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1년 4월4일 주일예배 말씀요약(사도행전 16:35~ 40/ 성령의 놓임)]
<사도행전 16:35~40>
35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When it was daylight, the magistrates sent their officers to the jailer with the order: "Release those men."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The jailer told Paul, "The magistrates have ordered that you and Silas be released. Now you can leave. Go in peace.")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But Paul said to the officers: "They beat us publicly without a trial, even though we are Roman citizens, and threw us into prison. And now do they want to get rid of us quietly? No! Let them come themselves and escort us out." )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The officers reported this to the magistrates, and when they heard that Paul and Silas were Roman citizens, they were alarmed)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They came to appease them and escorted them from the prison, requesting them to leave the city)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After Paul and Silas came out of the prison, they went to Lydia's house, where they met with the brothers and encouraged them. Then they left.)
<Prologue>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우리가 꽉 쥐고 있는 것들이 많아 슬픕니다. 성령의 놓임을 통하여 내려놓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오늘은 성령의 열림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오늘 모든 것이 닿아 찾으신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느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와 마른 자리를 씻어 심으로 하실 줄 믿습니다. ‘성령의 열림’은 사명을 위해 ‘성령의 놓임’을 받습니다. 우리는 새 가족 전도라고 해서 전도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사도행전강해로 계속 부활절과 전도 주일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성령의 놓임에 대해 생각합니다.
<말씀 요약>
1. 시기마다 ‘날이 새매’가 있습니다.
35절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지금 ‘날이 새매’(when it was daylight)는 날이 밝았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장면 있잖아요 친하게 지냈거나 내가 괴롭혔던 애가 외제차를 타고 나타나고 제벌 2세였거나 짠하고 나타나는 거 있잖아요
힘을 숨기고 있던 거죠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 것이 ‘날이 새매’입니다. 무덤에서 시체만 찾던 마리아에게 살아나신 주님께서 ‘여자 여 왜 울고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날이 새매’ 성령의 놓임으로 살아나 부활하셔서 찾아오십니다. 큰 지진으로 옥 터가 흔들리는데 원망하셨습니까? 한 생명을 위해 갇힌 실라(Silas)를 감옥에 울고 있게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지난주 설교에 온 도시가 흔들렸어요 갇혀 있었을 때 찬송하니까 그런데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를 유대인이라는 한마디를 듣고 감정으로 매로 치고 가두었는데 감옥이 진원지가 되어서 흔들리니까 상관들이 잠을 못 자는 거죠.
안되겠다 놓아라 석방하라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이 지진을 통해서 풀어 주십니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날이 밝으면 좋겠는데 ‘날이 새매’가 인생의 시기마다 올 수 있습니다. 분량대로 시기마다 ‘날이 새매’가 오는 것 같아요 제 남편은 저를 간수같이 감시하고 옥에 가두고 매로 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믿음의 4대째이고 이런 힘든 일 때문에 주님을 만났지요 그런데 제가 얼마나 엄마를 무시하고 교만한 가를 알았습니다. 제패가 교만으로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교회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지 조차 보았습니다. 저도 덩달아 속으로 엄마를 무시했습니다. 성 금요예배에서 설장훈 목사가 가난한 삶을 살면서 아버지를 이겨보려고 삼 백만원을 모았다는 거예요 대단하지 않아요?
이분은 못할 것이 없는 분이에요 인생의 목적은 성공이고 ‘아버지를 이기자’ 그래서 나중에 인도 선교를 가서도 하루에 다섯 시간씩 기도를 하면서 인도의 아버지 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모범생으로 살았죠 죄를 몰랐다고 합니다. 제가 그렇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저는 속은 썩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삼백만 원만 모았겠어요?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모았겠죠 그런데 저 또한 부잣집에 들어가서 걸레질하면서 야단을 맞고 비누도 아깝다고 방망이로 걸레를 빨라고 야단을 맞고 손으로 빨래를 하면서 야단맞고 선풍기도 틀지 말라고 야단 맞고 참 제가 썩어질 몸뚱이라는 것이 주입되니까 날마다 야단을 맞고 무슨 이런 고난이 있나 했지만 처음 오신 분들은 모르지만 저는 피아노를 전공했습니다.
나를 데려다가 눈만 뜨면 이러니까 그러나 죄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돌아가신 엄마는 변소 청소를 하시고 빨래를 하면서 그런 삶을 사셨는데 그런 엄마를 무시하다가 시어머니에게 강제로 갇혀 ‘날이 새매’ 제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님 만나게 되었습니다. 죄에서 놓임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교만부터 죄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내 죄를 본다는 것은 나를 정죄하는 것과 달라서 죄를 사해 주셨지만 그 죄패는 영원한 거예요 그 죄패를 가지고 가는 거예요
남편이 나를 감시하면서 매를 칠 때도 있지만 남편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갇혀있을 수 있었습니다. ‘내 죄 깨닫게 하려고 생각나니까 수고 하는 구나’라고 결론이 났습니다.
내 죄패는 상대방을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한 호패에요. 호패만 보면 엎드리잖아요 내 죄패를 위해 구원을 위해 엎드려야 해요. 내 죄패는 상대를 용서하기 위해 생각나게 하는 호패에요. 바람 한 번 핀 것 가지고 왜 평생 그러냐고 하는 것은 당사자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됩니다. 죄패는요 평생 지고 갈 죄패는 모든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한 호패입니다. 성령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죄가 호패가 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목자님이신 교장선생님이 바람 한번 피었다가 두들겨 맞고 집 세채 중 한 채는 큰아들 주고 한 채는 작은 아들 주고 했답니다. 교양이 우상이라서 이혼을 한 거예요 그런데도 아내는 분이 안 풀려서 교육청이 투서까지 했답니다. 그때 이분이 자살을 생각했답니다.
믿는 사람이 없으니 문제를 해석해 주겠습니까? 이 세상의 법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을버스 운전을 하고 계십니다. 그 정도 되니까 우리들교회 소식이 들려서 오셨습니다. 얼마나 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 교회에서 재혼을 했습니다. 살아보니까 징한 전처는 밥을 잘해줬다고 합니다. 지금 아내는 인스턴트를 좋아해서 라면과 소시지를 먹자고 합니다. 콩나물국밥을 못하니 라면 먹자고 합니다. 먹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게 뭐예요 바람 한번 펴서 패가망신했다고 보이죠 그런 게 생각하는 게 세상 해석이고 그렇게 해서 예수 믿게 되었으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아니면 예수 믿지 못합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아들들을 위해 기도하고 목자까지 되었지만 꿈쩍하지 않습니다. 재혼을 하고 지금의 아내의 실수가 저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책한다고 하니까 초원이 죄를 못 봐서 그러신다고 지금 아내에게는 죄지은 것이 없어서 그런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아내가 정말 남편의 식성을 맞추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평생의 죗값이 혹독했던 그 제패를 기억해야 합니다. 얼마나 내려놓게 하는 비결입니다. 예수님도 마지막까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셔서 죽으시잖아요 자칭 유대인이라는 제패를 붙이고 이게 명칭은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초라한 이름이었습니다. 수치스럽고 그런 이런 죄패를 붙이고 십자가 지러 가는데 무슨 죄가 있어요.
예수님이 무슨 죄가 있으시겠습니까? 보면 모두 알아 들어요. 다 듣게 되어있어요. 온 인류가 구원을 받아요. 자기 죄를 보는 것이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위대합니다. 저도 갇혀서 죄를 보며 감사하며 찬양하니까 내 옆에 죄수들이 듣고 변하니까 제 인생에 ‘날이 새매’가 되었어요. 교만으로 하다가 끊임없이 근본적인 죄패가 생각이 나고 남편은 간수처럼 성실하고 의로운 사람이에요. 죄가 무엇인지 몰라요. 간수가 찬양을 옆에서 들었잖아요 그래서 찬양을 들었죠. 감사하니까 저를 찾고 이혼도 안 하고 살고 있잖아요 간수 같은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고 하루 만에 갔어요. 이 간증은 제 책이나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에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이 하루 만에 갔지만 평생에 들었던 찬송 감사 때문에 놓임 받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죠.
산소호흡기를 받고 목사님 안 오냐고 물어본 것은 구원받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본인의 낙태죄를 고백하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좌패를 붙이고 그러고는 천국 갔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죠. 그 밤이 지나고 ‘날이 새매’ 했습니다. 제 인생이 이때는 분수령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날이 샌다는 것은 예수 믿었지 해 뜰 날입니다. 예수를 만나 새 삶을 살아가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루아침에 과부가 되어 지진이 왔죠 옥 터가 흔들렸지만 제 자아를 못 박으니까 거기서도 또 옥문이 열려서 제가 남편이 갔음에도 평소의 말씀에도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어요 날이 새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예수도 못 만나고 날이 새는 것은 놓치는 것입니다.
(적용#1)
-평생에 이마에 붙이고 가야 할 죄패는 무엇입니까?
-혹은 시기마다 ‘날이 새매’ 죄의 종류가 달라집니까?
2. 특권의식을 내려놓는 것 입니다.
36절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절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절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살아난 간수는 여기서 기독교적인 용어를 하루 만에 쓰면서 믿음으로 바울 보고 평안히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이 안 나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 사람인 우리를 사람들 앞에서 가두냐 따졌어요. 그랬더니 상관들이 로마 사람이라는 한마디에 덜덜 떱니다. 빌립보에 거주하는 로마 시민권 사람들은 동등한 대우를 받았어요. 사형에 처하는 것은 존속 살인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합법적으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어 잔인한 형벌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사도바울도 십자가형이 아니라 참수 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자백을 받아낼 목적으로 채찍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중죄인으로 다루었던 그들이 오히려 중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제야 로마 시민의 권리를 주장할까요? 그전에 밝혔다면 한밤중에 그러지 않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요? 21절에 바울이 고소당한 제목이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어 서가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것이 죄목이었잖아요 로마 사람인 우리를 사람들이 무리가 정신 사납게 하고 선동한다고 로마 사람인 우리를 정신 사납게 한다고 정작 그 내용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무어를 정신 사납게 한 제 순전히 고발한 기준이 지역감정과 인종차별이었죠. 그런데 생각을 해봅시다. 바울은 왜 이랬다저랬다 하다가 바울의 죄패가 이방인을 죽인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자기 동족을 죽이고 잔멸했잖아요. 이방인을 위해 선교했지만 내 동족들에게도 복음의 빚이 있기 때문에 회당에 가서 듣지 않아도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온 사람들이다 보는 아고라(Agora) 광장 한복판에서 나는 로마인이다 그러면 누가 제일 먼저 배신감을 느낄까요 유대인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그때 당시 유대인과 로마인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느끼는 그런 감정이에요. 자기 위기 때는 로마사람이라고 하고 복음을 전할 때는 히브리인이라고 하고 그러면 이후에 그가 다니면서 유대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쪽팔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구속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성경이 이해가 안 됩니다.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어마어마한 특권을 위해 맞아서 값을 치렀어요.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로마 시민권을 밝히면 안 돼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고난을 받아 순전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죄도 없는 그분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고 고통 당하니 십자가에 달리시니 그분의 십자가에 앞에 무너져 내린 거죠.
평생의 자신의 동족을 위한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잔멸하니 호패가 죄패가 되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구원 때문에 주신 죄패에요. 정죄와는 다릅니다. 내 힘과 특권을 내려놓은 거죠 이것이 ‘성령의 놓임’입니다. 한 영혼을 위해 값을 치릅니다. 귀신들린 여종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보면서 예수님을 보는 거죠. 내 옆의 안에 예수님을 보는 거죠. 이 땅의 특권은 그러므로 오직 구원을 위해 써야 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내려놓은 특권은 바울은 왜 이 시점에서 말하고 있을까요? 말을 안 하려면 끝까지 안 해야죠. 세상 사람들은 틀렸다고 욕합니다.
그러니까 37절을 보면 오직 지역감정과 민족감정으로 매질을 하는 그들의 불법을 드러내는 거죠 동시에 깊은 뜻이 있는데 바울은 머물 사람이 아니잖아요. 복음을 전하고 떠나야 하는데 후에 남겨질 교회 성도들은 너무 연약한 사람들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위해서 복음이 훼방 받지 않기 위해서 그냥 떠나는 게 아니라 로마 사람이다 로마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복음을 남겨놓는 거죠. 그리고 이제 로마 사람인 나를 때렸다 그들의 불법을 지적할 대는 특권을 내려놓는 거죠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로마 사람이다 여기를 떠나게 되니까 상관들은 한시름 마음을 놓았겠습니까 자기네들을 고발을 하지 않으니까 상관들(magistrates)에게는 바울이 생명의 은인인 거죠. 로마사람을 때렸으니 사형감인 거죠.
바울 또한 여기서 그냥 나가면 안 밝히고 나가면 탈옥수가 되잖아요. 그러면 앞으로 전도 활동 할 때 방해가 되죠. 구원을 위해서 어떤 수치도 드러낼 수 있고 어떤 기득권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항상 구원을 위해서 나중을 위해서 오늘 원칙대로 적용해야 구원을 이루는 과정이 됩니다.
우리들교회는 ‘원칙을 지키자’가 핵심가치 입니다. 난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런 일이 많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그렇게 안 했으면 나도 감옥에 갔을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냐 항상 원칙을 지키면 살아남고 있는 거예요. 끊임없는 일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은 죄인들은 구원을 모르기 때문에 적용하는 것 어렵습니다.
갇힌 자가 되는 적용을 주님 때문에 하면 주님이 책임 지심일 줄 믿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 성실하게 해서 그 분야의 일인자가 될 때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거예요. 나를 무시할 사람에게 그 한마디가 중요한 거죠. 그런데 로마 시민권 같은 권력이 주님을 위해 쓰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지체들을 섬기기 위해 쓰일 때 빛을 발합니다. 이 세상은 모두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갖추어 놔야 합니다.
(적용#2)
-부모의 특권, 자녀의 특권, 상사로 시민권자로 부자로 구원을 위해 내려놓아야 할 특권 의식인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잘난 척만 합니까? 아니면 공동체를 섬기고 있습니까?
기득권 갖고 장난치다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자손대대로 구원의 선물이 내려가지 않아요
3. 끝까지 말씀을 가르칩니다.
39절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절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Lydia)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상관들이 바울을 데리고 나가서 떠나기를 청합니다. 이 단어를 자세히 보면 상관들이 비굴할 정도로 바울이 떠나기를 간절히 청하는 거예요. 구원을 위해 적용한 삶을 하나님이 높이시는 거죠. 이 땅의 모든 특권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높이시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다른 편으로 볼 때 과부 루디아(Lydia)는 제발 자기 집에 머물러 달라고 청했어요 귀신 들렸던 여종도 쫓아갔어요 간수는 자기 집에 모셨잖아요 누구도 떠나라고 하지 않았어요. 자기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복음으로 주님을 만났어요 고난 이 축복이 되었습니다. 상관들은 바울이 살려주었음에도 죽을 사람을 살렸음에도 시장들이 사람들은 이제 가진 게 많잖아요 바울을 집에 들이기는커녕 도시에서 떠나기를 청하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높은 지위를 가졌기에 문자 그대로 상관이었기에 사회적으로 잃을 것이 많았어요 요새 예수 믿으면 잃을 것이 많은가요? 이를 상관의 두려움이네요. 모든 관리 중에서 간수한 사람만 딱 돌아왔습니다. 이거는 빌립보에서 천금 같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부자들이 믿기가 어려워서 계속해서 힘들고 환란 당한 자만 오라고 청합니다. 곤고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죠. 성령의 놓임이 환경의 놓임이 아닌 것임이 믿어집니다. 이런 사람은 죽음조차 묶어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살아남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과 집착 시선 체면 나를 죽일 것 같은 환경에서 성경의 놓임으로 자유함이 생겼어요. 완전히 자유함이 생긴 것인 거죠. 믿음의 반대가 무서운 열심이라고 했잖아요. 성금요예배때 설 목사님의 간증이 기억나는데 무서운 열심히 하다가 암이 걸렸다고 하네요 그런데 말이죠. 그동안 무엇을 전했는지 예수를 믿으라 너와 내 집에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는데 막상 죽음에 갇혀서 죽음이 두려웠잖아요 가진 거다 했는데 그래서 너무 두려우니까 수치스러워서 그렇게 병상에 있으면서 아무에게도 전도를 못했다고 했어요. 우리 모두의 실상이 아닐까 합니다.
그분 간증을 들으니 그 약재료 가지고 전하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시할까 생각이 났습니다. 실제적으로 두렵고 낙심이 되고 그러니까 이것은 병의 문제가 아닙니다. 놓임을 받아야 합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걸로 말이죠 바울은 마지막으로 루디아 집에 들릅니다. 그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봅니다. 형제들은 이방인 여자 과부인 루디아와 부모도 지체도 없던 여종과 자결하려던 간수 한밤중 실라와 찬송을 듣던 죄수들 하나가 될 수 없는 구성원들입니다. 정말 이렇게 형제가 되어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만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거기서 찬송과 기도하고 나왔더니 깊은 한밤을 지나고 보니까 성령의 형제가 많아졌습니다. 이 연약한 사람들이 로마의 심장부로 향하는 복음의 칼끝이 되어서 마지막까지 바울과 함께합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내가 생각할 때 너희를 생각하면 감사하다고 합니다. 여기는 위로했다고 하는데 권면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의 최고의 위로는 말씀의 권면입니다. 목장에서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방식을 보니까 치매를 하면 뇌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웃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들 교회 목장 아닙니까 우리는 가르쳐주려고 띵크(THINK) 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이야기를 집어넣을까 듣는 사람도 그냥 듣지 않아요. 관계 속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제가 보니까 아무리 이상한 목장이라도 우리는 모이면 꼭 웃어요. 그래서 진짜 제가 아직까지 우리들 교회 사람도 많은데 치매 걸렸다는 사람을 못 봤어요. 그러려면 예배도 드려야 하고 자기 머리를 써야 하니까 목장을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이게 영육 간에 건강해지는 비결이에요. 우리는 주입식으로 하지 않잖아요. ZOOM으로 목장예배 하세요.
세상 사람들은 뇌를 쓰라고 하면 고스톱을 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목장을 해야 합니다. 저에게도 그 밤이 있었고 ‘날이 새매’도 있었습니다. 남편의 사망 이후 옥에 갇힌 사건이 있었는데 예수님을 만나니 새로운 국면이 되었습니다. 13년을 갇혀있다가 간수가 평안히 가라고 놓으라 했잖아요. 평안히 가라는 단어는 샬롬(Shalom)이라는 단어입니다. 간수 같은 남편이 천국 가기 한 달 전에 어떤 유언을 했는가 34년 만에 밝히는 유언입니다. 제가 이제 서너시쯤에 남편이 바람 쐬고 싶다고 해서 드라이브를 하다가 냇가에 멈추어서 남편 얼굴을 보니까 한 달 전이니까 얼굴이 노래 보여서 얼굴이 노란 거냐고 병원이 가야 한다고 하니까 "의사 앞에서 별소리다 한다고 하니까 나 죽으면 재혼해 단 의사 랑만 해" 제가 귀를 의심했어요.
우리 남편이 친정아버지도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재혼을 했거든요. 제가 그런 아버지를 욕했어요. 가기 한 달 전에 저한테 한 이야기였어요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못한 거는 아시죠? 저한테 다 달려 들잖아요. 본문에 평안히 가라고 본문에 의거해서 말한 거예요. 말 안 했으면 몰랐구나 우리 남편은 의처증 기질이 있었어요 남편이 가기 전에 또 저한테 장례식 준비를 시켰잖아요.
이 남편이 나를 생각한 거잖아요. 걱정이 돼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저는 이 남편하고 이혼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고 죽을 생각도 하고 제가 감시를 당하니까 그러니까 저는 이 땅에 이혼할 사람 아무도 없다고 하는 거죠. 나를 생각하면 저처럼 사랑받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거죠. 30대에 자유의 몸이 되었어요 남편 말대로 시집가고 평안히 살아도 뭐라고 하겠어요. 한 영혼 남편을 위해 놓았는데 구원되었다고 이제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데 놓아주셨겠습니까? 저의 생명을 안 가져가셨으니 평안히 가라고 주님의 평안을 빌어 주셨지만 빌립보(Philippi) 시민을 위해 날이 새기 전에 다시 감옥으로 갔잖아요. 그런데 간수가 이제 그렇게 은혜 받았는데 세례 받았는데 감옥으로 가야 한다고 했을까요? 바울이 자청해서 갔잖아요.
그날부터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지진을 예비해 주셨기 때문에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절로 전하게 되었고 스스로 집으로 들어와서 이제 큐티 모임을 하면서 13년을 갇혀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나갔다면 바울처럼 탈옥수가 되는 거죠. ‘날이 새매’는 저에게는 자유의 날이기도 하지만 사명의 옥으로 매이게 된 날이기도 합니다. 놓였으며 메이게 된 적용이었습니다. 구원을 위한 적용을 하게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생각해 봐도 사명이 아니며 올 수 없는 길이였음이 인정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고 감사하고 너무 연약하고 짝이 없는 과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저도 적용을 다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일원론이니 원칙을 지키고 가야 하고 제가 30대 과부라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 주셨고 성령께서 주신 놓임의 자유입니다.
(적용#3)
-끝까지 하고싶은 것이 여전한 방식의 목장이고 목자입니까? 여행이고 쇼핑입니까?
<Epilogue>
1) ‘성령의 놓임’은 시기마다 ‘날이 새매’가 있다.
2) ‘성령의 놓임’은 특권의식을 내려놓는 것이다.
3) ‘성령의 놓임’은 끝까지 말씀을 가르치신다.
4) 성령의 열림’은 사명을 위해 ‘성령의 놓임’을 받는다.
5) ‘날이 새매’가 인생의 시기마다 올 수 있습니다.
6) 분량대로 시기마다 ‘날이 새매’가 오는 것이다
7) 내 죄패는 상대방을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한 호패이다
8) 죄패는 내 죄를 생각나게 하는 호패이다
9) 호패만 보면 엎드리는 것인데 내 죄패를 위해 구원을 위해 엎드려야 한다
10) 내 죄패는 상대를 용서하기 위해 생각나게 하는 호패이다
11) 평생 지고 갈 죄패는 모든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해 지니고 다니는 호패인데 성령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죄가 호패가 되기 어렵다
12) 예수님이 무슨 죄가 있으시겠나? 자기 죄만 보면 모두가 알아 듣게 되어있으며 온 인류가 구원을 받는 것이다
13) 자기 죄를 보는 것이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위대한 것이다
14) 내 죄를 보면 내 인생에 ‘날이 새매’가 된다
15) 그 밤이 지나고 시기마다 ‘날이 새매’가 오는데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며 예수님을 만나 덤으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며 사명 감당한다는 뜻이다
16) ‘날이 샌다’는 것은 예수 믿어서 해 뜰 날인데 예수를 만나 새 삶을 살아가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17) 히브리어로 평안이 샬롬(shalom)이며 헬라어로는 에이레네(평강-화평-평안)이다
18) 구원 때문에 주신 것이 죄 패로써 정죄와는 다르다.
19) 내 힘과 특권을 내려놓은 것이 ‘성령의 놓임’이다.
20) 이 땅의 특권은 그러므로 오직 구원을 위해 써야 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21) 불법을 지적할 때는 특권을 내려 놓는 것이다
22) 특권을 감추는 것도 드러내는 것도 모두 한 생명 구원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23) 갇힌 자가 되는 적용을 주님 때문에 하면 주님이 책임 지심일 줄 믿는다.
24) 구원을 위해 특권을 내려 놓을 때 주님이 책임지신다
25)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26) 구원을 위해 이 땅의 모든 특권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높이시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27) 세상에 잃을 것이 많은 부자, 권력자들이 두려움이 많은 것이다
28) 부자들이 믿기가 어려워서 계속해서 힘들고 환란 당한 자만 오라고 청하는 것인데 곤고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29) ‘성령의 놓임’이 환경의 놓임이 아닌 것임이 믿어지는 것인데 이런 사람은 죽음조차 묶어놓을 수 없다.
30) 예수와 함께 죽고 살아남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과 집착, 시선, 체면 나를 죽일 것 같은 환경에서 성경의 놓임으로 자유함이 생긴 것으로 완전히 자유함이 생긴 것이다
31) 믿음의 반대가 무서운 열심인 것이다.
32) 이 연약한 사람들이 로마의 심장부로 향하는 복음의 칼끝이 되어서 마지막까지 바울과 함께하는 것인데 이것이 유럽전도의 시작이 되었다
33) 이 세상의 최고의 위로는 말씀의 권면이다
34) 말씀의 권면이란 일관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35) 파라클레이토스(보혜사, 진리의 영)으로 한 영혼을 위해 애통함으로 묶여 있는 것이 모든 환경에서 놓임 받는 비결이다
36) ‘날이 새매’는 저에게는 자유의 날이기도 하지만 사명의 옥으로 매이게 된 날이기도 한데 놓였으며 메이게 된 적용이었다.
37) 구원 때문에 꿇어 엎드리는 사람에게 죄패가 호패가 되어 구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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