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세상2010. 6. 18. 13:40
월드컵 축구는 지구촌 구석구석 '신 스포츠 종교적'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우리 모두의 밤잠을 설치게 하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현대판 매직쇼다.

월드컵축구대회를 관장하고 있는 FIFA가 사상최초로 $10억 불(약1조2,000억 원)을 상회하는 재정지표를 나타냈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FIFA총회에서 공개된 2009년도 회계년도 재정보고서에 의하면 FIFA는 한해에 $1억9,600만 불(약 2,400억 원)의 수익을 창출해 냈다.

그 결과 FIFA의 지분(equity)은 $10억610만 불(약 1조 2,500억 원)로 껑충 뛰었다.
각종 FIFA축구대회와 2010년 월드컵대회 수입금이 2009년 FIFA회계년도 수치에 영향을 준 것이다.
FIFA 가 주관하는 제반 대회개최경비와 축구발전 프로젝트비용이 FIFA 2009년 예산 중 73%에 달하며  축구에 직접 투자된 지출내역의 전부다.


FIFA chief Sepp Blatter is confident 2010 World Cup will not see a repeat of the recent Pakistan attack.(ATR)

FIFA 가 주관한 제반 대회에서 총 수입금  $10억 590만 불(약 1조 2,400억 원) 중 97%에 해당하는 $10억 220만 불(약 1조 2,200억 원)을 벌어 들였다.
이 수치의 막대한 출처는 TV중계권 판매($6억5,000만 불)과 마케팅권 판매($2억7,700만 불)다.
나머지 운영수입금($2,200 만 불)은 널리 알려진  FIFA브랜드와 라이센싱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FIFA의 재정 수입금($1500만 불)은 주로 은행이자다.

FIFA의 총 지출금($8억 6,300만 불)중 53%($4억 5,600만 불)는 FIFA 제반 대회개최비용이다.
$1억7.200만 불이 축구발전 프로젝트에 사용되었고 $1억5,800만 불은 기타 제반 운영경비로 쓰였다.

FIFA의 재정지분($10억 610만 불)과 관련 FIFA 감사위원회 위원장(Franco Carraro 이태리 IOC위원)에 의하면 현재 FIFA의 재정지분이 높아 보이지만 향후 재정위험요소들이 현재지분보다 몇 배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에 재정지분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였다.
FIFA의 덩치를 볼 때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재정지분 수치는 향후 1년 반 정도만 카버할 수 있는 금액에 불과하다라고 보고하였다 한다.

엄살일까?
FIFA는 진정 지구촌 떼돈 벌어들이는 하마가 되었나?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0. 6. 17. 14:48
1980년대 국제스포츠 계에 '라틴마피아'라는 단어가 인구에 회자된 바 있다.
IOC를 좌지우지한 스페인출신 사마란치IOC위원장, 세계축구를 쥐락펴락한 브라질출신 아베랑헤 FIFA회장, 세계육상과 국제대학스포츠를 주무른 이태리출신 네비올로 IAAF회장 겸 FISU회장, 그리고 205개 국가 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 종신총통 격으로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며 아직까지도 건재한 멕시코출신 마리오 바즈케즈 라냐 ANOC회장 겸 IOC올림픽솔리다리티 위원장/IOC집행위원/PASO회장 등 '라틴 4인방'의 무소불위의 막강한 파워를 일컫는 말이었다.

                                          (사마란치 전 IOC위원장의 말년 시절)

                                       (아베랑헤 전 FIFA회장 겸 IOC종신위원/94세)

(국제대학스포츠위원회 로고)
                                         
이제 사마란치 전 IOC위원장과 네비올로 IAAF회장은 작고하였고 아베랑헤 FIFA회장(1916년생: 94세)은 은퇴하여 종신직 IOC위원활동만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국제스포츠 사회에서 쌓아놓은 저력과 인맥 덕분에 2009년 10월 코펜하겐 IOC총회에서 막강한 3개 후보도시들(시카고, 도쿄, 마드리드)을 모두 밀쳐내고 조국인 브라질이 리오데자네이로에 2016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하게큼  견인차 역할을 한 바 있다.

마리오 바즈케즈 라냐 ANOC회장만이 철옹성의 파워를 자랑하며 아직 건재하다.
1932년 원숭이띠로 2012년 80세가 되면 IOC위원 임기가 만료되어 IOC위원으로서는 은퇴한다.
그러나 그의 힘과 영향력은 지칠줄 모른다.
ANOC회장 선거가 2010년 멕시코 아까뿔꼬에서 개최되면 다시 연임이 확실시 된다.
                                      (마리오 바즈케즈 라냐 ANOC회장과 띠동갑 필자)

다시 4년 후인 2014년에도 ANOC회장직을 고수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건강이 허락되는 한 라냐회장은 ANOC종신통령으로 노익장을 과시할 전망이다.
차기 후임ANOC회장을 꿈꾼다해도 그 위세에 눌려 수면아래에 맴돌 뿐이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그저 속만 태우고 있지..."

자크로게 현 IOC위원장은 2013년이 임기만료 시점이다. 그는 대체적으로 합리적이며 Mr. Clean으로 별 다른 마피아성 성향은 없었다. 다만 카톨릭 신자로서의 내부 서클(inner circle) 계보는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자크로게 IOC위원장과 필자)

지난 5월 러시아 NOC신임회장으로 선출된 Zhukov 러시아 정부의  실세 부총리가 본인 생각에 만만해 보이는 자크 로게 IOC위원장으로 하여금 서양장기(chess)를 올림픽 공식종목에 포함시키기 모종의 압력을 가하고자 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 발표 직후 영국의 The Independent지는 Zhukov 러시아 부총리 겸 NOC위원장에 대하여 마피아식 술수를 쓰려한다고 힐난하고 나섰다.

Zhukov부총리는 러시아 언론을 통해 " 유감스럽게도 IOC는 서양장기를 올림픽프로그램에 넣기를 꺼려하고 있지만 우리는 밀어부칠 것이다."라고 의지를 천명하였다.


Zhukov will combine his NOC role with chairing the Sochi 2014 supervisory board (Sochi 2014)
(Zhukov 러시아 부총리 겸 NOC위원장)

이에 대해 The Independent지는 Zhukov부총리가 러시아 마피아에 버금가는 방식의 모종의 제안을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Mr. Zhukov(...) is making the sort of offer that sounds more in keeping with the Russian mafia.)라고 논평했다.

 Alan Hubbard 칼럼니스트는 "올림픽이 좀더 지성적인(cerebral) 대회가 되길 희망하는 부류가 있을 지 모르지만 그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올림픽이 서양장기를 포함시킨다고 가정할 때 그 여파는 걷 잡을 수 없을거다. '끝말이어 점수내기 게임'(Scrabble)', '서양주사위놀이'(backgammon), 포카(Poker)는 어쩌라구? 스쿼시가 올림픽종목포함에 실패한 이유가 TV어필(televisual appeal)이 부족해서 라는데 서양장기따위는 어떨건가?"라고 힐난하였다나?

소위 정신게임(Mind Game)이라 분류되어 스포츠의 정의를 새롭게 해주는 것이 지금의 추세다.
바둑, 장기, 윷놀이 등도 이에 해당된다.
SportAccord/GAiSF(회장: Hein Verbruggen)가 World Mind Games를 구상 중이라니 차근차근 수순을 밟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들:좌로부터, Sergey Bubka, Hein Verbruggen 위원장, Carlos Nuzman 브라질 IOC위원/2016년 리오올림픽유치 및 조직위원장, 필자)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0. 6. 17. 11:31
이건희회장이 움직인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회장/ Lamine Diack 세네갈 IOC위원)는 최근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삼성전자와 국제육상 다이아몬드 리그(Diamond League) 타이틀스폰서 계약을 체결하였다.

금년부터 발효되어 향후 2개 시즌에 해당되는 이번 계약은 삼성그룹이 육상발전에 대한 국제적 기여를 전 세계에 표명한 것으로 국제스포츠 계에 좋은 인상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은 원 할 경우 지속적인 타이틀 스폰서로 계약할 수 있는 옵션권도 부여 되어있다.

이번 계약으로 "IAAF Diamond League"로 명명된 이 대회는 향후 "Samsung Diamond League"로 변경된다.
Diamond League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주관하여 전 세계 지구촌 곳곳에서 열리는 육상 경기 월드시리즈 성격의 의미있는 육상대회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육상 3관왕인 미국의 Marion Jones선수에게 금메당을 수여하는 이건희 IOC위원)

Diamond League육상대회에는 국제 스포츠 저면명인사들이 대거 초청된다.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파워가 한국스포츠외교를 후원하는 계기도 된다.

114명 IOC위원들 중 10여명이 육상선수 출신이거나 IAAF임원직을 가지고 있다.
육상은 올림픽종목 중 세계 제1의 영향력과 고부가 가치 스포츠마케팅 및 TV광고 대상이다.
많은 IOC위원들이 육상대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삼성의 IAAF Diamond League 타이틀스폰서쉽은 3수도전 중인 평창2018유치홍보에 커다란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은 IOC내외에서 영향력 또한 지대하다.
                      (2006년 4월 ANOC서울 총회에서 자크로게 IOC위원장과 환담하는 이건희 IOC위원)

이건희 IOC위원은 한국 유일무이한 개인자격 IOC위원이며 임기는 2022년까지다.

또 한명의 IOC위원은 2004년 아테네 태권도 영웅 문대성동아대 교수다.
문대성 선수자격 IOC위원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기간 중 동료선수들이 선출해 주었으며 최다득표로 IOC위원이 되었다. 임기는 8년으로 2016년까지다.

이건희IOC위원이 움직이면 표심도 움직일 수 있다.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세상2010. 6. 17. 11:05
IOC가 올림픽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아주 희귀한 사건이 발생했다.

스포츠 중재재판소(CAS: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는 최근 IOC징계위원회(IOC Disciplinary Commission:위원장 Thomas Bach IOC부위원장)가 내린 결정을 뒤 엎은 보기 드문 일이 생겼다.

Katy Hogg CAS대변인은 재판소의 적법적인 판결로 IOC징계위원회가 제출한 단 2건의 또 다른 결정을 뒤집은 바 있었다고 언급하였다.
노르웨이 올림픽위원회(NOC) 및 Thomas Alsgaard et al 對 IOC건과 캐나다 올림픽위원회(COA) 및 Beckie Scott  對 IOC의 2건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 따른 사례로서  IOC가 패소한 케이스에 해당된다.

Hogg대변인은  그 당시 IOC징계절차가 현재 적용되고 있는 것과 차이가 있었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벨라루스(Belarus)공화국선수들인  Vadim Devyatovskiy와 Ivan Tsikhan 두 선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약물검사에 실패한 바 있다. 따라서 IOC징계위원회는 이 두 선수가 투 해머(hammer throw)종목에서 획득한 은메달과 동메달을 반환할 것을  결정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최근 CAS는 베이징 올림픽 당시 약물검사 실험실에서의 테스트 절차 자체가 불규칙한 요소들이  적용된 것으로 인정되므로 IOC징계위원회 결정이 무효하다고 판결하였다는 것이다.



CAS측은 성명서를 통해 이러한 판결을 내리면서 금번 결정이 반드시 관련 선수들이 약물복용을 하지 않았다고 면제부를 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한편 IOC는 CAS의 번복결정에 대하여 "가능한 모든 수단을 고려중"(considering all possible options)이란다.
Emmanuelle Moreau IOC대변인은 IOC가 CAS의 결정은 인정하지만 결정에 실망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IOC는 이러한 결정 내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IOC is studying the content of the decision and considering all possible options.)고 한다.
IOC는 올림픽에서 도핑관련 어필에서 패소한 사례가 드믈다. CAS에 의하면 지남 10년가 단 2차례에 불과하다고 한다.

IOC는 물론 IOC징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독일의 IOC부위원장 겸 뮌헨2018유치위원장의 자존심과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은 불문가지요,인지상정아닐까?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0. 6. 16. 17:42
올림픽개최도시결정은 대회개최 7년에 열리는 IOC총회에서 전자식 비밀투표로 실시된다.
결선에 오른 후보도시들 중 출석 IOC위원들의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도시가 올림픽개최도시가 된다.
올림픽개최희망도시들은 자국NOC를 통해 유치의사를 IOC에 표명하고 IOC가 요구하는 소정의 신청도시 부담금($15만불)과 함께 유치신청파일(mini bid book:9개 분야 25개 항목)을 작성하여 IOC로 보내는 제1단계 유치신청도시 단계를 거친다.
제1단계를 통과하여 결선에 오른 신청도시들(applicant cities)은 후보도시(candidate cities)로 명명되며 이로서 제2단계에 접어든다.
이들 후보도시들은 다시 후보도시 부담금($50만불)을 후보도시 선정 다음 달까지 송금완료하고 3권분량의 올림픽유치파일(bid book:17개 주제 234개 항목)을  통상 IOC평가위원회 현지실사 방문 1-2개월 전까지 IOC에 제출한다.
IOC평가위원회는 IOC총회결정투표개시 1년 전에 구성되어 통상 IOC총회투표개시 4-5개월 전 쯤 해당 후보도시를 방문(도시 별 3박4일)하여 현지 실사 및 질의응답회의등을 통해 해당 후보도시들의 총체적인 기술적 평가(technical assessments)를 하게 된다.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IOC평가위원회는 IOC본부에 모여 실사평가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고 IOC총회 2개월 전 후보도시 브리핑(스위스 로잔 IOC본부)기회를 부여한다.  
IOC총회 1개월 전 IOC사무국은 조사평가 최종 보고서를 투표권자들인 IOC위원들에게 배포함과 동시에 공개한다.
드디어 1개월 후 IOC총회가 열리면 첫 날 후보도시들의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이 실시되고 IOC평가위원장의 최종 요약보고 후 무기명 전자식 비밀투표로 올림픽개최도시를 선정한다.

평창의 2010년 동계올림픽유치결정은 7년 전인 2003년 체코 프라하개최 IOC총회에서 내려졌다.
1차투표 결과 평창이 51표, 밴쿠버가 40표, 찰츠부르크가 16표로 평창이 과반수에 3표부족하여 찰츠부르크는 탈락하고 2차 결선투표에 들어갔다.

2012년 하계올림픽유치를 염두에 둔 유럽후보도시국가(파리, 런던, 마드리드, 모스크바) IOC위원들은 미국의 뉴욕견제심리가 발동하여 같은 북미대륙인 캐나다의 밴쿠버에 16표란 몰표를 몰아 주었고 평창은 2표만 추가 하는데 그쳤다. 결과는 밴쿠버가 56:53으로 평창에 역전승.
득표과정에서 IOC위원 2명만 추가 확보하였다면 55:54 단 한표차의 극적인 승리를 할 수 있었다.
당시 2010년 평창유치위원회 대외공동사무총장으로서 유치활동 중심에 서 있었던 바 지금도 그 아쉬움이 잊혀지지 않고 있다.

2018년 동계올림픽유치 2차도전에 나선 평창은 2007년 과테말라개최 IOC총회 1차투표에서 36표(소치 34표, 찰츠부르크 25표)로 선두였으나 최종 투표에서 푸틴이 이끈 러시아 함대에 51:47 4표 차이로 힘 없이 침몰하였다.
로비과정에서 3명의 IOC위원만 추가로 확보하였다면 50:48 로 소치를 누르고 승리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2-3표가 중요하며 치명적이다.

2003년 프라하 IOC총회 1차투표에서 평창이 획득한 51표가 4년 후인 2007년 과테말라 IOC총회 1차 투표에선 36표로 확연히 감소하였다. 그 이유는 4년 간 친한파 성향 IOC위원 15명이 연령제한으로 은퇴 또는 사망 또는 이반된 것으로 분석된다.

또다시 4년 후인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는 과연 몇 명의 친한파 성향 IOC위원들이 평창을 지지할 것인가?
그 동안 새로 선임된 IOC위원들에 대한 공략이 절대절명의 과제다.
표심은 스포츠외교력이다.

자 이제 올림픽유치 현장 속을 사진을 통해 들어가 보자.


(2007년 과테말라 IOC총회에서 자크로게 IOC위원장이 2014년 동계올림픽개최도시로 러시아의 소치가 선정되었다고 발표하고 있다.)

(2008년 올림픽유치후보도시였던 파리에 IOC평가위원자격으로 2001년 실사 방문 시 자크시락 프랑스대통령이 엘리제 프랑스 대통령 궁에서 영접, 환담한 후 친필 서명한 사진을 보내왔다.)

(장쩌민 중국주석과 IOC평가위원자격으로 이루어진 만남, 2008베이징 올림픽유치도움이 인연이 되어 중국인민대학 객좌교수가 된 필자) 

(2008년 올림픽 후보도시인 오사카 방문시 IOC평가위원자격으로 당시 모리 일본수상<우-1)과 조우, 왼쪽은 김영재 재일대한체육회회장)

(2008년 올림픽후보도시인 캐나다 토론토 IOC실사 방문 시 필자가  IOC평가위원자격으로 만난 크레티엥 캐나다 수상, 왼쪽부터 주 토론토 한국총영사, 필자, 크레티앙 캐나다 수상, 맨오른쪽은 토론토 교민회장)


(2008 올림픽 후보도시 파리 실사 방문 시 IOC평가위원자격으로 샬 드골 공항에 영접나온 들라누에 파리시장/좌측, 필자, Sergey Bubuka 우크라이나 IOC위원)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장 겸 SportAccord/GAISF회장 Hein Verbruggen과 함께)

(2008년 올림픽 후보도시/이스탄불 실사방문 시 IOC평가위원들:좌로부터 Sergey Bubka, Hein Verbruggen, Carlos Nuzman, 필자)

                    (2008년 올림픽 후보도시 캐나다 토론토 IOC실사 평가 방문시 발행한 뉴스레터)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회 최종 실사 평가보고서 작성후 IOC본부에서 사마란치 IOC위원장으로부터 기념품 전달받고 있음:사마란치, Elizalde 필리핀 IOC위원, Sithole 짐바브웨 IOC집행위원/현재 IOC국제협력국장, 필자)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들:좌로부터, Nuzman, Bubka, 필자, Sithole, Elizalde)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회 전원 사마란치 IOC위원장과기념촬영)


                                    (2008년 올림픽 후보도시 베이징 실사 방문 중인 IOC평가위원들)


                     (2008년 올림픽 후보도시 오사카 현지 방문시 IOC평가위원들/오사카 성 방문)

                (2008년 올림픽 후보도시 파리 방문 시 IOC평가위원들과 프랑스 IOC위원 2명과 만찬 중)


(2010년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자격으로 2003년 체코  프라하 개최 IOC총회에서 프레젠테이션 중인 필자)

                 (2010년 동계올림픽유치 후보도시 IOC평가위원회 위원들과와 현지실사 회의 중/2003년 평창)


                      (평창2010 국제사무총장 시절/ 2003년 프라하 IOC총회 프레젠테이션 리허설)


(2003년 프라하 IOC총회 투표 전날 외신 기자회견 중: 좌로부터 공로명 2010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 겸 전 외무장관, 김진선 강원더지사 겸 유치위 집행위원장, 필자, 김소희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PASO총회 전경: 올림픽유치후보도시들은 대륙별 NOC연합회 총회에서 유치당위성을 호소하는 프레젠테이션 진행)
(ODESUR/남미대륙 NOC연합회 총회 참석 중인 2010 평창유치위 대표단:좌로부터, 필자, 김진선지사, 공로명 유치위원장)

(2014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실에서: 좌로부터 필자/국제사무총장, 한승수 위원장/총리 역임, 김나미 IBU부회장, 이경우 부위원장)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기간 중 자크로게 IOC위원장 면담후: 김진선 강원도지시겸 평창 2014유치위 집행위원장과)

(2005년 PASO 리오총회에서  2006년 ANOC서울총회 준비 상황 프레젠테이션 중인 필자/2014 평창 유치위 국제사무총장 겸 KOC위원)


(이건희 IOC위원<우-1>이 마리오 바즈케즈 라냐 ANOC회장<가운데>와 환담 중, 왼쪽은 박승국 삼성그룹 상무)


(2014평창유치위 국제사무총장시절 Magvan몽골 IOC위원<우-1>섭외 차 울란바토르 방문: 왼쪽으로부터 문동욱 유치위 국제팀장, 필자, Zagdsuren 몽골NOC위원장, Magvan 몽골 IOC위원)

             (몽골텐트 게르에서:좌로부터 Magvan몽골 IOC위원, 필자, OTO몽골 NOC사무총장/2006년)


(2005년 헬싱키 개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참석 중: 좌로부터 문동욱 평창 유치위 국제팀장, 김정길 KOC위원장, 필자)

(서울 파이넨스센타 14층에 위치했던 2014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총장실 겸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실 개소식에서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에 한국최초로 임명된 필자에 대한 코리아 타임즈지 보도내용)

(2007년 2월: 평창2014유치 현지 실사차 방한 한 Gilbert Felli IOC올림픽수석국장<우측>이 인천공항 귀빈실을 통해 입국)


                        (2014 동계올림픽 IOC실사 평가위원 들 인천 공항 속속 도착 및 영접)

                                                  (IOC평가단 인천공항 귀빈실 환영)

(IOC평가위원 겸 캐나다 IOC위원 Beckie Scott 공항 영접 및 환영:좌로부터:필자, 김진선지사, 박용성 당시 IOC위원 겸 IJF회장, Scott, 한승수 유치위원장, 이승원 FIS집행위원, 김정길 KOC위원장)


                     (Chiharu Igaya IOC평가위원장 겸 일본 IOC부위원장<우-4> 공항도착 환영)


                      (IOC평가위원단 평창 도착 환영시 마침 내리고 있던 함박 눈이 상서로웠다.)


                       (Igaya IOC부위원장 겸 2014 동계올림픽 IOC평가위원장<좌측>과 담소 중)


                      (IOC평가위원단 및 2014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대표단과 기념 촬영)


              (2014동계올림픽 IOC실사평가단 및 평창2014 대표단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 예방/2007년)


                   (2014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시절/ IOC평가단 공항 환송에 앞서)

                                     (현지 실사 방문 후 평창을 떠나는 IOC평가단 일행 환송)



                        (박건만 평창2014 홍보전문위원 겸 전 한국체육기자연맹회장<우측>과)


(IOC평가위원회 실사 방문 기간 중 평창2014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겸 사회자<Moderator>로서 회의진행 담당한 필자와 평창2014 유치위원회 안전관련 프레젠테이션 및 질의응답을 훌륭히 수행해 냈던 한종욱 총경<좌측>)


                           (IOC평가단의 평창2014 시설 답사 및 현지 프레젠테이션)

                                     (IOC평가단 평창 현지 환영인파와 깃발)

                       (IOC평가단 보광피닉스 파크 스노우보드 경기장/평창2014 예정지 현장실사)



                                  (IOC평가단 평창2014 올림픽선수촌 예정지 시찰)

                         (IOC평가단 평창2014 핵심 시설 단지인 알펜시아에 대한 브리핑 경청)


                             (IOC평가단과 평창2014수뇌부가 함께 현장 시찰에 동참)


(IOC평가단 일행 평창2014 현지실사평가 방문일정을 마치고 공항출국 전 유치위원회 임직원들과 함께 귀빈실에서)


(출국 전 인천공항 귀빈실에서:좌로부터 필자, Scott IOC위원 겸 IOC평가위원, 유경선 KOC부위원장 겸 ITU부회장, 전이경 동계올림픽 4관왕 겸 IOC여성과 스포츠 분과위원)


                                 (IOC평가단 인천공항 출국 전 기념촬영)

                                    (IOC평가단 강릉 현지 방문 시 환영 문화행사)

                              (평창 2014 대표단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 예방/2007년)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창2014 유치위원회 대표단을 청와대에 초청 오찬사를 하고 있다.)

삼 세번(Three times is the charm)째인  평창2018의 유치성공을 기원한다.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세상2010. 6. 16. 15:49


자불라니(Jabulani)는 2010년 남아공 FIFA월드컵축구대회 공인축구공 이름이다.
부부젤라(Vuvuzela)는 남아공 FIFIA월드컵 축구시합 매경기마다 관중들이 쉴세 없이 불어제끼는플라스틱 나팔(Plastic horns) 명칭이다.





너무 시끄럽게 불어대는 부부젤라스의 소음으로 인해 웃지 못할 에피소드 또한 난무하다.
지난 6월11일(금) 프랑스팀은 우루과이팀과 시합을 가졌으나 볼을 자불라니(잡을려니) 부부젤라의 소음으로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였노라고 프랑스팀 주장인 Patrice Evra가 주장하였다.

6월14일(월)에는 네덜란드팀 스트라이커인 Robin Van Perisie가 겁나게 시끄러운 부부젤라의 소음을 핑계로 경고카드(Yellow Card) 받게 된 상황을 교묘히 비켜갔다. 네덜란드 스트라이커는 심판의 휘슬을 무시하고 공격을 계속하다가 곧 이어 주심으로부터 옐로우카드를 발급받자, 그 선수는 부부젤라 소음 때문에 심판 휘슬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노라고 항변하여 그 위기를 잘도 모면한 셈이다. 






이렇게 부부젤라의 소음으로 항의가 이어지자, BBC는 남아공 월드컵 조직위원회 CEO인 Danny Jordaan이 부부젤라 사용금지조치를 고려 중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남아공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그 즉시 이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조직위 대변인인 Rich Mkhondo는 BBC측이 Jordaan CEO의 코멘트 문맥을 부정확하게 보도한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Jordaan CEO가 언급한 실제 발언내용은 "부부젤라스 사용금지조치에 해당되는 상응하는 근거가 있다면"이란 단서를 달고 그럴 경우에 금지조치도 고려 될 수 있다라고 발언하였음을 설명하였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그러한 부부젤라스 사용금지 조치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라고 Mkhondo대변인은 해명하였다.

부부젤라(Vuvuzela)의 역사는 실로 남아공역사속에 뿌리깊게 각인되어 있다.
부부젤라는 남아공 민족 조상대대로 회의소집을 알리기 위해 사용어욌으며 이는 뿔각나팔소리로 발산되는 것이다.
부부젤라는 남아공월드컵대회 그 자체에 대한 감성과 느낌을 그대로 표출하기위해 사용되는 것이라고 소개되었다.
Mkhondo대변인은 부부젤라스와 같은 도구가 남아공뿐만아니라 지구촌 각지에서 온 팬들 사이에서도 즐겨 사용되고 있다고 하면서 그 증거로 네덜란드와 덴마크 축구경기때에도 네덜란드 팬들이 가져와 불어댔던 유사힌 나팔도구들 예시하였다.

"제발 부부젤라를 마치 남아공만의 유일한 응원도구로 몰아부치지 맙시다. 부부젤라는 이제 국제적인 응원도구이며 많은 나라 사람들도 이 부부젤라를 구입하여 귀국할 때 선물로 가져기기위해 짐가방에 가득채우고 있다."라고 첨언한다.

이러한 부부젤라의 선풍적 유행은 향후 유럽 축구클럽이 나름대로 응용한 부부젤라를 제작하여 활용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한편 블라타 FIFA회장은 이러한 독특한 부부젤라 나팔소리가 월드컵 시합때마다 계속 울려퍼질 수 있다라고  부부젤라사용을 묵인하였다.

블라터 회장은 트위터(twitter)를 통해 "아프리카는 색 다른 리듬, 색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늘 이야기해 왔다. 나는 그들 나라 축구팬들의 음악적 전통을 금지시키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여러분이 즐겨 행하는 팬들의 전통적 풍습을 금지시키면 좋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실제로 부부젤라의 소음이 너무 시끄러워서 각국참가 축구팀들은 시합 중 자기들팀 선수들간에도 서로 소통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그 소음이 축구시합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나?
한국팀은 그래도 잘만 한단다.
명필이 붓가리나?
조건과 상황은 피차일반아니겠나?
한국태극전사들의 선전을 응원한다.
우리 붉은 악마들도 우리나라 전통의 나팔을 불어재끼자.
"볼은 자불라니 응원은 부부젤라(부부가 제일낫다.)"

국제스프츠 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세상2010. 6. 15. 12:03
베컴(David Beckham) 영국축구 아이콘(icon)이 영국의 2018 FIFA월드컵유치에 힘실어주기작업에 나섰다.
베컴은 최근 6월10일 남아공 Sandton에서 개최된 제60차 FIFA총회개최직후 유치엑스포현장에 나타났다.


Beckham gives AFC president Mohamed Bin Hammam a firm handshake (England 2018)
(베컴이 아시아축구연맹 함만회장과 의미심장한 악수를 하고 있다.)


베컴은 Andy Anson 영국유치위원회 CEO, David Dein 유치위국제위원장, 그리고 남아곤 축구팀주장을 역임한 바 있는 Lucas Radebe 영국유치위원회 홍보대사와 함께 유치활동에 합류할 예정이다.

지난 2009년 12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있었던 월드컵유치관련 엑스포에서는 베컴의 반짝출현으로 지구촌 뉴스헤드라인을 몽땅 잠식하였다. 
베컴의 인기몰이로 참가한 나머지 8개국유치경쟁국대표단은 망연자실한 바 있다.
그때와는 달리 이번 유치엑스포는 외신기자들에게는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그대신 FIFA총회 208개 회원국 700명의대표들이 베컴과 어깨를 나란히하였다.(They got theri chance to rub shoulders with the football icon.)
베컴은 이뿐만 아니라 남아공 FAbio Capello가 이끄는 영국팀에 코치진의 일원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2018년 및 2022년 9개 유치후보국들은 투표권자들인 24명의 FIFA집행위원들에게 배정된 전시관을 통해 각각의 유치제안내용을 어필하고 있다.

현재 유치분위기상 2018년 FIFA월드컵개최권은 유럽국가에게 주어질 확률이 거의 99%라고 할 수 있다.
2018 및 2022유치신청국은 영국, 네덜란드-벨기에 공동신청국, 러시아, 스페인-포루투갈 공동신청국 등 4개 유럽국가군과 한국, 일본, 카타르, 미국, 호주 등 5개의 비유럽국가군으로 포진되어 있다.

베컴의 합류로 2018년 FIFA월드컵유치성공에 한발짝 더 다가선 영국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0. 6. 14. 11:23

06-11-2010 22:11 여성 음성 듣기 남성 음성 듣기
Sports stars upgrade national prestige of Korea


National football team players of the 2002 Korea Japan World Cup, including Manchester United midfielder Park Ji-sung, right, rush to the ground in jubiliation after the team’s captain Hong Myung-bo scores a winning shootout in a match with Spain at the Gwangju World Cup Stadium on June 22, 2002.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Korea advanced to the quarter finals. The national team wants to repeat the same glory in the South African World Cup, which opened Friday. / Korea Times

By Yoon Kang-ro
President of International Sport Diplomacy Institute

Sport is a common international language.

Sport plays a key role in promoting and highlighting the national prestige and prowess in the global community.

Sport is a common culture transcending frontiers, races, ideologies, and religions.

Sport connects and networks different nations and cultures as an effective communications tool.

Sport is a catalyst bringing together the global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Sporting events are instrumental in upgrading national image-making through related cultural programs, human networking, tourism, arts, technology and industry.

Starting from Scratch

The first stepping stone for Korea to enhance its overall status was the successful bidding for, and organization of, the 1988 Seoul Olympics.

For the first time in its history, Korea, as Olympic host nation, achieved an unprecedented and remarkable goal.

At the end of the Games, Korea was crowned on its home soil thanks to the outstanding performance by its athletes, thereby owning the podium with the world's 4th place in overall Olympic medal standings.

Winston Churchill once said:

"Some see private enterprise as the predatory target to be shot, others as a cow to be milked, but few are those who see it as a sturdy horse pulling the wagon."

For Korea, the central government took the place of private enterprise and played a crucial role as a sturdy horse pulling the enormous Olympic wagon.

It was due to the strong Korean government policy to boost and support sports during the years leading up to the 1988 Seoul Games since its election as Olympic host city in Baden-Baden 1981.

Shortly after Seoul was awarded the right to host the Olympics, the Korean government launched administrative and financial support programs in conjunction with major policies related to their successful organization.

As a result, the Government Organization Act was amended to authorize the creation of the Ministry of Sports in early 1982, taking overall charge of comprehensive sports administration and the tasks of promoting national sports and furnishing support for the Asian Games in 1986 and the Olympics in 1988.

This was the legal base for the Games to be given direct support from the entire government structure.

With the creation of the Ministry of Sports, work at the government-level began to take shape to formulate a comprehensive plan.

In this connection, the Korean government also established the Government Support Committee comprising all members of the Cabinet, as well as the Seoul city mayor, and chaired by the prime minister.

The Korean government realized that the true success of the Games would be based not only on the excellent organization of the Olympics but also on outstanding competition results on home soil by its athletes.

It is always those two wheels of the Olympic wagon that are supposed to run smoothly, thereby measuring the true success of the Games as a host country.

It, therefore, prompted the Ministry of Sports to carry out a government-driven project to recruit and foster talented young potential athletes, named the "Dream-Tree Athletes" (DTA). This was called "The Dream-Tree Upbringing Plan" (DTUP).

The DTUP enabled and prompted all local and provincial governments including all levels of schools to competitively launch long-term plans to recruit and train local young sports talents on a competitive level.

The annual National Games served the purpose of providing those DTA with opportunities to compete and compare their skills and performances on a national or even international level.

The Taenung National Athletes' Training Center (TNTC) created in June 1966 has served as the cradle and home for athletes representing Korea ― where they are accommodated and trained in an optimal environment.

The TNTC is financed by the Korean government and managed by the Korean Olympic Committee (KOC). It has already become a world-renowned and attractive bench-mark as a successful elite-sport development role model.

Korea's consecutive successes in international multi-sporting events including the Olympic Games are mainly due to the systematic and scientific management of the KNTC, fully supported by the government.

In other words, the KNTC under the KOC is the power base and source of the competitiveness of Korean Sports overall, while the Korea Sports Promotion Foundation (KSPF) is its financial supporter for athletes who benefit from its pension system after retirement under the umbrella of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Moving forward with the Olympic Legacy

In order to support and enhance the status of successful Korean sports, Seoul Olympic Sports Promotion Foundation (SOSPF) was initially established in April 1989 with surplus funds from the 1988 Seoul Games.

SOSPF was later renamed as KSPF (Korean Sports Promotion Foundation).

It is initiatives by the Korean government that keeps the KSPF moving forward to promote and finance sporting activities in close collaboration and cooperation with the KOC and its affiliated respective national sports governing bodies, namely National Federations (NFs).

In 1999, the Korean Institute of Sports Science (KISS) was integrated into the KSPF with the approval of the 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Main tasks of the KSPF include the following:

-Research and development for national sports promotions and related projects

-Financial support to replenish sporting facilities nationwide

-Support program for athletes, coaches and international referees among others

-Financial support to retired athletes and coaches who secured enough bonus points from the Olympics and other major international sporting events

-Financial support to youth-related projects

-Holding of various events celebrating the 1988 Seoul Olympics

-Holding of Olympic-related projects in cooperation with the KOC

-Financing for promising sports equipment manufacturers and sports facilities

-Support programs for school sports promotion

-Research and promotion of sports science

-Research program for the scientific training of athletes

-Contribution to activities for national sports promotion

The source of financing for KSPF is as under:

1) Proceeds generated from KSPF operations

2) Profits from a sports-related lottery

3) Additional revenue from green-fees of membership golf courses

4) Profits from professional cycle- and boat-race investments

5) Contributions/donations from sports promotion projects

6) Other profits and revenues as defined by the Presidential Act from rental fees of various sports facilities

Korea's initial sport policy before 1980 focused more on the elite rather than on grassroots sports with the nationwide catch phrase of "Physical strength is the source of national power."

After the successful Seoul Olympics, the government also began to make strenuous efforts to strike a balance between elite sports and sports-for-all.

The 6th Republic of Korean government under president Roh Tae-woo (1988-1993) took the initiative of creating the National Sports-for-all Council on February 6, 1991 which since then has been in charge of community sports based on the overall national sports-for-all promotion plan called the "Hodori (Seoul Olympics mascot) Plan."

This plan brought together the set up of a wide range of community sporting facilities and the development of a wide variety of sports-for-all programs for the well-being and welfare of the Korean people.

Sport ha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creating an atmosphere for reconciliation between the two Koreas when political and ideological crises occurred. South and North Koreas showcased a peace message to the world through joint marching, hand in hand, by two delegations in many international sporting events including the 2000 Sydney and 2004 Athens Olympics, and the 2006 Turin Winter Olympics at the 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

In addition to the previous successful formation of inter-Korean teams in the Table Tennis and Football Junior World Championships respectively, the two Koreas are seeking ways and means to reach a successful conclusion to form a unified single Korean team for Olympic Games in the near future.

South-North Korean sports exchange

In November 2005, South and North Koreas delegates had a working group meeting during the East Asian Games in Macau.

As a result, both parties held further talks in North Korea (Gaesung) in December 2005 and in June 2006, and reached an agreement on a few items including a single delegation flag and anthem.

In addition, Dr. Jacques Rogge, IOC President, presided over a tripartite meeting attended by Kim Jung-kil and Mun Jae-dok, the respective Presidents of the South and North Korean Olympic Committees in September 2006.

They reconfirmed the participation of an inter-Korean single team in the 2008 Beijing Olympics, and shared views on detailed items related to the composition of the delegation.

Due to political disparity and disaccord, the first case of the single inter-Korean team at the 2008 Beijing Games failed to come to pass.

Ever since Korea's first-ever successful bidding and organization of the 42nd World Shooting Championships in Seoul 1978, so many world championship meetings IOC Sessions (1988 and 1999), ANOC General Assemblies (1986 and 2006) have taken place in Korea.

After the successful organization of the 1988 Seoul Olympics, the 2002 FIFA World Cup, the 2002 Busan Asian Games, the 2003 Daegu Summer Universiade and many other international sporting events, Korea recently succeeded in claiming the rights to host the 2011 Daegu World Athletics Championships, the 2014 Incheon Asian Games and the 2015 Gwangju Summer Universiade as well.

Korea is also currently bidding for the 2018 PyeongChang Olympic and Paralympic Winter Games and the 2022 FIFA World Cup.

The decision on the host city will be made in December 2010 for the World Cup and in July 2011 for the Winter Olympics.

Taenung Athletes' National Training Center

Teanung High-Level National Training Center (TNTC) serves as a cradle for glorious victories by athletes representing the nation.

Since its creation in 1966, the TNTC has become a real home for sportsmen and sportswomen dreaming of becoming world champions with national prestige and honor in many international and world championships including the Olympic and Asian Games.

The TNTC is well equipped with all the necessary and cutting-edge facilities, including an international standard indoor skating rink, indoor swimming pool, physical fitness center, and multi-purpose gymnasium.

On top of that, the 2nd National Athletes' Training Center was built at high altitude (1,300m above sea level) on Taebaeck Mountain in Gangwon Province in order to provide athletes with a natural cardio-respiratory enhancement environment.

In addition, the Multiplex Training Center is nearing completion in Jincheon County, one hour's drive from Seoul, for systematic fostering of elite athletes and teams.

It will be equipped with an indoor track and field stadium, a multipurpose gymnasium, indoor swimming pool, outdoor training facilities, a sports medicine and science center, and athletes' center.

Who is Yoon Kang-ro?

Yoon is president of the International Sport Diplomacy Institute (ISDI) and a member of the Policy Advisory Committee of the Ministry of Culture and Sports. He also lectures at the Renmin University of China as a guest professor.

He graduated from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and studied at the graduate school of business administration at Yonsei University. Yoon received an honorary doctorate degree in sports science from the Mongolian National Olympic Academy.

He currently serves as the secretary general of international relations on the 2014 PyeongChang Olympic and Paralympic Winter Games Bid Committee. He can be reached at
rockyoon@sports.or.kr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세상2010. 6. 14. 11:07
IOC위원은 지금까지 귀족 및 글로벌 특권층에 버금가는 위상과 예우로 인해 전 세계 많은 이들로 하여금 IOC위원 뱃지를 꿈꾸게 한 요인  중 하나 이기도 하다.

과거 IOC의 재정이 신통치 않았던 1984년 이전에는 모든 IOC위원들이 개인자격이었으며 출신 성분도 주로 왕족, 귀족, 총리출신 관료, 백만장자 등 글로벌 특권층 특수 클럽의 성격을 띠었다. 

이들은 IOC총회나 올림픽대회 참석시 모두 개인이 자비를 들여 IOC위원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신분과 지위 그리소 개인적 재산을 염출하여 개인 자가용비행기, 전세기, 호화호텔, 호화자동차 이용이 다반사였다.

그런 까닭에 IOC위원이 되고자 할 경우 규정상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IOC위원후보의 사회적신분과 지위이외에 예외적이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후보 개인 재산정도까지도 후보적합성을 심사하는 간접자격요건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이들 IOC위원들의 이러한 신분 상, 지위와 특별한 귀족성 덕분에 IOC위원들이 방문하는 국가에서는 이들에 대한 의전 또한 각별하였다.
우선 해당국 귀빈에 준하는 차량, 에스코트, 해당국 국가원수 예방주선, 투숙호텔에  해당 IOC위원국 국기 게양 등의 예우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984년 LA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의 마케팅 등의 흑자에 힘입어 IOC는 IOC위원의  올림픽관련 공식출장등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우선 IOC총회나 올림픽대회 참석시 IOC위원 부부동반 일등석 왕복 항공권, 일류호텔 숙식비, 현지 개인차량 등이 제공되었다. 

그러다가 1999년 IOC개혁안이 통과된 이후에는 IOC위원에 대한 재정적지원이 실질적인 차원으로 조정되었다. 과거 IOC위원부부동반 일등왕복 항공권제공내규가 IOC위원 개인혼자일 경우 일등석 항공권, 부부동반일 경우 비지니스 클라스 2장제공으로 변경되어 시행되고 있다.

IOC위원의 방문 시에도 투숙호텔에 해당 IOC위원 소속국가 국기게양도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진화되어왔다.
국가원수 예방도 사전에 조율되고 승인되어야만 가능하게 되었다.
IOC위원후보의 경우, 왕족 및 귀족 등 특권층에서 선수, 스포츠행정가, 영화감독, 기자, 코치, 감독, 기업인 등 다양화, 다변화되었다. 
다시 말해서 IOC위원은 대접받고 지위를 누리는 특권계층에서  활동하며 일하는 전문성을 갖춘 일반계층으로 진화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올림픽이 '지구촌 황금알 낳는 거위'로서의 지위를 누리면서 올림픽개최국은 올림픽대회 기간 중 모든 IOC위원들에 대하여 개인전용 자동차등 각종편의와 의전을 제공한 것이 관례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물론이고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대회까지 그러했다.

그러던 것이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는 그 양상의 변화가 예견되고 있다.

The pink version of the London 2012 logo.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의 일환으로 2012년올림픽을 준비 중인 Boris Johnson 런던시장은 내년 올림픽대회기간 중 IOC위원들 및 VIP에게 제공키로 되어있던  개인승용차배정계획을 변경할 뜻을 비추고 있다.

영국의 The Independent지에 의하면 Boris Johnson 런던시장은 "에산 감축계획방안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Talking about budgets cuts- and who isn't ?)라고 하면서," 런던올림픽예산  2700만파운드기금 삭감의 부담은 IOC와 VIP모두가 함께 분담해야 할 몫이며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따라서 관례로 되어있는 운전기사딸린 리무진 승용차대신  대중교통수단(by using public transport where possible rather than the chauffeured limos they are used to)을 이용토록 촉구할 것이다. 우리는 자크로게 IOC위원장에게 올림픽스타디움까지 밴디 버스(bendy bus)안에서 바라다 볼수 있는 런던 시내 관광을 겸한 경치감상을 과감하게 제안한 바 있다. 그때까지 밴디버스가 준비 안될 수 도 있다. 그렇지만 런던지하철서비스는 훌륭할 것이다.(But the tube service will be excellent.)"라고 언급하였다 한다.

과연 IOC위원들이 올림픽대회기간 중 버스나 지하철로 올림픽경기장을 오고가는 청승(?)맞은 시절이 오고 있는 것일까?
Union Jack Mascots. (London 2012)



2012년 런던올림픽이 IOC위원들의 호시절을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하고 씁쓸한 홀대 유산(Inhospitable Treatment Legacy)으로 남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인가?

국제스포츠 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외교2010. 6. 10. 17:58
국제스포츠 계의 여성파워는 강하다.
IOC여성 사무총장이 2명이 있었다.
IOC부위원장이 2명, IOC집행위원이 4명이나 있었다.
현재 IOC집행위원은 Nawal El Moutwakel(모로코/아래사진)1명이다.
114명 IOC위원 중 여성 IOC위원은 17명이다.
35개 동하계올림픽종목 국제연맹 중 3개 단체회장이 여성이다.
여성점유율이 약 10%다.

첫 번째인 국제승마연맹(FEI)회장은 S.A.R. la Princesse Haya Bin Al Hussein 요르단 공주로서 아랍에미리트(UAE)통치자와 결혼(두번째 부인)하여 국적은 UAE다.
국제연맹자격으로 2007년에 IOC위원에 선출 되었다.

Princess Haya. (ATR)

두 번째는 스페인 여성스포츠인으로 Marisol Casado 가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ITU)회장으로 당선되고 이어서 역시 국제연맹자격 IOC위원으로 2010년 밴쿠버 IOC총회에서 선출되었다.

(스페인출신 국제연맹회장 2명:좌로부터 Jose Perurena Lopez 국제카누연맹회장, 필자, Marisol Casado 국제트라이애슬론 연맹/ITU회장 겸 IOC위원과 함께)

세 번째는 최근 기존 국제컬링연맹(WCF)회장인 캐나다의 Les Harrison을 투표결과 누르고 신임회장에 당선된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성 스포츠인 Kate Caithness다.

Caithness신임회장은 컬링 역사상 최초의 여성회장이기도 하다.

베이징올림픽까지 국제하키연맹(FIH)회장과 IOC위원을 역임했던 네덜란드의 Els Van Breda Vriesman역시 뛰어난 글로벌 여성 스포츠지도자였다.

                 (중앙:좌로부터 Els Van Breda Vriesman, Hein Verbruggen, Rocky Yoon<필자>)

스페인 왕족 출신 Dona Pilar de Borbon은 국제승마연맹(FEI)회장과 IOC위원을 역임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여성스포츠외교관인 Lu Shenglong이 세계배드민튼연맹(BWF)회장 겸 IOC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아래사진들은 필자가 근 30년 간 국내외 스포츠외교활동 현장에서 소중한 인맥을 형성한 바 있는 발군의 여성스포츠외교관들이다.




          (IOC사상 최고의 실권을 휘들렀던 올림픽 철의 여인 Mme. Monique Berlioux IOC사무총장/좌측, 고 정주영 KOC위원장/우측, 가운데는 통역 중인 필자/1983년)

(사마린치 IOC위원장 재직시절 21년 간이나 IOC 사무총장을 역임한 Mme Francoise Zweifel<우측>과 IOC박물관 직원 Stephanie<좌측>/2006년 경기도 양평소재 평산 스포츠박물관 방문)

(IOC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IOC부위원장을 역임하고 IOC위원장 후보였던Anita DeFrantz미국 IOC위원 겸 IOC여성과 스포츠 분과위원장/좌측) 

(자크 로게 현 IOC위원장 부인<가운데>이 부군과 함께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환영리셉션에서 필자, Roch Campana FISU/국제대학스포츠위원회 사무총장과 함께 포즈)

(현재 유일한 여성 IOC집행위원인 Nawal El Moutawakel-모로코 체육장관역임/우측-이 El Guerrouj 모로코 선수자격 IOC위원/좌측, 그리고 필자와 2009년 코펜하겐 IOC총회에서 함께 재회하였다.)

(IOC사상 두번째 IOC여성부위원장을 역임한 스웨덴 IOC위원 겸 ANOC사무총장<좌측>과 2006년 ONOC총회 환영 리셉션에서)

(10차례 세계육상여자중장거리 세계기록보유자, 5차례올림픽출전<금3, 은2, 동2>이며 폴란드 여성IOC위원인 Irena Szewinska<우-2>, 2010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인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좌-1>)

(아루바 NOC사무총장이면서 여성 IOC위원으로 선출되어 활약 중인 Nicole Hoevertsz/2009년 코펜하겐)

               (이집트 선수출신 여성IOC위원인 Rania Elwani<가운데>와 그녀의 모친/2009 코펜하겐)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배구 올림픽금메달리스트, 쿠바선수출신 여성IOC위원인 Yumilka Ruiz Luaces/2009 코펜하겐)

(국제철인3종연맹/ITU회장자격으로 IOC에 선출된 스페인 여성 IOC위원인 Marisol Casado<우측>과 역시 스페인출신 국제카누연맹회장인 Jose Perurena Lopez<좌측>/2009 코펜하겐)


(에베레스트산 정상정복에 성공한 이태리 최초 여성크로스컨트리스키선수출신 여성 IOC위원인 Manuela Di Centa/1984, 1988, 1992, 1994 등 4개 동계올림픽에서 금2, 은2, 동1획득/세계스키선수권자 7개 메달/ 이태리 NOC부위원장, 이태리 선수위원회위원장) 

(여자요트 세계선수권자,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요트 은메달리스트로서 선수자격 여성 IOC위원역임한 뉴질랜드의 Barbara Kendall<우측>과 부군<좌측>)

                                 (국제스키연맹/FIS 여성사무총장인 Sarah Lewis)

(여성출신 IOC올림픽유치후보도시총괄 팀장인 영국출신의 Jacqueline Barrett<맨우측>, 자크시락 프랑스대통령<좌측>이 IOC평가위원단을 엘리제 대통령궁에서 영접하고 있다. 가운데는 Hein Verbruggen IOC평가위원장 겸 현 SportAccord회장)

(Annie Inchaspe<좌측>는 사마란치 IOC위원장임종 할때 까지 평생을 최측근에서 보필한 스페인 출신 조깅광 여성이다.)

(1984 사라예보, 1988 캘러리 동계올림픽 피겨 여왕인 동독출신 카타리나 비트 현 뮌헨2018유치위원장 친필 서명 사진)

(등야핑<좌측>은 중국출신 IOC선수위원으로서 세계여자탁구 여제로서 명성을 날렸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유치당시 중국스포츠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중국정부의 정책적 배려로 다년간 영국에서 공부한 덕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Chamaine Crooks는 캐나다가 자랑하는 유능한 스포츠외교관: 현역시절 여자육상중장거리 세계선수권자로서 선수자격 IOC위원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IOC선수위원으로 폭 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Anne Beddoow<가운데>는 IOC국제팀장을 역임한 유능한 영국출신 여성스포츠외교관이다. 우측은 Sheikh Ahmad OCa회장 겸 쿠웨이트 IOC위원/부총리)

(변호사 출신인 Annie Cho/조은우<좌측>는 한국인 출신/LA거주, 최초 IOC직원으로서 1988서울올림픽준비과정에서 많은 편의를 제공하여주었다. 1984 LA올림픽조직위원장인 Peter Ueberoth가 신임하였으며, 그 추천으로 IOC에 입성하였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신 대한민국 여성스포츠의 대모 세분: 윤덕주/좌-2, 조정순/우-2, 한양순/우-1, 가운데가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숏트렉 금메달리스트 김기훈 현 국가대표 숏트랙감독)


(여자탁구 세게선수권대회 메달리스트출신 조경자 대한탁구협회부회장, 대한체육회부회장, 여성스포츠회회장, 1992바르셀로나 올림픽 한국선수단 여자총감독역임<좌측> 및 농구인 출신 고 윤덕주 대한농구협회부회장, 대한체육회부회장, 1992바르셀로나 올림픽한국선수단 부단장역임)

(여성스포츠인으로 연세대학교 체육과 교수, 국제대회 한국선수단 여자총감독, 부단장, 여성스포츠회회장, 각종사회단체 여성지도자 등으로 활약한 고 한양순 박사<좌-2>, 박상하 ISTF회장<좌-1>, 이강평 KOC사무총장<우-2>, 필자<우-1>/1994년 파리 올림픽콩그레스 및 IOC총회)

                  (고 한양순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좌측, 필자<우측>>/1994년 파리 올림픽콩그레스)


(조경자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좌측>, 황영조1992바르셀로나 몬주익 마라톤영웅<가운데>, 필자<우측>/무교동 체육박물관개장 시절)

(한국최초 세계여자양궁선수권자 겸 올림픽메달리스트 김진호 현 한체대교수<좌측> 및 서향순 1984 LA 올림픽 여자양궁 금메달리스트<우측>)


(역대 한국여자 농구의 간판스타 중 대한체육회부회장역임한 농구스타 박찬숙선수/1984 LA올림픽참가후 귀국항공편, 좌측은 당시 조승연 여자국가대표농구감독)

                                          (군계일학의 키를 자랑하는 박찬숙선수)


(1979년 한국최초 유치후  성공적으로 조직한 제8회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뒷풀이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미국선수단 테이블에 동석한 박찬숙선수가 고 이병희 당시 대한농구협회회장 겸 조직위원장<박찬숙왼편>과 즐거운 한때/필자<좌-2>는 당시 외대재학시절 미국팀통역이었다.)

(제8회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각국선수단 장기자랑에서 미국팀으로 출전<?>하여 미국국가대표여자농구선수들과
열창 중인 필자/1979년)


(동계올림픽4관왕인 전이경선수<우측:2010.5.29 드디어 결혼에 골인>가 2010 및 2014 평창동계올림픽유치사절단으로 활약하던 당시 모습)

(언제보아도 자랑스럽고 대견한 세계스포츠피겨여제 김연아선수는 이미 세계적인 스포츠외교관이며 차세대 스포츠지도자감이다.)

(한국수영의 대표적 인어자매 최윤정<좌>, 최윤희<우>자매, 차세대 여성수포츠지도자이며 스포츠외교관이다./1982년 뉴델리 아시아게임)

 (인천출신 국가대표 여자 태권도코치 임신자, 차세대 한국여성스포츠지도자감에 손색이 없다./1992바르셀로나 올림픽참가 한국선수단 금의환향 카퍼레이드)

(한국최초 동계올림픽종목 국제연맹<국제바이어들론연맹/IBU> 여성 부회장으로 활약중인 김나미<우-2>,좌로부터 필자<2014평창유치위 국제사무총장>, 한승수 전 국무총리 겸 2014평창유치위원장, 김나미, 이경우2014 평창유치위 부위원장)

('지속적 관광진흥으로 빈곤퇴치'를 기치로 내걸고 세계적으로 맹활약 중인 STEP재단 이사장 도영심 전 관광스포츠대사<<중앙>가 평창동계올림픽유치를 위하여 많은 기여를 해오고 있다.)

(1995년 미스코리아 최윤영<우-2>역시 평창동계올림픽유치를 위해 애쓰고 있다. Pal Schmitt 헝가리 IOC위원<우-1>)

                     (신문희 러시아 음대교수도 평창유치를위해 스포츠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세계여자골프여제 소렌스탐 역시 스웨덴을 대표하는 여성스포츠외교관이다.)


       (샤론스톤을 닮은 미국여자 국가대표 여자 사격선수/1979년 태능개최 세계공기총 사격선수권대회 시)


(카타르 '알 자지라' TV 앵커우먼의 노련한 인터뷰진행: 2002년 도하 아시안게임 OCA수석조정관으로 현지준비상황점검방문시)

                                      (미국국가대표 여성 보디빌더의 위용)


(세계스포츠 계의 제왕 중 한명인 Mario Vazquea Rana ANOC회장의 딸들;가운데가 세째 딸 Miriam/멕시코시티 Rana 회장 저택, 1984년 ANOC총회 리셉션)

         (2008베이징 올림픽 IOC평가위원으로 현지방문 시 베이징 유치성공기원 중국 자원봉사 여자고교생들)


         (2008년 올림픽 IOC평가단 현지실사방문 후 귀국길 환송하는 중국 베이징 시 여자고등하교 학생들)


    (1986년 그리스 올림픽아 개최 IOA 연수회참가 소련을 대표해 참가한 전 소련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 나타샤)


(1979년 한국최초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 통역단장으로 참가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시절 허유회 이태리학과 학생의 유창한 이태리어실력이 이태리 여자농구선수단과 세계연맹관계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북한 올림픽위원회 국제통으로 당시 북한체육지도위원회국제국장 리혜경<가운데>은 북한 대표급여성스포츠외교관으로 국제스포츠관련 회의와 행사시 주도적 역할을 한 바 있다./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당시)


(Amancha Akpaev카작스탄 NOC위원장<좌-2>영어통역으로 1997년부산개최 제2회동아시안게임에 참석한 카작스탄 여성 스포츠행정가 겸 차세대 여성스포츠외교관 나타샤, 맨우측은 이영 부산시의회의장 겸 2002부산아시안게임유치위원회 부위원장)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인도여성 통역원들)


                   (1986년 그리스 올림피아개최 IOA연수회여성참가자들; 영국대표<좌> 및 호주대표<우>)


                       (1984년 LA올림픽한국선수단 여성Envoy와 마스코트 Sam The Eagle)


                (1984년 LA올림픽 한국선수단 개회식 리허설에 한국선수단 피켓 걸- 미국여성자원봉사자들)

                          (1986년 그리스 올림픽피아 개최 IOA연수회 참가 프랑스 대표들)


(1987년 체코 스트르부스크 플레소개최 동계유니버시아드 참가 한국 VIP담당 체코여성 담당관 레나타<가운데>, 이승원 당시 대한스키연맹회장<우-2>/현 FIS집행위원)

(전형적인 구 소련 영어통역 여성안내원, 구소련 NOC주최 국제스포츠세미나에 참석중인 필자<가운데>, 심용택 국제팀장<우측>)

        (1987년 동계U대회 체코 여성통역 안내원 레나타<가운데>와 정성태 당시 체육과학연구원장<우측>)


        (1987년 서울올림픽성화채회식에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대표단 통역지원 그리스 여성자원봉사자)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당시 1988서울올림픽우정의 사절단 여성홍보대사인 캐나다 교포 허자은<우-2>, 김종하 KOC위원장<가운데>, 최만립 KOC부위원장<우-1>, 필자<좌-1>)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참가 한국선수단 개회식 피켓걸 들)

(동계올림픽유치 5차례씩이나 도전한 불굴의 스웨덴 Falun 유치위원회 여성홍보요원들/1988년 서울올림픽에 앞서 개최된 제94차 IOC총회장.신라호텔 홍보전시관)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여성국제국장)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한국선수단 개회식 피켓 걸)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IOC위원들 및 OCA집행위원등 초청 외국 VIP여성 통역의전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의전교육)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 본부임원회의/주희봉<우-2>여자 총감독, 김영채<우-3>여자감독)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부호텔 VIP 담당 여성의전요원)




(불라리아 바르나개최 IBU총회에서 평창이 세계바이어들론선수권대회개최도시로 선정될 당시 운영한 평창홍보관 한복차림의 여성도우미<가운데>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1894 IOC창립 이후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IOC에 첫 여성위원이 탄생한 것은
1981
Haggman(핀란드/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 당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함) - Isava- Fonceca (베네수엘라/2001년 이후 명예위원)가 함께 금녀 구역에 입성을 필두로
, 1982 4차례나 올림픽 펜싱에 출전했던 Mary Alison Glen Haig(영국/1994년 이후 명예위원), 1984년 리히텐쉬타인의 노라공주(Princess Nora), 1988년 영국의 앤 공주(The Princess Royale)가 그 뒤를 이었다.


1986
년 선출된 미국의 아니타 데 프란츠(Anita De Frantz)는 최초의 흑인 여성위원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최초의 여성 IOC부위원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2001년 사마란치 위원장에 이은 IOC 위원장 선거에 최초의 여성 입후보자로 출마하였다가 고배를 마셨다
.

뒤이어 캐나다의 레터런 (Carol Lethern: 사망) 1990년 선출되었다
.
그 다음이 1996년 국제승마연맹 회장인 스페인의 보르본
(HRH The Infanta Dona De Borbon;
2006
년 국제승마연맹회장 직 임기만료로 IOC위원 직 면직됨)과 스웨덴 NOC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린드버그(Gunila Lindberg: 2004 8 IOC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2008 8월 부위원장 직은 임기만료, 2004 ANOC 최초의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어 활동 중)가 그 뒤를 이었고,1998년에는 1964년 동경 올림픽 400m 계주 금메달, 1968년 멕시코 올림픽 200m 금메달, 1972년 뮌헨 올림픽 200m 동메달, 1976년 몬트리올 400m 금메달 획득을 비롯하여
,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피안이며 10차례 육상 세계기록 보유자이며 철의 여인인 폴란드출신의 쉐빈스카 (Irena Szewinska), 1984 LA올림픽 400m 허들 금메달리스트인 모로코의 무타와켈(Nawal El Moutawakel; 2012년 및 2016년 하계 올림픽 IOC 평가위원장 겸 조정위원장(2012년 런던 올림픽)/IOC집행위원)등으로 여성 IOC 위원 계보가 형성되어 갔다.

1999
년에는 캐나다 국가대표 중장거리 선수 출시인 크룩스(Charmaine Crooks: 2004년 임기만료), 이태리의 디센타(Manuela Di Centa: 1984-1998년까지 5차례 동계올림픽 스키 대표선수/2010년 임기만료
), 2000년에는 호주의 오닐(Susie O'Neill: 1996년 애틀랜타 및 2000년 시드니 수영 금메달리스트/가사에 전념하기 위해 2004년 사임), 2001년에는 국제하키연맹 (IHF) 회장인 네덜란드의 브레다 브리즈만 (Els Van Breda Vriesman; 2007 IHF회장 재 선출 실패로 IOC위원직 사임), 2002년에는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 스키 대 회전 금메달,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스키 알파인 복합 금메달,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스키 활강 은메달 획들을 비롯하여, 4차례세계스키 챔피언인 스웨덴의 위버그(Pernilla Wiberg: 2010년 임기만료), 그리고 2004 8월 선출된 이집트의 엘와니(Rania Elwani) 등 총 16명이 선출되었다.

 

2005년 제117 IOC총회에서 Susie ONeill 후임으로 뉴질랜드의 Barbara Kendall 여성 IOC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2006년에는 감비아 NOC부위원장인 Beatrice Allen 아루바 NOC사무총장인 Nicole Hoevertsz, 캐나다 Cross Country 스키선수출신인 Rebecca Scott, 2007년에는 인도네시아 NOC위원장인 Rita Subowo, 국제승마연맹회장인 아랍 에미리트의 Princess Haya Bin Al-Hussein, 이어 2008년에는 올림픽펜싱 은메달리스트 출신인 독일의 Claudis Bokel, 여자배구선수(2004년 아테네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출신인 쿠바의 Yumilka Ruiz Luaces, 2009년 코펜하겐 IOC총회에서 부룬디 축구협회회장 출신 Lydia Nsekera, 2010년에는 중국의 여자숏트랙 챔피언 양양, 스페인의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회장 Marisol Casado, 미국 선수(아이스하키)자격으로 IOC위원에 선출 된 Angela Ruggiero등이 추가로 선출되어 현역 여성 IOC 위원은 현재 17이다.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