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37편(시리즈 1편 그리스 IOA올림픽사관학교 정규과정 대한민국 KOC참가대표 생생 기행문)]
<쿠베르탱 남작(Baron Pierre de Coubertin)의 꿈 실현>
국제올림픽 아카데미(INTERNATIONAL OLYMPIC ACADEMY)는 근대 올림픽 대회를 부활시킨 쿠베르탱 남작(Baron Pierre de Coubertin)이 1930년대부터 그 필요성을 강조하여 오다가, 칼 디엠(CARL DIEM)과 존 케씨아스(JOHN KETSEAS) 2인이 주동이 되어 1961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동의와 지지를 받아 그리스의 고대 올림피아에 동 아카데미를 창설하여 쿠베르탱 남작의 생각을 실현시킨 것이다. 국제올림픽 아카데미의 역할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필자를 21세기 쿠베르탱이라고 명명해 준 ANOC창설회장 Mario Vazquez Rana와 함께/IOC본부 현관에 위치한 쿠베르탱 남작 흉상과 함께)
첫째, 올림픽 운동에 있어서 올림픽의 기본 원칙을 헌신적이고도 일관성 있게 촉진하며, 모든 시대, 어떠한 곳에서나 모든 문명권이 수령, 호응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인 이상을 가지고 올림픽대회 개최에 필요한 정신적인 뒷받침을 줌으로써 올림픽대회를 모든 인류가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全 인류적인 행사가 되도록 고무한다.
둘째, 근대사에 있어서 드높은 삶의 철학으로서 올림피즘의 확산에 공헌, 동 아카데미를 이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올림피즘의 원리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전파시키기 위한 각국내 국가별 올림픽아카데미 창설을 장려, 고무한다.
셋째, 올림픽 교육을 올림픽 운동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부분으로 정착시켜, 올림픽 운동이 급성장함에 따라 발생되는 부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신무장을 용이하게끔 하여, 그 해결책을 제시하여 준다.
넷째, 체육의 한계를 넘어서 교육의 모든 영역에 있어, 여타 지적인 활동이나 과학적인 행위에 대한 필요한 보완 조치로서 올림픽 교육을 장려 촉진한다.
이상 4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국제올림픽 아카데미(IOA)는 1986년에 창립 제25주년을 맞이하였으며, 따라서 필자가 참석한 행사는 제26차 국제올림픽 아카데미코스가 된 셈이다. 한국측에서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3명, 체육부 2명,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 1명, 모두 6명으로 구성되었다.
<이틀 먼저 스위스, 이탈리아 탐방 기회 가져>
이번의 국제 올림픽 아카데미연수 시작은 7월3일부터였으나 다소 일찍 출발하여, 이 기회를 빌어 유럽대륙의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가 있어 예정보다 2일 앞선 6월28일(토) 날 우리는 장도에 올랐다.
장장 스물 한 시간이나 소요된 비행을 마치고 취리히 현지시간으로 오전 8시38분에 공항에 도착, 우선 다음 기착지인 밀라노 行 스위스 항공 622편 예약 재확인을 함과 동시에 스위스 프랑(SFR)으로 환전하고 나니 오전 10시.
숙소인 Movenpick호텔은 중상급 수준. 여장을 풀고 제1관광지는 유명한 처녀봉(處女峰)-융프라우(Jung Frau)였다. 스위스 푸른 초원의 산길을 따라 달리는 기찻길은 5시간. 오전 11시 조금 넘어 출발한 처녀봉의 산행(山行)은 말없이 굽어보는 정상의 모습만을 가슴에 느끼며 필자와 일행은 돌아올 시간까지의 여유가 없어 처녀봉 山行을 기약 없이 미루고 취리히 시가지를 전차(TRAM) 누비며 그 옛날 막강했던 프러시아 제국의 古風어린 건물들과 역사 유적지들을 살펴보았다.
<인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영위하는 스위스 취리히/Zurich 탐방>
LAUSANNE(로잔느) 지역을 휘감고 흐르는 아름다운 레만 호(Le Lac Leman)에 필적할 만한 취리히 호수의 경관은 예기치 못했던 즐거움으로서 이번 여정의 첫 페이지를 상쾌하게 장식하여 주었다. 유람선의 생긴 모습, 구조, 역할, 운행 방법 등이 그야말로 이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의 편의와 쾌적함을 위하도록 세심하고 부담 없이 꾸며져 있었다.
호수 양쪽 편에는 아름다운 조그만 요트와 보트를 즐기는 시민들과, 동시에 수영과 일광욕을 아무 스스럼없이, 더구나 젊은 처녀들이 아무 부끄럼 없이 「버금 으뜸 부끄러운」 부분을 알몸으로 내보이는 장면도 보는 이들의 시선을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찡그리지 않게끔 밝은 인상을 주었다. 정말로 인생을 즐겁게 보내고, 편안하게 영위하고 있는 축복 받은 인간의 표상이랄까?
MOVENPICK호텔 1층 식당에서 고래고기 요구르트(새큼한 죽: 요플레와 흡사), 치즈, 생선 등 스위스식으로 조반을 마치고 CHECK-OUT을 한 다음, 호텔을 나와 평생 교육자로 일생을 보낸 페스탈로치 先生의 동상이 있는 취리히市 중심부에서 기념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여유 있게 공항으로 향했다.
기착지는 이태리 북부에 위치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LAST SUPPER) 그림이 소장되어 있고, 이탈리아 경제의 심장이기도한 밀라노였다. 출발시간은 12시5분. 기내에서 제공하는 점심으로 한 끼니를 때우고, 비행기 창문을 통하여, 다시금 몽블랑(Mont Blanc)과 융프라우일 것이라고 느껴지는 수많은 알프스의 산봉우리들과 산 정상에 덮여있는 하얀 눈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정취에 젖어 들었다.
얼마 안 있어 밀라노(Milano) 공항에 도착하였다(12시50분). 베네치아(베니스/Venice)行 ALITALIA 363편 탑승권 발급 수속 중 베네치아 공항 내부의 파업(STRIKE)으로 인한 모든 베니스行 항공편이 취소되었으며, 대비책으로 밀라노에서 베네치아까지 열차 1등석 좌석표와 밀라노 중앙철도역까지의 버스표를 대신 발급하여 주는 것이었다. 별로 달갑지는 않았으나, 이번 베네치아까지의 일정이 특별히 어떤 시간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어서, 또 열차를 통해 이탈리아 북부의 풍물을 접해 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마침 오후 3시5분에 출발하는 초특급 열차(SUPPRA RAPIDO)에 좌정, 오랜만에 망중한을 느껴보았다.
세 시간을 달려 수상 도시인 베네치아 본 역에 도착하였다. 마침 밀라노에서 베네치아로 같은 비행 일정이었다가 동행하게 된 보스톤産 미국 女人(이혼경력이 있는 깔끔한 인상의 독신녀: 화가로서 보스톤대학의 미술 교류 프로그램과 관련 2~3개월 체류예정으로 전세 아파트에서 기거할 예정이라 하여, 우리 일행은 염치불구하고 하룻밤 신세지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였으나 「one bedroom only!」라는 대답에서 우리 일행은 현재 처해 있는 우리의 주제를 파악하고 물러났음)의 엄청난 이삿짐을 우리 짐과 함께 운반해주어야만 하는, 국제 매너를 발휘한답시고, 포터 아닌 봉사 포터 노릇까지 겸해야 했다(한국인의 이미지, 친절 봉사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준 제1탄이었다.).
<이탈리아 볼로냐, 피렌체, 로마 거쳐 북부 베네치아/Venice 물길 배로 활보>
온통 물길 위에 세워진 도시인 베네치아는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한려수도인 셈. 베네치아 역 앞에서 한 젊은 친구가 AIRONE호텔 배지를 달고 다가와서 용케도 우리가 아직 숙소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추파(?)를 던졌다. 우리도 마다하지 않고 흥정을 끝낸 뒤, 역 근처에 있는 AIRONE호텔에 우선 여장을 풀었다.
베네치아 경관의 아름다운 유혹, 아니 여흥을 이기지 못해, 짐 속에서 간편한 반바지를 꺼내 입고, 신기한 듯이 이 거리 저 거리를 기웃거렸다. 얼마 안 가서 시장기를 못 이겨 근처 베네치아 풍 레스토랑에 들어가 앉아 Fish soup(해물 잡탕: 식초 한 방울을 곁들여 들면, 정말로 끝내주는(?) 맛 이었음), 생선튀김, 볼로냐 식 스파게티 및 샐러드와 함께, 1,500cc생맥주까지 해치우고 배부르고, 약간 거나하고, 경치 좋고….
베네치아의 교통수단은 「배」를 빼놓고는 언급할 수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이곳에서 통용되는 버스, 택시가 곧 「배」를 의미한다. 저녁식사 후, 우리 일행은 「수상 버스」를 타고 수로 전구간을 종횡무진 누볐으며, 밤이 깊어지면서 「곤돌라(카누 모양의 소형 배로서 5~6인승이며 그 운치는 베네치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전매 특허품 이랄까?)」와 함께 아코디언 소리에 맞춰 낭만적인 이탈리아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고, 모든 베네치아를 사랑하는 이들은 바야흐로 낭만 속으로, 깊은 열락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에 잠 못 들어 하노라! 그러나 다행히도(?) 생맥주 1,500cc덕분에 어느 정도 골아 떨어질 수 있었고, 덕분에 시차 적응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태리 수상도시 Venice에서의 전세 냄 보트 위에서, 뒤편에 수상버스 보트가 보인다)
다음날(7월1일), 아침 일찍 기상, 아침 산책 겸 베네치아가 자랑하는 ST. RIALTO광장과 ST. MARCO광장을 거쳐 굽이굽이 이어진 육로로 목표지점에 도달하였다. 또 다른 매력이 그곳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이곳저곳 사면팔방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우리 일행은 정말 큰맘 먹고 그 값비싼 택시를 전세 내어 운하(canal) 전체를 일주하면서, 상쾌한 베네치아의 아침 거리(수로)를 활보(by boat)하였다. 숙소인 AIRONE호텔로 돌아와 짐을 꾸린 후, ALITALIA항공사와 베네치아 항공에 로마行 ALITALIA 147便 운항을 문의했으나 전화통화도 하기 힘들 정도로 시끌벅적, 아예 전화 조차도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는 여행사에 가서 알아본 결과, 「오늘도 파업이 중단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였다.
베네치아 공항이 AIRONE호텔에서 50분가량 소요되는 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시 밀라노 공항에서와 같은 경험을 피하기 위해서, 다시 열차 편으로 로마까지 여행하기로 의견이 모아졌으므로, 「쌩 돈」을 염출해서 COMPARTMENT(6개 좌석)로 되어있는 보통 열차에 몸과 짐을 실었다(초특급 열차는 보통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만 이용이 가능하므로 7시간 이상 소요되는 보통 열차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기차여행은 언제나 쾌적하기만 하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이태리 전역을 열차로 횡단하며 차창 밖에 펼쳐지는 이국의 정취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볼로냐와 피렌체를 거쳐 로마로 향하였다. 피렌체역에서 정차하고 있는 동안, 역 승강장 벤치에서 정열적인 피렌체의 남녀 한 쌍이 떨어질 줄 모르고, 열렬하게 아무 거리낌없이 폭발하는 젊음을 불사르고 있었다. 누구 약 올리나?! 하염없이 기나긴 굴(Tunnel)들이 우리 열차를 집어 삼켰다가 다시 토해 놓았다. 수십여 개의 시꺼먼 터널이 목구멍을 딱 벌리고 기다렸다 가는, 다시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열차를 멍하니 바라보니 또 다른 감상이 들쭉날쭉.
<마른하늘에 「비나리오/Binario 「치우소/Chiuso」 무엇을? >
드디어 로마역이 보인다! 정차하는 역마다 강한 이탈리아어 액센트로 안내방송을 통하여 여자 음성으로 「비나리오」를 연발하는데, 하늘은 저녁 7시40분을 가리켜도 햇살을 선사하고, 비(RAIN)는 커녕… 그러나 「비나리오(BINARIO)」가 플랫폼의 트랙(TRACK)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역에서 빠져나와 역 대합실 안내 창구 쪽으로 다가갔다. 「치우소(CHIUSO)」라고 씌어 있었다. 「치우다니? 치우긴 뭘 치운다는 건가?」 또 당해야 하나? 잘 음미해 보니 이 또한 「CLOSED」라는 뜻 임이 분명하였다. 점차 이탈리아어가 친숙해져가고 있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니깐!!…」
다시 공중전화 동전 200리라(150원 정도)를 넣고 서울서 적어온 전화번호 다이얼을 돌렸다. 한국의 집(Korea House)이란 현지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었다. 마침 로마역에서는 5분 이내의 가까운 위치에서, 오른손으로는 바퀴 달린 큰 가방을 끌고, 왼손으로는 서류가방을 들고 마중 나온 이철준 씨 안내로 그곳으로 향했다.
「한국의 집」에서 오랜만에(?) 김치를 곁들여 육개장 한 그릇씩을 비우고, 시원한 도르트문트식 독일 맥주를 한 조끼 씩 들이켰다. 모든 피로가 싹 가시는 순간이었다. 예약된 호텔 캐나다라는 곳에서 방을 지정 받고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니 피로가 엄습해 왔다. 깨어보니 이튿날(7월2일) 아침 5시였다. 호텔 1층에 마련된 뷔페 식 조반 식사를 하고, 서울에 우리 일행 여정의 중간보고와 함께 안부전화를 하였다.
아침 9시 정각. Korea Tour(이탈리아 한국 현지인 설립 소규모 여행사) 직원인 이철준 씨가 Bentz230을 가지고 왔다. 관광 스케줄을 보니 3년전 로마 방문 시 보았던 것들이었으나 어디까지나 단체(?)행동이니 만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도 복습 효과(?)를 노리는 측면에서 기꺼이 동행하였다.
로마 시는 이탈리아의 수도로서 인구 400만에, 자동차 수 200만대, 대다수의 건물은 400~500년 이상씩 된 고색창연한 현대 속의 고대 및 중세도시처럼 보였다. 지하철은 A, B 두 개의 노선으로 되어 있었으며 총연장길이은 20km에 불과하여 우리 大韓民國의 수도 서울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라고나 할까? 그러나 모든 길은 역시 로마로 통한다니까….
먼저 오전에는 바티칸박물관(MUSEO DI VATICAN)과 베드로성당을 보기로 하였다. 그 이유로는 바티칸박물관이 오전 중에만 일반 관광객들에게 관람이 허용되고, 오후 및 일요일에는 아예 폐쇄되기 때문이었다.
바티칸박물관이 위치한 바티칸市國(the State of Vatican City)은 1929년 라테란(Lateran) 조약으로 이탈리아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국가이다. 로마의 라테란 궁전에서 교황 비오 십 일세(Papa Pio XI)와 이탈리아의 수상 무솔리니가 조인한 조약. 교황청은 이탈리아를 국가로 승인하였고, 이탈리아는 바티칸 시국에 대한 교황권의 주권을 인정하고 독립을 보장하였다. 연간 바티칸박물관 및 베드로성당을 찾는 관광객수는 6천만명에 이르며, 관광수입도 US$200억불이나 된다고 한다.
바티칸의 語原은 성 베드로(St. Peter)가 순교한 바티쿰 언덕의 이름을 따서 바티칸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바티칸박물관은 크게 A, B, C, D로 구분되는데, 「천지 창조」를 보여주는 첫 번째 A홀(hall)에서 1시간, B홀에서 3시간, C홀에서 3시간, D홀에서 5시간이 소요되어 그냥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보아도 줄잡아 12시간이나 소요되는 곳이다. 그러나 요점과 급소 만을 약 1/3로 압축 요약하여 4시간만에 모두 독파하기로 하였다.
<몸은 파김치되어도 「로마의 휴일」은 뿌듯>
먼저 기원전 4천500년이 되는, 미라를 완전히 공개한(“절대”로 사진촬영은 금지) 이집트박물관부터 답사(?)를 시작하였다.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신비스러운 ‘미라’의 모든 것을 관찰하였다.
정교함은 물론 신비스러운 수수께끼로 되어있는 미라의 모든 것을 「수박 겉 핥기」 식이었으나, 나름대로 많은 감명을 받았다.
바티칸박물관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시스티나성당(CAPPELLA SISTINA)의 진귀한 그림들을 비롯한 예술작품들이며, 어느 정도 씩만 음미한다 하더라도 한 달이 족히 넘게 걸릴 불후의 명작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