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0년 1월19일 주일말씀 요약(누가복음 5: 27~ 39/ 일어나 따르니라/신승윤목사)]
<누가복음 5:27~39>
27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 바리새인(Pharisees)과 그들의 서기관들(the teachers of the law)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tax collectors)와 죄인(sinners)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It is not the healthy who need a doctor, but the sick)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to repentance.)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And no one pours new wine into old wineskins. If he does, the new wine will burst the skins, the wine will run out and the wineskins will be ruined.)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new wine must be poured into new wineskins.)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And no one after drinking old wine wants the new, for he says, 'The old is better.)
<Prologue>
휘문채플에서 청년2부를 섬기고 있는 신승윤 목사인데 죄패는 도박 음주 폭력이다.
전국청년 큐티 페스티벌 때문에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죄가 없고 깨끗하고 온전한척하며 살았다. 그렇게 심방을 가고 부서 사역을 가고 상담을 했다.
여전히 가지고 갖추고 누리고 싶었고 대우받고 싶은 마음을 부정할 수 없고 버려지지도 않았다.
예수 믿는 사람인데 변하지 않는 내가 힘들지 않나?
한 가지만 기억하지 않나?
그 마음을 방치하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되는데 말발굽으로 가슴을 치듯이 회개하면서 ‘우리가 어찌할꼬? 가 되지 않으면 ‘에라 모르겠다’가 된다.
가장 큰 죄는 변하지 않은 나를 놓고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온전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닌 온전치 못한 나를 살리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는 땅끝 사역자가 되게 하신다
제자는 따르는 무리가 아니라 동고동락하는 사람인데 그들은 모르지만 성령을 받아 사도로 세워질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아무나 세우셨겠나?
제자는 예수님의 ‘호 불호’에 따라 부르셨다.
그가 예수님 스타일(예수님의 ‘개취’<개인적 취향>)이기 때문에 부르셨고 함께하셨다.
<말씀요약>
어떠한 사람을 예수님이 부르시며 예수님 스타일은 누구인가?
1.나의 죄 때문에 고민한다.
오늘 부르심을 받는 자는 레위다
레위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한다
그가 하는 일은 세리(tax collector)였다
일반적으로 약탈과 착취를 일삼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점령하는 방식이었다.
로마는 식민지 친화정책을 사용하지만 세금을 10가지 정도로 엄청 때리는데 그게 그것인 것이다.
착취를 숨기기 위해 같은 민족을 세워 수금원으로 세우는데 그게 세리였다.
세리는 특혜가 있는데 일정 금액을 내면 혜택을 받는다.
성전세도 매겨 칼만 안든 착취자였다.
그래서 세리는 창기 등과 마찬가지로 회개하여도 천국에 못 간다는 부류로서 미움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누릴 것은 누리고 씹을 것은 씹으면서 사는 부류가 레위(세리)다
하지만 세리 앞에서는 도리어 미워할 수 없었는데 드러내서 미워할 수 없었다.
세리는 로마의 권력을 등에 입은 사람이었고 조금 잘만 하면 세금을 깎아줄 수 있었다.
그런 레위의 마음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고 나의 죄 때문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레위가 착하고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께서 제자로 부르시고
훗날 사도로 세우시기 위해 계획하시고 방문하신 것이다
지금 내가 죄를 알고 고민하며 적용하고 고민하는 것은 남들보다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 부르심의 시작이다.
남보다 몇 가지 더 잘한다고 상대를 정죄하고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위가 고민하는 것을 다 내려놓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레위는 이제 모든 것을 잃은 자이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이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자이다.
레위는 세리의 자리에 있었으면 절대로 쓰지도 못했을 것이고 마태복음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죄를 깨끗이 해라 하면서 죄가 없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교만이다
깨끗하게는 되고 싶어도 죄 뿌리는 없앨 수 없다
몇 가지 죄는 끊어 내다가 나중에 더욱 더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우리이며 죄 가운데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우리다
레위(세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여기에 집중하시는데 고민하는 세리를 보시고 제자로 삼으시고 훗날 사도로 삼으신다
레위의 적용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다.
각자의 적용은 다 다르다
나의 죄 때문에 아파할 사람을 예수님은 지나치지 않으시는데 그 사람이 우리 예수님 스타일이다.
내 죄 때문에 고민하며 작은 것이라도 적용하는 자가 예수님이 기억하시는 자이다
죄를 이길 수가 없으니 이런 나를 비관하면서 그러면서 죄 가운데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이 욕심 때문이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내 죄가 보이는 것이 말씀 들리는 것의 첫 걸음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지금 세리에 위의 기쁨/감격을 이해하지 못한다.
바리새인은 죄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면서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의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죄를 깨달아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기뻐하지만 상대를 정죄하는 사람은 비방 말고는 할 것이 없다.
의로움에서 정죄와 미움과 비방이 나오는 것이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라는 마음에는 회개가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천국잔치에도 함께 기뻐하며 동참하지 못한다
저희 가정은 아버지 어머니 매형 저 모두가 목회자다.
저는 스스로 죄악 된 삶에서 돌이켜 목사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주인공이었다.
기도와 회심의 대명사, 시대적 사명, 영혼의 등불, 축복의 통로, 결실의 피날레라고 생각하였으니 미친 것이었다
나는 죄 같은 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늘 기도했다. 제 아내의 가정은 이혼가정이다.
그래서 아내의 모습이 정죄가 되었으며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려고 할 때 처가의 이혼 사실을 아는 사람들 때문에 장애물이 되어 사역을 못했다. 그래서 아내와 처가를 향한 원망이 계속되었고 정죄가 되었다.
그 끝이 결국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내 길을 막으시는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든 것을 절제하고 포기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아내와의 사이는 멀어졌다. 그리고 술을 입에 몰래 먹고 아내 몰래 술집을 드나들었다. 저에게는 신학이고 목회였지만 여러분에게도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회개가 잘되지 않아도 적용이 쉽지 않아도 괜찮다.
내 죄 때문에 속상해하며 고민하는 것은 변하시면 안 된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부르심을 받는 통로다
고민하는 사람은 움직인다
아파하는 사람은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것이다.
(적용#1)
-지금 앉아있는 곳에서 고민해야 할 나의 죄는 무엇인가?
2. 선택과 집중을 한다.
지켜야 할 율법을 가지고 바리세인은 예수님께 들이댄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욕구를 절제하는 것이다.
최대 12일까지 금식 해봤는데 저 같은 경우는 죽는 줄 알았다.
기도원에 골방 같은 곳에 갇혀서 물만 먹고 지내는데 바닥에 지렁이가 라면으로 보였다. 귀뚜라미랑 대화도 해보았다. 결국 하나님의 음성 못 들었다. 하지만 금식은 신앙인으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맞다. ‘금식은 안 하면 안 된다’라고 하는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예수님은 금식과 율법이 아닌 그들과 하나가 되고 어울림에 집중하셨다
청년부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청년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 말씀을 기준으로 섬기는 청년들이 많다. 그러나 순간순간 무너진다. 자신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문제를 책임지고 살아가는 청년도 있다. 음란과 중독의 문제에 넘어지기도 하고 직장의 관계가 꼬이기도 하고 질서를 어기고 분을 내기도 한다. 공동체에서 상처를 받고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을 만난 후 얼마 지난 후 회개가 나왔다.
그때는 제가 몰라서 입을 함부로 놀렸다. 용서해주세요.
고민하는 청년들 방황하는 청년들 많지만 우리 청년들이 한 달 일주일 하루를 살아내는 그 방식을 가만히 보면 막 이렇게 불만과 상처를 쏟아내다가도 결국 자신이 한 큐티와 그 주에 들은 말씀으로 고민한다. 바로 깨닫거나 몇 주 있다가 깨닫기도 한다.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라고 하며 주시는 말씀을 기억하며 내 죄를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 청년은 말과 행실에 세상에 본 이 되어야 한다. 솔직히 많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이 공동체 안에서 많은 친구들이 고난이나 상처와 실수 앞에서도 말씀을 듣는 것을 선택하고 아플수록, 회피하는 것이 아닌 말씀에 집중을 한다.
드리고 싶은 말씀을 너무 많은데 우리 청년부 강점 하나 말씀 드리고 싶다. 고난이 끊이지 않고 욕심에 무너지고 상처와 사연으로 남을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말씀을 듣고 살아내는 공동체가 우리들교회 청년이다. 붙어만 가는 청년들도 있다. 정말 붙어만 간다. 말씀이 어렵다고 길다고 불편해하기도 한다. 계속 끌려가는 청년도 있다. 이들은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지만 더 깊은 죄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현재 수준에서 그들이 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다. 안 나가고 붙어가는 것이 최선의 집중이다. 자신의 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부모님 보시기에 미숙한 점이 많다 하더라도 많은 청년이 말씀을 선택하고 집중하며 살고 있다.
기도 부탁 드린다. 10일 남았다. 큐티 페스티벌을 많은 청년들이 준비하고 있다. 갈 곳이 없고 할 일이 없어 섬기는 것이 아니다. 내 고난이 약재료가 되게 해주신 것이 감사해서 섬기고 있다. 섬기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포기하고 섬기는 청년들이 많다. 이들을 위해 기도 부탁 드린다.
잘 기다려 주기만 하면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 뒤에는 들어 둔 말씀이 있어서 내 죄를 보면서 애쓴다.
경건하게 행동하면 ‘외식’, 바리새인’이라고 손가락을 하기도 한다
(적용#2)
-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며 집중하며 살아가나?
3. 머물러 있지 않는다.
(1) 새 옷과 낡은 옷의 비유
(2) 새 부대에 관한 비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옷으로 입고 새 부대가 된다는 것은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새 부대가 되는 것은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을 사랑하고 품을 수 없었던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고쳐야 할 점은 리스트로 만들어 마음먹고 고치는 것 해보셨겠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다.
사랑 없던 내가 누군가를 아끼며 살고 싶은데 마음만 먹고 끝날 때가 많다.
먼저, 그것이 나든, 상대이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낡은 포도주 부대를 새 부대로 옮기라고 하시는데 부대에서 병 같은 다른 종류로 옮겨 닮는 것이 아니다.
담아내야 하는 내 역할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낡은 나의 가치관이 새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담고 품어줘야 하는 역할 낡은 부대인 새 부대이든 그저 빈부 대다.
나의 역할감당과 나의 그 자리 지킴은 그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여전한 편견과 미움이 있다면 낡은 부대를 새 부대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남을 정죄하는 내 가치관이 변해야 한다
3. 말씀으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
지금 보이는 것이 없어도 상대가 변하지 않아도 내가 변하고 있다면 요동치지 않는다.
환경이 바뀌어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변해가는 것이 새로움이다
죄와 낙심이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우울증이다
싸우고 미워하면서 깊은 미움 그 모습으로 머물러서 익숙해 지는 것이다
저는 도박중독자였다.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도박 외의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의지와 희망을 포기하게 만들고 삶의 방향을 상실한 체 살아가게 된다. 최종 목적은 거기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비단 도박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마다 헤어나지 못하는 중독이나 집착 분노가 있다. 죄와 낙심 가운데 머무는 것은 당연하게 속이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취직과 교제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네가 못났다고 한다. 한 사람을 깊이 미워해 본 분들은 아실 것이다. 그냥 서로를 미워하는 채 점점 익숙해지지 않으셨나?
그냥 미워하고 다투면서 상대도 미워하면서 살라고 사탄이 속삭인다
중독과 미움의 결론은 하나인데 ‘계속 거기에 머무르라.’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내고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힘든 사람을 담아내는 새 부대가 되라고 하신다.
맡겨주신 직장과 가정에서 미움 가운데라도 나의 역할을 포기하시면 안 된다.
힘들어도 미워도 말씀 붙잡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우울해도 큐티하고 싸우면서도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내가 변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적용#3)
-내가 새 부대가 되기 위해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말씀을 붙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Epilogue>
그 마음을 방치하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되는데 말발굽으로 가슴을 치듯이 회개하면서 ‘우리가 어찌할꼬? 가 되지 않으면 ‘에라 모르겠다’가 된다.
가장 큰 죄는 변하지 않은 나를 놓고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온전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닌 온전치 못한 나를 살리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는 땅끝 사역자가 되게 하신다
지금 내가 죄를 알고 고민하며 적용하고 고민하는 것은 남들보다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 부르심의 시작이다.
죄를 깨끗이 해라 하면서 죄가 없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교만이다
깨끗하게는 되고 싶어도 죄 뿌리는 없앨 수 없다
몇 가지 죄는 끊어 내다가 나중에 더욱 더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우리이며 죄 가운데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우리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다.
나의 죄 때문에 아파할 사람을 예수님은 지나치지 않으시는데 그 사람이 우리 예수님 스타일이다.
내 죄 때문에 고민하며 작은 것이라도 적용하는 자가 예수님이 기억하시는 자이다
죄를 이길 수가 없으니 이런 나를 비관하면서 그러면서 죄 가운데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이 욕심 때문이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성령충만이다
내 죄가 보이는 것이 말씀 들리는 것의 첫 걸음이다
자기 죄를 깨달아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기뻐하지만 상대를 정죄하는 사람은 비방 말고는 할 것이 없다.
의로움에서 정죄와 미움과 비방이 나오는 것이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라는 마음에는 회개가 설 자리가 없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 부르심을 받는 통로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욕구를 절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금식과 율법이 아닌 그들과 하나가 되고 어울림에 집중하셨다
새 옷으로 입고 새 부대가 된다는 것은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새 부대가 되는 것은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을 사랑하고 품을 수 없었던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담아내야 하는 내 역할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낡은 나의 가치관이 새 것으로 변하는 것이다.
나의 역할감당과 나의 그 자리 지킴은 그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먼저다.
남을 정죄하는 내 가치관이 변해야 한다
환경이 바뀌어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변해가는 것이 새로움이다
죄와 낙심이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우울증이다
싸우고 미워하면서 깊은 미움 그 모습으로 머물러서 익숙해 지는 것이다
그냥 미워하고 다투면서 상대도 미워하면서 살라고 사탄이 속삭인다
중독과 미움의 결론은 하나인데 ‘계속 거기에 머무르라.’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내고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힘든 사람을 담아내는 새 부대가 되라고 하신다.
맡겨주신 직장과 가정에서 미움 가운데라도 나의 역할을 포기하시면 안 된다.
힘들어도 미워도 말씀 붙잡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우울해도 큐티하고 싸우면서도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내가 변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주님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고백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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