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0년 2월9일 주일예배말씀요약(사도행전 7: 29~ 37/성령의 소명)]
<사도행전 7:28~37>
29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3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Prologue>
번성과 학대를 당할 때 구원자를 주시고, 한 사람의 원통함을 볼 때 성령의 번성이 주어진다고 했다.
이런 성령의 번성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기에 성령의 소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은 성령의 소명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말씀요약>
1. 나그네 인생임을 인정해야 한다.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를 죽이려느냐’(28절)는 같은 동족의 말에 모세는 두려운 마음으로 미디안 광야로 도주했다.
하지만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원수를 갚으려고 재기의 칼날을 갈지 않았다.
신자는 믿는 자와의 분쟁이 가장 가슴 아프다
양 할아버지인 바로와 자기의 히브리 태생을 저주하지도 않았다.
대신 모세는 살인자로, 나그네로 살았다.
이렇게 살인자로 살아가게 하신 것이 신의 한 수다.
불의한 것을 참지 못하는 다혈질의 성격인 모세가 온유의 대명사가 되기까지 훈련이 필요했다.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혼인하고 목동이 되어, 양 무리를 먹이고 이리를 쫓는 이런 밑바닥 인생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양치기를 하면서 나그네 되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다.
환경이 겸손해지니 왕자였던 것도 억울했던 것도 모두 잊어버리고 별 인생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세는 살인자이기에 죄인의 심령이 되었다.
그 어떤 인간의 위로도 위로가 안 되는 그때, 내 죄를 사해주실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인자 주제에 양치기라도 감사히 생각하며 아들을 둘이나 낳으며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다.
첫째 아들 ‘게르솜’은 ‘내가 타국의 객이 되었다.’이고 둘째 아들 ‘엘리에셀’은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는 뜻이다.
즉, 모세는 바로의 두려움에서 온전히 벗어나 양치기를 천직이라고 여겼다.
우리가 이렇게 나그네 인생길임을 알 때 별 인생이 없고, 두려움의 원인이 바로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단 것을 알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나그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자기가 왕자였음을 잊고 처절하게 자기를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모세는 미디안 족의 딸과 혼인했고 살인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보여줄 것이 없는 초라한 인생이 되었다.
그러나 이젠 그것이 모세에게 상관없게 됐다.
이것이 바로 나그네 인생임을 아는 성령의 소명이고 축복이다.
(적용 #1)
-불신자와 신자의 말 중에 어떤 말이 더 상처가 되나?
-나그네 인생임을 인정하고 광야 같은 오늘 인생을 영원히 살 것임을 믿고 잘 살고 있나?
2. 40년이 차는 거룩을 경험해야 합니다.
히브리 민족이 번성했다가 핍박을 받는 시간과 모세의 광야 생활 40년이 맞아떨어져간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계속 보고 계셨다.
이제 40년간 왕자 생활에 이어 두 번째 양치기 생활40년이 찼다.
모세가 동족을 돌아볼 생각이 났어도 40년간 왕자로 살았기 때문에 40년 동안 양치기로 훈련을 받았다.
애굽의 왕자가 미디안의 양치기를 천직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찾아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평범한 일을 잘하는 자를 찾아가고 부르신다.
모세의 영적 나이가 40년이 된 때는 80세의 노인이었다.
그런데 영적 나이가 차니까 부르시는 것이다.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불꽃 가운데서 천사가 보였다고 한다(30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항상 그 사람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환경, 사람으로 말씀하신다.
모세는 양을 치며 가시나무를 많이 봤다.
가시나무에 불이 붙었으면 금세 꺼져야 하는데 꺼지지가 않았다.
즉, 모두가 포기한 환란 가운데 불이 붙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심판의 하나님이시지만 은혜의 복음으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은 은혜와 복음으로 우리를 불붙은 떨기나무가 되게 하신다.
80살이 된 모세도 가시나무처럼 생명이 사라진 것 같지만 불이 붙었다는 뜻이다.
모세를 40년간이나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셨다가 이제 이렇게 찾아오셨다.
40년의 광야 훈련이 끝나고 모세가 달라진 점은 자신을 기적의 주인공으로 여기지 않고, 알아보기 위해 주님께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다가가는 적용을 하며 순종해야 깨닫게 하신다.
대단한 조상들과 모세를 비교하며 너에게도 같은 하나님이라고 하신다(32절).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하셨던 약속은 가나안 땅을 영원한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 약속은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약속의 성취는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그 가나안 땅으로 이끄는 소명을 주시려고 조상의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소명이 임하는 것이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내게 주시는 말씀이니 그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모세가 무서워서 바라보지 못하니까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고 신발을 벗으라고 하신다(33절).
모세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니 바로 그곳이 거룩한 곳이다.
선택하신 종을 부르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방 미디안 땅에 임하셔서 그곳을 거룩한 곳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이고 성전이다.
말씀이 들리면 내 안에 주님, 주님 안에 내 자신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치지 못할 곳이 없다
구원 받게 되면 한 사람의 궁핍함과 애통함이 체휼 되는 것인데 그것이 소명의 마음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도와주기까지 밑바닥을 가는 것이 훈련이다
노예로 살아보지 못해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해야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거룩의 훈련이다
비 본질적인 것이 일상에 즐비한 인생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
이혼사유는 남자의 3대 특징인 (1)정욕 (2)탐식 (3)나태와 연결되어 (1)밥 (2)성 그리고 (3)청소라고 한다
남편에게 잘하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잘하는 것이다
망함을 인정하고 청소하고 택시 운전하는 것이 거룩과 소명의 자리다
소명의 첫 걸음이 지금 있는 그 자리다
어떤 것이든 적용하면 거룩한 곳이 된다
스데반은 약속의 땅이나 예루살렘 성전만이 거룩한 곳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계속 이렇게 강조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항상 신발을 벗고서야 할 거룩한 성전임을 알아야 한다.
(적용 #2)
-가시나무 같은 곳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고 있나? 바라만 보고 있나?
3. 세상으로 보내신다.
애굽에서 말과 일에 능했던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 받은 이유는 다시 애굽으로 보내져야 했기 때문이다(34절).
다시 쓰임 받는 인생이 되려면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전도를 안 하면 끼리끼리 뭉쳐 다니면서 흘러 떠내려 가는 ‘고인 물’, ‘썩힌 물’ 인생이 되는 것이다
모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가시나무 떨기 속’ 광야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그를 지도자로 인정한다.
형제의 고난은 성령의 소명을 주시려고 베풀어주시는 신의 한 수다
금 그릇으로는 못 섬기니 깨어지고 또 깨어진 그릇으로 하나님이 세우신다
모세는 '속량하는 자'로 예수님을 예표한다.
우리 죗값을 대신 치르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자유를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속량'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에 빠진 인류를 건지시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것처럼, 모세는 애굽의 압제에서 탄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양치기를 하며 완전히 깨어진 그를 하나님이 세우셨다.
그리고 40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하셨다(36절).
모세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옮기시고 인도하셨다고 스데반은 강조했다.
스데반은 지금 공회에 모여 자기 변론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인정하는 모세가 40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면서 그의 백성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말함으로, 공생애 3년 동안 모세를 능가하는 여러 가지 각종 기사와 표적을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보냄 받은 구속자였다는 사실을 계속 밝히고 있다.
모세의 인생 중 이스라엘의 출애굽 과정과 직접 관련된 이 마지막 40년은 나이도 학벌도 아닌 철저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간 기간이었다.
성경은 늘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힘이 다 빠지고 하나님의 능력만 나타나는, 철저히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구속하신 주님만 계시는 기간이었다.
그래서 훈련은 참 중요하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주는 인도자, 중보자로 자기 민족을 자유로 인도한 소명자로서 마지막 40년을 살았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부르심을 받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실 때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소명'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어떤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든지, 거기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자 하는 신의 한 수다.
오늘 내 환경은 신의 한 수다.'
(적용 #3)
-성령이 소명으로 어느 세상으로 보냄 받고 있나? 직장, 가정, 자리, 물질?
인정 받지 않는 그 환경으로 보내심이 신의 한 수다
부르심 받고 세상에 보냄 받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Epilogue>
환경이 겸손해지니 왕자였던 것도 억울했던 것도 모두 잊어버리고 별 인생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평범한 일을 잘하는 자를 찾아가고 부르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항상 그 사람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환경, 사람으로 말씀하신다.
심판의 하나님이시지만 은혜의 복음으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은 은혜와 복음으로 우리를 불붙은 떨기나무가 되게 하신다.
40년의 광야 훈련이 끝나고 모세가 달라진 점은 자신을 기적의 주인공으로 여기지 않고, 알아보기 위해 주님께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다가가는 적용을 하며 순종해야 깨닫게 하신다.
약속의 성취는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소명이 임하는 것이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내게 주시는 말씀이니 그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이고 성전이다.
말씀이 들리면 내 안에 주님, 주님 안에 내 자신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치지 못할 곳이 없다
구원 받게 되면 한 사람의 궁핍함과 애통함이 체휼 되는 것인데 그것이 소명의 마음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도와주기까지 밑바닥을 가는 것이 훈련이다
노예로 살아보지 못해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해야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거룩의 훈련이다
비 본질적인 것이 일상에 즐비한 인생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
망함을 인정하고 청소하고 택시 운전하는 것이 거룩과 소명의 자리다
소명의 첫 걸음이 지금 있는 그 자리다
어떤 것이든 적용하면 거룩한 곳이 된다
다시 쓰임 받는 인생이 되려면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전도를 안 하면 끼리끼리 뭉쳐 다니면서 흘러 떠내려 가는 ‘고인 물’, ‘썩힌 물’ 인생이 되는 것이다
모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가시나무 떨기 속’ 광야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그를 지도자로 인정한다.
형제의 고난은 성령의 소명을 주시려고 베풀어주시는 신의 한 수다
금 그릇으로는 못 섬기니 깨어지고 또 깨어진 그릇으로 하나님이 세우신다
모세는 '속량하는 자'로 예수님을 예표한다.
우리 죗값을 대신 치르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자유를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을 '속량'이라고 한다.
모세의 인생 중 이스라엘의 출애굽 과정과 직접 관련된 이 마지막 40년은 나이도 학벌도 아닌 철저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간 기간이었다.
성경은 늘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힘이 다 빠지고 하나님의 능력만 나타나는, 철저히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구속하신 주님만 계시는 기간이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부르심을 받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실 때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소명'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어떤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든지, 거기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자 하는 신의 한 수다.
오늘 내 환경은 신의 한 수다.'
인정 받지 않는 그 환경으로 보내심이 신의 한 수다.
부르심 받고 세상에 보냄 받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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