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9. 3. 21. 13:11

[제5(사마란치 IOC위원장과 글로벌스포츠외교 편) 윤강로의 발로 뛴 스포츠외교 "총성 없는 전쟁/세계를 움직인 스포츠 계의 큰 별들]

 

*영원한 올림픽전설 사마란치 IOC 위원장(Eternal Olympic Legend-Juan Antonio SAMARANCH, IOC President)과 글로벌스포츠외교 이모저모

 

사마란치 IOC명예위원장이 2010 421일 현지시각 오후 125(한국시간 수요일 오후 825)노환 및 지병인 심장질환(관상동맥기능부전: coronary insufficiency)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퀴론(Quiron)병원에서 타계한지 벌써 9주기(2019 421)가 다가온다.

 

 

          (고 사마란치 IOC위원장 및 아들 Samaranch, Jr.)

 

■신상 명세: -1920 7 17일생(원숭이띠)(1920.7.17~2010.4.21/향년 89)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

-스페인어, 불어, 영어, 초급 러시아어 및 독어 구사

-La Caixa(라 까이사)은행 총재 역임

-소련 및 몽고 주재 스페인 대사역임(1977-1980)

-예술 및 스포츠 우표 수집 취미

-IOC 위원장 21년간 역임(1980-2001)

-IOC 종신 명예위원장

-IOC 박물관 이사장

-IOC 수집가 분과 위원회 위원장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별세한 다음날 당시 현지시각 2010 422일 목요일 오전 10(한국 시간 오후 5)바르셀로나 주정부 청사에서 추모식이 시작되었고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조문객 문상이 있었다.

당일 오후 6(한국시간 423일 새벽1)바르셀로나 대성당에서 장례식 및 추도 미사가 진행된 바 있다.

향년 89.
2
개월 28일 모자라는 향년 90세였다(just a few months shy of his 90th birthday)

 

사마란치 IOC명예위원장은 1920 717(원숭이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1966
IOC위원에 선출되었다
.
1980
-2001(21년 간) IOC위원장
.
2001
년 이후 IOC종신 명예위원장, IOC올림픽박물관 이사장, IOC수집가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
스페인어, 까딸루냐어, 영어, 불어, 초급 러시아어 및 독어구사
.
부인 Maria Theresa Salisachs 2000년 시드니올림픽개회식 전날 사망
.
가족으로는 2001 IOC위원으로 선출 된 Juan Antonio Samaranch, Jr(Juanito로 불리움) 과 딸 Maria Theresa와 손자/손녀.

(2001년도 IOC위원에, 2012년에는 IOC집행위원에 선출 된 사마란치 주니어 Juanito< IOC부위원장 겸 Beijing2022동계올림픽 IOC조정위원장과 함께)

 

 

1.   사마란치 IOC위원장과 서울올림픽유치성공이야기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1981 9월 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 결정 시 초반에는 대한민국의 서울보다는 일본의 나고야 쪽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선호하였다가 후반부 아디다스(Adidas)社의 다슬러(Horst Dassler; 작고) 회장의 지원과 한국 유치 대표단의 신출귀몰한 「천둥번개작전」(Thunderbolt operation)에 힘입어, 서울이 나고야로 52:27로 누르고 승리하자, 결국에는 열렬한 한국 마니어(Mania)가 되고 만다.

 

(좌로부터 Dassler Adidas회장과 이영호 당시 체육부장관 겸 SLOOC집행위원장/동 베를린 1985)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당시 불어로 한 발표 장면을 리바이벌(revival)해 보자.

Aujourd’hui, nous avons choisi la ville pour la 24 ème Olympiade qui reviendra a la ville de Séoul.(쎄울). Séoul a gagné 52 et Nagoya 27."

(Today, we have chosen the host city for the Games of the 24th Olympiad which will be held in the city of Seoul. Seoul obtained 52 votes and Nagoya 27.)

(오늘 우리는 제24회 올림픽 대회 개최 도시를 선출했습니다.

그 도시는 바로 “쎄울(서울의 불어식 발음)”입니다. 서울은 52표를, 나고야는 27표를 각각 획득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1981 9 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의 이 통쾌한, 상쾌한, 명쾌한, 유쾌한 장면을 두고두고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 발표 당시 故 정주영 유치위원장, 유창순 총리, 박영수 서울시장, 조상호 KOC 위원장, 최만립 KOC 명예총무, 전상진 KOC 부위원장 등 유치대표단 전체가 환호하는 장면이 TV화면에 비추어졌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환호하는 장면에 약간의 시차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국제 스포츠 계 인사에 의하면 사마란치 위원장이 불어로 투표결과를 발표한데다, 「서울」을 「쎄울」이라고 발음하자 초긴장 상태였던 우리 대표단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위의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했을 때 짧은 간격(interval)을 두고 비로소 확인하면서 환호성을 지른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1981 930일에 올림픽 개최국으로 결정되었다. 1988 102일 서울올림픽대회가 전례 없는 대성공을 거두고 폐회식을 갖는 자리에서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서울 올림픽대회를 「20세기 최고의 올림픽대회」(The most Universal Games and Best Games Ever!)라고 극찬하였다.

위대한 대한민국! 서울 올림픽이여! 영원하리라!

 

2.   사마란치 IOC위원장의 서울올림픽 및 한국 사랑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서 35차례나 한국을 방문해 방문 횟수로 최다 신기록을 수립한 장본인이 되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1920717)은 원숭이띠로서, 노태우 전직 대통령(1932년생), 프랑스와즈 쯔바이펠(Mme. Fransoize zweifel) IOC 행정담당 사무총장(IOC 박물관장 역임 1944년생) 및 공로명 2010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외무부 장관 역임/1932년생) 및 필자(1956년생)와 같이 띠 동갑 또는 소위 말하는 「갑장; zodiacally same age. 갑장끼리는 서로 잘 통하는 법이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노태우 전직 대통령(SLOOC/Seoul Olympic Organizing Committee/서울 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역임)과 특히 친밀하였고 그 덕분에 IOC SLOOC은 밀월관계(Honeymoon Relations)를 유지함으로 올림픽 운동 사상 최고의 올림픽대회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사마란치 위원장과 쯔바이펠 IOC 전 행정 담당 사무총장과도 명콤비로써 IOC의 황금기의 두 주역으로 그 진가를 발휘한 바 있다.

필자도 노태우 전직 대통령께서 SLOOC 위원장 및 KOC위원장 재임 시 통역도 해드렸고, 해외출장도 같이 다니면서 서로 상당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쯔바이펠 IOC 전 사무총장과는 1999년 제109 IOC 서울총회를 조직하는 동안 이해타산을 초월한 인간적인 협력관계를 지속하여 IOC 서울총회를 지금까지 가장 훌륭하게 개최된 IOC 총회(IOC 총회 담당 Ms. Tanya IOC 직원의 전언에 의하면) IOC 사무국 내에서 평가 받기도 했다.

공로명 2010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께서도 필자와는 유치관련 국내외 업무 및 출장 등 모든 업무 면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 후원자 이상의 훈훈한 인간적 도움을 주신 분이다.

 

(좌로부터 최만립 KOC부위원장 겸 IANOC회장, 공로명 평창2010유치위원장 겸 전 외무부장관, Mario Pescante EOC회장 겸 이태리 IOC위원, 평창2018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 필자)

 

 

3.   사마란치 IOC위원장의 상세 면모와 일화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성격이 꼼꼼하고(meticulous), 섬세하고(delicate), 치밀하고(elaborate), 정확하고(accurate), 매사 조심스럽고(careful and cautious), 정교하고(exquisite), 절도 있고(moderate), 총명하고(intelligent), 외교적이고(diplomatic), 시간관념이 철두철미하고(perfect sense of timing), 건강관리가 철저하고(perfect control of health care; trying to be in good shape), 준비성이 확고한(thoroughly prepared) 반면, 계산적이고(calculative), 냉철하고(cool-headed), 냉정하고(calm), 현실적이며(realistic), 빈틈없고(shrewd and prudent), 명예 지향적(honor-chasing)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올림픽 헌장(Olympic Charter)에서 삭제하였으며, 상업주의(Commercialism)와 프로화(Professionalism)를 통해 올림픽 운동(Olympic Movement) 이란 거대한 시스템(system)에 풍부한(abundant; rich) 재정적 연료(financial fuel)를 제공하여 올림픽 대회가(Olympic Games) 평화 시 인류 최대 제전(the Greatest Festival of mankind in peace time)이 되도록 확고부동한 재정적 근간(firm and steady financial infrastructure)을 이룩한 불세출의(unparalleled) 인물로서 근대 올림픽 창시자(Renovator of modern Olympic Games)인 쿠베르탱 남작(Le Baron Pierre de Coubertin ; 프랑스1896~1925)이래 최고의 올림픽 운동의 개척자(pioneer)이자 공헌 자(Contributor)라고 할 수 있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생활습관의 일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마란치 위원장은 언제나 정해진 이른 시간에 기상(wake up) 및 취침(going to bed)하여 규칙적인 운동(regular exercise), 소식(small portion of food; light eating), 금주(temperance) 및 금연(Refraining from smoking)을 실천하여왔다고 한다. 여행 중 항상 아령(dumbbells), 줄넘기(rope skipping), 고무 타이어(elastic material/ 호텔방문손잡이 양쪽에 걸쳐 걸어 놓고 두 손으로 당기는 운동용)등을 지참하고 다닌다고 1980년 중반 방한 시 신라호텔 본인 객실에서 KOC대표들과 식사를 하면서 소개한 바 있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자신이 주재하는 IOC회의는 물론 전 세계 주요 스포츠 관련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하기를 즐겼으며, 회의 시 본인의 연설문(speech) 내용을 회의 참석 직전까지 방에서 수없이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어서 외우다시피한 다음에야 비로소 연설에 임하는 철두철미함의 대명사(a synonym for thoroughness)로서의 완벽함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모든 회의 주재 시 회의참석자들이 준비되지 않고 부적절(inappropriate; improper)하거나, 주제 내용과 상응하지 않는 어떠한 질문이나 발언을 할 경우, 가차없이(ruthlessly) 무안을 주거나 발언권을 중지시키는 관계로, 사마란치 위원장이 주재하는 어떠한 회의에서는 특별히 준비되지 않은 질문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또한 완벽(Mr. Impeccable)과 카리스마(Mr. Charisma)의 화신(incarnation; personification)인 자신이 의도하는 바대로 안건을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므로 IOC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자신의 의도대로 결정되지 않을 경우, 커피 브레이크(coffee-break)를 갖고, 반대한 위원을 상대로 재설득 하는 등 각개격파(defeating one by one)한 후 회의를 속개하여 기어이 목적 달성(accomplish his purpose)을 이루고야 마는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총회 등에서 중요한 안건이 논란의 여지가 있을(controversial) 경우에는, 반드시 총회 전에 논쟁의 잠재 주인공과 사전에 개별 미팅(individual meeting)을 통해 타협 및 제압(control through compromise)하고 나서 회의를 재개(resume)한 관계로 언제나 승승장구(pressing hard on the heels of the enemy)하는 동방불패 아니 동·서방불패(The Invincible in the world)로서 군림(dominate)할 수 있었으리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If you know yourself and your own enemy as well, you will win every battle).

 

1)   태권도 올림픽종목포함 추진노력 일화

 

그러면 이러한 막강(powerful)하고, 도전 받아보지 않은(unchallenged) 대부인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완벽하기(perfect, flawless, and impeccable)만 한 것일까?

1992 11 ANOC 총회(General Assembly of the National Olympic Committees; 국가 올림픽위원회 총연합회 총회)가 개최되었던 멕시코의 세계적 휴양지 아까불꼬(Acapulco)당시로 돌아가 보자.

ANOC 총회는 3일간 계속되었고 마지막 날인 4일 차에 IOC 집행위원회와 NOCs가 합동회의를 했는데, 마리오 바즈케즈 라냐(Mario Vazquez Rana, 멕시코, IOC 집행위원) ANOC 회장과 함께 자리한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였고 각국 NOC 대표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20세기 가장 훌륭한 올림픽 대회(The Best Games Ever)로 평가 받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국 NOC 대표로서 이에 상응하는 질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당시 함께 KOC 회의 대표로 참석했던 故 김종열 KOC 위원장 겸 체육회장과 최만립 KOC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께 건의하였더니, 필자더러 질문을 하되, 반드시 불어로 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 당시 질문 내용 중 다가오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대회에 새로 채택된 정식종목 추가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이던 바, 필자는 우리 국기인 태권도가 아시안게임(Asian Games), 범미주대회(Pan American Games), 아프리카대회(All African Games), 카리브연안대회(Caribbean Games), 지중해대회(Mediterranean Games) 등 대륙별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실속 있는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의 지속적인 개최, 전 세계 5개 대륙에 120여개국이 넘는 회원국 수의 고른 분포와 보급 그리고 태권도의 인기도, 기술적인 탁월함, 종목의 우수성 등을 내세워 주최국인 미국이 선호한 골프와의 경합 시 기술적인 측면, 인기도, 종목의 보급도, 경기실적 등 모든 면을 고려하여 신중한 결정을 내려 주는 것이 어떠냐는 요지의 질문을 불어로 하였다.

이에 대해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국제골프연맹에서도 아직 유사한 요청을 공식적으로 한 바 없노라고 우회해서 직답을 피해갔다.

또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또는 IOC에서는 KOREA로만 공식 호칭을 쓰도록 되어 있음)을 남한(South Korea)이라고 하였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호칭은 ROK(Republic of Korea)가 아니라 KOR(Korea)이다

 

필자는 답변과 대한민국 호칭이 만족스럽지 못해(far from being satisfactory) 국가별로 커다란 번호가 쓰인 번호판을 다시 높이 들어올려 보충확인질문(Point of clarification)요청을 하였고, 사마란치 위원장은 이를 보고도 일부러 못 본 척하였으며, ANOC 회장(Mario Vazquez Rana), IOC 사무총장(Francois Carrard/스위스)의 귀띔도 무시하면서 계속 딴소리만 해대자(필자는 계속 번호판을 높이 치켜들고 좌우로 흔들면서 발언권 요구행위를 계속함) 참석한 전 세계 NOC 대표들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듯 어색한 웅성거림이 시작되고 결국 어수선해졌다.

이때, 단상에서 이를 지켜보던 Kevan Gosper 호주 IOC 집행위원(ONOC: 현 오세아니아 NOC 연합회장)이 옆자리에 앉은 동료 김운용 IOC 집행위원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자 김운용 총재께서는 필자에게 그만 번호판을 내리라는 손짓을 하였고 나는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이자 한국 IOC 위원의 신호라 무시할 수 없어 손을 내렸다.

분위기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사마란치 IOC 위원장으로선 당혹스러웠으리라.

아무리 날고뛰는 사람이라도 천적(Natural Enemy)은 있는 법.

2)   코카콜라와 카페인에 얽힌 도핑금지약물리스트 비화

 

그 후 4년 뒤인 1998 5월 제11 ANOC 총회가 연결된 스페인 남부의 유명한 관광 휴양도시인 세비야(Sevilla)로 돌아가 회상해 보자.

총회 마지막 날인 제4일째에는 관례대로(customarily) 어김없이(without fail) IOC 집행위원회와 NOCs간의 연석합동회의가 있었다.

회의 3일 내내 토론과 논의에 지치기도(exhausted)했지만, 각국 회의대표 테이블 앞에 놓인 IOC가 준비하여 배포된 두꺼운 서류 파일(thick dossier File)을 펼쳐 보는 순간, 거의 누구나가 그저 대강 주요 핵심 내용(main highlights)만 간추려 보고되어 빨리 끝내기를 바라고 있었으리라.

사마란치 위원장 역시 기조발언(keynote remarks)을 통해 IOC 각 분과위원장들로 하여금 핵심사항만 간략히 보고토록 당부하였다.

안건(Agenda)순서에 따른 IOC 부문별 책임자들의 보고가 계속되었다.

먼저 뻬레 미로(Pere Miro) NOCs 및 올림픽 솔리다리티(Olympic Solidarity)국장, 두 번째로 질베르 펠리(Gilbert Felli) IFs(International Federations; 국제경기연맹) 스포츠 국장, 세 번째로 케바 엠바예(Ka Mbaye) 스포츠 중재재판소(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위원장(현재 IOC 윤리위원장), 네 번째로 의무분과위원회(Medical Commission)위원장으로써 지금은 고인이 된 벨기에의 알렉산더 드 메로드 왕자(Prince Alexandre de Merode)순으로 보고가 진행되었다.

지속적으로 간략한 보고가 이어졌고 총회장(Floor)에서의 질문은 예상대로 전혀 없었다.

당시 IOC마케팅 분과 위원장인 캐나다의 딕 파운드(Richard Pound/편집자주: 리차드의 애칭으로 Rick, Ricky, Dick을 혼용하여 사용함) 대신 IOC 마케팅 국장인 마이클 페인(Michael Payne; 현재 Formula 1 회장 특보로 활동 중) IOC 마케팅 사업 및 향후 사업전개방향과 정책기조에 대하여 보고한 내용은 “The IOC will not devalue the Olympic image simply in order to maximize its revenue generation."(IOC는 향후 단순히 수입 증대를 극대화할 목적으로 올림픽 위상(이미지)을 평가절하하는 행위를 지양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내 귓전에 들어 왔으나(caught my ears) 그 내용을 질문과 연계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IOC 의무분과 위원장인 알렉산더 드 메로드 왕자가 약물복용 금지리스트(Prohibited Substance List of Doping)와 관련된 내용을 따분하게 설명하자, 총회장의 각국대표들은 그저 짧게 보고되고 지루한 내용이 빨리 끝나기만 바라는 분위기였다.

필자는 무심코 아주 두꺼운 보고서를 훑어보다가(pass an eye over the contents of the report) 금지약물리스트 제3등급(class)에 알코올(Alcohol), 마리화나(Marijuana)가 포함되어 있고, 1등급(class) 스테로이드(steroid)와 함께 카페인(caffeine)이 등재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루한(boring) 보고가 끝났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형식적으로 질문이 없느냐고 서반아어로, 불어로, 영어로, 확인하였다.

바로 그때 필자는 마케팅 보고 내용과 의무 보고내용을 연계하여 질문 내용을 재빨리 구성한 후, 한국을 나타내는 번호판(Number Plate)을 높이 치켜들었다.

몹시 의외라는 표정으로 사마란치 위원장은 발언권을 주었다.

「누메로 꾸아렌따 이 쎄이쓰(Number 46)꼬레아(한국)!

200개국의 올림픽위원회 대표들과, IOC 집행부, IOC 사무국, 외신기자들의 시선이 모두 필자에게 꽂혔다.

따가 왔지만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다음은 필자의 질문내용: 우선 서반아어로 발언권에 대해 감사하다고 화답하였다.

Gracias, Senor Presidente, por la oportunidad a hablar en esta reunion de l’assemblea general de l’ACNO."

이어서 불어와 영어를 섞어서 조목조목 상호 불합리한 보고 내용에 대해 설명하였다.

요약해서 간추리면, 「두 가지 보고내용을 듣고 나니 상충하는 면을 느꼈다.

우선 마케팅 보고 내용에서 돈벌이를 위해 올림픽 이미지 손상시키지 않겠다는 정책을 표명한 반면, 의무보고내용에서 금지약물 리스트에 알코올과 마리화나가 포함되어 있다.

각종 대륙별 스포츠대회에는 인류 건강에 좋지 않은 담배(cigarette)제조 회사들이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현실은 IOC가 당면과제로 풀어야 할 문제점들이다.

특히 카페인(caffeine)이 금지약물리스트의 제1등급에 분류되어있는데, IOC의 제1등급 스폰서 그룹에 포진되어있는 음료 카테고리는 선수들의 도핑테스트 시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부적절한 선택으로 알고 있다」고 전제하였다.

그 순간 사마란치 위원장은 전광석화와 같이 필자발언에 급제동을 걸면서, You write to me, and we will discuss it at the next IOC Executive Board meeting.(본인에게 그 내용과 관련 서면으로 편지를 쓰면, 차기 IOC 집행위원회에서 그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라고 더 이상의 문제 진전을 막았다.

필자는 귀국 후, 상세 내용을 구체화하여 서한을 보냈지만 그 후 사마란치 위원장 퇴임할 때까지도 답장을 못 받는 미결사안으로 남게 되었다.

그 후 자크 로게 현 IOC 위원장(2001~)재임 후 필자가 끊임없이 제기했던 카페인(Caffeine) 2002년 쿠알라룸푸르 ANOC 총회 시까지 지속한 필자의 집요한 문제제기 후 조용히 금지약물리스트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찌 보면 필자가 카페인을 올림픽운동 史에서 금지약물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켜 준 장본인임이 틀림없다고 자부한다.

또한 올림픽대회에 가장 적극적이고 오래된 스폰서인 코카콜라가 올림픽 Top 스폰서로서 생존토록 금지약물 논란거리, 시빗거리를 원천 봉쇄하는데 6년간 주도적 역할을 해준 필자의 기여도에 대하여 코카콜라 회사로서는 뭔가 필적하는 응분의 대가를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이후 전 세계 커피산업이 유난히 활황장세를 띠었고 성업 중이니 커피제조사들로부터도 표창장(?)을 받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재임 기간 중 IOC 회원국(당시 203개국) 전체를 방문할 정도로 여행가(world traveler), 퇴임 후인 아직도 IOC 수집가 분과위원회 위원장 직을 맡고 있을 정도로 수집가(collector)로서, 특히 우표수집(stamp collecting/philately)에 마니아적 성향이 있음으로 해서 각종 IOC 회의 때 회의장 주변에 우표전시회를 부대행사(subsidiary event)로 갖곤 했다.

고향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소재한 스페인의 저명한 은행(La Caixa)의 총재직을 역임한 은행가(banker), 운동가(sportsman), IOC 올림픽 박물관 건립에 필요한 천문학적 기금을 모집한 기금 조성가(fund-raiser), 올림픽 대회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a goose that lays the golden eggs)가 되도록 만든 만능 사업가(all-round businessman)이며 소련 및 몽골 주재 스페인 대사를 역임한 외교관(Diplomat)이요, 전쟁 발발 지역에 스포츠와 올림픽 운동을 통한 평화 정책을 위해 동분서주(always on the move)하는 평화주의자(pacifist), 그야말로 팔방미인(Jack of all trades)의 기질을 타고난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인물(a great Humanbeing)임에는 틀림없으리라.

 

4.    故 사마란치 IOC위원장 1주기(2011 421)추도 및 그 분에 대한 회고 스케치 이모저모

 

" 2011.4.21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성공에 줄기차게 기여하시고 한국방문만 40여 차례 함으로써 이 분야 진기록을 세운 바 있는 故 사마란치 전 IOC위원장이 돌아 가신지 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1981 930일 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지도 올해로 3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금년에 서울올림픽공원 내에 사마란치 IOC위원장 흉상건립을 제안하고 싶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1 421일이었다. 사마란치 IOC명예위원장이 2010 421일 현지시각 오후 125(한국시간 수요일 오후 825)노환 및 지병인 심장질환(관상동맥기능부전: coronary insufficiency)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퀴론(Quiron)병원에서 타계한지 벌써 1주기가 된 날이었다.

2010 422일 목요일 현지시각 오전 10(한국 시간 오후 5)에는 바르셀로나 주정부 청사에서 추모식이 시작되었고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조문객 문상이 있었다.

당일 오후 6(한국시간 423일 새벽1)바르셀로나 대성당에서 장례식 및 추도 미사가 진행된 바 있다.

향년 89.
2
개월 28일 모자라는 향년 90세였다.(just a few months shy of his 90th birthday)


사마란치 IOC명예위원장은 1920 717(원숭이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1966
IOC위원에 선출되었다.


1980
-2001(21년 간) IOC위원장.
2001
년 이후 IOC종신 명예위원장, IOC올림픽박물관 이사장, IOC수집가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스페인어, 까딸루냐어, 영어, 불어, 초급 러시아어 및 독어구사.
부인 Maria Theresa Salisachs 2000년 시드니올림픽개회식 전날 사망.
가족으로는 2001 IOC위원으로 선출 된 Juan Antonio Samaranch, Jr(Juanito로 불렸다)


30년 간 사마란치위원장을 지켜보고 함께 업무도 해 본 경험에비추어 본 바에 의하면 그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꼼꼼하다.(meticulous)
2.
섬세하다.(fine and delicate )
3.
치밀하다.(elaborate)
4.
정확하다.(accurate)
5.
매사 조심스럽다.(careful and cautious)
6.
정교하다.(exquisite)
7.
절도가 있다.(moderate)
8.
총명하다.(intelligent)
9.
영리하다. (clever)
10.
명민하다.(smart)
11.
외교적이다.(diplomatic)
12.
시간관념이 철두철미하다.(punctual and having perfect sense of timing)
13.
건강관리가 철저하다.(perfect control of health care, trying to be in good shape at all times)
14.
준비성이 확고하다.( thoroughly prepared)
15.
계산적이다.(calculative)
16.
냉철하다.(cool-headed)
17.
냉정하다.(calm)
18.
현실적이다.(realistic)
19.
빈틈이 없다.(shrewd and prudent)
20.
명예 지향적이다.(honor-chasing)
21.
정치적 수완가다.(politically skillful)
22.
반면 따뜻한 인간미도 있다.(warm-hearted)


 


 (1991
년 바르셀로나 개최 ANOC총회 리셉션 장에서)


사마란치위원장의 행적과 치적을 요약해 보자.

1.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올림픽 헌장(Olympic Charter)에서 과감히 삭제하였다.
2.
올림픽운동에 상업주의(commercialism)와 프로화(professionalism)를 접목시켰다.(Sham Amateurism/Shamateursim'사이비 아마추어'란 용어 탄생)
3.
반면에 올림픽에는 프로 아마를 총 망라하는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하게 되었다.
4.
이를 계기로 올림픽운동에 풍부한 재정적 연료(financial fuel)도 확보하였다.
5. IOC
를 재정적 파산상태에서 부자기관으로 탈바꿈 시켰다.
6.
올림픽마케팅 및 TV중계권 수익금을 205개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국제연맹(IF)에 재 배분하였다.
7.
올림픽솔리다리티(Olympic Solidarity)를 통한 개발도상국 선수, 코치 및 행정가 등 훈련 및 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였다.
8.
각국 NOC재정지원으로 올림픽에 지구 촌 모든 나라가 100%참가토록 제도적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9.
여성참여지분(20%)을 높였다.(1980년대부터 여성 IOC위원 선출하여 현재 17명의 여성IOC위원 활동 중)
10.
스포츠중재재판소(CAS: 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설치 및 가동에 견인차역할을 하였다.
11. IOC
선수위원회를 신설하여 선수들이 IOC정책결정과정에 참여케 하였다
12.
올림픽박물관 건립기금모금에 견인차역할을 하였다.

 

(고 박세직 SLOOC위원장이 올림픽박물관 건립기금을 Beitz독일 IOC부위원장/중앙에게 전달/우측이 사마란치 위원장)

13.
올림픽박물관초대 이사장으로 또한 IOC올림픽수집가 분과위원장으로 올림픽운동확산에 기여하였다.
14.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을 수습하고 광범위한 50개 항목 IOC개혁안을 마련하였다.(IOC위원들의 올림픽유치도시 방문금지조항 등)
15. IOC
본부건물 신축 및 현대화를 이룩하였다.
16. 2000
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에 역사상 최초의 남북한 선수단 공동입장을 성사시켰다.
17.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 되도록 파격적이고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18. IOC위원자격을 귀족/왕족 및 고위 정치경력자 이외에 선수, 여성, 스포츠행정가, 기업인, 코치,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로 보편화 시켰다.


19.
올림픽을 스포츠경기위주에서 문화행사뿐만 아니라 교육적 가치까지 포함하도록 제도화 하였다.

20. 올림픽보이콧을 종식시켰다.


21.
올림픽사상 최초로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각국 참가공식초청장을 IOC가 직접 발송하였다.

(좌로부터 박세직SLOOC위원장, 사마란치, 김종하 KOC위원장, 김운용 IOC위원/서울올림픽개최국인 대한민국선수단 참가공식초청장을 김종하KOC위원장이 제1호로 받았다./로잔 IOC본부 1987)

22.
서울평화상 제1호수상자다.

 


 


 



사마란치IOC위원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보았다.

1.
그는 뛰어난 스포츠지도자였다.(sport leader)
2.
그는 탁월한 사업가였다.(businessman)
3.
그는 억척스런 스포츠 운영자였다.(sport organizer)
4.
그는 불세출의 회의진행 달인이었다.(perfect chairman)
5.
그는 광적인 수집가였다.(collector)
6.
그는 예술적 심미안을 가진 조직 설계자였다.(operation architect)
7.
그는 저명한 은행가(Caixa은행총재 역임)였다.(banker)
8.
그는 수완 좋은 기금 조성자였다.(fund-raiser)
9.
그는 올림픽대회가 황금알 낳는 거위로 탈바꿈 시킨 만능 기획자였다.(all-round planner)
10.
그는 외교관이었다.(diplomat)
11.
그는 평화주의자였다.(pacifist)
12.
그는 설득력있는 협상전문가였다.(negotiator)
13.
그는 노력가였다.(industrious person)
14.
그는 평생운동가였다. (life-time sportsman)
15.
그는 다개 국어구사자였다.(multi-lingual)
16.
그는 세계최다국 여행전문가였다.(global traveller:205개국)
17.
그는 팔방미인이었다.(Jack of all trades)
18.
그는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인물이었다.(a great human-being)
19.
그는 20세기 세계최고 스포츠 지존이며 올림픽 대부였다.(20th century sport supremo and Olympic God Father)
20.
그는 영원불멸의 올림픽맨이다.(immortal Olympic man)

 

 


 

          (별세 전 사마란치 IOC명예위원장 공식 석상 모습)




1999
년 제109차 서울IOC총회를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KOC위원장 지휘하에 총괄 조직하면서 사마란치 IOC위원장 그리고 Zweifel IOC사무총장 등과의 첫 공식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1999년 제109 IOC서울총회참석한 IOC위원들)

 


 

 


 

(109 IOC서울총회준비상황보고)

 

 



2000-2001 사마란치 IOC위원장재직 마지막 2년 간 2008년 올림픽 마지막 IOC평가위원으로 그 분의 마지막 올림픽 운동 공식업무를 참여하는 영광을 부여 받았다.


(2008
년 올림픽공식후보도시 5개 방문 중 3번째인 토론토 현지실사 중 뉴스레터)

 

 

 

 (2008년 올림픽IOC평가위원회 최종공식보고서 작성완료 후 IOC본부에서 사마란치 IOC위원장과 함께/가운데는 당시 Tommy Sithole 짐바브웨 IOC집행위원/이후 IOC국제협력국장으로 변신)


 


(2008
년 올림픽 IOC실사평가단 베이징 방문/좌로부터 Elizalde필리핀 IOC위원 겸 IOC위원후보추천위원장, Bubka IOC선수위원장 겸 집행위원, 필자 등)

 

 


2007년 2014년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국제사무총장시절 과테말라 IOC총회를 앞두고 바르셀로나로 날아가서 그분 집무실에서 사마란치IOC명예위원장과 단둘이 면담하는 자리에서 평창유치성공 방안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고 건강을 챙기시도록 한국특산 한방 영양제인 '공진단' 100알을 드렸다.

스포츠외교의 달인이신 그 분의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평생 헌신하신 그 분의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사무쳤다.
세계최고 스포츠지존의 기운이 그 분 얼굴과 말투에 서려있었다.
그 분의 다정다감함을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스포츠외교 대 선배로서의 그 분의 진지함과 심오함이 온 마음을 사로 잡았다.
헤어지기 전 손을 부여 잡으며 취해 주신 사진촬영 포즈는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그분을 표지모델로 한 최초의 스포츠외교 관련 영문 책(When Sport meets the World Over the Five Rings)을 그 분 영전에 바친다.



"My dear colleagues, I know I am near the end of my time. May I ask you to consider granting my country the honor and also the duty to organize the Games and the Paraylmpic Games in 2016."
(IOC
동지여러분, 이제 내 인생도 종착역이 가까워오고 있군요. 부탁하건대 내 나라 스페인(마드리드)에서 2016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영광과 의무를 부여해 주도록 호소하는 바 입니다.)
<2009
10월 코펜하겐 개최 제121 IOC총회 2016년 올림픽개최도시 선정 투표 직전 후보도시 마드리드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에서의 마지막 공식연설내용 중>

사마란치 위원장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
, 님은 떠나 갔지만 우리는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30년 간 사마란치 IOC위원장 고인을 올림픽운동 속에서 지켜보고, 존경하고, 방한 시 줄 곳 통역도 해 본 장본인으로서 느끼는 마음은 인생무상이며 격세지감이다.


 

(사마란치 IOC위원장 서울 방문후 공항 기자회견에 앞서)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영면하소서!

 



 

<故 사마란치 IOC 명예위원장 사망 1주기>

(외신보도내용)
 

- 4 21일 목요일, 고 사마란치 IOC 명예위원장의 사망 1주기이다.

 

- 21년간 IOC 위원장을 지냈던 고 사마란치는 2001년 명예위원장으로 물러났으며, 은퇴 며칠 후 수주간 입원했었으며 사망하기 전 때때로 병원신세를 진 바 있다.

 

- 은퇴 이후에도 스페인 스포츠계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마드리드의 두 차례 2012, 2016 올림픽 비드에도 적극 참여한 바 있다

 

- 고 사마란치 명예위원장은 올림픽 무브먼트의 재정건전성을 개선한 데 큰 공로를 세운 인물로, 대회 방송권과 스폰서쉽을 발전시켰으며, IOC의 수익을 선수들의 훈련과 올림픽 참여를 위한 투자로 재분배하는 Olympic Solidarity 기관을 강화시켰다

Samaranch Anniversary

 

Thursday marks the one-year anniversary of the death of former IOC president Juan Antonio Samaranch.

Samaranch stepped down as IOC president in 2001 after 21 years in the post, retaining the title of IOC honorary life president. Just days after his retirement, he was hospitalized for several weeks and had occasional hospital stays up until his death.

Even after his retirement, heart problems rarely slowed the sports administrator from Spain. He was active in Madrids bids for both the 2012 and 2016 Olympics.

Samaranch was also the man behind improving the financial health of the Olympic Movement, developing TV rights and sponsorship negotiations and strengthening Olympic Solidarity, the organ by which the IOC redistributes its revenue in order to ensure the training and participation of athletes at the Olympic Games.

Check back Thursday for an interview with Samaranchs son, IOC member Juan Antonio Jr



5.   사마란치 IOC위원장기념박물관오픈 이모저모

 

2013 421일에는 고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3주기를 맞이하여 사마란치 IOC위원장 기념관 오픈 행사가 중국 천진(Tianjin)에서 있었다.

 

A rendering of the Samaranch Memorial.(사마란치 기념관 조감도)

 

이날 박물관(The Samaranch Memorial)준공기념식 행사에는 자크 로게 IOC위원장을 비롯하여 20여 명의 IOC위원들이 참석하였다.

 

사마란치 IOC위원장 3주기 기일인 421일 베이징에서 150km 남동부에, 사마란치 고향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12,0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천진(Tianjin)에 지어진 사마란치 기념관 겸 박물관에는 16,000여 점의 물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C.K. Wu
대만 IOC집행위원 겸 국제복싱연맹(AIBA)회장이 사마란치 위원장을 기리기 위해 이 박물관 건립을 주도하였으며 사마란치 위원장이 죽기 전 Wu위원을 천진 기념관 전시에 따른 소장품 관리자로 지명하였다고 한다.

 

The Samarnch Memorial은 사마란치 IOC위원장을 위해 건립된 최초의 기념관이다


동 기념관은 2001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성공 당시 IOC위원장이었던 사마란치를 위해 1,3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 북부 최대 항구도시이기도 한 천진 시정부가 프로젝트를 발의함으로 기념관 건립장소로 선정된 바 있다.

 

천진은 서방 스포츠와 올림픽이 중국 땅에 처음 닻을 내린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한 바 천진 시 정부는 US$1,000 만 불의 예산을 들여 시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스포츠 공원 내에 기념관을 건설하였다.



Wu
건립위원장은 중국이 사마란치 IOC위원장에 대한 애정이 깊은 나라인 점(China was chosen as the site due to the deep affection felt there for Samaranch)을 감안하여 기념관 장소로 선정되었다고 언급한다

 

사마란치위원장은 1990년 무역박람회 및 1995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당시 천진을 두 차례 방문한 인연이 있다.

 

기념관 기공식은 2011년에 있었고 144,000평방미터의 부지에 19,000평방미터 규모의 박물관으로 설계되었으며 부지의 많은 공간이 녹색공간(green space)으로 할애 되어 건설되었다.

 

전시품으로는 IOC리더로부터 기증된 책 종류(books), 우표(stamps), 기념품(memorabilia), 예술품(artwork), 각종 원고(manuscripts) 및 개인소지품(personal effects)이 포함되어 있다.

 

 

(사마란치 기념 박물관 현관 모습/사진출처: ATR)

 

현대식 박물관으로써 전시품들은 고 기술 프레젠테이션 방식이 접목되어 방문객들로 하여금 사마란치 위원장에 대해 체험할 수 있으며 그의 눈을 통해 보여진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동 기념 박물관은 천진 시가지 30,000명 수용규모의 축구장과 테니스 장이 위치한 구역에 함께 위치하고 있다.



어제(4.21) 준공식을 가진 사마란치 기념관에는 사마란치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그의 생애와 시대를 조면해 주는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마란치 기념 박물관 외부모습)



The belt and shoes of an IOC president.(사마란치 생전 시 착용했던 벨트와 구두/자료사진 출처:ATR)

 

 

(사마란치 기념관 내부 모습)

 

사마란치 기념 박물관 준공식에는 자크 로게 IOC위원장과 건립위원장 격인 C.K. Wu 대만 IOC집행위원, 차기IOC위원장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는 Sergey Bubka 우크라이나 IOC집행위원, Thomas Bach 독일 IOC부위원장, Richard Carrion 푸에르토리코 IOC위원, Ser Miang NG싱가폴 IOC 부위원장, Denis Oswald 스위스 IOC위원, 그리고 직계 아들인 Juan Antonio Samaranch, Jr.등이 참석하였다.

 

그밖에 오는 5월말 예정된 SportAccord 회장 출마 후보인 Marius Viser 국제유도연맹(IJF)회장, Klaus Schormann 국제 근대오종연맹(UIPM)회장, Don Porter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SF)공동회장을 비롯하여 사마란치 위원장 재직 시 정무담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Francois Carrard, 당시 IOC마케팅 담당 국장이었던 Michael Payne, 사마란치 위원장 자녀 및 친척 다수가 참석하였다.



동 기념박물관 내부에는 선물 및 기념품 판매 코너도 있고 스페인 음식 류, 올리브 기름 등도 구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마란치 기념 박물관은 2013 51일 일반에 공개되어 개장한 바 있었다.

 

" 2013421,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성공에 줄기차게 기여하시고 한국방문만 40여 차례 하시어 이 분야 진기록을 세운 바 있는 故 사마란치 전 IOC위원장이 돌아 가신지 3주기를 맞이 하였었다.

 

1981 930일 당시 서독 바덴바덴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지도 2013년 부로 33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당시 서울올림픽공원 내에 사마란치 IOC위원장 흉상건립을 제안하고 싶었다.

 

이제2020 421일은 사마란치 IOC위원장 10주기가 된다.

서울올림픽개최 32주년이 되는 2020년 서울올림픽공원에 사마란치 IOC위원장 흉상건립을 추진하여 고인의 한국 사랑, 서울올림픽성공개최에 기여에 대한 한국 올림픽가족의 이름으로 올림픽운동에 감사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으면 한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