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0. 6. 3. 18:39

(1983년 무교동 체육회관 9층 대한체육회장/KOC위원장실은 1981년 9월30일 바덴바덴에서의 서울올림픽유치이후 전 세계스포츠지도자들의 방한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뒷편 좌측으로부터: 김집태능선수촌원장/체육부장관, 김세원대사/KOC부위원장, 고 조상호 SLOOC부위원장/KOC위원장/체육부장관, 장충식KUSB위원장<가려서 안보임>, 고 정주영체육회장<가려서 안보임>, 필자<통역 중>ㅡ 고 사마란치 IOC위원장, 노태우 SLOOC위원장/체육부장관/체육회장/대통령 역임, 고 이영호 체육부장관/SLOOC집행위원장, 이상찬 유도대 학장, Alain Coupat IOC위원장 비서실장, 고 Sheikh Fahad 초대 OCA회장/쿠웨이트 IOC위원, Sharad Chandra Shah네팔 NOC위원장 등)

           (1985년 동베를린 IOC총회 SLOOC대표단: 김운용WTF총재/SLOOC부위원장/IOC부위원장/KOC위원장,고 이영호체육부장관/SLOOC집행위원장, 고 조상호 SLOOC부위원장/체육부장관,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필자)

              (1984년 전상진 대사/SLOOC국제담당사무차장, 필자, 고 정주영 KOC위원장, 이원웅KOC전문위원)

            (1985년 노태우 SLOOC 위원장, 고 사마란치 IOC위원장, 고 박종규 IOC위원/KOC위원장/대한사격연맹회장, 이영호체육부장관/SLOOC집행위원장)

               (고 박세직 SLOOC위원장/체육부장관, Berthold Beitz IOC부위원장/서독, 고 사마란치 IOC위원장)

(1984년 SLOOC위원장실/가운데부터 시계방향:노태우 SLOOC 위원장, 필자, Tan Seri Hamzah 말레이지아 IOC위원/우측: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명예총무, Sharad Chandra Shah 네팔NOC위원장/안보임, 고 Sheikh Fafad OCA회장)

             (1983년 좌로부터 당시 고 이영호 체육부차관/체육부장관, IOC위원부인, 필자, 고 이원경 체육부장관, 고 Mohamed Behjelloun 모로코 IOC위원 등)

  (1983년 무교동 대한체육회장실: IOC사상 최고의 실권을 거뭐쥐었던 여성 사무총장 Monique Berlioux, 필자, 고 정주영 대한체육회장 겸 KOC위원장)

(1984년 소공동 롯데호텔 아테네 홀: 고 이영호 체육부장관, 노태우 SLOOC위원장, 필자, 모리타니아 체육부장관)

 (1983년 무교동 대한체육회장실:고 이영호체육부장관, 노태우 SLOOC위원장, 고 사마란치 IOC위원장, 필자, 고 정주영 대한체육회장)

(1987년 로잔느 IOC본부: 1988년 서울올림픽초청장 발송식: 고 박세직 SLOOC위원장, 고 사마란치 IOC위원장, 김종하 KOC위원장, 김운용 IOC부위원장)

(1988년 서울 프라자호텔 중식당 도원: 자크로게 당시 벨기에 올림픽선수단장/현 IOC위원장, 김종하 KOC위원장)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당시 2002년 OCA총회 참가 한국대표단: 앞줄좌로부터 공로명 유치위원장/외무무장관역임, 이창동 문화체육관광부장관/영화감독, 이연택 KOC위원장, 김진선 강원도지사 겸 유치위 집행위원장, 박용성 IJF회장 겸 IOC위원)

          (1984년 LA 올림픽 참가 한국선수단 USC대학 올림픽선수촌 입촌식장면: 좌측 김성집한국선수단장)

           (1985년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건설현장 고 Sheikh Fafad OCA 회장/우로부터 4번째 일행 시찰)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각국 선수단장 마지막 회의후 단체사진)

(1985년 동베를린 IOC총회 당시  한기복<작고> 체육부 국제체육국장/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필자)

(1987년 체코 스트레부스크 플레소 개최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회식 중 가운데 여성이 한국 VIP통역안내원/레나타)

                    (1986년 로잔느 IOC올림픽박물관 건설현장 답사/ 각국 세계박물관장회의 대표들)

            (2003년 평창 Dragon Valley호텔: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 IOC실사평가단과의 연석회의 장면)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 결단식 후 기념촬영)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 직후 외신 기자회견:좌로부터 필자, 고 정봉수 마라톤 국가대표감독, 황영조 올림픽마라톤우승자 등)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 결단식:장명희 한국선수단장/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 역임/ 현 ISU집행위원; 태능선수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인 한국선수단 결단식: 맨 앞 줄 고 김상겸 대한체육회부회장, 박상하 한국선수단장; 세종문화회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한국선수단 결단식: 세종문화회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한국선수단 올림픽선수촌 입촌식: 앞줄, 필자, 신박제 한국선수단장, 김운용 KOC위원장 겸 IOC부위원장, 장훈 주 애틀랜타 한국 총영사 등; 올림픽선수촌으로 사용된 애틀랜타 Gergia Tech 대학교 내 행사장)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한국선수단 결단식 기념촬영:세종문화회관)

            (1996년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참가 한국선수단:중앙 좌로부터 , 필자, 박상하 대한체육회부회장, 박갑철 한국선수단장, 이승원 대한스키연맹회장 겸 FIS집행위원, 호돌이 응원단장; 고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현장 방문)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 결단식<한국선수단장: 김정행 용인대학교 총장 겸 대한체육회부회장/앞줄 중앙 흰색 단복 착용 )

                       (역사적인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행진/동시입장) 

        (2002년 솔트 레이크 시티 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 올림픽선수촌 입촌식 후 기념촬영/University of Utah: 두번째 줄 우로부터, 이인숙 여자감독, 박성인 선수단장, 김운용 KOC위원장, 정귀환 부단장, 필자 등)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윤강로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
스포츠 세상2010. 6. 3. 16:53
 "3S"는 1980년대 제5공화국부터 우리사회에 자리매김한  신 개념이었다.
"Sport, Sex, and Screen"의 3S는  현대사회 상업주의개념에서 뺄래야 뺄수도 없는 우리 일상의 3가지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Sex는 편의상 '외모지상주의'로 해석하기로 하자.
우리는 이제 3가지 중 한가지만 특출나게 잘해도 마케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인류가 가장 선호하는 5가지 공통 언어가 존재한다. ; ‘돈(Money), 정치(Politics), 예술
(Art), 섹스(Sex), 그리고 스포츠(Sport)’가 그것이다.

그 중 5번째에 해당하는 ‘스포츠’는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인생을 살맛 나게 해주는 가장
건전한 필수 콘텐츠다.

고전적 의미의 인류 3대 필수요소는 의식주(Food, Clothing, and Shelter)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신 개념적
3대 필수요소는 ‘청정한 물’(Clean Water), ‘맑은 공기’(Clean Air), 그리고 ‘만인의 스포츠’(Sport for all/Grassroots Sport)라고 정의해 보고 싶다.

스포츠는 자나 깨나 직접 실행하든 관람하든 응원하든 뉴스매체를 통해 접하든 간에 하루도 스포츠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오죽하면 스포츠본연의 의미와 동 떨어진 '스포츠마시지'라는 신조어가 공공연히 남용되기도 한다.
1970년대까지 만 해도 전매청에서 생산하는 담배이름에 '스포츠'라는 이름이 있었다.

스포츠는 인류선호 5대 언어들 중 나머지 4가지 언어적 특성 모두를 내재하고 있으며,  스포츠의 인류
보편타당성 결과물이 바로 올림픽이다.

올림픽은 지구촌 정치의 변모하는 얼굴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국제적 논란거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고, 문화 / 교육 / 예술 / 육체적 / 미적 율동이 한데 어우러진 복잡 미묘 다단한 종합
축제의 한 구석에 인간의 돈에 대한 집착의 무대를 꾸며주기도 하는 기기묘묘한 인류생태 심리학적
문화유산의 최대 걸작품이기도 하다.

40억 지구촌 가족이 열광하는 가운데 지난 1996년 근대 올림픽이 드디어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림픽
(미국 애틀랜타)이 성황리에 치러졌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주최국 중국이 지금까지 세계최강
이었던 미국을 누르고 새로운 1인자 자리로 등극하는 등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최근 국제적으로 실시된 ‘즉석 인지도 조사’(Spontaneous Awareness Survey)결과 올림픽이 ‘월드컵
축구’의 2배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윔블던 테니스대회(Wimbledon Tennis Championships)’보다 3배,
 ‘포뮬러 원(Formula One Motor Racing Grand Prix)자동차 경주대회’보다 4배,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사이클 대회’, ‘수퍼볼 미식축구대회(American Super Bowl)’, ‘월드시리즈 야구대회(World
Series of Baseball)’ 보다 6배, 그리고 ‘미국 컵(America's Cup)’ 및 ‘데이비스 컵 테니스대회(Davis Cup)
’보다는 무려 10배나 더 높은 인지도를 보여 주었다.

 

                                   (IOC올림픽박물관에 전시된 1988 서울올림픽 코너)

그러한 올림픽 중1988년 서울올림픽은 前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역대 최고의 올림픽(The most
Universal and the Best Games ever)이라고 극찬 한 바 있다.

1988 서울올림픽유치가 확정된 1981.09.30 서독 바덴바덴 IOC총회까지 대한민국이 유치할 당시 한국이
개최한 국제스포츠행사라고는 1975년 제2회 아시아 체조선수권대회, 필자가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재학시절 통역으로 참가하여 스포츠 계와 숙명적 인연을 맺게 해준 바 있는 1978년 제42회 세계 사격
선수권대회, 1979년 제1회 세계 공기총 선수권대회 및 제8회 세계 여자농구선수권대회 그리고 1980년
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가 고작이었다.

1988 서울올림픽유치 당시 한국은 한국의 국제적 지명도, 신인도, 인지도 등이 대외홍보부재로 별 볼일
없었다. 치명적 핸디캡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 당시 대한민국의 위상은 Japan Times지에 게재된 “한국정부가 일본에 미화60억불
차관을 요청하였지만 그 직후 개최된 한-일 각료회담 시 교섭이 잘되지 않고 있다”는 보도에 의한 경제
개발도상국이라는 것과 미국 TV 드라마 “MASH(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군대 이동외과병원)”을
통해 한국은 1950-1953 한국동란이란 전쟁을 치르고 미군이 도와주는 열악한 환경의 미국원조대상국
이자 경제여건이 어려운 분단국이미지 그 자체였다.

사실 우리나라 스포츠가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데에는 스포츠외교의 힘이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발점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1981년 9월30일 서독 ‘바덴
바덴 대첩’이다.

그 후 1994년 제12차 파리 올림픽 콩그레스 겸 제103차 IOC총회에서 당시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WTF총재 겸 KOC위원장의 주도 면밀한 전략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포츠외교력 덕분에 태권도가
역사적인 올림픽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회 개 폐회식장에서 남북한선수단이
공동 입장한 것은 우리스포츠외교사에 길이 남을 쾌거였을 뿐만 아니라 지구촌 가족들에게 평화와
감동의 진한 메시지를 전한 불멸의 발자취로서 기록될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