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0. 10. 2. 17:38

[우리들교회 2020929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2:11~ 17/성령의 기대)]



 

<사도행전 12:11~17>

11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Then Peter came to himself and said, "Now I know without a doubt that the Lord sent his angel and rescued me from Herod's clutches and from everything the Jewish people were anticipating.)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When this had dawned on him, he went to the house of Mary the mother of John, also called Mark, where many people had gathered and were praying.)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Peter knocked at the outer entrance, and a servant girl named Rhoda came to answer the door)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When she recognized Peter's voice, she was so overjoyed she ran back without opening it and exclaimed, "Peter is at the door!")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You're out of your mind," they told her. When she kept insisting that it was so, they said, "It must be his angel.")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But Peter kept on knocking, and when they opened the do rans saw him, they were astonished)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Peter motioned with his hand for them to be quiet and described how the Lord had brought him out of prison. "Tell James and the brothers about this," he said, and then he left for another place)


<Prologue>


성령의 간절한 기도는 초대 교회에서 서로 기도의 모범을 배워야하기 때문에 지나고 나면 갇히는 것이 필수였다 

본인의 기도 제목이 생겨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고난은 기대가 있어서 절대적인 것 같다

베드로 사도가 고난의 역할을 감당하니 교회가 기도한다

다른 분들의 고난을 들으며 옷깃을 여며야 한다

기도를 하면 그것이 성령이 기대하시는 인생이 되어 효과적으로 서로를 도와주신다.

오늘은 성령의 기대에 대해 알아보겠다.

 

<말씀 요약>

 

1. 세상의 기대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11~12)

 

정신이 들어, 알겠노라, 깨닫고라는 말이 연이어 나타납니다. 그는 죽음 직전에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구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구출된 이후에도 한동안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너무 기가 막힌 기적의 현장을 지날 때, 그때는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실제인 거죠. 철학이 아니지요. 2000년 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 인류는 그때는 다 몰랐어요. 인류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가 되어서 그 피로 내 죄를 씻어 주시는 것이지요. 대단한 죽음을 죽을수록 먼데 사람들까지 은혜가 되는 거죠. 베드로도 그 당시는 감옥에서 구출될 것을 다 알고 논리적으로 이 일을 해결한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너무 큰 기적이 나타난 것이에요. 실제로요, 철학이 아니고.. 그러니까 정신이 없었을 거예요. 남편이 구원받고 떠나는 일이 하루 만에 일어났는데 어찌 정신을 차렸겠습니까? 그래도 급히 일어나 띠를 띠고 신발 신고 따라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평소에 훈련이 되어 있어서 제가 한 것은 구원을 위해서 전화를 하라는 성령의 명령을 따른 것인데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절대적 이였어요. 왜냐하면 주님이 이렇게 쓰셔야 하는데, 제가 성령의 기대를 저버리고 너무나 기가 막혀서 아무것도 하지않고 울기만 했다면 얼마나 성령이 탄식 하셨겠습니까? 그러니깐 하루하루 말씀 듣고 행하는 일이 최고의 구원을 이루는 거예요. 날마다 말씀 보며 구원에 대해 생각하니깐, 남편이 쓰러졌는데 딱 구원 이 생각이 났어요. 그러니깐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복음의 신발을 신고 전신 갑주를 입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날 밤에 제가 그 무서운 쇠 철문이 열리는 구원을 제가 뭘 알고 생각 했겠어요. 구원받고 나자 마자 저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지요. 지나고 보니까, 이 베드로의 쇠 철문에 준하는 더한 어머 어마한 구원을 이루신 것인데요. 여러분중에는 제가 이렇게 구원, 구원하니까 그까짓 구원이 돈이 생기냐, 떡이 생기냐, 어떻게 쇠 옥문과 비교를 해, 하시는 분도 있더라구요. 구원은 안 보이니깐 정말 구원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그런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여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깨달음입니다. 무엇을 깨달았나요? 정신이 들은 베드로는 이제야 참으로 헤롯의 손과 유대인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줄 알겠다 하시면서 깨달았어요.  그러면, 벗어나게 한 게 단순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죽음이 두려웠다면, 옥에서 그렇게 깊게 평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큐티를 할 때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해야지 적용을 할 수 있어요헤롯으로 분한 사단이 나를 잡으려고 너무 기대하고 있는데, 같은 동족 유대인하고, 그들의 기대에 벗어났다는 거죠. 세 번째 투옥되면서 이것이 사단이 궤계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 다시는 넘어가지 않겠다는 성령의 깨달음이 온 것이죠. 그래서 사단의 기대는 믿음이 없는 헤롯같은 이 세상 왕과 유대인같이 믿음을 빙자한 세상 사람은 내가 계속 방황하고 의심하고 원망하고 의욕에 묶여 있기를 기대하는 거예요. 그래서 권세 많은 아버지와 믿음을 빙자한 욕심 많은 어머니가 겉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이겠지만, 조금 있으면 자녀를 사단의 기대에 부응해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부모가 됩니다. 그런데도 다들너를 기대한다.’ 하면서 사단의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는 부모나 부부 등이 많아요. 예전 부모들은 아이들을 야단치는 경우가 정직하지 못해서 남에게 피해 준다고, 오직 그래서 야단을 쳤는데, 요즘은 공부를 했어, 안 했어? 왜 성적이 떨어졌냐? 그것 때문에 야단치고 때리고 이러죠. 헤롯도 로마의 분봉 왕인데 부족한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베드로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 이잖아요. 그러니까 그가, 몰라요. 헤롯도 몰라요. 그러니깐 부모도 몰라서, 사단의 하수인으로 살고있다는 걸 자기가 몰라. 그래서 사랑한다면서 지옥으로 끌고 가는 미션을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기대가 시기마다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끝없는 세상 기대가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내 자신으로부터도 있어요. 사단이 활동하는 곳이 좁고, 더럽고, 있기 싫은 옥이기에 원망이 나오겠죠. 그런데 또 돈이 많으면 음란으로, 쾌락으로, 사단은 곳곳에서 묶여 있기를 기대해요. 그래서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나 자녀나 회사의 상사의 배후에 있는 사단의 궤계를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봅니까? 하나님의 섭리는 미리 보는 것인데, 그러면 우리 인생도 미리 볼 수 있어요. 그러려면 하나님부터 알아야죠. 사단을 물리치려고 하니까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교회를 나가도 유대인처럼 하나님을 알면 사울처럼 하나님 믿는 사람을 죽이죠. 그리스도인이 아는 것처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찾고 명령 찾고, 왜를 생각하면서, 여전한 방식으로 우리처럼 큐티를 하는 것은 사단의 궤계를 아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남편의 옥에 묶여 있었지만 그때는 나의 훈련을 위해서 묶어 놓으셨지만 남편이 천국 간 그날 밤 이후 하나님은 하루도 시간이 아까우니까 옥에 더이상 둘 필요가 없으니 옥에서 나오라고 곧장 사명으로 나가게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까 하루도 간병을 하지 않게 해주셨는데 정말 카이로스의 시간 하나님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을 것 같아서, 하나님이 상징적으로 하셨다는 생각입니다. 언제는 옥에 갇혀있는 게 필요할 때고 지금은 이제 그게 아니라는 거죠정신을 차린 베드로(PeterO는 마가(Mark)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Maria)의 집에 갔는데, 그때까지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베드로가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집이 마가와 그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네요극적인 구원을 이루었지 않아요? 쇠문에서 나왔다고요.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 이예요, 그럼 이걸 나눌 공동체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감옥 갔다 온 게 너무 창피해 지는 것이에요제가 남편 죽은 게 창피하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남편이 구원이 되었지만 나는 구원이 된 게 아니지요. 완전히 구원의 기쁨이 아니잖아요. 베드로도 감옥에 갔다 온 게 너무 창피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이게 이원론이죠. 남편의 구원은 이루어졌지만, 세상 시각으로는 이 젊은 여자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과부가 되었는데, 누가 그 구원을 기뻐할 수 있겠어요. 큐티는 그냥 나누는 것이 아니고 정말 구원을 간절히 바라고 하는 큐티 공동체가 있어야 돼요. 그런 사람만 기뻐할 수 있겠지만, 그들도 다들 놀라 가지고 저보다 정신이 없어 했죠. , 베드로는 120 문도가 기도하던 이 마리아의 집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 같아요. 큐티를 해도 이렇게 어떤 구원의 체험 큐티를 하지 않으면 정말 같이 기뻐하기가 슬퍼하기가 어렵습니다. 베드로가 죽음에서 살아나서 나누고 싶은 목장을 찾아간 것처럼 나에게도 영육간의 기쁨에서 살아난 걸 체험하는 그런 공동체가 없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믿는 사람은 자기 공동체가 있어요. 베드로는 이 사건으로 헤롯의 기대를 버렸다고 하잖아요. 세상의 기대를 완전히 내려 놓은 듯 합니다.

적용해 보세요.

 

(적용#1)

-세상의 기대를 벗어났습니까? 아직도 한 몸에 받고 있습니까? 그래서 세상을 내려놓았습니까? 아직도 세상을 꽉 움켜쥐고 있습니까?

 

부잣집 아들이지만 세상의 기대를 벗어난 마가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마가(Mark)는 로마 식 이름이고 요한(John)은 히브리식 이름이죠. 그런데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한 것은 이곳에서만 있는 특이한 경우입니다. 마가와 마리아가 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름부터 이렇게 하는 건 드문 경우 잖아요. 그런데 아버지가 안 나오는데 아버지도 마가복음 14장에 물동이를 지고 가는 그 사람 따라가는 곳에서 유월절을 베풀라고 했는데 그 집이 보면 마가의 집이라서 아버지도 믿음이 있었다고 보여요. 믿음 있는 아버지가 큰 집을 물려주고 가서, 이곳은 예수님의 유월절을 베푼 곳이 되었고요. 사도행전 1장에는 120 문도가 모여 기도하던 곳이고, 오순절의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났던 곳이고. 이후에는 초대교회의 집회 장소로도 쓰임 받았는데. 가장 위대한 일을 한 건 야고보(James)가 죽고 베드로(Peter)가 잡힌 후에 이들도 다 잡혀갈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생명을 내놓고 기도회를 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언제나 섬김이 한결같았어요. 유월절을 베푼 이후로 언제나 이집이 120명이 모일 정도로 컸어요. 이런 마리아의 섬김이 마가를 낳게 했다고 봅니다. 마가는 바나바(Barnaba)의 조카이고 헬라어와 라틴어를 못하는 베드로의 통역도 해주고,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어머니의 믿음으로 성경에 올라가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부잣집 아들답게 바울의 일차 선교 여행 때, 그냥 중간에 가버렸어요.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심한 다툼을 가져오게 한 장본인인데, 그러나 결국 베드로의 아들로 칭함 받고, 바울에게 유익이 된다고 다시 부름 받고, 완전 회복을 한 사역자예요.이 부잣집 아들은 그가 선지자도 제사장도 아닌데 마가복음을 썼다는 것은 너무 놀라운 일이라는 거예요. 이 부잣집 아들이. 그런데 이런 마리아의 다락방의 섬김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보니까, 제가 이 정도로 쓰임 받는 것도 20년이 넘게 큐티 모임을 했고, 우리들교회 태동이 시작된, 우리 집 큐티 모임의 섬김 때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가는 애굽에서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건립하고 감독까지 지내다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마가가 너무 교회에 잘 알려진 사람이기에,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이렇게 길게 수식을 했어요, 그 당시는 너무 유명한 분 인거예요.

(적용#2)

-여러분의 섬김이 마가의 다락방처럼 한결같으십니까? 기복이 심하십니까? 목장 한번 하려면 눈치를 보게 하는 다락방인가요?

 

2.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13~16)

로데(Rhoda)이야기를 좀 하려고 하는데요.

영접하러 나왔다는 것은 귀를 기울이다, 경청하다, 명령을 듣다 로데는 너무 말씀을 잘 듣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경청해요. 그런데 성도들은 갑자기 문을 두드리니까, 베드로도 지금 죽이려고 가두었는데, 이제 자기들도 잡아 가두려고 군사를 보냈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서로 쳐다보고 있는데, 로데라는, 여기 계집아이가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며 하나님 명령을 듣는 가장 선수이기 때문에, 여종이라서 나갔기때문에, 그렇게 위험한데 여종을 내보낸다면 이 사람들이 정말 인권이 없는 거죠. 그런데 가장 깨어 있기 때문에 나간다고 하면 그게 맞는 거 같아요로데는 신분이 노예이긴 했어도 그래도 그때 이스라엘 초대 공동체가 차별이 없었잖아요. 서로가 떡을 떼는 공동체였잖아요.

 

그니까 문밖에서 들리는 얼굴도 못봤는데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이 베드로인지 금세 알아들었어요. 너무 놀라고 기쁜 나머지 그냥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막 빨리 그냥 소식을 알려야 되겠다고 해가지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어요.

베드로가 밖에 와있다는 말을 듣자 곧바로 네가 미쳤구나 이러는 거예요. 70인 역에서는 이미쳤다가 하나님이 내리신 전쟁의 심판의 공포 아래 열방이 미쳐 날뛰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의미쳤다인 거예요안 믿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쟁이 나가지고 네가 미쳐 날뛰는구나. 자기네들은 마치 믿음 있는 것처럼같은 말을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그의 메시지를 부인하는 자들로부터, ‘귀신 들려 미쳤다도 이거예요. 베드로(Peter)가 바울(Paul)에게 그의 학문이 그를 미치게 하였구나, 또 그러잖아요? 바울이 방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필히 그건 미친 것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다 영적으로 썼어요. 맞습니다. 로데(Rhoda)는 예수님께 미쳤어요. 그리고 베드로에게 푹 빠져 가시고 미쳐 있기 때문에, 금세 목소리를 알아들었어요. 그건 영적인 것인데, 간절히 기도하던 그들은 로데를 육적으로 네가 미쳤구나, 그래서 이렇게 날뛰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런데도 로데는, 미완료과거로 성도들에게 다가가 그 사실을 말했을 때로부터 성도들이 그녀에게 미쳤다고 말하는 순간까지도 계속 힘써 말하며, 계속 확신을 가지고,  ‘베드로에요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로데는 계집 아이고 노예이고 종이에요.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주님에게, 베드로에게 푹 빠져있기 때문에 알아보잖아요. 바울도 정오의 회심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이 되었지요. 그러니 아무리 누가 박해하고 조롱한다 해도, 예수님께 미쳐 있기 때문에 살수가 있는 거예요우리가 다 예수님께 미치지 않아서 다 불평불만이 많은 거죠. 끊임없이 사람을 보기 때문에. 우리가 어딘가에 미쳐 있을 때는 숨소리만 들어도 알아요. 근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다들 사랑 찾아 삼 만리 합니다. 근데 인간의 사랑은 너무 금세 끝이 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대하는 것이 헤롯과 대제사장의 유대인이지만, 보니까, 오늘 성령이 기대하는 사람은 노예이고, 계집 종인 로데(Rhoda)인 거예요. 눈으로 보이는 것에 기대를 걸기에 인생을 실패하는 것입니다.로데는 지금 보지 않아도, 소리만 들어도 알아요.근데 베드로를 겉모습으로 나사렛 당이라고 했던 계집 여종을, 그때도 베드로를 제대로 알아봤어요. 그런데 그때는 고발하려고 했던 거였죠.   근데 대제사장 앞 이였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계집 여종을 무시하다가 그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 인생 최대의 배신을 했었잖아요. 그런데 세번 감옥에 갔다 오니까, 똑같은 나사렛당이지만 믿음으로 알아봐 주는 여종을 만나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예전의 수치를 회복한 것 같아요. 이 여종과 너무 친밀 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얼마나 유대인이예요.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잖아요. 편견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나 여종하고 친밀 했기 때문에 여종이 알아본 거예요 우리는 기대할 것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훨씬 잘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리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기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냥, 기대를 하다가 세상의 옥 속에서 강력하게 묶여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 이제 명절이 다가오잖아요. 그런데 계속 부모 형제의 기대에 갇혀 있어요. 언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고 아버지가 그럴 수가 있냐고 맨날 이렇게 장유유서 서열 이런 거 따지다가 이렇게 묶여 있어요. 그러니깐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이 이렇게 여러분들 따지는게 많아요. 예수 믿는 사람은 포기하고 내려놓으라고 이타적으로 살라고 좀 정직 하라고 그래야 하는데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옥중에 묶여 있다가 전적인 은혜로 구출되어서야 노예이고, 여종인 로데의 믿음을 인정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베드로가 옥에 갔다 오니깐 딱 로데를 만나게 해주셨잖아요. 저도 제가 깨닫는 말씀이 너무 신기해서 제가 이렇게, 이렇게, 깨달았어요, 그러면은 그냥 저한테 너무 은혜를 받으면, 제가 너무 고마워서 보면, 대부분 로데같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차별이 없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하고 친구 하는 거는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않겠어요? 아니, 아무리 해도미쳤구나하는 이런 사람과는 친구 될 수 없잖아요.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진짜 말하는 데 못 알아듣는 거예요. 아니, 너무 못 알아들어서 저한테 역차별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성령의 기대는 스펙이 없어도, 신분이 이상해도 주홍같이 붉은 죄를 지어도 로데 같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여종이여야 하고 죄를 많이 지어야 하고 이상해야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고넬료(Cornelius)같은 분도 있잖아요.

 

(적용 #3)

-여러분은 누구에게 미쳐 있나요? 누구를 미쳤다고 하고 있나요? 영적으로, 육적으로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 입에서미쳤구나하는 소리가 언제 나오는지 생각해보라.

 

그 예전에 예루살렘의 집들은 거리에 대문이 다 노출이 되어있어요.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문 앞에 선 거예요. 당연히 헤롯의 군사들이 잡으러 오지 않겠어요? 위기인데, 굉장히 긴박한 상황을 말해주는데 17절에서 베드로가 말하자마자 그 밤에 떠났거든요. 다른 곳으로 갔다고요. 로데가 자기를 알아봐 준 것은 좋았는데 문도 안 열어주고 그냥 가버렸잖아요. 그래서 계속 두드리고 있는 거예요 그 무서운 헤롯의 옥문은 저절로 열렸는데 내 사랑하는 동지가 있는 마가의 다락방은 굳게 닫혀 있었어요. 그러니 나는 언제나 나를 도와줄 사람이 나를 안 도와 주고, 안 도와줄 사람은 도와주고 그런 적이 있다니까요. 문 드리고 있는 주님을 밖에 세워두고 참 나의 수치라고 한 것처럼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와 똑같은 일이 예수님이 부활했을 때도 7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맨 처음보고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이 의심하고 믿지 아니했어요. 사도들은 그 말이 허탄 하듯이 들려서 믿지 아니하였다고 했어요. 그러니깐 마가복음 16 14절에 그들이 믿음이 없음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었다고 했어요. 예수님께 제자 훈련 받고 마음이 완악할 수 있어요? 그러니깐 이 사람들이 성령의 기대에 다 부합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의 생환을 알린 사람도 계집 종이였어요. 성령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은 바로 세상에서 아무것도 기대할 것 없는 사람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는 거죠. 제가 남편의 구원을 가지고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처럼 에스겔 말씀으로 외칠 때, 저는 에스겔에게 미쳐있는 거죠. 누가 뭐라고 해도 에스겔의 말씀으로 그날그날 여호와 하나님이 되어서 제 인생을 해석해주니까 너무 확실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간증을 하면 에스겔 말씀도 처음 들어보니까 그런데 에스겔 말씀이라는 것 조차 부인하고,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저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각계각층에서 골고루 만났어요. 그러니까, 저는 여종보다는 가진 것이 있어서. 여종은 자기를 무시해도 개념 치 않았는데, 그랬는데, 저는 개념하고 막 무시 받을 때마다 연민도 올라오고 슬프기도 했었어요. 내가 언제까지 에스겔 간증을 할 수 있을까? 생각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기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적용#4)

-여러분은 기대할 것이 없다고 무시하는 로데가 누구인가요? 기대할 것 없는 로데에게서 말할 수 없는 기적을 본 적이 있나요?

 

3. 잘 떠나는 것입니다.(17)

성도들은 너무 놀랐어요. 베드로(Peter)를 보고 그래서 로데(Rhoda)를 미쳤다고 할 땐 언제고 기뻐서 소리를 지르니까 베드로가 조용히 하라고 손짓(motioned with his hand for them to be quiet)을 했어요. 옛날 같으면 베드로도 같이 흥분 했을텐데 정신이 들고 깨달은 베드로는 완전히 자기 주제를 알았어요. 지금은 호기롭게 주를 전할 때가 아닌 거예요. 지금은 숨을 때 인 거예요. 때마다 다른 인도를 받게 하시는 건데요. 베드로를 살펴보면 성전에서 앉은뱅이도 고쳐주고, 옥에서 갇힐 때 채찍질 맞을 때에도 장로, 제사장에게 담대히 전했잖아요. 그래서 3000~ 5000명이 돌아왔어요. 그러나 이제는 옥문이 열렸는데 이걸 간증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번은 숨는 거예요. 자기는 나서지 않는 거예요. 엄청난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헤롯 왕을 사실 넘어섰잖아요. 그런데 주께서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주께서 하던 일만 말하고 이 말만 전하라 하고 떠난 거예요. 자기가 말하지 않고 전하기만, 나는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주셨으나 내 자랑 같아서 나는 어디를 가도 안전하다. 이거 믿음 아니에요? 이제 베드로에게 기적의 역할을 너무 많이 주었기에 이제는 바울의 단계인 말씀이 도입되어야 하는 단계이기에, 자연히 숨게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한편 베드로가 야고보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라고 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처음에는 예수님 안 믿었죠. 그런데 고린도 전서 15 7절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야고보에게 특별히 보여줬다고 나옵니다. 자기 동생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셨는데, 예수님이 한번 나타나서 보여주니까 야고보가 믿고 야고보서를 쓰고 아주 예루살렘 교회에서 아주 영향력이 큰 지도자 역학을 했어요. 예수님의 영향력이 매우 크기때문에 그러면 야고보로 인해서 흘러 떠내려가는 조선왕조가 될 뻔 했지요. 하지만 야고보는 그의 권한을 사도들에게 점점 옮겨주었습니다. 야고보가 옮겨주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일개 사교로 전략했을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된 후 죽음을 불사하고 결사항전하면서 돌격 했을텐데 그 밤으로 떠나 버렸어요. 촛불이 바울에게로 넘겨지게 됩니다. 자 근데 간절히 기도했던 이들이 로데에게 미쳤다고 하면서 불신앙을 보이니깐 이거는 약간 성령의 기대에 못 미치는 거 같아요. 그런데 또 이들에게 내려온 기도의 응답은 보니깐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가 갇히고 또 떠나고 이런걸 생각하면 너희들이 형편없어도 굉장히 수준이 높아졌잖아요. 그래서 5절에 성령의 간절한 기도를 했잖아요근데 이 간절한 기도의 언어가 겟세마네의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 기도와 같은 단어이기때문에 이거는 너희들이 성령의 부응에 기대한다, 예수님과 같은 간절한 기도를 했으면 이건 정말 응답 이잖아요. 이게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면 큐티가 안 되는거죠베드로를 생각해 보면, 이때가 떠날 때라는 것을 알았어요. 4장에서는 베드로가 옥에서 나온 후 성도들이 기도하고는 땅이 진동했다고 했어요. 근데 여기는 기도했는데, 불신앙으로 로데를 미쳤다고 했으니까 거기의 수장이 베드로잖아요. 베드로도 보면 성령의 기대에 살짝 못 미쳤기 때문에 떠나야 하는 것도 있고 여기까지가 베드로의 역할이라면, 그 다음에는 가장 큰 기적의 주인공으로 박수 받는 자리매김에서 베드로를 떠날 수 있게 해주신 것이 이게 엄청난 베드로에 대한 성령의 기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떠날 때를 아는 것은 성령의 기대를 가장 만족시켜주는 것 일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 인생은 똑같기 때문에 무작정 베드로가 자기 의로 떠난 것은 아니고요. 헤롯의 군사들이 자신을 찾을 것이기 때문에 이때는 피해야 하는 거예요., 환경으로 싸인을 받았어요.베드로는 일 이년 후에 안디옥에 나타났다가 예루살렘 공회에 나타났다가 사역으로는 여기가 끝인 지점입니다. 물론 그때 헤롯 아그리빠는 죽었지만 아그리빠가 죽었기때문에 내가 다시 나타난다 이런 거 안해요. 뒷모습도 아름답게 베드로가 사라졌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베드로가 그 대단한 옥문에서 헤롯을 물리치고 나왔는데 베드로하고 마지막 떠나는 것의 연결점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계집 여종 로데(Rhoda)였다는 거예요. 로데만이 베드로를 알아봐 줬어요. 여러분이 얼마나 사람을 외모로 보는지를 아셔야 하는 거예요. 로데가 베드로의 완전히 수호신역할을 해서 진짜 알아본 사람이 로데 밖에 없구나 나중에 나를 알아봐 줄 사람이 누구도 아닌 로데같은 진짜 주님을 만나 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용 #5)

-가장 박수 받을 때가 떠날 때라는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Epilogue>

1)  성령의 기대는 세상의 기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2)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게 하신다잘 떠나는 것이다

3)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다

4)  세상의 기대, 헤롯의 기대를 벗어나게 하시고 기대할 게 없는 자를 기대하게 하시고 기적의 주인공을 떠나게 하신다

5)  위대하신 주님이 아니고서 이렇게 할 수 없다

6)  이런 성령의 기대를 내가 성령의 기대를 하고 주는 사람이고 기대에 부흥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7)  신앙은 철학이 아니고 실제이다

8)  십자가의 피가 맘속에 들어가 큰 증거가 되어 그 피로 내 죄를 씻어 주고 은혜가 되는 것이다

9)  구원을 경험해 보지 못하면 구원으로 돈이 생기냐, 떡이 생기냐?’고 한다

10) 부모가 사랑하다면서 자식을 지옥으로 끌고 가도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세상의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11) 사단은 우리가 곳곳에서 묶여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12) 하나님의 섭리는 미리 보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13) 사단의 궤계를 아는 최대의 방법은 날마다 큐티하는 것이다

14) 구원을 향한 체험이 큐티이며 구원을 간절히 바라면서 큐티를 해야 하는 것이다

15)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실망, 실족, 실패하는 것이다

16) 세상의 기대에서 못 벗어나니까 세상적인 기대에 강력하게 묶여 있는 것이다

17) 세상적 기대라는 옷 속에 갇혀 있으니까 언니야, 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는 것이다

18)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 기대를 내려 놓고, 이타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마음이 부요하면 정말 말씀이 안 들리는 것이다

19) Herod의 철문은 저절로 열리는데 성도의 집 문이 안 열리는 것은 ironical한 것이다

20)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을 허탄하다고 보는 제자들에 대하여 예수께서 완악하다고 하신다

21) 성령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은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을 기대하는 것이다

22) 성령의 간절한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와 같은 것이다

23) 가장 큰 기대의 주인공을 박수 받게 해주고 떠나게 한 것이 엄청난 성령의 기대이다

24) 헤롯 군사들의 추격을 받고 있는 베드로는 그 환경으로 싸인을 받아 사라지며 퇴장한다

25) 베드로 퇴장의 연결점이 로데(Rhoda)이므로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26) 세상 권세를 쥔 헤롯이 죽이려 해도 헤롯(세상 권세) 이야기만 듣고 싶어한다

27) 베드로가 멋있는 것은 로데와 침했다는 것이다

28) 하나님은 기적의 주인공일 때 떠나게 하시며 이것이 성령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이다

29)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로데처럼 어떤 말도 잘 들을 수 있는 것이다

30) Herod(세상 권세)의 기대는 베드로(예수님의 제자/성도)가 죽는 것이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