한 문구는 절대 거론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향후 중국 측의 반발, 이로 인한 IOC 평가위원회 위원장으로의 책임추궁 등 위원장 본인의 신상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Verbruggen 위원장은 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평창2014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이후 평창2018유치위원회 국제자문역 시절 SportAccord회장 겸 네덜란드 IOC위원인 Hein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 Lausanne SportAccord회장 집무실에서 재회 장면)

 

 

따라서 이 문구는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중국으로 보아서는 IOC 평가위원회 실사평가 방문과 연계되어 최종적으로 도출된 실사평가보고서 최종 결론에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으로 미국을 비롯한 외신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인권문제(human rights issue)를 평가보고서 결론에 한 줄도 거론되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사수(desperate defense)해 준 필자가 수훈갑(Top Contributor)이 되어버렸다.

 

필자는 IOC 평가위원회 위원자격으로 2001년 제113차 모스크바 IOC 총회에 정식으로 초청받아 비즈니스클래스 왕복항공권과 IOC 본부호텔 숙식을 제공받으며, IOC 총회장 왼쪽에 마련된 단상에 난생처음 정식으로 IOC 공식 자리에 앉아 IOC 위원들과 눈높이를 같이하였고 5개 후보도시 프레젠테이션과 투표결과를 지켜볼 수 있었다.

 

…To Be Cont’d…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1. 5. 21. 10:08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9(IOC올림픽평가위원 IOC Evaluation Commission Member라는 자리와 숨겨졌던 뒷이야기 Part I)]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회에 앞서 현지에서 개최된 IOC 진행위원회에서는 2001년 결정할 2008년 하계올림픽 IOC 평가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좌로부터 IOC 발간 Olympic Review지에 소개된 IOC평가위원회 위원들, Hein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이 작성하여 보내 준 각 IOC평가위원 개인 별 품평 포함 감사서한, Toronto2008유치위원회가 IOC평가위원회현지실사 방문기간 중 발행한 Daily Newsletter)

 

구성된 위원들은 현역 IOC 위원 7(Hein Verbruggen-네덜란드, IOC 위원 겸 국제사이클연맹 회장, Francisco Elizalde 필리핀 IOC 위원, Craig Readie 영국 IOC 위원 겸 NOC 위원장, Carlos Nuzman 브라질 IOC 위원 겸 NOC 위원장, Tomas Sithole 짐바브웨 IOC 위원 겸 ANOCA 사무총장, Sergei Bubka IOC 집행위원(우크라이나) IOC 선수분과위원장, Mario Pescante 이태리 IOC 위원 겸 EOC 회장, IOC 사무국 대표로 Gillbert Felli 올림픽 대회 수석국장, 국제연맹 대표 3(Els Van Breda Vriesman 국제하키연맹회장(IOC 위원 역임), Patrick Baumann 국제농구연맹 사무총장(2017Buenos Aires 청소년올림픽대회 Sport Climbing경기 관전 중 심장마비로 젊은 나이에 사망)   Catrin Norinda 국제승마연맹 사무국장) 전문가(specialist) 대표 3(Simon Balderstone 환경전문가/호주), Bob Elphinston 경기 및 시설전문가(2000 시드니 올림픽 조직위 경기총괄 부위원장) 10개 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단장대행을 역임한 필자(Rocky Kang-Ro Yoon), 그리고 장애인올림픽 대표 1(Robert McCULLOUGH) 등 총 14명과 Jacqueline Barrett IOC 유치도시관련 팀장을 비롯한 3명을 합쳐 총 17명이었으나 Mario Pescante 이탈리아 IOC 위원은 도중에 사퇴하였다.

 

필자가 IOC 평가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간 배경은 다음과 같다.

 

IOC 집행위원회에서 직능별대표들을 선정하는 가운데 전문가그룹 대표후보자들 중 아시아대륙을 거명하며, 적임자가 없는 상태라고 Felli 국장이 사마란치 IOC 위원장에게 보고하자 당시 IOC 부위원장이었던 김운용 KOC 위원장이 「무슨 소릴 하고 있느냐? 한국의 Rocky Yoon이 있지 않느냐?」라고 강하게 Felli 국장을 힐난하며 필자를 추천하자, 그때야 Felli 국장 및 집행위원들은 필자를 미처 생각 못했노라고 인정하면서 적격자라고 평가받아 뒤늦게 임명되었다는 이야기를 김운용 IOC 부위원장에게서 전해 들었다.

 

IOC는 근본적으로 귀족 백인위주의 클럽으로 시작하였고, 근본적으로 유럽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로 분류되는 지역출신 사람들은 웬만큼 능력 있고, 기가 세고, 강심장을 갖고 세력 구축을 하면서 실력발휘를 하지 않는 한 IOC 등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식이다.

 

따라서 김운용 IOC 부위원장의 경우는 특별한 예외이며 그만큼 능력과 실력과 세력 등 3력을 겸비했다는 뜻이다.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KOC위원장과 필자)

 

 

국제 스포츠 무대에 아시아가 배출한 역사상 최고의 불세출의 스포츠지도자임에 틀림없다.

 

필자가 아무리 실력과 능력과 경험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어도 당시 김운용 부위원장께서 IOC 집행위원회 회의석상에서 강력한 추천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IOC 30여개 분과위원회 중 가장 실력과 능력을 겸비한 대표들로 포진된다는 IOC 올림픽대회 평가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김운용 IOC 부위원장께서 「후배를 잘 키우지 않는다」는 항간의 주장과는 잘 맞지 않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기회를 빌려 故 김운용 IOC 부위원장께 필자가 국제무대에서 그동안 축적된 모든 경험과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본격적으로 한민족의 저력과 「본때」를 보여주고 명성을 날리도록 추천해주신 한국 최고 불세출의 스포츠외교관 김운용 회장의 사려 깊은 배려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명복을 빈다.

 

 

2000 915일부터 101일까지 개최된 시드니 올림픽대회 시작 전인 2000 829일자로 IOC에서는 필자의 IOC 평가위원회 위원 임명사실을 통보하면서 2000 925일 호주 시드니에서 IOC 올림픽대회 평가위원회 위원 상견례 겸 제1차 회의를 소집하였다.

 

올림픽대회 기간 중 시드니 Regent호텔 볼룸에서 개최된 회의에는 당시 사마란치(Samaranch) IOC 위원장, 까라르(Francois Carrard) IOC 사무총장, 펠리(Gilbert Felli) IOC 국장, 쟈끌린 바레트(Jacqueline Barrett) IOC 유치도시 담당팀장과 IOC 평가위원장직을 맡은 베르부뤼겐(Hein Verbruggen) 네델란드 IOC 위원 겸 국제사이클연맹 회장을 비롯하여 엘리잘데(Francisco Elizaldes) 필리핀 IOC 위원, 리디(Craig Reedie) 영국 IOC 위원, 페스칸테(Mario Pescante) 이탈리아 IOC 위원, 누즈만(Carlos Nuzman) 브라질 IOC 위원, Tomas Sithole 짐바브웨 IOC 위원 겸 ANOCA 사무총장 등 평가위원 14명이 모두 참석하였다.

 

사마란치(Samaranch) IOC 위원장이 당부하는 인사말이 있었고 평가위원들 소개에 이어 IOC 평가위원회가 점검, 평가, 실사, 분석할 18개 분야에 대한 책임업무 분장이 있었는데, 필자에게는 주제3(Theme3/Customer and Immigration formalities; 세관 및 입국절차 세부사항)과 주제17(Theme17/Olympism and Culture; 올림픽대회 개폐회식, 올림픽 성화봉송, 시상식 등 제반 의전행사와 문화행사 등)이 책임분야로 지정되었고, 기타 분야는 공동참여하도록 정해졌다.

 

 

(IOC본부 IOC집행위원회 회의실에서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회 최종보고서 작성하기 위해 모인 IOC평가위원들/좌로부터 Carlos Nuzman브라질 IOC위원 겸 NOC위원장, Sergey Bubka 우크라이나 IOC집행위원-IOC선수위원장 겸 NOC, Tomas Sithole 짐바브웨 IOC위원 겸 ANOCA사무총장, Francisco Elizaldes 필리핀 IOC위원 겸 IOC후보선출위원장)

 

 

5개 유치후보도시에 속한 나라의 IOC 위원들은 투표권이 없으므로 이들 11(중국2, 일본2, 캐나다3, 터키1, 프랑스3) IOC 위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IOC 위원들은 IOC 평가위원회가 작성한 최종 평가위원회 보고서를 숙독한 후, 투표일인 2001 713일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었다.

 

…To Be Cont’d…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1. 5. 19. 10:59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8(국제무대에서 태극기 휘날리다)]

 

 

태극기가 가장 많이 휘날리는 현장은 뭐니뭐니해도 스포츠와 관련된 행사(Events), 경기(Competitions), 시상식(Victory Ceremonies) 등이다.

 

우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선수들의 유니폼(Uniform)에 부착된 태극마크를 떠올릴 수 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운동선수들의 숙원(long-cherished desire)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기까지 흘리는 피와 땀(blood and sweat)의 노력은 태극마크로 보상된다.

 

(LA1984올림픽 한국선수단 입촌식<->, 올림픽 개회식 한국선수단 행진<->, 한국선수단 단기 개회식 기수 사전 리허설<-> 및 한국선수단 현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1)동·하계 올림픽대회(Winter and Summer Olympic Games; Olympics), 2)동·하계 아시아 경기대회(Winter and Summer Asian Games), 3)동·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Winter and Summer Universiade), 4)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World Championships)등 대회 참가를 위해 선발된 국가대표선수단(Selected National Delegation/Team)은 출전을 앞두고 결단식(Delegation Inauguration meeting)에서 선수단장(Chef-de-Mission; Team Leader)이 해당 경기단체(National Governing Body)또는 대한 올림픽위원회 위원장(President of Korean Olympic Committee)으로부터 단기(Delegation Flag)로서 태극기를 인수받아 단상(platform)에서 그 태극기를 흔들면서 결전의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다.

 

한국 선수단의 기수(Flag Bearer)는 대회 개·폐회식(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에서 태극기를 들고 선수단을 선도한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개회와 같이 종합대회에서는 선수단의 선수촌(Athletes Village/Olympic Village)에 도착한 다음날에 입촌식(Flag Raising ceremony 또는 Team Welcome Ceremony)을 갖게 되며, 입촌 시 해당국 선수단의 입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국기게양식(National Flag Raising/Hoisting Ceremony)를 갖게 된다.

 

물론 국가연주(Playing of National Anthem)가 함께 수반된다.

 

개회식과 함께 대회가 시작되어 메달 수여식(Medal-Awarding Ceremony; Victory Ceremony)에서도 금, , 동메달리스트의 국기가 동시에 게양된다.

 

물론 국가연주는 금메달리스트 국가에 한한다. 이외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경우는, 선수가 금메달이 확정되고 나서 경기장을 돌면서 태극기를 휘날리기도 하고, 응원단에서도 응원(cheering)과 함께 태극기를 열렬히 흔드는 것이다.

 

또한 ANOC총회나 OCA총회 그리고 EAGA총회 등을 비롯하여 각국 올림픽위원회를 대표하여 참석하는 각종국제스포츠회의 석상에도 각국을 상징하는 국기들이 회의 석상에 탁상용 국기가 놓여 있다.

 

(전세계각국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인 ANOC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KOC대표들/사진 상단: 우로부터: 김영환 KOC명에총무, 신박제 KOC부위원장, 발언 중인 필자<2000년대 당시 KOC국제사무차장>/사진 하단: 좌로부터 김세원 KOC부위원장,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필자<1980년대 후반 당시 국제과장시절>)

 

각국을 대표하는 회의참석자 역시 국위선양과 스포츠외교력 강화를 위해 국제스포츠회의를 적극 활용하며 해당 기구의 임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의 경우 세계 스포츠 UN총회라고 일컫는 ANOC총회의 집행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필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1992년 제25회 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섭외 임원(Official in charge of International Relations) 겸 선발대장(Chief of Advance Party of Korean Delegation)겸 선수단장대행(Acting chef-de-Mission)으로 선수단 본진(Main Body of Korean Delegation)이 도착하기 열흘 전 현지에 도착하여 대회 조직위원회(OCOG; Organizing Committee of Olympic Games) 각 부서 관계자들과 한국선수단 입촌 및 대회 참가에 따른 세부 확인사항 최종 점검회의를 갖은 바 있다.

 

(Barcelona1992올림픽 입촌식 후 국기광장에서 올림픽마스코트인 Cobi와 함께)

 

 

ID 카드 (Accreditation)발급, 선수단 수송(Transportation), 선수촌 숙박(Accommodation), 의무관련사항(Medical Services), 통관(Customs Clearance Procedures), 의전(Protocol), 단장회의(Chef-de-Mission's meeting), 선수촌 식당메뉴(Menu of Olympic Village Restaurant), 차량배분(Allocation of Vehicles), 입촌식 절차(Procedures of Team welcome Ceremony)등에 대한 선수단 등록 종합 점검 회의(DRM; Delegation Registration Meeting)에서,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국기와 국가 호칭 문제였다.

 

왜냐하면, IOC 의전에서 대한민국은 KOREA(약어로 KOR)로 북한은 DPR KOREA(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약어로 PRK)로 되어 있는바, 비록 잘 훈련된 조직위 직원들이라 하더라도 현장에서의 혼돈으로 의전상 실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연주 시에도 중대한 착오가 생길 수 있었다.

 

더욱이 양측 남·북한 양측 국기는 그네들로서는 혼동되기 십상인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에, 한국 선수단 입촌식에 앞서 예행연습(rehearsal)을 갖자고 주장했고, 조직위 측의 배려로 다음날 한국 선수단 모의 입촌식(Mock Team Welcome Ceremony)를 하였는데, 그 당시 국기게양을 위해 태극기를 꺼내야만 했는데 엉뚱하게도 조직위 담당자가 인공기(북한국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도 주적(Main Enemy)인 북한인공기와 태극기를 혼동한다는 것은 국내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과실(Grave Mistake)로 심각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아찔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모의 행사였고, 실제로 게양되기 직전에 발견되었기에 실제상황이 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있을 정식 입촌식, 개·폐회식 시상식 등 많은 국기 관련 의전 행사를 고려하여, 조직위 측에 서면으로 정식 항의하였고, 선수촌 내에서 개최되는 일일 각국단장회의에서도 엄중 항의 하였으며 조직위 측의 정중한 사과와 재발방지서면 약속이 뒤따랐다.

 

물론, 그 덕분에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기간 중 국가와 국기와 관련된 혼동은 한 건도 발생치 아니하였고, 그 후 대회조직위원회 의전 팀은, 이를 사과하고 대한민국국기를 길이 기리는 의미에서 대회 기간 중 규격에 맞추어 대형 태극기를 의전팀원들이 공동으로 손수 그려서 필자에게 선물하였다.

 

그 역사적인 태극기는 필자가 개장한 평산 스포츠 박물관(PyeongSan Sport Museum)에 전시돼 있다가 강릉올림픽박물관<개장 준비중>에 각종 수집품과 함께 무상 기증된 바 있다.

 

(양평소재 평산스포츠박물관내 소장품 중 우측 상단 대형테극기가 Barcelona1992조직위원회가 수제품으로 제작하여 필자에게 기증한 역사적 소장품이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1. 5. 17. 12:03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7(향후 아시아대륙 주도권 아시아올림픽평의회 OCA중심축 장악)]

 

1990 8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였다. 이 와중에서 쉐이크 파헤드(Sheikh Fahad Al-Ahmad Al-Sabah) OCA 회장은 침공한 이라크 군과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1983년 방한한 초대 OCA회장 겸 쿠웨이트 IOC위원이 태릉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하고 있다. 좌로부터 김성집 당시 태릉선수촌장, 필자, Sheikh Fahad OCA초대회장) 

 

한 달 후인 1990 8월 중순 OCA 총회가 제10회 아시안게임 개최 도시인 중국의 베이징에서 대회 직전에 열렸다. 쉐이크 파헤드(Sheikh Fahad) OCA 회장이 사망했으므로 선임 부회장인 스리랑카의 로이 데 실바(Roy de silva) OCA 회장 직무대행으로 OCA 총회를 주재하였다.

 

여러 명의 OCA 회장 후보 중에 사망한 쉐이크 파헤드 회장의 친아들인 쉐이크 아마드(Sheikh Ahmad Al-Fahad Al-Sabah) 쿠웨이트 NOC 위원장(이후 IOC 위원 직도 승계함)이 있었다.

 

쉐이크 아마드(Sheikh Ahmad) 후보는 출마 당시인 1990년 만 29(1961년생)로서 당시 OCA 헌장 규정상 35세 이상이 되어야 하는 자격 조건에 문제가 있었지만 중동 국가 NOC 대표들과 친 쿠웨이트 인접국 NOC 대표들의 동조와 인도의 메타(Vice Air Chief Marshall Mehta) 사무총장 등의 교묘한 획책에 힘입어 1년 뒤인 1991 9월 인도 뉴델리에서 OCA 특별 총회를 갖고 OCA 헌장 내용 중 회원국 대표들 1/3 이상이 찬성하면 자격 요건 1~2가지는 유예될 수 있다는 해당 규정을 적용시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초대OCA회장 Sheikh Fahad<1982~1989>및 2대 OCA회장 Sheikh Ahmad<1991~>과 필자)

 

그 당시 인도를 필두로 아랍권 국가들이 똘똘 뭉쳐 쉐이크 아마드를 적법한 후보로 만들어 놓고, 사전에 치밀하게 조직된 투표공작을 벌여 쉐이크 아마드가 OCA 회장직마저 승계하였고 2021년이면 벌써 30년 동안이나 OCA 회장으로서 군림하게 되는 상황이다.

 

 

(초대 OCA사무총장 Mehta<인도> 2 OCA사무총장 겸 인도 IOC위원 Randhir Singh)

 

 

필자는 4년간(1994-1998) OCA 규정위원을 역임하고, 불합리한 OCA 헌장 규정 개정 등을 통해 OCA를 개혁해 보려는 취지에서 1999 11, 쿠웨이트 개최 제18 OCA 총회에서 실시된 OCA 집행부 임원 선출 시 OCA 규정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여 홍콩의 살레스(A. de O'Sales) 전 홍콩 NOC 위원장 겸 OCA 규정 위원장과 경선을 앞두고 있었다.

 

           (A de O’Sales OCA규정위원장<홍콩>OCA규정위원 시절 필자)

 

하지만 적지 쿠웨이트에서 갖가지 방해 책동으로 인해 결국 쉐이크 아마드 OCA 회장과 차기를 위한 작전상 타협으로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물론, 그 대신 OCA 집행위원인 아시안게임 수석조정관(Asian Games Chief Coordinator) 자리를 받는 조건으로.

 

그 이후 필자는 수석조정관(OCA집행위원) 자격으로 2006년 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카타르 도하를 방문, 조직위 관계자들과의 협의, 경기장 시설 등 현지 점검 등 임무 수행 한 바 있다.

 

(Qatar Doha2006 아시안게임 개최지에 OCA수석조정관 자격으로 시찰 방문 시 Al-Jazeera TV와 인터뷰 중인 필자)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까지 OCA수석조정관(아시안게임 평가 위원장)활동한 후, 2003 1월 역시 쿠웨이트에서 개최된 OCA 총회 시 OCA 창립 이후 최초로 OCA 사무총장으로 경선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OCA회장 측근 실세 OCA사무국장 Abdul Muttaleb Ahmad와 함께)

 

 

 


(당시 KOC
이연택 위원장의 결재 후 당시 김영환명예총무/사무총장 명의로 OCA본부에 제출한 필자의 OCA사무총장 입후보 문건)

 

 

(OCA회원국 NOCs중 필자의 OCA 규정위원장 선출 지지 확인 공한들 중 일부)

 

 

하지만 당시 KOC 내부의 이해득실에 의한 사퇴 종용과 2010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둔 한국으로서는 경쟁 후보가 IOC 위원(인도의 Randhir Singh)이었던 관계로 이 또한 종국적으로는 후보 철회를 해야만 했다.

 

(좌로부터 필자, 김동호 1999강원동계아시안게임 사무총장<믄화부차관 및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역임>, Randhir Singh OCA사무총장 겸 인도 IOC위원, 이승원 FIS집행위원)

 

OCA와 관련 오늘날까지도 주도권을 쿠웨이트로부터 쟁취하지 못하고 있지만 ASPU쪽은 건재하였다가 박갑철회장의 퇴진으로 다시 쿠웨이트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하지만 2021년 정희돈 KSPU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사실상 낙점되어 한국이 권토중래 할 전망이다.

 

애초 규정에는 ASPU 회장을 4년씩 2차례(8)만 하도록 되어 있으나, 박갑철 ASPU 회장은 벌써 4차례나 연임하였던 바 있다.

 

아시아 스포츠 언론 외교의 수장은 한국인이었다.

 

반면, 한국은 OCA 집행위원 급 임원은 당시 전무하다가 얼마 전부터 여러 명이 활동 중이다.

 

2015~20197OCA회장에 당선되어 8선 째 32년 간 회장 직이 끝나는2023년이면 다시 OCA 회장, 사무총장을 포함한 집행부 임원 선거가 다가온다.

 

지금부터라도 조직적으로 대비하여 한국이 아시아 스포츠 외교의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가능하면 OCA 본부도 한국으로 가져오자.

 

꿈은 꾸는 자의 것이니까.

 

(쿠웨이트 소재 OCA본부, 언제까지 難攻不落일까? /사진출처: insidethegames)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1. 5. 15. 10:57

[IOC, 2032년 올림픽 호주 Brisbane2032 예비 조직위 관계자들 및 호주 정부대표들과 와 3일 간 최종검증회의개최 발표, 확정기정사실화 초읽기]

 

IOC는 예비 Brisbane2032올림픽 조직위원회관계자들(prospective Brisbane2032 organizers) 및 호주 해당정부대표들(representatives of several levels of the Australian government)3일간에 걸친 회의를 개최하였다고 발표하였다.

 

 

Brisbane2032측의 최종 서류제출”(final submission)은 금명간 곧 이루어질 것이 예상된다(expected in the “coming weeks”)고 노르웨이 IOC위원이기도 한 Kristin Kloster Aasen IOC미래올림픽개최지위원회(FHC) 위원장이 언급하였다.

 

올림픽개최도시선출을 위한 새로운 접근방식 하에서는 과거의 사례처럼 해당개최지역이 해당올림픽대회요구에 맞도록 적응하고 각색하여 준비하기보다는 이제 올림픽이 개최 지역 거주민들의 필요에 맞추어 조직되도록 진행되는 것이다. Brisbane2032Brisbane市 및 Queensland州의 장기발전계획을 보완하도록 조직운영 방안을 명백하게 디자인해서 진행해 왔다”(Under the new approach to host elections, the Olympic Games adapt to the needs of the people living in the host region, rather than expecting the region to adapt to the Games. Brisbane 2032 has clearly been designed to complement long-term development plans for Brisbane and Queensland)

 

이제 Brisbane2032측이 IOC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서류와 문건을 예상대로 5월 중 제출완료하고 날 경우, Brisbane2032Tokyo2020올림픽에 앞서 720일 개최될 예정인 IOC총회에서 올림픽개최지로 낙점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아져 기정사실화 되어가고 있다. (If all goes as expected, Brisbane could be selected as host for 2032 at the IOC Session prior to the Tokyo Games in July.

 

서울-평양2032올림픽 공동 유치 또는 先 서울단독유치, 後 서울-평양 공동/분산 개최가 이루어지려면 마지막 초읽기 긴급 전략 실행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대통령명의의 친서와 오세훈서울시장의 Bach IOC위원장 긴급 회동이 급선무이다.

 

대한민국스포츠외교 및 한국스포츠의 TrademarkBrand-Power이기도 한 쇼트트랙(Short Track Speed Skating)성 추월 작전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져 아쉽고 안타깝지만 속수무책이 아니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기”(It is not completely over until finally concluded.) 때문이다.

 

*References:

-The Sports Examiner.com

-AOC(Australian Olympic Committee)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1. 5. 15. 09:51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4(태권도기사회생과2012년올림픽유치경쟁 현장 및 스포츠외교인재육성)

 

1.   2005IOC총회장에서 태권도 2012, 평창 2014 당시 스포츠외교현장

 

지난 200578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17 IOC 총회(7. 5~9) 3일 차 되던 날 105명의 IOC 위원들이 참가한 생존 경쟁 투표에서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및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2012년 런던 올림픽 대회에도 정식 종목으로 최종 확정된 바 있다.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입술이 마르고, 피를 말리는 순간순간이 지나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필자는 평창2014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총장으로 Rogge IOC위원장 특별 게스트자격으로 2005년 싱가포르 IOC총회에 참석한 바 있다.

 

필자는 IOC 총회장 내부 현장에서 결정권자들인 IOC 위원들의 태권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위한 막판 점검 분위기 파악을 위해, 불철주야 전방위 태권도 로비에 전심전력하여온, 당시 대한 태권도 협회장이기도 한 김정길 KOC 위원장, 김상우 KOC 총무(사무총장) 그리고 밤잠을 설치고 혹시나 하는 걱정에 노심초사하면서 태권도 올림픽 종목 사수에 맹진해온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총재 및 문동후 WTF 사무총장 등과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투표 결과를 지켜보았다.

 

(좌로부터 김상우 KOC총무, 필자, 김정길 KOC위원장, 한승수 평창2014유치위원장<이후 국무총리 역임>)

 

몰론, 2005년 당시 한국 내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를 대표하는 두 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박용성 국제유도연맹(IJF)회장은 IOC 투표권자로서뿐만 아니라, 동료 IOC 위원들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위한 헌신적이고 입체적인 최종지원노력을 아끼지 않는 한국인으로서도 우리 모두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기도 했다.

 

필자는 총회장에서 김정길 KOC 위원장 바로 옆에 앉아 투표 경과와 결과를 주도면밀하게 분석해 가면서 숨죽여 지켜보았고,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28개 종목 중 21번째였던 태권도의 2012 올림픽 정식종목 포함 확정 발표 순간, 김정길 KOC 위원장과 함께 자축을 위하여 가슴 뭉클한 마음으로 악수하면서 땀으로 젖어 있는 김 위원장의 손을 잡았을 때, 대한민국 스포츠 총수로서 이유 있는 긴장감과 중차대한 책임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남게 되었지만 “4년간 생명이 연장됐다.”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 당시처럼 노심초사하면서 탈락 걱정을 하지 않으려면 2005년 당시에 지적된 (1)태권도의 판정 문제, (2)낮은 TV 시청률, (3)저조한 언론의 관심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스포츠 외교 능력을 더욱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태권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계속 번성하기 위해서는 세계태권도연맹(WTF)의 총재, 사무총장이 모두 한국인이고, WTF 본부도 한국에 있다는 문제를 슬기롭게 뛰어넘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국제 스포츠계의 실세가 했던 말이다. 글로벌 이미지와 부합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슨 세계의 스포츠가 되겠느냐는 뜻이다. 경청해야 할 대목이었다.

 

다행히 지구촌 약소국에게도 메달 획득 신화를 쓰게 해 주는 신데렐라 스포츠로 각광을 받는 태권도는 각고의 노력과 각계의 성원에 힘 입어 Paris2024올림픽까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있다.

  

2.   2012년 올림픽개최도시 최종 선출 치열한 스포츠외교현장

 

싱가포르 IOC 총회 첫날인 76일에는 2년여 동안 2012년 올림픽 후보지로 선두주자(front runner)자리를 고수했던 프랑스의 파리2012를 제치고 영국 런던2012 4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개최도시로 선정되었다. 이것은 애당초 예상을 뒤엎은 결과여서 그 순간 감격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117 IOC 총회 개회식 날인 75일 오후 7 30분에는 Lee Hsien Loong 싱가포르 총리가 총회 개회사에서 5개 유치도시를 거명하면서 “London, Madrid, Moscow, New York and Paris"라고 순위를 매겼다.

 

물론 영어 알파벳순이라고 토를 달아 긴박한 순간을 공유하고 있던 IOC 위원들을 포함한 모든 유치 도시 관계자들의 폭소를 자아낸 긴장 해소용 청량제 노릇을 하기도 했지만 말이 씨가 된 셈이었다.

 

결국, 이 총리의 예언(?) 대로 최초의 런던2012과 최후의 파리2012가 최종라운드에서 격돌을 벌려 런던이 월계관을 차지하였다.

 

런던2012의 승리는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에서의 G8 정상회담 주최자이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면서도 싱가포르 현지까지 날아와 소탈하고 정감 넘치는 세일즈 외교를 펼친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과 투표 당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IOC 위원들의 표심 공략에 맹진한 세바스천 코(Sebastian Coe) 런던 2012 유치위원장과 케이스 밀스 유치위원회 국제위원장 겸 사무총장 등의 정성 어린 감동 마케팅, 그리고 투표 직전의 런던 프레젠테이션 내용에 담겨 있는 진한 감동의 메시지 등이 승리의 요인으로 주효하였다.

 

반면, 선두주자였던 파리 2012 유치위원회는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대통령의 싱가포르 총회 참석 및 외형적인 현지 로비활동에도 불구하고 “魔의 D-3일”부터 투표 전략에서 “공격보다 현상 유지”에 치우친 인상을 남겨 최후까지 노력하는 자만이 미수 지을 수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 경우가 되었다.

 

한편, 백전노장의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 등이 막후 로비활동을 주도한 마드리드 2012유치위원회는 다크호스(Dark Horse)답게 투표 2차전에서 32표를 획득, 런던(27), 파리(25), 뉴욕(16) 등을 제치고 1등을 하였으나 결국 3차전에서 런던(39), 파리(33)에 이어 31표를 득표하는 데 그치는 바람에 고배를 마셨다.

 

 

3.   평창2014 동계올림픽유치 석패 여정

 

런던2012 올림픽 개최도시 선정 축하를 겸한 IOC 위원장이 주최한 76일 저녁 리셉션에서 필자가 만난 많은 IOC 위원들은 묻지도 않은 평창2014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하여 2003년 프라하에서의 따뜻한 격려와 지원의 뜻을 담은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77일 저녁 토리노2006 동계올림픽 조직위 주최 칵테일 리셉션에서 만난 동계올림픽 스키 3관왕이며 세계 스키 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장 클로드 킬리(Jean Claude Killy) 프랑스 IOC 위원은 필자가 2008년 하계올림픽 IOC 평가위원으로 당시 유치 도시의 하나였던 파리를 방문한 동안 자크 시라크 대통령 면담 시의 일화를 상기시키면서, 탈락한 파리의 심정을 필자에게 토로하는 자리에서 안시(Annecy) 2014 동계올림픽 유치 신청 가능성은 5%도 안 되므로 평창의 선전과 승리를 기원했다. 의외의 상황이었다.

 

또한 앙리 세랑두(Henri Serandou) 프랑스 NOC 위원장 겸 IOC 위원도 안시Annecy2014 동계올림픽 유치신청의사가 없음을 강조하였으나, 외신 보도에 의하면 유치 후보 신청 예정이라고 보도한 바 있었다.

 

물론 프랑스 정부와 NOC의 승인을 받아 초기 유치 신청 마감일인 728일이 지나봐야 신청 여부가 공식 판정될 것이었으나, 1992년 개최도시 결정 시 당시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 바르셀로나1992를 위해 막강한 막후 로비 및 조율을 해 우세했던 파리를 제치고 개최도시로 선출하게 되었던 사실이 있는데 거기에 반발하는 프랑스를 무마하기 위해서 알베르빌(Albertville1992) 199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했다는 뒷소문도 있었다.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 시절 Paris2008유치도시 실사 방문 시 프랑스 IOV위원들과의 만찬 장면, 좌로부터 필자, Henri Serandou 프랑스 IOC위원 겸 NOC위원장, Guy Drut 프랑스 IOC위원, 레스토랑 Chef, Hein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 겸 네덜란드 IOC위원, 국제승마연맹<FEI>대표 IOC평가위원, IPC대표 IOC평가위원)

 

 

당시 2012 올림픽 유치 도시였던 파리에 대한 동정론이 대두하고 있다는 그 당시 언론 보도 내용은 당시 상황은 그럴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는 면이 있기는 하나 냉정한 국제 스포츠 계 테두리에서 보면, 2014 동계올림픽 개최도시 선정 시기인 2007 7월 과테말라의 제119 IOC 총회까지 그러한 정서가 지속하여 설령 안시(Annecy)가 나오더라도 거기에 투표할 순정파 IOC 위원들은 극소수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평창2014은 막강하였다. 정부의 전 방위적이고 전폭적인 지원, 평창2014 유치위원회의 조직력과 전 방위적인 활동 영역, 전 세계 스포츠계로부터 검증 받은 위상, 더욱 공고해진 평창의 응집력 등은 그야말로 2007 7월 과테말라 하늘 아래 「세계 최강」의 유치 후보 선두주자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파리2012가 그랬듯이 자만은 금물이며, 초심으로 돌아가 투표 당일까지 성실하고 꾸준하고 응집력 있고 조화로운 유치활동을 초지일관(初志一貫)하는 것이 승리를 확고히 할 수 있는 평창 성공 매뉴얼일 것이었으리라.

 

이기리라 확신하였던 평창2014동계올림픽 유치는 염려했던 대로 결국 기술적이나 평판에서 별볼일 없었던 러시아의 소치2014에게 현장 막판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집약적 로비활동에 뒷덜미를 잡혀 또 다시 석패하고 3수 도전 끝에 남아공 더반 IOC총회에서 2011년 평창2018유치에 성공하게 되었다.

 

4.   스포츠외교의 본질과 차세계스포츠외교관 인재육성

 

스포츠 외교란 검증 받은 정통 올림픽 운동 조직 구성원 등이 올림픽 대회 등 각종 국제 스포츠 행사와 국제회의 및 교류를 통해 축적되어 온 협상력과 실력 그리고 국제 스포츠 계 흐름에 정통한 상태에서 돈독한 우정과 오랫동안의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씨줄 날줄을 형성하여 계기 마다 필요 시 조화로운 응집력을 발휘하여 목표를 설정한 후 협력체계를 이루어 내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해 주는 소위 「얼굴 마케팅」이다.

 

(장웅 북한 IOC위원겸 ITF총재와 함께)

 

당시 북한의 장웅 IOC 위원(국제태권도연맹 총재역임)은 스포츠외교에 대해 일본의 스시 만드는 과정에 비유하여, 스시 전문가란 실력 있는 전문가의 문하에서 초밥을 수준급으로 뭉쳐 만들어 내는 데만 최소 10, 그리고 그 위에 생선을 저며 올려 완성하는데 최소 5, 도합 15년에서 20년이 지나야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제대로 된 일꾼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맞는 말이다.

 

스포츠 외교 요원의 양성은 어학연수 과정이 결코 아니며, 현재 각종 국내 스포츠 단체에서 국제 스포츠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급 요원들을 해당 분야별, 종목별, 국제행사별로 전문화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해당 경기 단체의 담당 소관 국제 업무 처리과정을 통해 이적 네트워크 형성을 강화해 나가도록, 정부와 KOC 및 경기단체 등이 국제 스포츠 외교활동에 필요한 지원을 최대화하여 이들로 하여금 의욕적으로 해당 분야별 각종 국제 스포츠 행사 및 회의 등에 끊임없이 참석하게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국제 스포츠 계 인사들과의 교류와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한다면 우리나라도 빠르면 앞으로 10년 후부터는 유능하고 활용 가능한 다수의 국제 스포츠 외교요원들이 전 세계 스포츠 계를 누비고, 국위 선양은 물론 국익 창출에 크게 이바지하리라 굳게 믿는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1. 5. 15. 09:21
스포츠 외교2021. 5. 12. 10:15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6(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역경 극복과 부산명예시민증 제78호)]

 

부산광역시의 2002년아시안게임유치성공과 개최 성공의 뒤안길에는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숨쉬고 있다. 스토리(story)가 스펙(spec)을 이기는 증거가 남아 있다.

 

2000년 당시 아시안게임을 관장하는 주체인 OCA와 부산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BAGOC)간에 합의된 내용의 핵심 골자는 BAGOC 측이 앞으로 남은 2년 기간 동안 OCA 부산아시안게임 마케팅사업에 적극 협조하기로 하고 합의내용 불이행 시 불이익 감수 협약서(Non-Performance Bond)를 작성하고 서명하여 이를 양자가 법적 구속력을 갖도록 제도적 장치 안에 두고 성공적 개최를 위하여 상호 간 협조체제를 강화하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안상영 부산시장<우측>이 집무실에서 필자에게 부산명예시민증을 수여하였다)

 

양자 간 협약서는 Sydney2000올림픽 기간 중 OCA를 대표하여 OCA 회장과 사무총장 그리고 부산시 및 BAGOC을 대표하여 故 안상영 부산시장, KOC를 대표하여 김영환 명예총무가 각각 서명하였다. (그 당시 홍콩 HSBS은행에 예치했던 계약 불이행 시 보증 용 금전 채무공탁금(Non-Performance Bond)US$2,000만불이 대회개최 후 환율급등으로 부산광역시에 막대한 환차익 보너스도 안겨주었다.)

 

이로써 부산아시안게임 개최지 변경논의는 없었던 일로 일단락되었다.

 

고 우병택 BAGOC집행위원장 겸 초대 부산시의회의장과 도종이 제2대 부산시의회의장 및 이영 제3대 부산시의회의장 겸 현 부산 평통자문위 부의장 등은 부산아시안게임유치현장 실무주역이면서, 부산아시안게임유치는 물론 개최지 변경위기극복 등 제반 문제 등을 스포츠외교차원에서 해결하는데 확실하게 주도적인 역할을 한 필자를 부산명예시민으로 강력 추천하였다.

 

 

(좌로부터 이란 NOC사무총장인 Afsharzade, 필자, 우병택 유치위원장, 도종이 제2대 부산시의회의장, 이란 NOC부위원장)

 

            (좌로부터 우병택 유치위원장, 필자, Sheikh Ahmad OCA회장)

 

(좌로부터 필자, 카자흐스탄 NOC위원장, 비서, 부산유치위원, 이영 제3대 부산시의회의장 겸 현 민주평통 부의장)

 

그 결과 필자는 2000 1028일 졸지에 한국인으로는 드물고 예외적으로 같은 나라인 한국의 부산명예시민(일반적으로 외국인을 명예시민으로 위촉한다-편집자 주)으로 위촉되는 진귀하고 영광스런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좌로부터 이광태 부산시 양궁협회장, 권경상 BAGOC마케팅본부장<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사무총장 역임>, 필자, 안상영 부산시장, 부산시 관계자들)

 

필자의 명예시민증 수여에 견인차 역할을 다 해준 이영 부산시의회 3대의장 겸 현 부산 평통자문의 부의장에게 깊이 감사 드리고 함께 막후에서 화룡점정 역할을 해주었던 故 우병택 부산시의회 초대의장 겸 유치위원장 겸 BAGOC집행위원장과 이를 흔쾌히 받아 들여 내국인인 필자에게 부산명예시민증을 수여한 故 안상영 부산시장에게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명복을 빈다. 부디 영면 하소서! R.I. P!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21. 5. 10. 11:58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5(한국스포츠외교의 중상모략과 고질적 병폐)]

 

 

필자가 1982년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 입사 이래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KOC) 명예퇴직 씨까지 국제 업무만 22년간 전념했었다. 그리고 각종 국제 스포츠행사, 총회, 대회 등에 빠짐없이 줄곧 KOC 대표로 참석해 활동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필자 나이에 걸맞지 않게 국제회의 「원로」, 「터줏대감」, 「베테랑」, 「붙박이 선수단장」, 「총회꾼」,  「외교통」, 「국제통」,「마피아」, 「해결사」, 「올림픽백과사전」등의 다양한 질시 어린 칭호도 받게 되었다.

 

스포츠외교관 활동 제2막인 평창동계올림픽유치 3수 과정 10여년 간에도 줄곧 IOC-국제연맹-NOCs-외신기자들과의 관계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IOC 집행위 연석회의, ANOC 총회, 각국 단장 회의, OCA 총회, EAGA 총회 등에 KOC 대표로 참석하면, 필자는 국제 실무와 현장 경험을 두루 꿰고 축적한 연유로 그 어느 타국 대표들보다 회의 내용 숙지도나 흐름, 전개방향 및 양상 그리고 문제점과 전망 등에 있어 질문이나 문제제기 등에 군계일학(?)이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특성과 특기를 발휘해 왔다.

 

 

 (1982년 대한체육회 특채입사부터 2021년 현재까지 3명의 IOC위원장과도 줄곧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리고 영어와 불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던 덕에 코리아의 「Rocky Yoon」이란 명성을 IOC 위원장, ANOC 회장, OCA 회장은 물론 국제경기연맹회장, 각국 NOC 위원장, 사무총장, 동·하계 올림픽 대회 참가 각국 선수단장, 각국 스포츠 관계자 실무진, 대회조직위원회 관계자 등 전 세계 스포츠 계에 시쳇말로 四海에 떨치게 되었다.

 

자연히 끈끈하고 친화력 있는 인맥 형성도 깊고, 폭넓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아시아의 보배(?)란 소리도 많이 들었다.

 

 

(부산2002아시안게임 당시 아시아 IOC위원들과의 KOC위원장 주최 오찬에서 필자가 모두발언<冒頭發言>을 하고 있다/부산 롯데호텔 연회장/좌로부터: 박용성 IOC위원-C.K Wu대만 IOC위원-이연택 KOC위원장-필자-Elizalde 필리핀 IOC위원-Tamas Ajan 헝가리 IOC위원 겸 IWF회장-김영환 KOC명에총무-Timothy Fok홍콩 IOC위원-Okano일본 IOC위원-Magvan몽골IOC위원-Zhenlinag HE 중국 IOC부위원장 등)

 

 

한편, 「잘 나갈 때 조심하라」, 「튀면 죽는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라는 말들이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한국인의 DNA 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동양인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변태적, 돌연변이적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휘날리며, 각종 스포츠 관련 총회 및 회의석상을 휘저으며 석권할 때, 같이 참석했던 KOC 대표들과 한국 측 관계자 중에는 「눈꼴 사나운」맹활약상이 아니꼽고, 배 아프고, 시기 질투심이 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심리에서 국내로 돌아와 필자의 활약상에 대하여 칭찬은커녕 배 아픈 마음에서 소인배들과 작당하여 「너무 튄다」, 「잘난 척 한다」,「너무 앞서 간다」,「혼자만 설친다」,「건방지다」,「천방지축이다」,「경망스럽다」,「말이 많다」,「경솔하다」,「가볍다」,「진중하지 못하다」,「독불장군이다」,「혼자 말아 먹는다」,「안하무인이다」,「위험스럽다」등의 독설과 중상모략을 근거 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퍼뜨리면서 「앞으로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놈」이라고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필자의 활약상과 능력, 외국어 구사력, 지식과 경륜, 대인관계, 외교력, 친화력, 인맥관리 등에 대하여 정확하고 있는 그대로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시는 분들이 국내외에 훨씬 더 많이 존재하다 보니 필자가 그 40년간의 스포츠 외교 활동 중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왜냐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독설과 중상모략에도 불구하고 IOC 위원장을 포함한 외국 인사들이 객관적인 필자의 실력과 경력을 대안이 없을 정도로 탁월하게 인정하다 보니 지금까지 죽지 않고 생존해 온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1993년 초부터 2002년 초까지 9년간은 국제 스포츠계를 좌지우지했던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GAISF 회장, WTF 총재, IOC TV 분과위원장 겸임)이 대한체육회장 겸 KOC 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동안에는 필자의 능력과 국제 업무 및 외교활동을 높이 사고 있던 김운용 회장이었던 터라 필자는 「일취월장」발전할 수 있었고 동시에 국내 시기, 질투, 모사꾼들의 소위 「작업」으로부터도 피할 수 있었다.

 

 

(김운용 KOC위원장 겸 IOC부위원장과의 스포츠외교활동 이모저모 현장 일부)

 

그러나 김운용 회장이 Salt Lake City2002동계올림픽대회 이후 권좌에서 물러나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모사전문」작업 꾼들에 의해 필자도 함께 매도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모 주간지에서는 필자를 「김운용의 최측근」이라고 단정적으로 호칭하기도 했다.

 

필자가 국제 업무를 김운용 회장의 지침과 기대에 부응할 정도로 거의 모든 국제 관련 업무들을 원만히 해결해 나가다 보니, 「실세」, 「황태자」라는 칭호까지 덤으로 따라다녔다.

 

이를 듣게 된 김회장은 공식석상에서 「실세란 일 잘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지, 측근에서 아첨과 아양을 떠는 X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실세」의 정의까지 내려 준 바 있다.

 

그 후 격변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 필자는 대의명분과 국제적 실리 그리고 외교적 위상강화보다는 국제 스포츠계의 흐름과 동향 그리고 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목전의 이익이나 안일함을 추구하는 몇몇 소수의 중상과 모략 그리고 부추김에 의한 대세판단에 일관하는 당시 분위기가 싫어져서 2004 4, 22년간 근무했던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에서 국제 사무차장(1)직을 끝으로 명예퇴직하고 나와서 독자적으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비영리법인격 단체)을 설립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평창동계올림픽유치 3수 기간 내내 생사고락-동고동락했던 당시 3선김진선강원도지사 겸 유치위원회 집행위원장 겸 평창2018동계올림픽 초대 조직위원장과 함께)

 

칭기즈칸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경험적 철학이 적나라하게 펼쳐진 것은 2003 1월 쿠웨이트에서 있었던 OCA 총회 때라고 뼈저리게 기억된다.

 

국내 모 주간지에는 「밖에 나가 집안싸움 체육계 ‘국제 망신’」이란 제목으로 현장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유포된 바 있다. 필자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기사를 읽다 보니,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당시 KOC 위원장께 쿠웨이트 OCA 총회 참가 시 발생했던 일련의 사안에 대해 시간대별, 항목별, 관련 인사별, 관련 사안별로 6하 원칙에 의거, 조목조목 상세히 경위를 밝혀 문서로 제출한 바 있다.

 

또한 해당 모 주간지 편집장에게는 현지 증빙 문건과 함께 해당기사 반론 및 정정보도 요청 문건까지 준비하여 발송할 작정이었으나, 그전에 필자가 해당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개인적으로 만나 기사작성 경위 등에 대한 자초지종을 듣고 실제 현장이야기를 사실과 정황과 관련문건 등을 제시하며 정확히 설명하였다.

 

그러자 그 기자는 한쪽 이야기만 듣고 기사화 했던 것이 잘못된 것 같다는 사과와 함께 필자의 사실에 근거한 내용을 다시 기사화 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필자는 해원상생하자는 취지에서 시시비비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대승적 차원에서 판단하여 몰이해와 판단착오로 인한 해프닝으로 귀결하여 일단락 짓고 마무리한 적도 있었다.  

 

문제가 된 2003년 쿠웨이트 개최 OCA 임원선거 총회 참가에 따른 진상과 전말은 다음과 같다.

 

122

 

공로명 유치위원장, 최만립 KOC 고문, 필자, 김남수 유치위 국제부장 일행 대한항공편으로 방콕 경유, 쿠웨이트항공 편으로

123

 

아침 쿠웨이트 현지 도착(장주호 KOC 부위원장 동행).

 

※숙소:Marriott 호텔

 

※공항 VIP 라운지 대기 중 20분 후 KOC 명예총무, KOC 국제팀장 출영 차 도착 이후 체육회 사무차장 공항 도착 후 VIP 라운지로 등장.

 

10:30~12:00

 

Crown Plaza 호텔 회의장(Marriott 호텔에서 20분 거리)에서 OCA 회원국 NOC 사무총장 회의 참관(KOC 명예총무 참석).

 

14:00

 

OCA 본부 방문(OCA총회 참가자 대상) OCA 부속 건물 기공식 참석(故 조상남 북한 NOC 서기장 및 고철호 NOC 서기 등과 조우).

 

14:30

 

OCA 회장 단독 면담-한국 IOC 위원(김운용, 이건희, 박용성 위원) 문의

 

※면담 내용: 필자의 협조에 감사(OCA 사무총장 후보 철회 내용을 시사하는 느낌을 받음).

 

평창 유치 강력 지원 표명(기자회견 및 공식 지원 표명 계획은 언급도 없었음).

필자의 국제스포츠 경험, 지식, 언어 능력 등을 높이 평가하며 OCA 발전에 적극 기여할 수 있도록 구체적 장치를 곧 시행하겠다는 언질을 줌.

 

15:00

 

예정된 OCA 집행위원회 참석(주재)관계로 OCA 회장과 함께 차량 동승하여 회의장이 있는 본부 호텔로 출발 및 도착.

 

20:00

 

OCA 회장 주최 환영 만찬행사 참석(쿠웨이트 외무장관 관할의 Hunting Club).

 

22:00

 

숙소 Marriott 호텔 도착.

 

22:20 호텔 로비에서 Randhir Singh OCA 사무총장(인도 IOC 위원) Timothy FOK 홍콩 IOC 위원 겸 NOC 위원장 겸 OCA 동아시아 부회장이 대화 나누는 모습 목격하고 공로명 위원장은 필자와 최만립 KOC 고문에게 상기 2 IOC 위원과 악수나 하자고 하면서 그쪽으로 접근함.

 

 

선거 전날 밤, 평창 유치위 실무진에 의하면 Marriott 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KOC 실무팀장이 당초 불출마라고 시종일관 주장해 왔던 OCA 부회장 피선을 확실히 예상한 듯, OCA 부회장 선출에 대한 연설문으로 추정되는 인쇄물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함.

 

- Singh 인도 IOC 위원이 FOK 홍콩 IOC 위원에게 계속 어떤 내용을 이야기하고 FOK 위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경청 중이었음.

 

- 공로명 위원장이 먼저 “Hello” 하자, FOK 위원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시 Singh 위원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경청함.

 

- 필자가 앞에 나서자 Singh 위원 및 FOK 위원은 대화를 중단하고 필자와 어색한 인사 나누자, 공로명 위원장 및 최만립 고문도 합석하여 인사 나눔.

 

- 심각한 표정에 대하여 무슨 일인가 묻자 약간 망설이다가 KOC 위원장이 OCA 동아시아지역 부회장직에 출마하여 FOK 홍콩 IOC 위원 자신에게 도전했다고 내뱉듯이 말하면서 불쾌하고 심드렁한 심정을 드러냄.

 

 

(Timothy Fok홍콩 IOC위원겸 OCA 동아시아 부회장 겸 NOC위원장과 함께)

 

 

- 공로명 위원장, 최만립 고문 및 필자는 이구동성으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부인하면서 KOC 위원장은 그런 자리에 연연하는 분이 결코 아니며, 이미 지난번 멕시코 ICO 총회에서 그런 소문이 있었을 때 출마한 사실이 없노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으므로 절대 사실과 다르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당일 오후 KOC 명예총무도 필자에게 불출마 사실을 재확인해 준 바 있다고 첨언하면서 증거가 있냐고 강력 부인함.

 

- 그럼에도 불구하고 FOK 홍콩 IOC 위원은 증거를 제시하겠노라고 하면서 본인 객실로 함께 가자고 제의하였고 이에 최만립 고문과 필자가 객실로 함께 가서 첨부된 입후보자 명단을 입수하게 된 바, 동 문건은 당일 오후 3시부터 개최된 OCA 집행위 회의록 일부였음.

 

- 공위원장은 동 문건을 확인하고 믿을 수 없다고 KOC명예총무를 찾았으나, KOC 부위원장이 마침 호텔 로비에 있다가 공위원장과 언쟁이 있었음.

 

- 공위원장은 KOC가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서울로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하자, KOC 부위원장은 큰소리로 전화하시라고 대응하였음.

 

- 필자는 공위원장에게 KOC 위원장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지 모르니까 KOC 위원장과 먼저 통화를 하고 경위를 알아보자고 하였으나 현지 시간을 확인한 결과 이미 KOC 위원장은 한국을 떠나 방콕을 경유 쿠웨이트로 오는 중이라는 결론이 내려져 전화통화시도는 무위로 그침.

 

- 공위원장 객실에서 최만립 고문, 김남수 부장이 대책회의를 하고 있는 동안 밤 11 50분경 KOC 명예총무 등이 공위원장 객실로 찾아와, OCA 부회장 건은 이미 OCA 측과 조율이 끝났고 FOK 홍콩 IOC 위원 자신도 당일 오후까지 Happy한 상태였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항변하면서, KOC 위원장이 부산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온갖 정성을 들여놓았으며 OCA 부회장이 되어야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이는 관점의 차이라고 설명하고 KOC 측에서는 KOC 위원장이 OCA 부회장이 되면 OCA 측과 협조, 아시아 지역 IOC 위원 21명이 평창을 지지한다는 공식 기자회견이 있을 것이라고 부언하자, 공위원장은 견강부회(牽强附會) 격이라고 하면서 말이 되지 않는 소리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고, 최만립 고문도 FOK 홍콩 IOC 위원 당사자가 심히 불쾌히 생각하고, 중국 IOC 위원도 가세해서 흥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중국 2, 홍콩 1표 도합 3표를 잃게 되고 결과적으로 6표의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며 역시 반박하였으며 필자는 KOC 위원장을 잘 모시려면 우선 행정적으로 잘 챙겨 드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KOC 위원장께서 현재까지 OCA 부회장직 출마신청서를 제출한 바 없다고 천명하러 왔기 때문에, 출마신청 없이도 OCA 부회장에 당선될 수 있다는 논리를 개발해 놓아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자, KOC 측에서는 내부 문제를 밖에서 누가 알겠느냐고 반박하였고 필자는 더 이상의 충돌을 방지하고자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였음.

 

이후 서울과의 교신을 통해 문광부 장관 명의의 문서가 최조영 주 쿠웨이트 대사를 경유(또는, 호텔 FAX를 통해) KOC 위원장에게 전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고

 

- 동문서의 사본은 KOC 총무가 1 24일 아침 OCA 총회회의 중 필자 자리로 와서 보여준 바 있음.

 

- 이어서 KOC 총무는 공위원장에게 OCA 측과 함께 협의 회의에 참석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필자는 자리를 지켰고 공위원장과 주 쿠웨이트 대사가 동 협의에 임한 것으로 알고 있음.

 

- 그러는 사이 OCA Muttaleb 사무국장이 필자 자리로 와서 “Peace"라는 말을 전달하였음.

 

           (OCA 실세 사무국장 Abdul Muttaleb와 함께)

 

 

- 이어, 평창 유치위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이 시작되었고(KOC 회의 대표 모두 동시에 자리 옮김), 그 후 OCA 임원 선거를 위한 자리정돈과 휴식 시간이 주어졌으며, NOC 회의대표가 아닌 필자를 포함한 나머지 참가자들은 OCA가 요청한 대로 회의장 밖으로 나가 대기 중, 부산 아시안게임 조직위 국제팀장이 OCA에서 KOC 회의대표(특히 KOC 명예총무)를 찾는다고 하였으나, 투표장에는 이미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추후 전해 들었음.

 

- 투표결과는 1 24일 당일 공항으로 출발직전 Milkako Sugiura OCA 선수분과위원장(일본)으로부터 전해 들었으며 당초 KOC 총무가 KOC 출마자가 너무 많아, 희생하는 마음으로 OCA 규정위원 출마포기서를 OCA에 제출했다는 내용과는 달리, OCA 규정 위원에 KOC 총무가 궐석 당선되었다는 결과도 알게 되었음(또다른 KOC 후보) OCA 정보, 통계위원회에 동반 궐석 당선되었다고 함)

 

※ 이상은 본인이 쿠웨이트에 머무는 동안 보고, 듣고, 파악한 내용의 전부임.

 

KOC 위원장이 전해 듣고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하여:

 

1) 필자는 123 14 30분경 OCA 본부에서 Sheikh Ahmad OCA 회장과 단독 면담을 가진바, 상기 보고에 포함된 내용의 요지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만일, KOC 위원장이 믿고 있는 대로 “임기 두 달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OCA 부회장직은 부적합하다.”라는 터무니없는 말을 본인이 했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OCA 집행위 서류에 인쇄되었던 OCA 동아시아 부회장 2명 후보 명단이 당일 밤, 익일 아침 OCA 총회 배포용 회의 자료에 정식 출마자인 FOK 홍콩 IOC 위원 명단은 삭제되고 KOC 위원장이 OCA 동아시아 부회장 단일 후보로 인쇄(첨부)되어 투표 직전 OCA 회원국 NOC 회의 대표에게 자료가 배포될 수 있는지, 앞뒤 논리가 전혀 맞지 않으며,

 

          (Sheikh Ahmad OCA회장과 함께)

 

 

2) 더구나 KOC 총무는 당일 오후, 필자가 OCA 회장과 단독 면담할 것이라고 말하자,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옆에 붙어 있으면서, 앞으로 모든 것은 역사가 말해 줄 것이라면서 KOC 총무는 필자와 예전처럼 형, 아우로 마음 터놓고 허물없이 서로 감싸주고 도와주자고 읍소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으로 본인을 대한 셈이었고, 이에 KOC 총무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진정으로 잘해보자고 하면서, 지난 멕시코 IOC 총회 시 공위원장께서 KOC 위원장 OCA 부회장 출마사실 여부 문의 시 어정쩡하게 답변함으로써 어딘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으나 KOC 위원장이 멕시코 공항으로 출발 직전, 공 위원장 및 필자에게 출마사실이 없다는 불출마 사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하자. KOC 총무는 공 위원장이 추궁하는 태도가 기분 나빴고 실제로도 출마한 사실이 결코 없노라고 재삼 확인해 주었으므로, 당일 밤, FOK 홍콩 IOC 위원에게 상기내용대로 강력하게 KOC 위원장의 출마사실이 전혀 없노라고 오히려 반박하였으나, OCA 집행위 문건(첨부)을 확인한 후 인간의 믿음에 대한 배신감 내지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음.

 

 

(좌로부터 필자-공로명 평창2010유치위원장<외무부장관 역임/가운데>-문동욱 유치위 국제팀장/IOC본부 앞에서)

 

 

3) 만일, KOC 총무나 누구든지 OCA와의 협상내용에 대해 최소한 필자에게 언질만 해주었어도 중국측(IOC 위원, NOC 사무총장, OCA 스포츠위원장)과 원만히 사전 숙의하고, FOK 홍콩 IOC 위원의 무마책도 함께 마련할 수도 있었을 것임.

 

필자는 당시 KOC 위원장의 참모이자 부하직원이고 또 OCA의 생리를 22년 동안 보아왔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원만히 슬기롭게 매끈하게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떠나지 않는 것이 사실임.

 

4) 노련한 OCA 측 전략을 어떻게 KOC 부위원장이나 KOC 총무가 OCA 무대를 언제부터 알았다고 상대하고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겠는지 의구심이 생김(결국에는 이용만 당하게 되어있음)

 

5) 필자가 OCA 사무총장직 후보출마신청서를 제출하자, OCA 본부에서는 필자의 후보직 출마를 철회토록 해주면, KOC의 요구사항에 부응하겠다는 제안과 실제로 KOC 총무에 대해서는 OCA 규정위원 후보출마만 하면 당선을 사전에 보장하였고, OCA 추천지분인 ANOC 경기장 분과 위원직도 10 22일 경 이미 약속한 바 있음.(KOC에 동건 문서 접수하였고, 필자도 KOC 위원장에게도 보고 드린바 있음)

 

6) OCA에서는 말레이시아 NOC 위원장인 Prince Imran (변호사 겸 OCA 개혁표방 인사) OCA 규정위원장 후보 출마를 사전 봉쇄키 위해, OCA 동아시아 부회장에는 한국이, 기존 OCA 동아시아 부회장인 FOK 홍콩 IOC 위원에게는 Singh OCA 사무총장으로 하여금 당일 밤 통보케 하여 OCA 규정위원장 후보출마를 기정사실화하려 했으나 FOK 홍콩 IOC 위원이 당일 밤 강력 저항하였으므로, 당초 OCA 시나리오대로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았음.

 

 

          (OCA규정위원장 O’Sales<홍콩>OCA규정위원회에서 함께)

 

 

7) 또한, 필자는 KOC 위원장의 OCA 부회장 출마사실을 기정사실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바 어떻게 FOK 홍콩 IOC 위원을 충동질할 수 있겠는지 앞뒤가 맞지 않은 시나리오로 중상모략을 펼친 것이 자명하였음.

 

당일 밤에도 공위원장, 최만립 고문, 필자가 동시에 현장에서 출마사실 무근임을 강조하였는데,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전혀 가지 않고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면책을 위해 여러 사람 망신 주는 3류급 행위를 어설프게 전개했다고 볼 수밖에 없음.

 

8) 당시 2010 동계올림픽대회 평창유치와 국제스포츠계에서의 한국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 위한 KOC 관련인사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절차가 시급히 요구되었지만 당시, KOC 측은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은폐한 채 일단락하였음.

 

필자가 추정해 볼 때 당초 OCA 부회장 경선 출마의사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시종일관 주장했던 당시 KOC 위원장은 OCA 측이 OCA 운영에 글로벌스탠다드 적용을 평소 지론으로 삼던 필자가 OCA 최고 핵심임원인 OCA 사무총장자리에 출마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자 KOC 부위원장 및 명예총무 등의 협조 하에 필자의 OCA 사무총장 출마를 사전 봉쇄하는 조건으로 나머지 KOC 측 출마자 해당 OCA 임원직은 물론 출마신청서 제출조차 하지 않았던 부회장직까지 사전 보장한 것으로 유추 해석되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