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22. 9. 5. 10:51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7(향후 아시아대륙 주도권 아시아올림픽평의회 OCA중심축 장악)]

 

 

1990 8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였는데 이 와중에서 쉐이크 파헤드(Sheikh Fahad Al-Ahmad Al-Sabah) OCA 회장은 침공한 이라크 군과 교전하다가 사망하였습니다.

 

 

(1983년 방한한 초대 OCA회장 겸 쿠웨이트 IOC위원이 태릉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하고 있다. 좌로부터 김성집 당시 태릉선수촌장, 필자, Sheikh Fahad OCA초대회장)

 

한 달 후인 1990 8월 중순 OCA 총회가 제10회 아시안게임 개최 도시인 중국의 베이징에서 대회 직전에 열렸다. 쉐이크 파헤드(sheikh Fahad) OCA 회장이 사망했으므로 선임 부회장인 스리랑카의 로이 데 실바(Roy de silva) OCA 회장 직무대행으로 OCA 총회를 주재하였습니다.

 

여러 명의 OCA 회장 후보 중에 사망한 쉐이크 파헤드 회장의 친아들인 쉐이크 아마드(Sheikh Ahmad Al-Fahad Al-Sabah) 쿠웨이트 NOC 위원장(이후 IOC 위원 직도 승계함)이 있었습니다.

 

쉐이크 아마드 후보는 출마 당시인 1990년 만 29(1961년생)로서 당시 OCA 헌장 규정상 35세 이상이 되어야 하는 자격 조건에 문제가 있었지만 중동 국가 NOC 대표들과 친 쿠웨이트 인접국 NOC 대표들의 동조와 인도의 메타(Vice Air Chief Marshall Mehta) 사무총장 등의 교묘한 획책에 힘입어 1년 뒤인 1991 9월 인도 뉴델리에서 OCA 특별 총회를 갖고 OCA 헌장 내용 중 회원국 대표들 1/3 이상이 찬성하면 자격 요건 1~2가지는 유예될 수 있다는 해당 규정을 적용시키게 됩니다.

 

 

(초대OCA회장 Sheikh Fahad<1982~1989> 2OCA회장 Sheikh Ahmad<1991~>와 필자)

 

그 당시 인도를 필두로 아랍권 국가들이 똘똘 뭉쳐 쉐이크 아마드를 적법한 후보로 만들어 놓고, 사전에 치밀하게 조직된 투표공작을 벌여 쉐이크 아마드가 OCA 회장직마저 승계하였고 2022년이면 벌써 32년 동안이나 OCA 회장으로서 군림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초대 OCA사무총장 Mehta<인도> 2 OCA사무총장 겸 인도 IOC위원 Randhir Singh<현 OCA회장 대행>과 함께)

 

필자는 4년간(1994-1998) OCA 규정위원을 역임하고, 불합리한 OCA 헌장 규정 개정 등을 통해 OCA를 개혁해 보려는 취지에서 1999 11, 쿠웨이트 개최 제18 OCA 총회에서 실시된 OCA 집행부 임원 선출 시 OCA 규정 위원장 후보로 출마하여 홍콩의 살레스(A. de O'Sales) 전 홍콩 NOC 위원장 겸 OCA 규정 위원장과 경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A de O’Sales OCA규정위원장<홍콩>OCA규정위원 시절 필자)

 

하지만 적지 쿠웨이트에서 갖가지 방해 책동으로 인해 결국 쉐이크 아마드 OCA 회장과 차기를 위한 작전상 타협으로 후보직을 사퇴하였습니다.

 

물론, 그 대신 OCA 집행위원인 아시안게임 수석조정관(Asian Games Chief Coordinator) 자리를 받는 조건으로

 

그 이후 필자는 수석조정관(OCA집행위원) 자격으로 2006년 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카타르 도하를 방문, 조직위 관계자들과의 협의, 경기장 시설 등 현지 점검 등 임무 수행 한 바 있습니다.

 

 

(Qatar Doha2006 아시안게임 개최지에 OCA수석조정관 자격으로 시찰 방문 시 Al-Jazeera TV와 인터뷰 중인 필자)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까지 OCA수석조정관(아시안게임 평가 위원장)활동한 후, 2003 1월 역시 쿠웨이트에서 개최된 OCA 총회 시 OCA 창립 이후 최초로 OCA 사무총장으로 경선 출사표를 던진 바 있습니다.

 

 

(OCA회장 측근 실세 OCA사무국장 Abdul Muttaleb Ahmad와 함께)

 


(
당시 KOC 이연택 위원장의 결재 후 당시 김영환명예총무/사무총장 명의로 OCA본부에 제출한 필자의 OCA사무총장 입후보 문건)

 

 

(OCA회원국 NOCs중 필자의 OCA 규정위원장 선출 지지 확인 공한들 중 일부)

 

하지만 당시 KOC 내부의 이해득실에 의한 사퇴 종용과 2010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둔 한국으로서는 경쟁 후보가 IOC 위원(인도의 Randhir Singh)이었던 관계로 이 또한 종국적으로는 후보 철회를 해야만 했습니다.

 

 

(좌로부터 필자, 김동호 1999강원동계아시안게임 사무총장<문화부차관 및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역임>, Randhir Singh OCA사무총장 겸 인도 IOC위원, 이승원 FIS집행위원)

 

OCA와 관련 오늘날까지도 주도권을 쿠웨이트로부터 쟁취하지 못하고 있지만 ASPU쪽은 건재하였다가 박갑철회장의 퇴진으로 다시 쿠웨이트로 주도권이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2021년 정희돈 KSPU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사실상 낙점되어 한국이 권토중래 할 전망입니다.

 

애초 규정에는 ASPU 회장을 4년씩 2차례(8)만 하도록 되어 있으나, 박갑철 ASPU 회장은 벌써 4차례나 연임하였던 바 있습니다.

아시아 스포츠 언론 외교의 수장은 한국인이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OCA 집행위원 급 임원은 당시 전무하다가 얼마 전부터 여러 명이 활동 중이긴 합니다.

2015~20197OCA회장에 당선되어 8선 째 32년 간 회장 직이 끝나는 2023년이면 다시 OCA 회장, 사무총장을 포함한 집행부 임원 선거가 다가옵니다.

 

지금부터라도 조직적으로 대비하여 한국이 아시아 스포츠 외교의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가까운 시일 내내 OCA 본부도 한국으로 가져오자. 꿈은 꾸는 자의 것이니까요.

 

 

(쿠웨이트 소재 OCA본부, 언제까지 難攻不落일까? /사진출처: insidethegames)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