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세상2024. 4. 16. 10:24

[“체육은 체육인 손으로!” 전세계스포츠계를 장악했던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의 11년 전 외침]

 

체육은 영어로 Physical Education이지만 한국은 체육(Physical Education)과 스포츠(Sport)를 혼재하여 동일개념으로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를 영어로 KSOC(Korea Sports and Olympic Committee/대한 체육 및 올림픽위원회)라고 쓰는데 이는 한글 명칭과 영어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입니다.

전세계에는 올림픽위원회와 체육 단체가 통합되어 있는 사례가 적지 않지만 모두 올림픽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이 체육단체 명이 연명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1)  독일올림픽체육회(DOSB: Deutch Olympische Sport Bund: German Olympic and Sport Confederation)

 

2)  프랑스올림픽체육회(CNOSF: Comite National Olympique et Sport Francais: French National Olympic and Sport Committee)

 

대한체육회의 경우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체육을 먼저 쓰고 올림픽을 뒤에 붙였지만 한글명칭으로는 올림픽이란 단어가 실종된 특이한 사례입니다.

 

대한체육회는 엘리트스포츠의 상징인 올림픽이란 명칭을 생략하고 사용하면서 IOC 및 국제관계에서는 KSOC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니 명실상부(名實相符)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체력은 국력” (Physical Strength is National Power)라는 기치가 되살아나야 합니다.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은 1993년 제32대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2003년 사임한 바 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해방 후 조선체육회를 대한체육회로 명칭이 바뀌는 과정에서 일본 체육회(JASA: Japanese Amateur Sports Association)의 명칭과 직제를 그대로 답습하여 KASA(Korea Amateur Sports Association)를 사용하여 왔지만 IOC에서 아마튜어’(Amateur)란 단어가 삭제되는 분위기에서 김운용회장은 취임 후 대한체육회의 영문 명칭을 KASA(Korea Amateur Sports Association)에서 KSC(Korea Sports Council)로 명칭 변경을 한 바 있습니다.

 

(Atlanta1996올림픽 한국선수단 본진과 Atlanta 공항에 입성한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KOC위원장<당시 65>, 백성일 비서실장 및 한국선수단 선발대장으로 공항 영접 및 보고 중인 필자)

 

 

이 당시에는 KSCKOC가 공존하는 시대였습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 한국선수단을 파견하려면 국가올림픽위원회가 존재해야 했기 때문에 한국은 1947년 스웨덴 Stockholm개최 IOC총회에 KOC로 가입신청하여 승인됨으로 대한민국은 1947년 이래로 IOC가맹국가올림픽위원회인 대한올림픽위원회(KOC)로 역대 동하계올림픽대회에 대한민국대표선수단을 파견하여 왔습니다.

 

해방 후 대한체육회는 전국체전 개최이 주요 업무였다가 1948Chamonix동계올림픽 및 같은 해 런던올림픽과 1954년 제2회 마닐라 아시안게임부터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단을 파견하면서 국제종합경기대회 참가신청과정에 KOC가 그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그후 생활체육-학교체육-엘리트체육이 통폐합되면서 대한체육회가 주도권을 잡고(KOC는 대한체육회 내 특별위원회로 존속) 엘리트 스포츠 관할 단체로 자리매김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김운용 IOC부위원장은 올림픽운동의 3대 축인 “IOC(부위원장)-국제연맹(IF: 세계태권도연맹 총재)-NOC(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모두 석권한 유일무이한 세계스포츠계의 독보적인 위상으로 2001Moscow개최 IOC총회에서 거행된 IOC위원장선거에 출마하였다가 Jacques Rogge 8IOC위원장과의 선거에서 차점자로 고배를 마신 바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위상(IOC부위원장 및 IOC TV분과위원장-GAISF회장-WTF창설총재-World Games창설회장 등)과 국내스포츠계의 장악력(대한체육회장-국기원장-대한태권도협회장)을 바탕으로 남긴 그분의 내공이 담긴 견해를 다음과 같이 공유합니다:

 

[김운용의 산고곡심/山高谷深(52)]체육은 체육인 손으로①/2013. 1. 14/뉴시스에 연재]

 

원래 체육은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하던 것이 경제 발전과 함께 20세기 말에 극적인 대중화를 이룩하면서 모든 사람이 즐기게 됐고 이야기하게 됐다. 소비자로만 생각하던 경제도 스포츠의 마케팅 가능성과 부가가치성을 보고 참여했고, 메시지와 감동, 동원력이 큰 것을 본 정치도 관여하게 됐다. 이제 스포츠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관광, 교육, 환경, 마케팅, 마약, 베팅(Betting), 법률, 학술, 의학 등 모든 분야를 총망라해 발전하게 됐다.

올림픽 경기는 평화시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서 프로화·상업화 했고, 이제 정부의 막대한 투자 없이는 올림픽경기 유치와 메달 획득이 어렵게 됐다.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독일, 일본, 호주 등 상위 10위권(한국 포함) 국가들은 메달 획득을 위한 '무기 경쟁(arms race)'을 벌인다. 경기력 강화에 중국은 1년에 45000만 달러를 투자한다.

그러면서도 올림픽은 긍정적인 사회운동으로서 세계평화와 청소년교육이라는 올림픽 이념을 내걸고 나름대로 노력한다. 원래 한국의 스포츠는 메달보다 참여에 만족하던 변방 스포츠였으나 1981년 바덴바덴에서 기적적으로 88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막대한 정부투자를 통해 스포츠 시설을 건설하고 경기력을 향상시켜 세계스포츠 강국과 자웅을 겨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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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은 국력' '체육입국'을 내걸었던 박정희 대통령 때 체육고등학교와 체육대학도 설립하고 태릉선수촌도 건립됐다. 소년체전도 창설했지만 1970년대 대한체육회 예산은 연간 1억원(문교부 보조)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각 경기단체에 국가보조도 없었고 단지 경기단체 회장의 능력과 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재정동원 수완에 의존했다.

사격 박종규, 축구 장덕진, 야구 김종낙, 농구 이병희, 스케이트 김재규, 레슬링 김영관, 럭비 주창균, 배구 이낙선, 태권도 김운용, 복싱 김택수, 체육회장 민관식·김택수가 기억나고 각자 헌신적으로 자기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다. 1974년에 처음으로 세계사격선수권대회(1978년 개최)가 유치됐고, 1972년에는 국기원 건립, 1973년에는 세계태권도연맹이 창설됐다.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한 국민체육심의회의(최규하·남덕우 총리, 박찬현 문교, 정상천 서울시장, 박종규 KOC, 김택수 IOC, 김운용 WTF)가 국무총리 주재로 1979년에 두 번 개최됐다. 오늘날의 스포츠 강국으로의 기초가 다져진 것이다.

다음 단계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유치 후 일이다.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스포츠 면에서나 세계의 변방이었던 한국이 1988서울올림픽 개최 준비를 하고 국민을 기쁘게 할 메달 경쟁을 시키기 위해 정부는 막대한 재정 투자를 올림픽 마케팅과 함께 했으며 일부 경기단체를 대기업 회장에 위임하는 형식을 취했다. 육상은 한전, 수영과 양궁은 현대, 배구는 효성, 야구는 태평양, 조정·근대5종은 LG, 축구·요트는 대우, 테니스는 대한항공, 농구와 마라톤은 코오롱, 레슬링은 삼성, 탁구는 동아건설, 복싱은 김승연, 핸드볼은 김종하 등이다. 서울올림픽 성공을 위해 거국적인 노력을 했고 재벌들의 공헌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후 백년대계를 위해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창설되고 올림픽 잉여금 3000억원과 대한체육회 진흥재단 기금 500억원을 바탕으로 모든 스포츠 휘장권까지 부여받아 스포츠 지원금의 큰 몫을 차지한다.

메달리스트 지원금과는 별도로 대한체육회의 연간 예산 1350억원은 국민세금과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배정한다. 이 예산으로 세계에 자랑하는 태릉선수촌은 각 종목 대표선수, 후보 선수들을 1년 내내 훈련시킨다. 국제 규격의 실내스케이트장도 2000년 필자가 대한체육회장 때 국비 250억원으로 건립한 것이다. 국가지원 덕에 각 경기단체도 수십억씩 기금 적립도 하게 됐다. 이제 재벌에 의한 약간의 홍보성 지원 갖고는 국가의 방대한 투자를 통한 올림픽 경기 유치나 메달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경기장 시설 건립과 유지도 마찬가지다.

곧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한 각 종목 경기단체장 선거가 돌아온다. 체육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체육도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탈세, 수뢰, 배임 등으로 경제 민주화의 대상이 되고 사업에 열중해야할 사람 또는 매명(買名)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인이 체육단체를 독점하는 시대는 끝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체육회가 공정선거위원회를 형식상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선거이든 보이지 않는 손이 미리 작업을 하는 예가 태반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도 향기롭지 못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대한체육회장은 물론 아마추어·프로를 모두 차지하겠다는 종목, 될 가능성도 안 보이는 IOC위원 운동을 하는 등 가관이다. 오늘날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호주 어느 곳도 그같은 나라는 없다. 자신의 스포츠에 열정을 갖고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그만두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평생 스포츠에 헌신하는 체육인들은 체육발전을 위해 영원히 정열을 바쳐야 할 사람들이다. 경제 민주화처럼 체육계도 체질 개선을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독일 대통령(요하임 가우크)은 얼마 전 "스포츠는 스포츠인이 주역이고 정부는 어디까지나 지원한다"고 말했다. 스포츠인이 주역이 되고 정부나 재계가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체육인이 헌신적으로 지도하고 대기업이 후원하는 체제가 이루어져야 할 때가 왔다. 재벌도 스포츠단체를 지원해주면서 프로스포츠를 육성한다든가, 고령화시대 지역사회 건전화를 위한 사업에 힘을 보태주는 것이 시대에도 맞고 바람직하다. 대한체육회 이사진도 체육인들은 배제되고 오로지 재벌 인사로 채워져 있는 것도 국민통합이라는 시대 정서에 안 맞는다.

체육인들은 21세기에 세계와 경쟁하고 엘리트체육, 학교체육, 생활체육을 균형있게 지원 발전시키고 체육인들의 복지를 지원 조정하고 청소년 교육을 지도하는 체육청소년부의 문화관광부로부터의 독립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청소년의 인성교육과 학교폭력 근절 그리고 사회 참여에도 스포츠의 역할이 요망될 때다.

[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