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1년 5월9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17: 2~ 9/ 성령의 강론/講論/Preaching)]
<사도행전 17: 2~ 9>
2절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As his custom was, Paul went into the synagogue, and on three Sabbath days he reasoned with them from the Scriptures,)
3절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explaining and proving that the Christ had to suffer and rise from the dead. "This Jesus I am proclaiming to you is the Christ," he said)
4절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Some of the Jews were persuaded and joined Paul and Silas, as did a large number of God-fearing Greeks and not a few prominent women)
5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But the Jews were jealous; so they rounded up some bad characters from the marketplace, formed a mob and started a riot in the city. They rushed to Jason's house in search of Paul and Silas in order to bring them out to the crowd)
6절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But when they did not find them, they dragged Jason and some other brothers before the city officials, shouting: "These men who have caused trouble all over the world have now come here,)
7절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and Jason has welcomed them into his house. They are all defying Caesar's decrees, saying that there is another king, one called Jesus.")
8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When they heard this, the crowd and the city officials were thrown into turmoil)
9절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Then they made Jason and the others post bond and let them go.) |
<Prologue>
우리가 숱한 강론을 듣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듣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강론이라고 하십니다. 강론을 듣기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제가 생각이 났는데 글쎄 휘문에 경비하시는 집사님께서 등록하셨습니다. 지난주에는 예배를 드리더라고요 인사하시더라고요. 그냥 본인이 알아서 등록하셔서 좋아하시는 거예요. 늘 인사하세요. 한 주 동안 가정에서 직장에서 성령의 전략을 따르셨나요? 자기를 많이 부인하셨나요? 영아부 섬기는 어느 목자님이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어 출동을 불렀는데 차에서 기다리셨다고 합니다. 6살 딸하고 기다리면서 대화를 했는데 딸에게 이담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영아부 선생님이 되고 싶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주중에는 ‘뭐 하고 싶어?’ 했더니 ‘주 중에는 밥해줄 거야’라고 했고 집요하게 또 물었어요 ‘나중에 어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했더니 ‘빨리 결혼해서 아이들 밥해 주고 아니 낮에는 빨래해주고 밤에는 책 읽어줄 거야’라고 했답니다.
인간적 전략으로는 갈 길이 멀어 보일 것 같아요. 목자님 부부가 가정과 교회에서 성령의 전략으로 잘 살아 내신 모습을 딸이 입으로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목자님보다 더 위인 목사님 부부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 아들 목사 큐티 나눔인데요 5살 딸에게 묻기를 ‘엄마 아빠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랬더니 딸이 ‘돈!’ 그랬다는 거예요 아 그래서 거기에다 쓰기를 우리 딸이 굉장히 영적인 아이 같다라고 했습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돈에 대해서 별로 의지하려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가 나를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제 믿음에 닮고 싶은 사람은? 또 물었더니, ‘예수님, 엄마, 아빠, 할머니’라고 대답을 했대요. 그래서 아빠 이름을 리스트에 올려줘 저 굉장히 감동이라고. 저도 감동이네요. 제 이름도 올라갔어요. 이렇게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날마다 말씀의 인도를 받아 평범한 일상을 잘 사는 것이 자기 부인이고 성령의 전략입니다. 바울이 성령의 전략을 따라 자기의 관례를 지켜 데살로니가 회당에 들어갔죠. 거기서 3주 동안 성경을 가지고 강론을 했다고 해요 강론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는데요 오늘은 그래서 성령의 강론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말씀 요약>
성령의 강론은,
1. 성경으로 구속사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전략에는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이죠, 성령의 강론입니다. 지난주의 뜻을 풀어 설명했지만 자기 부인, 강론을 어려워 하셔서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2절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절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는 3주간 있었는데 자기 전략이 없고 자발적인 자기 관례로 강연했죠. 자기 전략대로라면 유대인의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 회당에 갔겠습니까? 이방인에게 가겠다고 했잖아요 루스드라에서는 노방전도를 했는데 여기서 많은 열매가 있었어요 문화적으로는 훨씬 쉬운 헬라 본토 대도시 데살로니가에서 노방전도가 훨씬 쉬운 곳에 와 있잖아요 인간적인 전략대로 했으면 들어가지 않아도 했지만 관례를 지켜 회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거룩을 위한 관례에 자신을 쳐 복종했어요. 자기를 부인했어요 그래서 3주 동안 회당 예배에 참석해서 성경을 가지고 강론을 했어요 바울이 성령에 대해 강론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지고 강론을 했다고 합니다. 성경을 설명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고 가르친 것이 이 나라 성경을 근거로 해서 성경을 교과서로 삼아 어떤 내용에 대해 강론을 했다는 말인 거죠 그런데 바울이 단지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마치 역사 이야기하듯이 했다면 주님의 역사와 부활을 증언했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증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듣는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증언이라고 했잖아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도 알려주는 것도 증언입니다. 가장 강력한 증거는 회당의 청중을 향해 강론하고 있는 설교자 바울 자신이 증인 아닙니까? ‘설득했다’라기보다 성경을 펼쳐놓고 아는 사실을 증명(증언)하면 됩니다. 구속사로 전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만 듣고 교인들이 복음을 확실하게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3주 만에 믿었다고 한 것은 오래 전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고 또한 믿음은 선물입니다. 고린도교회는 1년 6개월이 있었어도 음행과 이단 등의 문제가 많았는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복음에 반응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핍박을 받았고 잘 들렸고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고 합니다. 성경을 혼자 본다는 것은 공산권이나 저 같은 이야기지 혼자서 어렵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스승과 지체를 허락하십니다. ‘스승이 누구였느냐?’ ‘어떻게 복음을 받았냐?’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구속사로 증거를 제시해서 증언했음이 분명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자기 때문에 일어난 구원의 사건이고 자신의 위한 사건임을 간증하는 것이 성령의 강론입니다. 예수님이 죽어 주시고 살아난 이야기가 내 이야기라고 날마다 고백하는 것이 성령의 강론입니다. 내 인생이 세속사가 아닌 구속사 안에 있는 것을 깨닫고 간증하는 것이 강론입니다. 지금 내게 선물로 주신 구속사를 고백하고 간증하고 증언하는 것이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는 것입니다.
(적용#1)
-성경의 이야기를 남 이야기로 읽습니까 내 이야기로 읽습니까?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증언할 내 구속사의 간증은 있습니까?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도 이렇게 또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어렵고 힘든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핍박당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어떤 목사님이든 은혜가 넘쳤어요. 유명한 목사님을 따로 모실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오시는 분마다 은혜를 끼쳤어요. 다 같이 십자가에 달려 있으니까 그래서 강사가 풍년이었던 시절이고 유명한 사람들 우리가 막 다 읊어대요. 제가 많이 소개했던 간증인데요 예전에 억지로라도 자녀를 믿음으로 키워야 한다는 무지막지한 그 시절의 추억의 은혜 이게 추억의 간증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하나 소개 드릴까 해요. 어제 어버이 주를 만났는데 이런 자녀와 부모가 정말 되기를 간절히 바라서요 가족이 8남매인데 아버지가 맏아들은 동생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이제 사업해달라고 축복을 해 주고 둘째는 교수 되게 해달라고 큰딸은 목사 사모되게 해달라고 쭉 축복하다가 막내아들인 이 분한테는 이 아이는 주의 종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 기도하는 순간. 머리를 싹 비켜 가지고 도망을 갔는데 아버지가 그냥 계속 쫓아와서 끝끝내 이제 기도를 해줬다는 거야. 머리 안수기도 그리고는 이제 이 아버지가 막내아들을 만들어 그리고 은혜의 자리는 그냥 다 데리고 다녔다는 거예요. 옛날에 우리가 이렇게 은혜의 자리라 그랬어요. 부흥집회고 가정제단이고 그냥 마구 때려 가지고 때려가면서 데리고 다녔는데 이 막내아들이 은혜를 못 받으니까 아버지가 이제 너무 낙심이 되셨어요 ‘얘 너는 이렇게 데리고 다녔는데. ‘그래 방언 하나를 못 받냐? 이 녀석아!’ 하는 소리에 ‘아! 아버지가 좋아하는 게 방언이구나’ 그래서 보고 들은 게 있어서 그때부터 이제 가정 예배 드릴 때마다 몸을 앞으로 뒤로 흔들면서 방언을 그냥 ‘아파 아파’ 하면서 했더니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면서 그냥 들어가고 나갈 때마다 용돈을 주니까 이제 누나한테 용돈 받는 비결을 가르쳐주겠다고 그러니까 나는 '압빠 아파’ 할 테니까. 누나는 ‘아따 아따’ 하고. 그래서 둘이서 기도 시간마다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그냥 서로 둘이서 윙크를 주고받으면서 그래서 굉장히 이제 들어가면 나가면 용돈으로 이제 서로 많이 챙겼는데 누나하고 어느 날 대판 싸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나가 내가 너 이거 아버지한테 다 일를 거야 그래서 쪼르니 가서 이제 일렀어요 그냥. 아버지가 그냥 즉 그 다음부터는 이제 오며 가며 저주를 하고 들어가면서 나가면서 매를 맞았다는 거예요 그냥 보기만 하면 저놈이 거짓말로 사기를 쳤다 결국은 이렇게 방황을 많이 하다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자기만 딱 앉혀놓고 ‘얘야. 내가 이 죽은 다음에 녹음 테이프를 공개해라.’ 그래서 자기가 목사니까. 나를 믿으셔서 나한테 공개하라고 하시네. 아버지가 재산이 좀 있으셨대요. 그래서 그 나중에 다 모아 놓고는 딱 죽은 다음에 식구들 모아놓고 공개하라 그러니까. 그래서 공개를 했더니 함경도에 ‘그래찌비’하는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 목사님한테 재산을 다 주라고 예 그래 가지고 이제 아니 이제 나중에 목사님이 되셨죠. 목사님은 자기 아버지가 자기한테 뭘 줄 것처럼 그렇게 그러시더니 속았구나 그냥. 이 아버지가 교회를 5개를 세우셨는데 자식들한테 아무것도 안 줬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8남매 자손이 30명인데. 이제 1년에 아버지 산소로 두 번을 가는데요 천막을 두 개를 친대요 그러면 거기 성가대도 있고 함경북도 사회, 설교 묵도, 기도 특성화 사람이 다 있어 가지고 앞에서 묵도를 시작하면 다 성가대가 이렇게 이제 한다는 걸 제가 제일 눈에 반한 건 이 대목인데요. 그에 설교하는 사람은 100만 원 기도하는 사람은 50만원, 사회 보는 사람은 50만 원, 광고하는 사람은 안 내고. 중요한 사람 준설을 맡은 사람은 다 돈을 가져와야 되고 그 다음에 각 가정마다 1인당 10만 원을 가져오라고 해서 이게 다 모이면 5~600만 원 되는데 예 그것을 이제 그 해에 가장 어려운 식구에게 그때 모여서 그걸 몰아줬다는 거예요 이게 있잖아요. 함경도 ‘그랬지비’ 목사님이니까. 이게 수십 년 전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이때 5~600만 원이면 굉장히 큰 돈. 엄청나게 큰 돈이잖아요. 8남매가 너무 화목하다는 거예요. 가져 오라는데 불복종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 아버지가 그 돈을. 자녀를 위해 썼으면 지금 이렇게 화목했겠냐고 하는 거예요. 그 목사 누구는 주고 안 주고 또 줘도 많이 주고 적게 주고 그 돈을 이렇게 교회 줬더니 지금은 자녀들이 모이면 온 가족이 부흥했고 산소 가는 게 즐겁고. 산소 가면 또 누군가가 도와주지만 더 받을 사람이 있잖아요. 그러다 설레구요. 끝에는 다 돈이 있어요 그러니까 믿음의 5대라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이제 모태신앙을 좀 종종 이제 참 욕도 하지만 이 모태신앙에 저력 아닌가 싶고요 이 시절은 이런 간증이 아주 그냥 줄을 이루었어요. 왜냐 그 집이 돈이 있어도 그냥 8남매가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인 것이에요 그 시절은 그냥 그 십자가를 다 질 수밖에 없는 나라 전체가 가난하니까 가능했습니다 지금 목사님들이 유학파도 많고 공부도 많이 하셨는데 지금 유명한 강사가 별로 없어요. 몇 명 모시기도 참 다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뭘 말하나요.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가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를 하기가 너무 힘이 드는 시절이 되었어요 예전보다 잘 사는 시대에서 교회 취향도 각각 이래서 십자가보다는 취향대로 레벨대로 이렇게 교회가 모입니다. 성경의 구속사가 선포 되어지지 않고 가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먹혀들었는데 예전보다 잘 사는 시대이니 교회도 취향이 각각입니다. 취향 레벨 대로 모입니다. 사실 요즘에는 복음이 난무하지만 복음과 말씀이 없습니다. 강론하기 위해서는 자기 부인이 따라야 합니다. 강론을 하기 어려운 것은 두 부류로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부류만 있으면 문제입니다.
2. 따르는 딱풀 성도가 생깁니다.
4절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이제 회당 예배로 모인 사람 중 다시는 유대인 아니겠습니까? 경건한 헬라인이 모인다고 해도 유대인보다 많지 않았을 건데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음을 전한 사람은 대부분 헬라인이고 귀부인들도 헬라인이었습니다. 다 유대인이 차지하지만 극소수였다는 거예요 이방인들이 고난을 받고 따랐다고 합니다. ‘따르나’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거는 제비를 뽑아서 몫을 정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수동태 부정 과거 직설 법인데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바울과 실라(Silas)의 몫으로 할당되었다고 합니다.
핍박 받아서 떠난 바울과 실라에게 딱풀 같은 성도가 딱 생겼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초라한 바울과 실라가 영적으로 매력이 있으니 딱풀 했겠죠 유대인들은 안 보이는 영의 시각이 이방인들에게 있는 거예요 강론이 올바르니까 성령의 따름이 기다리고 있는 거죠. 고난을 받은 사람은 가치관이 변하죠. 삶의 목적이 바뀌니까 방향이 바뀌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을 위해 사는 것이고 회개로 돌이키는 것이죠. 성령의 전략으로 사는 것이 딱풀 성도의 특징인 거죠. 주님을 뒤에서 따르는 사람은 십자가 지기가 어렵지만 함께 가는 사람은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안 질 수가 없어요.
한편이 된다는 것은 승리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승리까지 가기 위한 승리와 고통을 함께 나눈 것입니다. 똑같은 귀부인이라도 경건한 귀부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선동 당해서 바울을 박해해서 쫓아냈잖아요. 겉모습 가지고만 모르는 거죠. 그들은 호강만 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데살로니가 귀부인들은 유력한 지도자들의 부인이 고귀한 자라고 원어로 그런 뜻으로 썼어요.
그러니까 진짜 귀부인인데 데살로니가 굉장한 도시잖아요. 여기서 귀부인들이 복음을 따랐을까 생각해 보면 남편이 타락하지 않았을까 인생이 허무 했을 것이고 외로웠을 것 같나요? 중국에서 갑자기 남자들이 바람을 많이 펴서 밥에다가 여성호르몬을 넣어서 여자가 남편에게 시들해지는 거예요. 할렐루야 하면서 행복해한다는 거예요. 쫓아다니던 여자를 끊으니까. 그런데 그게 오래 먹으면 건강도 간도 나빠지고 한다는데 그게 문제가 많은데도 먹이겠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돈이 많고 권세가 있으면 다들 이렇게 정욕과 질투에 눈이 멀어요. 환경에는 예외가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 여러분 선남선녀가 결혼을 해도 자기 이해타산이 생기면 너무 무섭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땅에서는 신 결혼해야 하는 거예요. 예외 없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는 여성의 권리가 잘 보호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남편의 간섭 없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시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를 왜 늦게 했을까 생각해 보면 목사를 해도 아무도 없고 요새 극동방송을 나가잖아요 제가 개척하고 목회할 때부터 CTS가 개국을 했어요 CTS 하고 저하고 이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제가 알린 것도 아닌데 찾아오셔서 하자고 제가 그것도 성령의 전략입니다. 북한에 가서 설교 했잖아요 그것도 그때 한국에서 복음이 전파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복음은 전하고 볼 일입니다. 할렐루야!
9절입니다.
9절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주니라
바울의 구속사적 강론을 듣고 따른 사람이 야손(Jason)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데살로니가 교회가 야손의 집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유대인이 고용한 불량배들에 의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소동을 다 받아냅니다. 그리고 큰 금액의 보석금을 내고 겨우 풀려납니다. 만일 야손이 바울과 한 팀이라고 여기지 않았다면 바울때문에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과 실라 예수님과 한편 임을 확신했기에 십자가를 자기 십자가로 여기고 자기 관례가 되어서 기꺼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략이라고 생각하면 미워할 사람도 없는 것이다. 구속사적 말씀으로 고난을 받으면 한편이 되어 성령이 나를 복종시키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말씀이 들리니 순종을 하게 되고 영과 육의 적용을 자기 관례가 되어 합니다.
(적용#2)
-여러분은 공동체와 한편이 되어 주님을 따르고 있는 딱풀 성도 입니까?
-공동체를 밀어내는 요리조리 피해가는 미꾸라지 성도입니까?
네. 아주 딱 풀 성도 이것만 하나 생각하면 됩니다. 아셨죠. 딱 풀인가 아닌가 목사님 중에서 태명을 딱풀이라고 자궁에 잘 붙어있어라 딱풀!
3. 시기하여 소동하는 유대인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늘 있습니다 바울의 강론을 듣고 말이죠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쓰여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렇게 고난이 있고 튼튼히 붙잡는 사람이고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하면서 믿지 않는 거죠.
5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절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절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여기서 ‘시기하여’라고 번역된 단어는 항쟁하다-겨루다- 열광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시기도 열광적인 사람이 합니다. 무서운 열심히 반대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이 시기와 같은 심리적인 역 반응을 보인 것뿐만 아니라 광적으로 흥분이 되어 바울 일행에 대항했다는 사실이 단어의 의미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 경쟁심의 뿌리는 같습니다.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욕심입니다. 내 아내, 내 남편이 그러면 질투를 합니다. 내 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죠 회사에서도 교회에서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동료가 잘하면 더 질투를 합니다. 바울을 시기한 유대인들은 사람이 치사한 방법을 씁니다. 악한 데는 한계가 없어요 유대인들 보니까 믿는 사람이잖아요. 치사한 방법을 씁니다. 저자의 불량배를 고용해서 시민들을 선동합니다. 매수해서 선동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러는데 정치권에서는 안 그러겠습니까? 인간이 이렇습니다. 공익광고를 한답시고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반역자들이 여기에 왔다고 하여 소동을 일으킵니다.
바울일행에사 숙식을 제공한 야손의 집에서 행패를 부리면서 바울을 잡으려고 합니다. 무슨 문제가 하면 그 집에 몰려 가잖아요. 바울을 놓치자 야손과 성도들을 잡아서 황제의 명을 거역한 자라고 지목하고 반역자로 몰아 잡아갑니다. 이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가이사(Caesar) 외에 예수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그런 이유로 잡혀 가셨죠. 시민들이 그 한마디에 너무 크게 소동을 한 거예요 이슈가 나면 청와대 게시판에 올리잖아요. 반역은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자기들의 안위가 위험해 지기 때문에 시기에는 소동이 따릅니다. 예수님의 복음에는 자기를 부인하고 죽어야 하는데 죽지 못하면 소동이 자기의 집집마다 회사마다 나라마다 전공이 되는 것입니다. 열광적으로 때를 지어 소동하게 하는 유대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즘 보면 나라도 갈라져서 광적으로 흥분합니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 우리들교회는 가정 중수만 외치고 있으니 딴 세상 같다고 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나를 다스려야 가정이 평안하고 나라와 천하가 평안합니다. 우리는 나부터 다스려야 합니다. 이 유대인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증언하는 구속사적 강론을 듣지 않아요. 처음 온 초라한 늙은이들에게 설교하라고 하니까 비시디아 안디옥(Pisidia Antioch)에서 사람들이 바울과 그들을 따르니 시기하여 말씀이 안 들리니 돌로 쳤어요.
내 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바울을 따르지 시기심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요 말씀의 증인을 박해하고 괴롭힙니다. 그리고 교회가 천하를 어지럽게 한다고 하는데 어지럽게 하는 것은 자신입니다. 정작 자기들이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화평은커녕 소동만 일으킵니다. 구약에도 화평의 복음, 샬롬의 복음을 전하시는데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바울을 괴롭히고 훼방꾼 노릇을 하는지 보게 됩니다. 바울이 생명을 내놓고 기도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실상은 안 믿는 자들이에요. 유대인은 바울에게 친척 가족입니다.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성경을 사람 살리는 구속의 일로 전하게 됩니다. 구속사로 성경을 꿰고 곳곳에서 강론을 하는데 유대인의 대표인 바나바(Barnabas)와 베드로(Peter)에게 외식하지 말라고 한 것 기억하시죠? 이렇게 이방인들하고 먹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대 사람들이 오니까 피하잖아요 외식하지 말라고 꾸짖었어요. 바나바와 베드로는 굉장히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요.
그 후 바울과 바나바는 심히 다투고 헤어졌잖아요. 베드로는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바울에게 이야기합니다.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성경을 읽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사사로이 뜻까지 풀겠어요? 모르는 것은 지나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큐티를 안 하는데 큐티하면 위험하다고 하면 누가 합니까? 사사로이 풀지 말라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성경이 이해되는 게 있는데 큐티를 하면서 안 믿는 사람을 보니까 믿는 사람이 큐티하는 것을 가장 비판하더라고요. 하지도 않는 것을 하냐고 그래서 성경 보는 것이 위험해요 성경 보지 말라 한 됩니다. 바울이 성경 박사입니다. 하나님께 쓰이기 위해 사도행전을 통해보고 답니다. 돌로 맞고 쫓겨난 것은 바울이지 바나바가 아닙니다. 복음을 바나바가 전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바울에게 난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에게 난 것이 아니잖아요. 바울처럼 5달란트 받은 사람은 고달픔 뿐이에요.
부러워하지 마세요. 상급이 많은 사람이 천국에서 잘 살 줄 아는데 구원보다 더 큰 상급이 없습니다. 장로님 가정에 시집왔으면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래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권사님 장로님 가정입니다. 유대인들이 힘들게 한다고 하는데 믿는 목장 식구 믿는 배우자가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이웃집 아줌마가 힘들게 하면 안 보면 그만인데 눈 옆에 있는 부모형제 배우자 자식들 안 볼 수 없습니다. 굉장한 직분을 가졌다고 하니 더 힘듭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유대인들은 어찌합니까? 아까도 그 유대인들이 바울이 설교를 잘해서 성도들이 따라갈 줄 몰랐어요 그러니 맨 처음에는 인정했잖아요. 성도들이 내 편이 거기로 가니 시기하고 나한테 어떤 반응이 나올지에 대해서 나도 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겸손함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행위 구원이 무언가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아프고 시기할 수 있냐? 그럽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믿음이 없으니까 죄의 문제를 모르니 아프고 떨어지면 건강하고 붙은 자를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잘 된 사람들은 안된 사람 앞에서 간증을 못하는 거예요 우리는 마음대로 다하는데 말이죠 사람은 자신에 대해 정말 모릅니다. 똑같이 교회를 다니고 유대인처럼 예배를 드리는데 물과 기름입니다. 복음을 전할 마음은 있지만 늘 순회 전도자로 바울은 떠나잖아요. 딱풀성도가 생기면 또 시기를 당하는 것이다. 이것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내 말로 들리지 않아요. 어쩔 수 없는 영혼 구원의 길은 좁은 거예요.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구속사라는 자체가 고품격으로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자꾸 이러고 저러고 하니까 먼 데를 봐야 하는데 시기하는 유대인들 어떻게 합니까? 이쪽은 유대인이고 이방인인데 이렇게 그림이 그려집니다. 우리들교회는 언론의 자유가 있어요. 어떻게 하면 말씀이 들릴까? 저 같은 사람도 애통이 됩니다.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이 10년 넘게 앉아있는 사람을 보니까 내 탓처럼 보입니다. 오늘도 한 사람이라도 돌아올까? 전달되었으면 좋겠지만 3차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유대인이 안 돌아왔어요. 온 세계가 열광을 해도 유대인 골육 친척들은 안 돌아옵니다. 옆의 식구들이 안 믿는데 화를 내어야 하는가 혈기를 내어야 하는가? 창자가 끊어지는 말로 예수님도 자기 고향 식구들인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나 혼자 도덕 잘 지키고 교통 잘 지키고 윤리적으로 잘 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영혼 구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데 ‘감정적이냐? 십자가이냐?’ 이원론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죠.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감정적인 은혜도 있어요.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이 늘 중요하고 그 한 사람 때문에 애통하고 기도하게 하면 저절로 되더라고요 안된 것 같아 된 것이 많아요. 많이 돌아왔죠. 이것이 성령의 강론의 결론입니다. 유대인같이 소동하는 성도들은 내 옆에 있습니다.
(적용#3)
-시기나 질투나 경쟁심 등의 뿌리는 똑 같은데요 그 중의 무엇으로 소동 하시나요?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시기를 하냐?', 어떻게 아프냐?'고 얼마나 자주 말합니까? 이것이 행위 구원이라는 것이 인정됩니까?
정말 그제 편지를 받은 성도의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사역자 직분자들이 부부들의 나눔입니다. 죄가 너무 많았는데 성령의 강론을 듣고 죄의 고백을 하게 하세요. 이분은 20년 동안 사흘에 한 번씩 매를 맞고 예수 믿는다는 것으로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혼은 안해 보려고 20년을 버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영성훈련원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역자에게 몸도 마음도 뺏긴 거예요. 그래서 소위 불륜을 행했죠. 참 이런 거 읽으면 20년 동안 매 맞았는데 이해되지 않습니까? 처음으로 따뜻한 남자가 믿음도 있고 사역도 하다 보니까 환경에 장사가 없습니다. 환경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신학을 하는데 강론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치리를 받고 쫓겨났는데 이혼을 안 한 상태인 거예요 안수집사가 저의 마음을 붙들고 이분과 불륜을 행해서 그 안수집사가 이혼을 하고 저도 이혼을 하고 안수집사와 재혼을 했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예요 가정을 지키는 것이 힘들고 가치 있는 것인지 다시 보게 됩니다.
맨 마지막이 이상해 졌어요. 이것만 해도 산전수전인데 유방암 수술 이후 투병 중인데 공중전이 터진 거예요. 안수집사가 만난 거가 2006년인데 음란사이트와 음란물을 들켰고 이대로 헤어지면 그 동안의 일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아서 내 열심히 내 전략으로 왔는데 지난주에 공중전이 터진 거예요 남편이 음란 영상을 주고받은 유부녀에게 카톡이 왔다는 거예요 핸드폰 속에 있는 지인의 번호를 알아냈다고 하니 합의금을 제시 받았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들교회 오셨잖아요 공동체가 있잖아요. 처방 받은 데로 신고했고 부부 목장에 처방에 따르겠다고 그런 후에 공권력을 도움을 받아보자고 했다고 합니다. 이 중독이 끊어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오픈하는 것이 확실할 것 같아서 오픈합니다. 일으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손가락질한 뿐도 있지만 죄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정신과 치료도 받고 폴더폰으로 받아서 개통했다고 합니다. 날마다 한사람의 아픔이 계속되는데 그것 때문에 우리들교회가 걸어간다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살립니까 경찰이 살립니까? 가정이 살아나야 합니다.
성령의 강론은 한 가정을 살리는 일입니다.
<Epilogue>
1) 성령의 강론(講論)은 성경으로 구속사(history of redemption)를 증언하는 것이다.
2) 성령의 강론은 너무 힘들다. 정말 쉽지가 않다. 가장 옆에서 돕던 바나바(Barnabas)도 다투고 떠났고 베드로(Peter)도 함부로 풀지 말라고 하니까 좁은 길인 것이다.
3) 그러나 성령의 강론에는 딱풀 성도가 있다.
4) 성령의 강론을 통하여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딱풀성도가 될 줄 믿는다.
5) 성령의 강론에는 시기하여 소동하는 유대인도 생기지만 창자 끊어 지듯 애통하고 내가 끝까지 애통하고 기도하고 가야하는 내 옆의 유대인일 줄 알고 가야 한다.
6) 날마다 말씀의 인도를 받아 평범한 일상을 잘 사는 것이 자기 부인이고 성령의 전략입니다
7) 예수님의 복음을 듣는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증언이다
8)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도 알려주는 것도 증언이다.
9) 믿음은 선물이다.
10) 십자가와 부활은 자기 때문에 일어난 구원의 사건이고 자신의 위한 사건임을 간증하는 것이다.
11) 예수님이 죽어 주시고 살아난 이야기가 내 이야기라고 날마다 고백하는 것이 성령의 강론이다.
12) 내 인생이 세속사가 아닌 구속사안에 있는 것은 간증하는 것이 강론이다.
13) 지금 내게 선물로 주신 구속사를 고백하고 간증하고 증언하는 것이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는 것이다.
14) 고난을 받은 사람은 가치관이 변하게 되는데 삶의 목적이 바뀌니까 방향이 바뀌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을 위해 사는 것이고 회개로 돌이키는 것이다
15) 성령의 전략으로 사는 것이 딱풀 성도의 특징인 것이다
16) 주님을 뒤에서 따르는 사람은 십자가 지기가 어렵지만 함께 가는 사람은 십자가를 안 질 수가 없는 것이다
17) 한편이 된다는 것은 승리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승리까지 가기 위한 승리와 고통을 함께 나눈 것이다.
18) 자기 시기 질투 부리려고 물불 안 가릴 정도로 돈이 많고 권세가 있으면 다들 이렇게 정욕과 질투에 눈이 멀게 되어 있다.
19) 선남선녀가 결혼을 해도 자기 이해타산이 생기면 너무 무섭게 행동을 마다하지 않게 되니까 그래서 신 결혼해야 하는 것이고 예외 없는 것이다.
20) 구속사적 말씀으로 고난을 받으면 한편이 되어 성령이 나를 복종시키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
21) 말씀이 들리니 순종을 하게 되고 영과 육의 적용을 자기 관례가 되어 실행하게 된다.
22) 시기와 질투 경쟁심의 뿌리는 같다.
23) 시기와 질투는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욕심이다.
24) 내 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하게 되는 것이 시기 질투인 것이다
25) 반역은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자기들의 안위가 위험해 지기 때문에 시기에는 소동이 따르게 된다.
26) 자기를 부인하고 죽어야 하는데 죽지 못하면 소동이 자기의 집집마다 나라마다 전공이 되는 것이다.
27) 상급이 많은 사람이 천국에서 잘 살 줄 아는데 구원보다 더 큰 상급이 없다.
28) 성도들이 내 편이 거기로 가니 시기하고 나한테 어떤 반응이 나올지에 대해서 나도 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겸손함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행위 구원이 무언가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아프고 시기할 수 있냐?고 하는 것이다.
29) 행위 구원은 기도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 것이다
30) 왜냐하면 그들은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이다
31) 믿음이 없으니까 죄의 문제를 모르니 아프고 떨어지면 건강하고 붙은 자를 시기하고 미워한다.
32) 잘 된 사람들은 안된 사람 앞에서 간증을 못하는 것인데 사람은 자신에 대해 정말 모른다.
33) 어쩔 수 없는 영혼 구원의 길은 좁은 것이다
34)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구속사라는 자체가 고품격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35) 창자가 끊어지는 말로 예수님도 자기 고향 식구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고 했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36) 나 혼자 도덕 잘 지키고 교통 잘 지키고 윤리적으로 잘 산다고 되는 게 아니라 영혼 구원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감정적이냐? 십자가이냐?’ 라고 이원론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37)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감정적인 은혜도 있는데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안 된다.
38) 한 사람이 늘 중요하고 그 한 사람 때문에 애통하고 기도하게 하면 저절로 되는 것인데 안된 것 같아 된 것이 많게 되는 것이 성령의 강론의 결론이다.
39)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심 간이 불편할 뿐이며 구원과는 다른 문제다
40) 구원은 선물이기에 그렇다
41) 주님의 구속사 강론을 통하여 화평의 복음, 샬롬의 복음을 전하신다
42)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 돌아오는 것이 성령의 강론이다
43) 성령의 강론은 한 가정을 살리는 것이다
44) 하나님의 전략이라고 생각하면 미워할 사람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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