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21. 5. 6. 10:28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2편(外大동시통역대학원입학과 전방 군복무 그리고 대한체육회 특채입사)]

 

 

필자가 1979년 말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졸업반 시절, 故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의 세계화 및 국제화를 위해 외국어 능통자에 대한 우대 정책을 도입하고자 외대에 동시통역대학원(지금은 외대 통·번역 대학원) 설립을 추진하였다.

 

(외대 영어과 졸업식에서 USO CEO가 보내온 공로 표창장 및 외대 영어수필대회 가작상장 등)

 

당시 통역대학원 입학생들 중 병역 미필한 남학생들에게는 당시 KAIST(Korea Advanced Institute of Technology; 과학기술연구원)의 경우와 같이 군 복무 대신 해당 전공분야 관련기관 근무로 병역을 대신해주는 병역특례법과 비슷한 법안을 국회에 상정해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外大 영어과(현 영어대학) 졸업반이던 필자는 대학원 진학, 병역문제 해결 및 미래 구상을 위한 교두보 마련 등 3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필사적으로 공부하여, 영·불 동시통역과 입학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영어는 전공 과목이었지만 불어는 2학년 때부터 시작한 부 전공이라서 아무래도 부실하였지만 그야말로 미친 듯이 광야에서 설파하듯 모든 일상 대화를 동아리들과 불어로만 지껄여 대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 =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Sincerity moves the heaven」이라 했다. 필기시험(Written Exam)을 마치고, 구술시험(Oral Test)을 보았다.

 

먼저 영어 구술시험장에는 학부시절 평소 어머니처럼 모셨던 박순함 교수님과 다른 외국인 교수님 2명 등 모두 세 분이 시험관이었는데, 필자가 평소 「USO(United Services Organization; 서울 남영동에 소재한 미군 및 미국인 봉사단체)」에서 유급 자원봉사자(Paid Volunteer) 3년간 활동해온 터라, 영어로 대화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구술시험에 임했다.

 

(외재 재학시절 및 군대 휴가기간 중 USO Volunteer활동 시 미군관련 행사인 Six-Star Salute행사장에서)

 

외국인 교수와의 질의응답(Questions and Answers)은 순조롭게 끝냈는데, 그다음 순간 박순함 교수께서 한국어 조간신문(조선일보)을 꺼내더니 여러 장을 넘기시다가, 문화 면에 소개한 「미국 인디언 문화(American Indian Culture)」 기사내용을 우리말로 읽고 나서 필자에게 지금 동시 통역장에서 통역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들은 바를 영어로 옮겨 보라고 주문했다.

 

아찔하면서도(dizzy) 짜릿한(tingly)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아침 조반을 먹고 시간 여유가 있어서 조선일보를 뒤적이다가 평소 관심이 많던 미국 인디언 기사가 눈에 띄기에 일독(Reading through once)한 기사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기사내용(Article contents)을 알고 있었으므로, 느긋하고(pleased) 자신 있게(self-assuredly) 영어로 통역을 했다. 감독 교수님들의 평(comments)이 내 귓전을 울렸다. 「영어가 생활화되어 있구먼!

 

이렇게 영어 구술시험을 무사히 끝냈지만, 불어 구술시험이 걱정되었다.

다시 옆에서 같이 시험에 응시하던 「윤정은」(이후 Freelancer로 영·불 통역사 활동 중)과 불어로 떠들면서 준비운동(warming up)에 돌입하였고, 필자 차례가 되어 불어 구술 시험장에 들어갔다.

 

프랑스 카톨릭 신부 출신인 여동찬(Roger Leverrier) 교수와 다른 2명의 프랑스인 교수가 앉아 있었다.

 

몇 마디 불어로 질의응답(Questions and Answers)이 끝나자, 평소 한국말을 한국인보다 더 정확하게 구사하던 여동찬 교수께서 필자에게 「너 참 딱 걸렸어! 지금부터 내가 읊조리는 내용을 우리말로 뜻풀이 해봐!」하는 것이었다.

 

(외대 부전공과목으로 시작한 불어가 동시통역대학원을 거쳐 대한체육회 국제통으로 IOC평가위원 활동 시 Jacque Chirac프랑스 대통령에게 칭찬 받을 만큼 일취월장한 불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자못 긴장이 되고, 귓구멍이 크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빠른 속도의 불어로 읽어 내리는 내용은 조선시대 영·정조 시대의 역사 내용과 더불어 정조의 수원으로의 한양 천도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필자는 감았던 눈을 뜨고, 들은 내용의 일부를 우리말로 해석하면서 정조의 한양 천도 계획을 요약해서 답변하였다. 여동찬 교수는 「아쭈, 감 잡았는데!」라고 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주었다.

 

이렇게 외대 동시통역대학원 영·불과 2기로 합격하고 입학하였다. 1, 2기가 동시에 시험을 본 관계로 필자는 수업도 1980년에 시작되어야 할 2기생이었지만 1기와 함께 1979년도 가을학기 수업에 같이 임하였다.

 

그러나 뒤이어 10·26사태가 발생하여 박정희 대통령께서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비명횡사하신 후 12·12사태가 뒤를 잇고, 대한민국은 무정부상태가 되었다.

 

필자를 포함한 영·불과 2기생은 모두 10명이었는데 8명이 여학생들이었고, 필자와 류구현(외대 영어과 동기생; 삼부토건회장 비서실장 역임)만 남학생인 관계로 학기 중에 병역특례법 국회상정이 물거품이 되었으므로 프랑스 또는 벨기에에서의 위탁교육 2년을 마치기 위해선 우선 병역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 당시 1980년도 초반 모든 대학이 휴강상태여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 동시통역대학원은 스터디 그룹(Study Group)을 결성하는 등 열심히 공부에 임했지만, 필자는 대한민국 남아인 관계로 부득불 학기 중간에 휴학 계를 제출하고 곧바로 군 복무에 들어갔다.

 

당시 논산훈련소에서 신병훈련 4주간을 마치고 배치된 곳은 103(1군사령부 소재 강원도에 위치)였고 양구를 통해 인제·원통에 위치한 육군 제 OO사단 보충대에 최종 배속이 되었다.

 

내 전공과는 전혀 생소한 군대 생활의 시작이었다.

 

                (군복무 기간 중 유격훈련 장면)

 

운 좋게도 당시 사단장이셨던 김신배 소장과 연결이 되어, 영어와 관련된 업무도 수행하고, 남들과 같이 힘든 유격훈련, 사격훈련, 천리행군 등을 소화해내면서 27개월 군 복무를 마치고,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하였다. 제대 후 동시통역대학원 신학기 복학까지는 9개월간의 공백이 있었으므로 대학시절, 아르바이트 겸 자원봉사를 하던 USO(United Services Organization)로 임시복귀(?)하여 부산에 정박한 미 항공모함 선실까지 들어가서 미 해군장병 부산체재에 따른 관광 브리핑도 하고, 진짜 오리지널 미국 음식 뷔페도 시식하고, 아르바이트로 관광 가이드를 맡은 부산 외대 여학생들에게 임무 분담시키고, 각종 프로그램도 편성하는 등 바쁘고, 부담 없는 세월을 보냈다.

 

(12사단 군 복무 기간 중 사진과 Glysteen당시 주한 미국대사 및 미8군사령관 워컴 대장과 함께)

 

그러던 중, 1980 930일 당시 서독 바덴바덴(Baden-Baden)에서는 대한민국의 서울이 일본의 나고야를 예상 밖으로 52:27로 누르고 1988년 제24회 올림픽대회(The Games of the 24th Olympiad 1988) 개최도시로 선정되는 쾌거 이후, 한국에서는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SLOOC)와 함께 이를 지원할 정부조직으로 체육부(Ministry of Sports) 1982년 초 창설되었다.

 

서울올림픽 유치 창구 역할을 한 KOC(대한올림픽위원회; Korean Olympic Committee)도 국제업무 강화를 위해, 국제 과장을 맡고 있다가 체육부 해외협력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오지철 前 문화관광부 차관(현 종합유선 TV방송협회 회장 및 TV조선 사장 역임/현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장) 후임으로 국제업무를 전담할 사람을 찾고 있던 중 USO 활동 시 알게 되었고 당시 KOC 명예 총무를 맡고 있던 최만립 부위원장(IANOC APOSA 회장 역임)의 추천으로 필자는 KOC 국제부에 5(참사보)으로 특채되었다.

 

(대한체육회 국제통으로 활동한 사진 일부<좌로부터 이원경 제2대 체육뷰장관에게 방한한 모로코 IOC위원 Mohammed Benjelloun을 불어로 통역하고 있는 필자-사마란치 IOC위원장의 KOC정부영위원장 면담 시 통역장면 등>)

 

 

결과적으로 최만립 회장의 발탁에 힘입어 오늘날의 필자가 국제 스포츠계에서 한국을 대표하고, 아시아도 대표하는 스포츠 외교관으로서 이름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이번에 지면을 빌어 최회장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최만립<좌측> 당시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와 평창동계올림픽유치 활동 차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개최 EOC총회 참석 중 함께)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