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정보2012. 1. 25. 10:20
한국의 동계올림픽역사는 1945년 8월15일 광복 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1948.8.15)되기도 전인 미군 군정시절 1948년 생 모리츠(St. Motoritz)제5회 동계올림픽대회 참가(1.30-2.8)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올림픽선수단이 우리나라 고유의 국호인 KOREA와 국기인 태극기를 앞세워 참가한 사상 최초의 올림픽이 바로 제5회 생 모리츠 동계올림픽이다.

 

 

 

 


지금까지 1948년 7월29일부터 8월14일까지 개최된 제14회 런던올림픽이 한국선수단이 참가한 최초의 올림픽이라고 잘못 알려진 바 있다.




1948년 생 모리츠동계올림픽이 1948년 런던올림픽보다 6개월 정도 먼저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대표선수단이 올림픽에 최초로 참가한 대회는 제5회 생 모리츠 동계올림픽대회가 되는 것이다.



차기 동계올림픽인 1952년 제6회 오슬로동계올림픽에는 북한의 남침으로 야기된 6.25동란 전쟁의 와중에 올림픽에 선수단 파견은 언감생신 불가능하였다.




1956년 제7회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는 달랑 4명의 한국선수단이 참가 했으나 세계의 높은 벽에 그저 참가에 만족하였다.




1960년 제8회 스쿼밸리 동계올림픽에는 임원 2명과 남녀 선수 7명이 참가하였으나 성과는 미미하였다.



1964년 제9회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는 남북한이 함께 참가하였는데 북한의 올림픽 데뷰무대이기도 하였다.



북한은 당시 North Korea란 국호로 참가하였는 데 1963년 서독 바덴바덴개최 제60차 IOC총회에서 정식 NOC로 인정 받게 되었다. 
이후 한국은 KOR(Korea)로, 북한은 DPRK(Democratic Republic of Korea: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약어는PRK)명칭으로 불리면서 IOC회원국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1968년 제10회 그레노블 동계올림픽에 한국선수단은 총 15명(임원7, 선수 8)규모의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1972년 제11회 삿포로 동계올림픽에 우리나라는 총 7명(임원 2, 선수 5)의 선수단이 참가하였고 피겨스케이팅에서는 19명 출전 선수들 중 19위를 차지하는 수준이었다.




1976년 제12회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 우리나라는 스피드 스케이팅에 남녀 선수 각 1명씩, 피겨스케이팅에 여자선수 1명으로 총 7명(임원4, 선수 3)의 초미니 선수단을 파견하는 동계스포츠 약소국의 수준이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종목에 참가한 한국의 이영하선수는 41초 08로 15위를 차지하였고 32명이 출전한 5,000m에서는 7분41초96으로 11위, 1,000m에서는 15위, 1,500m에서는 18위에 오르는 등 과거대회 때 보다는 경기력 면에서 약진을 보여준 셈이었다.
여자빙상선수 이남순은 당시 중학교 2년생으로서 출전 전종목 하위권이었지만 선전한 셈이었고 피겨스케이팅에 출전힌 윤효진선수 역시 출전 선수 20명 가운데 17위에 그쳤다.

1980년 제13회 레이크 플레시드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이영하선수는 500m 연습경기에선 38초대의 호기록를 내어 한 때나마 메달권 희망을 주기도 했지만 체력의 열세와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19위에 그쳤다.



여자 피겨선수로 참가한 신혜숙은 종합 20위에 랭크되었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로 평가 받기도 하였다.

1984년 제14회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에 한국은 4개 종목(스피드, 피겨, 스키, 바이애슬론)에 총 23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알파인 스키 회전종목에 출전한 한국의 김진해선수는 31위에 그쳤다.
스키 남자 대회전(Giant Slalom)종목에 출전했던 한국 스키팀은 경기 전 사전 복장검사를 받지 않아 실격처리 될 정도로 국제정보에 어두어 당시 모 일간지에 '원 피스, 투피스규정도 몰라 경기출전이 무산되었다'라는 불명예스런 사건도 있었지만 한국 스키의 내실이 공고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61명이 참가한 스키 활강에서는 박병노선수가 52위를 차지하였는데 이 성적이 우리나라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의 기록일 정도의 스키 후진국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밖에 크로스 컨트리 스키 30km에 참가한 박기호선수가 73명 중 60위를 차지하였다.
한국동계스포츠 사상 처녀 출전한 바이애슬론  종목에서 황병대 선수가 최선을 다해 역주하였지만 최하위권에 랭크되었다.
빙상의 이영하선수는 남자 500m종목에서 39초90으로 28위, 이연주선수능 여자 빙상 500m종목에서  역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1988년 제15회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한국은 동계올림픽 참가사상 최대규모인 46명의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기량이 향상된 한국 스키의 면모가 돋보인 대회였다.



캘거리에서 처음 실시된 수퍼 G 스키종목에서 박재혁선수가 출전선수 94명 중 40위, 허승욱 선수가 40위에 올랐고 스키 회전(Slalom)종목에서 94명 출전 선수들 중 한국선수들이 27위, 28위, 29위를 각각 차지하는 등 기량 향상을 보였다.
남자 빙상의 배기태선수는 남자 500m종목에서 36초90으로 5위를 마크했는데 1위와 불과 0.46의 간발의 차이로써 1948년 생 모리츠 동계올림픽참가 이래 최고의 성적이었다.
바이애슬론 및 스키 크로스컨트리 종목에서 중하위권에서 벗어 나지 못하는 부진을 보여 주었다.
시범경기로 채택된 숏트랙에서 한국선수단은 2개의 금메달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이는 향후 한국 선수단의 동계올림픽 금메달 텃밭임을 예고하여 주었다.

1992년 제16회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빙상 1,000m종목에 출전한 김윤만선수는 1분14초85의 기록으로 우승한 독일의 Olaf Zinke선수에게 0.01초 차이인 1분14초86의 기록으로 아쉬운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일구어냈다.


동계올림픽 빙상종목에 처음 채택된 숏트랙에서 예상대로 한국선수들은 발군의 기량으로 금메달 2개(남자 1,000m 김기훈, 남자 5,000m 계주 금메달<김기훈, 이준호, 송재근, 모지수선수>) 동메달 1개(남자 1,000m 이준호선수)를 거두어 최고의 성과를 냈다.
한국은 금2, 은1, 동 1의 성적으로 일본(금1, 은2, 동 4)을 제치고 메달 종합순위에서 일약 세계1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다.
1994년 제17회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숏트랙 강세에 힘입어 금 4, 은1, 동1로 종합메달 순위 6위를 기록했지만 오직 숏트랙 한 종목에 치우친 성과로 동계스포츠의 균형있는 발전이라는 보편적원칙에는 접근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김기훈 선수: 남자 숏트랙 1,000m 금메달(알베르빌에 이은 2연숭)
-채지훈 선수: 남자 숏트랙 5,00m 금메달, 1,000m 은메달
-전이경 선수: 여자1,000m 금메달
-김소희, 전이경, 원혜경, 김윤미선수: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 
-김소희 선수: 여자 1,000m 동메달

한편 올림픽 최연소 우승기록은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숏트랙 여자 3,000m에서 우승한 한국팀 김윤미선수가 당시 13세 85일이었다.

1998년 제18회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은 금3, 은1, 동2개로 메달 종합순위 9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역시 숏트랙 한 종목에 편중되는 불균형적인 성적이었다.
한국선수단은 스키점프와 루지를 포함한 63명(임원25, 선수 38)을 파견하였다.


 



-김윤만 선수: 남자 빙상 500m 7위(1분12초36)
-이규혁 선수: 남자 빙상 1,000m  13위
-김동성 선수: 남자 숏트랙 1,000m 금메달
-전이경 선수: 여자 숏트랙 1,000m 금메달
-원혜경 선수: 여자 숏트랙 1,000m 동메달
-여자 숏트랙 3,000m 계주: 금메달
-남자 숏트랙 5,000m 계주: 은메달
-이규현 선수:  피겨 남자 싱글 24위
-허승욱 선수; 남자 스키 회전 23위, 대회전 33위

2002년 제19회 솔트 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 한국은 76명(임원28, 선수 48)의 선수단을 파견하여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로 메달 종합순위 14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규혁 선수: 남자 빙상 500m 5위(레이스 종합기록69초59), 1,000m 8위(1분8초61)
-이승환 선수: 남자 빙상 5,000m 28위(6분37초67)
-최승용 선수: 여자 빙상 5,00m 18위(조선연 선수 25위 및 이용주 선수 29위)
-조선연 선수: 여자 빙상 1,000m 29위
-조은비 선수: 여자 빙상 3,000m 25위
-최홍철, 최용직, 김현기, 강칠규 선수: 남자 스키 점프 30위, 34위, 36위, 46위 (중위권기록) 및 스키 점프 단체전 8위
-고기현 선수: 여자 숏트랙 빙상 1,500m 금메달
-최은경 선수: 여자 숏트랙 빙상 1,500m 은메달
-최민경, 최은경, 박혜원, 주민진: 여자 숏트랙 3,000m 계주 금메달

2006년 제19회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한국은 41명의 선수를 파견하여 금6, 은3, 동 2개 등 11개의 메달을 획득하였으며 메달 종합순위 7위를 차지하였다.




한국선수단은 북한선수단과 함께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대회 개회식에 공동입장하였다.

-안현수 선수: 남자 숏트랙 5,00m 동메달, 1,000m, 1,500m 및 5,000m 계주 각각 금메달 (3관왕)
-이호석 선수: 남자 숏트랙 1,000m 및 1,500m 각각 은메달
-안현수, 이호석, 서호진, 오세종, 송석우 선수: 남자 숏트랙 5,000m 계주 금메달
-진선유 선수: 여자 숏트랙 1,000m, 1,500m 및 3,000m 각각  금메달 (3관왕)
-최은경 선수: 여자 숏트랙 1,500m 은메달
-진선유, 최은경, 변천사, 강윤미, 전다혜 선수: 여자 숏트랙 3,000m 계주 금메달
-이강석 선수: 남자 빙상 500m 동메달
-이규혁 선수: 남자 빙상 1,000m 4위
-이상화 선수: 여지 빙상 500m 5위
-강광배 선수: 남자 스켈레톤 23위

2010년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한국은 빙상과 알파인스키, 바이애슬론, 봅슬레이-스켈레톤, 루지 등 5개 종목에 46명의 선수를 파견한  한국은 역대 최다 메달인 금메달 6개와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 등 총 14개의 메달을 획득해 국가별 메달 종합순위에서 5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특히 역대 대회참가에서 쇼트트랙에만 의존했던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까지 금메달 영역을 확대해 세계적인 빙상 강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한국선수단은 빙상종목에서 `07학번' 삼총사 모태범과 이상화, 이승훈(이상 21.한국체대)이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하였다.

특히 최단거리인 남녀 500m를 한 국가가 독식한 것은 동계올림픽 사상 한국이 처음이며 최장거리인 남자 10,000m까지 휩쓴 것은 더욱 최초의 사건으로서 평가되었다.

세기의 관심을 모았던 피겨스케이팅에서는 `피겨퀸' 김연아(20.고려대)가 한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역대 최고점수인 228.56점)을 획득해 세계적인 `피겨여왕'으로 재확인 그리고 재검증되었다.
한국선수단은 동계 올림픽에 첫 출전한 봅슬레이가 남자 4인승에서 19위에 오르며 결선레이스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고 모굴스키와 스노보드 등에서 가능성을 함께 보였다.


개최국인 캐나다가 종합 1위, 독일이 2위, 미국이 3위를 차지했다.
아시아에선 중국이 금 5, 은2, 동4개로 종합 7위를, 일본이 달랑 은3, 동2개로 노골드의 치욕적인 성적으로 20위에 그쳤다.




2014년 제22회 동계올림픽은 러시아 흑해 휴양도시 소치에서 열린다.

 


2018년 제23회 동계올림픽은 대한민국 평창에서 개최된다.





 

 

 

 

 

 

 

 

 

 

 



태극기 처음으로 휘날린 1948 동계올림픽


★...‘올림픽 최초로 휘날린 태극기.’ 1948년 제5회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입장하는 사진이 발견됐다. 김광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은 2일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태극기를 높이 들고, 보무당당히 오륜회장에 유사 이래 처음 참가하는 역사적 순간!’이라는 글귀와 이 대회에 참가한 이한호(당시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 단장, 통역 겸 총무인 월터 정, 최용진 감독과 이종국 이효창 문동성 선수의 이름이 적혀 있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은 1948년 1월 30일부터 10일간 열려 그동안 한국이 광복 후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로 알려진 1948년 7월 영국 런던 하계올림픽보다 앞선 것이다. 한국은 ‘KOREA’라는 이름을 내건 첫 국제대회인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지만 나라를 되찾은 기쁨을 전 세계에 알렸다.

 <출처:동아일보>


하늘엔 태극기… 가슴엔 ‘KOREA’


★...‘올림픽 최초로 휘날린 태극기.’ 1948년 제5회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입장하는 모습(위)이 담긴 사진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한국은 이 대회 빙상 종목에 3명이 출전했지만 입상권에는 들지 못했다. 경기에 앞서 노르웨이 선수단과 기념촬영하는 한국 선수들(아래).


 <출처: 동아일보>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