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0. 11. 2. 20:16

[우리들교회 2020111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13: 13~ 14/ 성령의 동행)]

 




<사도행전 13:13~14>

13절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From Paphos, Paul and his companions sailed to Perga in Pamphylia, where John left them to return to Jerusalem.)

14절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From Perga they went on to Pisidian Antioch. On the Sabbath they entered the synagogue and sat down.)

 

<Prologue>

주님 동행하면 참 가슴이 설렙니다. 그런데 그 동행 중에는 성령의 동행이 으뜸인데 성령의 동행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하여 주시옵소서아멘. 

성령의 보내심을 받고 가는데 동행이 좋아야지 않겠어요? 주님을 믿고 주님의 여정을 향해 가지만 중요한 것은 동행인 것 같아요세상과의 동행은 끝이 안 좋아요. 정치를 보면서 어제의 적이 친구가 되고 배신을 끝없이 봅니다천국 여행에는 동행이 중요하고 결혼과 친구, 직장 등에서의 동행이 중요합니다그러나 교회에서조차 동행이 되지 못하고 허무한 동행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동행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말씀 요약>

 

1.   사람의 수행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전도여행을 다룹니다. 바울 일행이 바보(Paphos)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서 도착한 곳은 밤빌리아(Pamphylia)에 있는 어가인데 해 안에서 25킬로 안에 있는 도시입니다. 도시에는 배가 정박할 만한 항구가 없어서 압달리(Abdali)에서 하선 했으리라 봅니다. 구브로(Cyprus)의 바보(Paphos)에서 280킬로에서 배 타고 온 곳이에요 잠깐 지도를 볼까요?

바보(Paphos)에서 배타고 압달리에 도착했죠. 그 다음에 버가(Perga)로 가는 거에요. 20키로 상당 해안에서는 버가(Perga) 25키로 압달리는 서쪽으로 25키로 정도 200키로정도 안디옥(Antioch)으로 가는 것이 여정입니다이해가 쉽죠예루살렘에서 안디옥 갔다가 배 타고 이렇게 와서 지중해에서 이렇게 해서 이런 안디옥(Antioch), 갈라디아(Galatia) 등으로 가는 여정입니다압달리(Abdali)는 터키 선교사 수련회를 위해 갔는데 해변이 아름답더라고요바울이 이곳을 지나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면서 감회가 새로웠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복음을 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나 봐요. 

지금도 거기 골프장이 아름답다고 한다. 실루기아(Seleucia)는 성공을 해서 지나쳐 오고 압달리(Abdali)는 아름다워 지나치는 가봐요어떤 목자님이 S전자에 다니고 있는 조카가 있는데 같이 예배 드리고 믿음을 전하려고 하니까 삼촌 성경이 유럽의 역사 책이라고 생각합니다이러는 거예요. 이 집이 믿음이 4대째인데 믿음이 흐지부지되니까 믿음을 전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성공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믿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서 버가(Perga)로 걸어갔을 거에요. 밤빌리아(Pamphylia) 주의 수도예요.

버가(Perga)가 그곳에는 광장이 있고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는 신전이 있더라고요. 만 삼천 명 정도의 도시였는데 지금까지 구비로 섬을 횡단 했어도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만 했잖아요. 이곳에서 처음으로 선교다운 선교를 하려는 기지인데 그렇게 버가로 왔는데 대형사고가 터졌어요. 요한이 그들에게서 돌아갔다는 거예요 이거는 큰 사건인 거죠. 요한은 어찌해서 돌아갔을 가요. 많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누가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아요. 그 일을 덮어두기로 했나 봐요. 3명 중 한 명이 돌아갔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이렇게 묵상을 많이 했습니다. 요한이 왜 돌아 갔을까요

 

1)  바울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갈라디아지방, 지도출처: biblical-charts.tistory.com)


요한이 동행하는 사람들(Barnabas, Simeon called Niger, Lucius of Cyrene, Manaen)이 그랬잖아요. 바나바(Barnabas)를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어요 선교 팀의 수장이 바울로 나타난 것을 드러내고 있어요. 12절까지 바예수(Bar-Jesus)를 성령이 충만해 지면서 주목한 사람은 바울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능력을 보인 사람은 바울에요. 바울의 능력을 보고 놀랍게 여긴 것이지요 드디어 바울의 진면목이 나타난 거죠. 할 말을 다했습니다. 여기서 보니 바나바는 성령이 가르쳤어도 바예수를 야단치지 못했어요.  


정말 바예수의 짓은 마귀의 짓이기 때문에 이렇게 칠 수 있어야 합니다복음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우리도 종과 수행원 되지 않았다면 할 말 못 합니다. 우리가 안 한 고난은 없잖아요. 마음씨 좋은 부자이니까 다섯 명의 리더 목사 중에서 한 명의 담임목사를 고르라고 하면 바나바를 고르시겠죠. 부자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방인 지역에 파송 가고 보니까 바예수를 분별하고 꾸짖지 못했어요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데 서기오 총독이 바예수를 야단치는 바울이 신뢰가 되는 거예요. 서기오 바울이 주 예수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기는 거예요 영적인 카리스마로 선교팀의 리더로 부상했어요. 


바나바도 인정했는데 마가(Mark)라 하는 요한(John)이 바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정이 되는 거예요. 그는 삼촌인 바나바의 헌신과 위상은 바울과도 비교가 안되는데 바보(Paphos)에서 어찌 리더가 바뀌는가 생각한 것 같아요. 성령의 보내심이고 항상 성령님이 동행하시는 결정인 것을 바나바가 인정했는데요. 요한은 인정 못했어요. 성령이 늘 내 옆 있다는 것을 잊으면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성령님은 온 우주에 천하를 창조하신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돕고 계십니다마가(Mark)는 로마식 이름이에요. 지금 요한이라고 호칭하고 있어요. 변하고 나서 후에는 마가(Mark)라고 호칭합니다. 저는 성경대로 요한이라고 칭합니다. 복음의 위력을 경험하지 못한 요한은 아직 거기까지 생각이 못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역감정만 해도 대단하고 선민의식도 대단한데 자기 집안의 바나바 삼촌과 자기 집안의 자긍심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바나바의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지만 바나바는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바울과 동행했어요. 이 사건은 바울과 바나바를 갈라지게 합니다. 자신이 안 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대단합니다. 요한은 바울에게 은혜를 못 받았습니다신분이 망각되는 것은 순간의 일인 것 같아요. 수행원 자신이 앞날을 결정할 수 없어요. 나는 수행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가준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환경이 겸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적용#1)

-인정이 안되는 리더가 와서 사표 낸 적이 있습니까

-될 사람이 없다고 인정한 적 있나요?

 

2) 바울의 질병 문제 입니다


버가(Perga)는 지나치려고 들린 곳은 아니죠. 복음 전하려고 그곳에 들렸는데 그곳에 가보니 광장 회당 복음 전하기에 안성 맞춤인데요. 그런데 지금 안디옥을 지나오면서 실루기아(Seleucia)도 항구죠. 배 타면 통과해야 하는 곳인데 통과하는 것을 보았어요. 버가는 일부러 간 곳이에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럼 여기서 왜 여기를 떠났을 것 같나요? 저지대였던 버가는 습기와 기후 때문에 바울이 이상 징후의 질병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갈라디아(Galatia) 갔을 때 육체의 약함 때문에 시험에 들 뻔했다고 해요. 도착했어 보았으나 도저히 전할 수 없었다고 해요. 이동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이 많은 학자들의 견해이기도 합니다. 


그때는 정보를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바울의 건강 문제로 급하게 안디옥으로 가기로 했어요. 잘 분별하셔야 하는데 떠나왔던 수리아 안디옥은 안디옥교회가 있는 곳이에요. 


지금 가려는 곳은 갈라디아 지방의 비시디아 안디옥(Pisidian Antioch)이에요 다른 안디옥이에요. 안디옥은 안토니우스 황제를 기념해서 만들었다는 도시입니다.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200km 된다고 합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평지로 돌아서 가는 길이 있는데 직행으로 산맥으로 가는 길도 있습니다. 평지는 저지대입니다. 바울의 병으로 갈 수 없어요 평지로 가는 것이 안전해요.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갈 길은 산맥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산맥으로 가는 길이 아주 험했다는 거예요 산맥 이름이 토로스(Toros) 산맥인데 황소같이 생겼데요. 더 높은 고개가 있고 길도 함하고 구불구불해서 험산이었다고 하고 강도들이 출몰했다고 해요. 


위험한 여정인 거예요 지금 바울의 병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바나바(Barnabas)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구불구불하기가 짝이 없고 험산인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이 판국에는 당연히 가야 하는 건데 여기서 요한이 나자빠진 거예요. 요한이 못 간다고 하는 거예요. 바울은 40이 넘었으니 그 당시에는 노인이예요. 그때의 수명은 40 50대 에서 끝이에요. 노인인데 요한은 이때 20대인 거죠. 노인 둘이 간다는데 한 사람은 병자인데 본인이 당연히 가야죠. 인정은 안 되는데 산맥은 더 싫은 거예요. 아무리 바울이 싫다고 해도 바나바 삼촌은 어째요? 바울이 싫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죽기 싫은 거예요. 결국 떠났어요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는데 떠났어요. 성령의 동행이 안 보이니 안면몰수하고 떠났어요. 그러니까 이걸 쓸 수가 없는 거죠. 너무 맞지 않아요?  생각해 보세요 나중에 바울이 용서하지 못한 것이 이해되세요? 


(적용#2)

-가장 어려운 수행지에서 안면 몰수하고 어디에서 떠났나요?

-배우자가 아팠나요나만 살겠다고 한 것은 무엇이나요?

 

사람의 수행원에 대해서 연세대 어느 교수님의 칼럼을 인용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이혼을 결심했는데 아내에게 그가 던진 유지를 놓고서는 내 옷과 빨래를 잘 관리하고 내 침실과 서재를 깨끗하게 할 것을 명심하라 등등 이렇게 아인슈타인이 요구서를 요구했다는 거예요. 임신이 되어서 억지로 결혼했는데 동행이 얼마나 비극이었겠습니까? 남자는 호시탐탐 아내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원하고 아내가 친정 가면 그렇게 기뻐한다고 합니다.


아내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남편은 사람의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모든 문명을 가져다 놓은 것이지만 이것을 만든 것은 하나님입니다.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죄악을 선사 했나요? 에디슨 등의 천재는 이 땅에서 바르게 살기가 힘든 거예요. 그들은 결국 끝이 안 좋은 이 세상의 종과 수행원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이 땅은 세상은 사단이 주인인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2.   하나님의 수행원이 되어야 합니다.

 

1)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기가 막힌 상황에 바울과 바나바(Barnabas)는 더 나아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더 나갔어요. 그 험악한 토로스(Toros) 산맥을 더 나갔다는 거예요. 왜요? 성령이 동행해 주시기 때문에 요한의 배신이 너무 아팠을 거예요. 그들은 더 나아갔다고 해요힘든 상황에서 묵묵히 더 나아가게 되면 그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보면 영적인 지름길이 될 수 있어요 환경이 설득이 안 돼요 우리의 길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길이 없다면 성령님이 길이에요 반드시 인도하십니다원수처럼 지내는 집 있죠? 기가 막힌 일 있어요? 바울이 그랬을 것 같아요. 더 나아갈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바울을 두고 떠났다는 사람이 참 망할 사람이었죠그래도 더 나아갔다는 것처럼 우리 더 나아가야 합니다. 큐티하고 목장 나가고 그게 더 나아가는 거죠. 그런데 속상한 사람들이 올리잖아요 기도를. 아픈 사람은 자기가 직접 기도 제목을 올려요. 


잘해주는 남편 아내 아이가 있으면 기도 제목도 못 올려요. 엄마를 더 나아가게 하는 것은 자식인 것 같아요여러분 성도의 교제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에요. 우리의 교제가 큐티 기도회에서 더 나아가게 하는 줄 아세요? 믿음이 없는 남편과 함께 금식해 보세요. 동참이 중요하거든요. 여러분 다들 기도를 했다고 하는데 중보기도 이런 것들에 말씀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이런 중보기도를 어디서 합니까? 


모든 기도 제목이 총망라되어 있는데 그래서 오늘도 말합니다. 기도 제목을 5분 이상 읽고 합시다. 모두가 이제 금식을 합니다구원에 대해서 관심이 생길 거고 앞으로 여러분의 응답이 더 될 거예요. 성령님이 우리와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더 나가게 하는 비결이에요. 여러분과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만나지 못하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울이 리더가 된 것이 카리스마가 넘쳐서 된 거예요?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 하나님을 박해한 자, 감당하지 못한 자라고 했습니다. 뼛속 깊이 죄인이고 작은 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행원을 자청하고 있는 거예요


엎드려 있었던 훈련의 기간이 있었던 거잖아요. 이론 이랑 행동하는 거랑 다른 거예요. 단지 역할이 있는 거죠.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휘포타소’(종속하다, 밑에 두다)라는 헬라어 군사용어라고 했어요수행원은 휘페레타스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바울을 이방에 보낸다고 하면서 종과 증인으로 보냈다고 했듯이. 종이 수행원과 같은 의미에요. 바울은 하나님의 수행원인 거예요. 다 똑같은 하나님의 수행원인 거죠. 


종과 수행원에 대한 체감이 다른 거예요. 마가(Mark)는 인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울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거예요. 요한의 믿음의 아직 그렇게 바울같이 안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리더로 세웠으면 순종해야 하는데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 바울은 사명 받고 감당하면서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모든 악한 일은 구원받기 전 이에요 토로스(Toros) 산맥을 올라가면서 강도를 당했어요. 그러나 이것을 안 썼어요. 여러 번 여행을 하면서 강도의 위협을 당했다고 다른 곳에 썼어요. 이게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인데 이제 시작도 못했는데 몇 백 킬로를 여행한 거에요. 버가(Perga)는 돌아올 때 전도를 했어요. 산맥을 넘어서 고지대인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어요. 


유대인의 회당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산맥을 갔다는 이유도 있어요. 이거를 그냥 요한은 위험하다 안 된다 하는데 바울은 아니, 가다 보면 유대인의 회당이 있어라고 있는 거고. 저 또한 증인으로 살려면 종으로 살아야 하잖아요. 이거를 제가 이제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저도 잊어버리죠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수행원으로 살려면 요한처럼 하면 안 되는 거죠. 제가 직장 생활을 안 했어요 남자들은 직장 생활을 안 하면 뭘 알겠냐고 하는 거죠. 나는 모르는 데 성령이 나를 세우셨기 때문에 진리의 성령님이 지혜를 주셔서 여기 있는 거예요. 수행원으로 살고자 하니 때마다 좋은 지체들을 주셨습니다. 수행원도 이거 저거 하는 사람 역할이 있잖아요! 


자기 하나 역할을 하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수행원 중에서는 단상에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늘 불안했어요. 얼마나 매번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막 상 단 위에 서면 주님이 힘주시는 것을 경험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거예요. 그거는 거냐? 오늘도 그래요. 오늘 아침까지 되는 것도 없는데 앉아있어요. 제정신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까 토요일에 저한테 부탁하면 안 돼요. 바울이 토로스(Toros) 산맥을 넘어갈 생각을 한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엊그제 이야기 했잖아요. 내가 구원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것은 저 대신 남편을 데려갔기 때문에 하는 거라고. 내가 어떻게 13개 모임을 인도하고 하는데 그런데 진짜 골육을 피해 숨었다는 생각을 하고 아이들을 생각할 때는 저의 만족을 위해서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마가(Mark)를 생각해보니 진짜 그런 생각이 납니다. 


(적용#3)

-삶의 역할에서 기막힌 고난에서 하나님의 수행원으로 더 나아간 경우는 무엇인가요결혼 직장 자녀교육 등에서 무엇인가요?

저의 자녀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합니다. 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았겠어요? 

 

3.   성령의 동행은 최고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르러는 안디옥 도시 안으로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제 갈라디아(Galatia) 지방의 남부에 있는 비시디아(Pisidia) 지방에 인접한 곳인데 바울 일행이 도착해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갔어요. 바울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고 율법학자였고 바나바는 레위인이었기 때문에 앉아서 가르칠 자격이 있었어요유대인 회당부터 들어가서 여기가 전초기지인데 성령의 보내심과 세우심은 언제나 절묘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가졌기 때문에 정확하게 보내신 거에요정말 큐티하고 목장에서 나누고 거기에 하나님이 성령의 보내심이 있고 세우심이 있습니다. 무엇을 알까? 그런 생각 하지 말고 나누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동행은 최고의 열매를 맺습니다갈라디아 지방을 전도를 하게 하시고 갈라디아 전도로 인해서 최고의 복음서인 갈라디아서가 써진 것이 아니겠습니까성령의 동행은 최고의 동행은 최고의 열매를 맺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무슨 일을 해도 자기가 기뻐해야 하지 않습니까? 성령이 동행이 있으니 이렇게 기쁜 겁니다. 


(적용#4)

-여러분은 성령의 동행을 하고 있습니까

-집에서 목장에서 직장에서 성령의 동행을 하는 곳은 어디이고 아닌 곳은 어디입니까?

-그로 인한 최고의 열매가 있습니까? 

 

<Epilogue>

 

1)  사람의 수행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

2)  그러면 절대적인 진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길에서 안면몰수하고 떠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수행원이 되는 것은 그 상황에서 더 나아가야 하고 그러면 최고의 열매를 맺는다

4)  복음에는 타협이 없다

5)  성령의 동행은 최고의 열매를 맺는다

6)  세상 사람들과의 동행은 끝이 안 좋다

7)  천국여행에는 동행이 중요하다

8)  로터리 클럽 등지에서의 동행은 허무하다

9)  바울은 영적 카리스마로 영적인 선교를 했기에 팀장이 되었고 바나바도 인정한다

10) 성령이 내 곁에 있는 것을 잊으면 복음의 위력을 경험하지 못한다

11) 요한은 환경이 겸손하지 못한 것이다

12) 성령의 동행이 없으면 이해타산으로 안면몰수하게 된다

13) 요한은 강도 만나 죽을지도 모르니까 험준한 산맥이 싫어서 이해타산으로 돌아선다

14) 성령의 동행이 없으니 결정적일 때 안면몰수한다

15) 이 땅은 공중 권세 잡은 자의 것이다

16) 이 땅에서 힘든 것이 배신이다

17) 육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길은 더 나아가는 것이며 앞길은 성령님이 인도 하신다

18) 길이 없다면 성령님이 길이다

19) 손가락으로 하는 작은 동참으로 리플을 다는 것이 구원의 길에 참여하는 것이다

20) 금식을 통해 구원에 대한 시각이 생긴다

21) 헬라어로 휘포타소는 군사용어로 종속하다, 밑에 두다라는 뜻이고 수행원은 휘페레타스라고 하는데 배 밑창에서 노를 젓기도 한다

22) 스테반을 죽인 바울은 수행을 역할로 해석하고 돌아간 요한은 인격으로 해석한다

23) 성령이 인도하신 길은 아무리 힘들어도 성령님의 작품이라고 찬양하게 된다

24) 하나님 수행원으로 살려고 하니까 좋은 수행원을 붙여 주신다

25) 배 밑창에서 노 젓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 은사를 발휘하게 하신다

26) 하나님 수행원으로서 더 나아가는 것이란 배 밑창에서 노 젓기 하는 것처럼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면서도 입을 쩍 다무는 것이다

27) 버가를 뛰어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Pisidian Antioch)으로 가다 보니까 갈라디아(Galatia)에서도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28) 지금은 모르나 나중에는 알게 되리라

29) 믿음이 있으면 소유에 만족을 두지 않는다

30) 요한처럼 위 질서를 인정하지 않아 순종이 되지 않으니 문제가 생기면 도망하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