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 IOC위원장의 탁월한 인성과 지도력을 알아본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쓴 회고의 글(2010년 10월18일)]
한국에서 Thomas Bach IOC위원장과 본인이 가장 친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필자는 Bach IOC위원장과 2018년 이래 벌써 20여차례가 넘는 올림픽운동발전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제안내용을 담은 서한 교신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친숙하게 교류해 왔습니다.
Bach IOC위원장은 역대 IOC위원장들 중 한국 방문 동안 공식시상식을 통해 IOC쿠베르탱 메달을 한국인 수상자 최초로 직접 전수 받는 영예를 누리도록 해주었으며(2022년10월21일), 2024년 강원 청소년 동계올림픽 폐회식 하루 전인 2024년 1월31일 강릉올림픽박물관 방문 시 필자에게 한국 최초로 IOC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회(IOC Culture and Olympic Heritage Commission)위원 임명장을 직접 수여해 준 IOC 및 올림픽 운동사에서 필자를 높게 평가해 주는 멘토들 중 한 분입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그분께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Bach IOC위원장은 필자의 저서(스포츠외교론/한국 스포츠외교실록)에 추천장을 써서 보내 주었으며 필자가 2027년 FISU 충청권 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전국 공모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축하 사한을 보내 주기도 한 고마운 분입니다.
다음은 故 김운용 IOC뷔원장이 본 Bach IOC위원장 스토리입니다:
독일의 초대 통합올림픽위원회·체육회 수장이자, IOC 부위원장을 처음으로 연임한 토마스 바흐는 지금도 올림픽운동을 주도하는 지도자이지만 모두들 앞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구촌 스포츠 지도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보고 있다. 물론 세상일은 길게 보아야 하고 선거는 뚜껑을 열어 보아야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IOC 관련 이런저런 대소사를 앞두고 있는 KOC에게는 제일 신경이 쓰이는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토마스 바흐는 서독 뷔르츠부르크에서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태어났다. 그는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법과 정치학을 공부했고 법학박사를 받았다. 이후 다방면으로 활동을 했고 기업체 회장과 여러 회사의 이사직을 수행했고 아랍, 독일 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냈다.
일찍부터 펜싱 테니스 럭비 등 활발한 운동을 즐긴 바흐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펜싱(플뢰레)단체에서 금메달을 땄고 1976·1977년에 유럽 펜싱선수권 우승 등 많은 경기에서 입상한 펜싱맨이다.
2000 년 시드니올림픽 때 필자는 IOC 집행위원으로서 올림픽 경기 전반 관리, 최초로 올림픽 종목이 된 태권도 경기의 운영 및 감독,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올림픽위원회 수장으로서 한국의 메달 획득을 책임지는 역할 등 유례가 없는 세 가지 소임을 동시에 맡고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으로서 북한의 부산아시안게임 참가를 교섭해야 할 입장이었고, 자연히 북한올림픽위원회와의 남북동시입장 교섭이 덤으로 진행됐다. 원래 국제경기나 회의 때는 많은 사람이 장시간 모여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하기 좋다.
어쨌든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드니올림픽 기간 중 필자는 갑자기 기대를 안 했던 펜싱에서 한국의 김영호가 독일 선수와 결승에 맞붙는다는 연락을 받고 뛰어갔더니 독일의 바흐 집행위원이 와 있었다. 바흐가 메달 시상자로 예정돼 있었다. 독일이 우승할 줄 알고 시상자 신청을 한 것 같았다. 필자도 미리 한국이 우승할 만한(가끔 빗나가기도 하지만) 종목인 양궁 배드민턴 태권도(총재로서 당연히)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의 시상 신청을 해왔다. 개인적으로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아이스하키 금, 은, 동 60명 시상을 룩셈부르크 대공, 호주의 고스퍼(Gosper) IOC 부위원장과 셋이서 치른 적도 있다.
시상자는 일단 결정되면 함부로 현장에서 바꿀 수 없다. 그런데 바흐가 독일 선수가 이기면 예정대로 자기가 시상하고 만약 김영호가 우승하면 나에게 시상을 양보하겠다고 제안해 왔다.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며 정중히 사양하는데도 바흐는 괜찮다고 말했다. 참고로 애틀랜타올림픽 때 이건희 회장이 갓 IOC 위원이 됐는데 마땅히 시상할 종목이 없자 IOC 위원장 비서실에 부탁을 넣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남자 양궁 시상자가 노르웨이의 스타우보(Staubo) 위원에서 계획에 없던 이건희 위원으로 무리하게 바뀌었다. 이 일로 양궁 회장이던 제임스 이스턴(James Easton) IOC 위원(미국)이 필자를 엄청나게 오해했고, 현장까지 와서 시상을 못하게 된 스타우보 위원은 IOC 위원장에게 항의편지까지 썼다. 이때 불행히도 한국은 금을 따지 못해서 시상효과가 반감되고 말았다.
시드니에서는 예상 밖으로 김영호가 선전하여 금메달을 따게 됐고 그 덕에 필자가 시상을 했다. 남을 배려하는 토마스 바흐의 인간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였다.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면 바흐가 1981년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선수 출신 대표로 두각을 나타냈고,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아디다스(Adidas) 관계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집무실로 필자를 찾아온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유럽 스포츠계는 아디다스 출신이 많다.
곧이어 바흐는 1991년 버밍엄 총회에서 자크 로게(Rogge) 현 IOC 위원장과 함께 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93~94년쯤에는 IOC총회에서도 소장파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그는 96년 애틀랜타에서 이미 집행위원이 되었다. 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집행위원이 된 로게보다 2년이 빠른 셈이다. 필자는 로게가 그때 준 300달러짜리 몽블랑 만년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바흐는 곧 IOC의 여러 가지 업무를 맡게 됐고 동계올림픽 평가위원장, 선수분과위원, 신문분과위원, 사업분과위원, TV교섭위원, 법률분과위원장을 역임했다. 변호사이므로 법률 쪽에 주로 관여했다. 최근 유럽 지역 TV방영권 교섭도 바흐의 책임 하에 진행됐다. 또 메르세데츠 벤츠, 루프트한자 등이 IOC의 스폰서가 되는 데 교량 역할을 했고, 북한올림픽위원회에 트럭과 버스를 기증하고 다리도 놓았다. 바흐는 사마란치 지시로 직접 북한에 가기도 했지만 사실 별 성과는 없었다.
바흐는 가끔 독일 외무장관이 외국에 갈 때 동행하곤 했다. 2001년 APEC 회의 때도 독일 총리를 수행했다. 93년 필자와 차녀인 피아니스트 김혜정이 독일 쾰른 국제콩쿠르에 1등으로 입상하여 부상(副賞)으로 베를린, 쾰른, 졸링엔 등에서 연주회를 갖게 돼 필자 내외도 독일로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바흐 부부는 200㎞씩 떨어진 곳에서 달려왔다. 선물은 꼭 독일 작곡가 베토벤이나 바흐 등의 곡이 담긴 CD였다. 외교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바흐가 IOC의 최고 유망주니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얼마 전 한번은 문체부의 김대기 차관이 독일에 가는데 바흐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이 비서를 통해 있었다. 이에 앞서 필자는 유인촌 장관이 러시아 갈 때 소치에 가있던 스미르노프(Smirnov) 위원을 모스크바로 올라오게 했고, 신재민 차관(당시)이 광주U대회 유치를 위해 하얼빈의 FISU회의에 갔을 때 킬리안(Killian)을 만날 수 있도록 국제전화를 통해 주선해 준 바 있다. 하지만 김 차관과 바흐의 면담은 뮌헨과 평창이 경합하는 상황에서 필자가 주선하는 것이 서로 부담이 될 것 같아 직접 재외공관을 통해 만나도록 권고했다. 그 후 만났다는 말은 못 들었다. 이럴 때마다 비서들이 연락을 하기에 정말 장·차관 부탁이냐 물어보았더니 그렇다 했다. 그러나 바흐와의 면담주선을 안 해준 후에는 문광부의 부탁은 끊어졌다.
2001 년 모스크바 IOC총회에서 IOC 위원장 선거 때 필자는 바흐를 지지자로 알고 있었는데 막판에 인상을 쓰고 달려와 이러한 식으로 선거가 혼탁하면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사마란치와 사마란치 주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자기 나름대로 필자에게 알려준 것 같다.
바흐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부위원장을 지냈고, 2006년에 다시 부위원장에 당선되었고, 2010년에 연속해서 부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얼마 전 뮌헨에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때는 IOC 위원 30~40명이 몰려갔는데 로게도 거기에 가서 바흐가 2013년 IOC 위원장 선거에서 1순위라고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2011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과 2013년 IOC 위원장 선거는 별개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나라에 두 개는 안 준다’ ‘대륙순환원칙이 어떻다’ ‘삼수는 어떻다’ 등 자가발전식의 말이 많이 나오는데 정말 그런지 잘 살펴볼 대목이다. IOC는 고차원적인 외교적 발언이 난무하는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