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 2021년 1월24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 15: 19~ 21/ 성령의 의견)]
<사도행전 15:19~21>
19절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It is my judgment, therefore, that we should not make it difficult for the Gentiles who are turning to God)
20절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Instead we should write to them, telling them to abstain from (1)food polluted by idols, from (2)sexual immorality, from (3)the meat of strangled animals and from(4) blood)
21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For Moses has been preached in every city from the earliest times and is read in the synagogues on every Sabbath.")
<Prologue>
주님 우리는 참 의견이 많습니다. 끊임없는 의견을 나타나지 맨 성령의 의견이 승리를 하는데 우리들 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주님 오늘도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구원이 중요하니까 의논을 하고 찾아가는 돌보심을 통해서 심방하고 심방 받을 때 얼마나 각자의 믿음대로 의견이 많겠습니까 모두 진리를 말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하지 않고 살 수 없죠. 그 많은 의견들 중에 성령의 의견을 도출해내는 가정과 목장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의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씀 요약>
1. ‘그러므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절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그러므로’(therefore)는 무슨 내용이죠? 지난주에 들은 것처럼 바나바(Barnabas)의 보고를 듣고 야고보(James)가 정리를 했죠. 하나님의 말씀이 일치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내 의견을 하면서 나오는 거죠. 안디옥교회 문제는 교리 문제였잖아요? 죄 사함 받고 의롭게 된단다 는 것은 사실인 거죠 교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나의 견해이자 확신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내가 선택한 것인 이 있으니 사람마다 다르죠. 주장하는 것이 다르잖아요.
초신자와 성숙자가 받아들이는 것이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사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계속 들어보고자 했잖아요. 같은 성령을 받았다면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하시니 확신하면서 들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확실히 듣는 은사가 있어요. 의장이 처음부터 내세우고 주장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들을 수 있는 말을 듣는 것도 성령의 의논을 하신 것이죠. 마지막까지 들었다고 성령의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판단의 기준이 내 의견이 되면 그 교리가 진리에 가까울 수가 없습니다. 놀라운 선교 보고도 베드로의 진심 어른 간증도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요 역할도 야고보의 의견을 성령의 의견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순간 기억한 아모스(Amos) 9장이라는 구체적이란 말씀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어는 자신이 의장으로 나는 이렇게 판단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모두의 입장을 들어보고 야고보는 최종 의견을 개진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목장하면서 ‘그러므로’(therefore)의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의견을 내고 들으세요.
(적용#1)
-여러분이 믿을만하다고 여기는 지식이나 정보가 각자의 취향에 따른 유튜브입니까? 말씀에 의거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마인드 컨트롤을 해가면서 그러므로 해야합니다.
야고보는 양쪽의 의견을 다 듣고 양쪽을 아우르는 메시지를 줍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유대인에게는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해야 한다. 이방인인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들어야 합니다.
2. 율법이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합니다.
19절 다시 봅니다.
19절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예루살렘에서 안디옥까지 달려간 유대인들이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얻으려면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유대인처럼 할례도 받고 모든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는다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있었습니다. 이방인 입장에서는 할례 같은 요구가 괴로웠어요. ‘괴롭게’는 ‘곁에서 성가시게 하다 대행하여 괴롭히다’는 의미를 지니는 파리에노클레오의 의미입니다. 지속적 반복적 습관적인 의미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았던 이방인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히자 그만하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할례와 율법 준수를 멍에를 지우는 일이라고 했는데 바울은 ‘괴롭게’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이라고 자신들과 똑같이 회개하고 딱 인정을 해주잖아요. 얼마나 괴롭혔으면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괴롭혔다고 야고보가 언급하겠습니까 이때를 위해서 야고보의 역할이 빛이 났다고 생각이 납니다. 고정관념을 깨 줄 자가 없기 때문에. 저를 위해 변호해 준 분들이 시기마다 있었습니다. 야고보가 이렇게 선포를 하는 데 있잖아요 제가 이렇게 눈물 날 지경이라고요. 그분들에게 하나님이 상 주실 줄 믿습니다. 각자 처한 죄와 고난의 상황 가운데 한 줄기 빛처럼 빚 추는 복음이 좋아 나왔는데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를 하니 이방인들이 숨이 턱턱 막혔을 거예요. 그 중에서도 모세 율법과 할례가 부담스러웠는데 유대인들은 태어나자마자 얼마 안 돼서 받았으니 공감을 못해요.
그 당시 큰 어른에게 마취가 안 되는 상황에서 할례를 행 하라는데 얼마나 무섭겠어요.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거에요. 이방인 성도들이 교회에서 유대인들을 보면 가까이 가고 싶지 않고 하나님의 집에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의로운 사람일수록 구원 자격 관계에 대해 자신이 세운 옳고 그름에 기준이 있지요.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계속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하나 되라고 불러 주셨는데 내가 옳아 돈은 이렇게 해야 되고 의복으로 이렇게 해야 되고 시간을 이렇게 써야 되고 성공한 사람을 말릴 자가 없는 거예요. 어떤 기준이라도 하나님보다 높이 올라가면 남을 죽이는 무기가 되는 거예요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 아닙니까?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보다 위에 있으면 지체들을 막는 장벽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의 가치기준을 정말 복음 위에 놓으면 그게 괴롭히는 거예요.
예수님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방언해라 봉사해라’ 강요하면 복음이 아닌 것을 가지고 속박하고 앞세우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면서 지속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거예요. 어려서는 복음 설교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지나서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윤리적 도덕적 설교가 거의 다였던 갓 같아요 그것이 우리가 유교국가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그래야지만 복을 받고 아니면 그래서 ‘네가 예배를 빼먹어서 천벌 받은 거야’라고 이렇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복음 설교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인과응보의 예수님처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 ‘잘 살아 보세’가 그때 당시 기도 제목이었어요 우리를 품에 안으시고 응답해 주셔서 지금 이렇게 잘 살게 되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율법적으로 얽매여 있다 보니 지금 하나님을 떠난 자가 많아졌어요. 이 시대는 율법으로 괴롭히는 것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입니다. 윤리적 설교를 듣고 나갔는데 윤리를 안 지킨 일이 많아졌어요. 이게 중2병이 생긴 거예요. 한국교회에 중2병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복음이 정확해야 건강해지는 거 맞습니다. 그런데 이걸 안 듣다 들으려면 힘이 듭니다. 유대인 같습니다.
전통이 대단하잖아요. 교회는 예수를 믿어서 죄 사함 받고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구속사적으로 자기 죄를 보면서 말씀 보라고 하면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죠? 그런데 저의 삶에 안 따라주기 때문에 괴롭힌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감동이 안되고 입으로만 이야기를 하니까 저보다 더 성숙하신 분들은 삶을 안 보고 말만 듣고 은혜 받아서 적용을 하시는 것 같아요 기다려야 하는 것이 맞는데 제 마음이 급해서 괴롭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은 왜 식구들 눈높이로 못 내려 가셨나?’라고 생각한 분들도 계세요. 예수님이 흠이 없는데도 식구들이 구원이 안 됐잖아요. 우리는 흠이 많기 때문에 그런 수준은 안 가니 걱정 마세요. 내 수준이 그 정도 안 됩니다. 살아생전에 돌아오실 거예요. 우리가 주님처럼 식구들이 안 들어와도 열매를 맺는 것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기다리시면서 대부분은 다 살아서 모두를 심방해 주실 줄 믿습니다.
제 설교가 어려운 것이 많아 목장에서 해석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들리는 분도 많아요. 여러분 세례 받는 사람이 많은 거 보면 아시죠? 그런데 오자마자 우리들 교회는 목장 보고서 써야 해요 녹취를 해야해요 밥을 해야 해요 자기 집도 밥을 안 해 먹는데 아주 벽이 느껴지잖아요. 안 좋은 표정을 하면 그러므로 들으시길 바래요. 본질을 알지 못한 체 괴롭히면 안 돼요.
우리가 모든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괴롭히는 사람은 건강해도 치명적일 수 있는데 100세 건강 비결에서 김영석 교수님은 최선의 건강은 최고의 수양의 인격의 산물이라고 하세요. 김영석 교수님 원장님은 비결은 심호흡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가 복식호흡이에요 누가 뭐라고 하면 그러므로. 이렇게 심호흡하세요. 우리는 종류가 다양한 사람이 모였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 이외에는 긍정적인 사고 올바른 식사 등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참 사랑이라고 합니다. 기도하면서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희망을 품게 되고 뇌의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거죠. 치매 가능성도 낮아지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가지 살자고 하는 의지가 난다고 합니다. 우리들교회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만져주고 듣기 때문에 우리 교인들이 100세 넘어서 살 것 같아요. 목장에 가서 다른 사람을 품고 들어야 한다는 게 성령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잘 듣는 것이 장수의 비결입니다. 가서 듣기만 해도 장수의 비결입니다. 듣는 게 큰 비결이에요
(적용#2)
-유대인처럼 원칙주의자로 하나님의 은혜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기준으로 내가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인간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옳음으로 계속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3. 자유가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합니다.
성화가 필요합니다.
20절 다만 (1)우상의 더러운 것과 (2)음행과 (3)목매어 죽인 것과 (4)피를 멀리하라고 편지 하는 것이 옳으니
다만 이 4가지 사항만을 이방인 신자들이 최소의 무저항으로 지키도록 제안했다는 거예요. 율법 조항 중에서 4가지만 지키라고 하는 겁니다. 최소 의무 조항만 주고 최대의 자유를 지키게 하셔야 해요. 초심자들은 시키는 것을 싫어해요. 굉장한 자유를 느끼는 것 이거든요. 4가지 것들은 유대주의자들이 절대적으로 금하는 거예요. 예수 믿기 전에는 죄책감 없이 행하는 것이잖아요. 그 문화를 멀리하라는 거죠. 이거는 물론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의 교제를 돕기 위한 조건입니다. 자유는 무한대로 의무는 최소한으로 부과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맨 처음에는 4가지잖아요. 가장 본질적인 것을 유보한 거예요. 그때는 모르나 이후에는 알리라. 본문의 음행은 각종 음행을 포함합니다. 우상의 더러운 것은 음행으로 이어지고 먹지 말라는 생명 경시로 이어집니다. 우상이 더러운 것은 고기와 같은 재물을 뜻하는데 사람들이 우상에게 바쳤던 재물인지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요. 유대인들은 귀신같이 골라내는데 이방인들은 못 골라네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과 접촉함으로 숭배하게 되고 그런 재물을 먹음으로 마음이 우상에게 기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음행으로 연결이 되는 거라고 합니다.
순교자의 믿음의 가문이라도 작은 일에서 시작해서 믿음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영혼만 귀하고 육체만 악하기 때문에 교회를 다녀도 육체는 악한 것이 돼서 행음을 행하는 거예요. 이 시대가 그럽니다. 발람은 히브리인이 아니면서 선지자에요. 저주해 달라는 임무를 받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축복을 했어요.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발람은 아주 그냥 손 하나 안 데고 코를 풀었습니다. 지도자의 타락이 국민을 망하게 합니다. 교묘히 유혹하는데 백성들은 모릅니다. 올무를 놓는 것도, 따라가는 것도 악입니다 발람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예언을 잘해 그때그때 포기도 잘하는 것 같아 어떤 말을 하면 좋아할지 등 어떤 회개를 하면 은혜 스러울지 등 오죽하면 모압 왕이 초청을 다하겠습니까? 다 잘해요. 오직 발람이 돈을 좋아합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져서 구원의 상을 받지 못하죠. 한 번의 유혹을 거절하면 믿음이 좋다고 속고 속이는데 계속 유혹하면 결국 넘어가게 됩니다. 집요하게 우리에게 옵니다. 음행으로 이어졌는데 음행은 한 장에 지나가게 됩니다. 음행은 돈 가지고 죄를 짓습니다.
너무 훌륭한 사람이 교묘하게 넘어지게 하는 것이 무섭지요. 유대인들도 이방인들에게 조심하라고 하는 겁니다. 이방인은 그 뜻을 몰라요. 그래도 가르쳐주면 되는 거예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짐승을 잡을 때마다 대속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만큼 악에 물들어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기적으로 하는 피조물이 인간이라는 거죠. 필요한 게 너무 많아요. 자기만족을 위해 몸부림칩니다. 늙어지면 못 노나니 놀다가 일찍 가는 거죠. 우리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피라는 거죠. 십자가의 피를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도 가치관이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나를 위해 누가 죽었다고 해요. 내가 절박하지 않으면 고맙지 않아요. 나를 위해서 죽어줬다고 해도 왜 나를 위해 죽었지 이런 관계로 사회생활도 하고 신앙생활도 해요. 예수님의 희생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거죠. 예수 안에서 산다는 것이 먹고 마시고 뛰는 것이 아니라 의지할 대상이 바뀌는 거예요. 우리는 웃어도 울어도 주님 앞에서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쉽겠습니까? 자유가 최고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을 보고 있어요. 우리처럼 잘 웃는 교인이 없죠. 그냥 그리고 또 울립니다. 누가 우리를 울리고 웃겠습니까. 이게 자유입니다. 예수의 피 덕분입니다. 진정한 자유입니다. 이렇게 웃고 울다가 코로나 상황이 돼서 만나지 못하지만 전쟁터가 되면 말씀도 못 듣는데 온라인이 있어 얼마나 감사합니까? 천국에서 만나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천국에서 만날 때 우리가 동창생으로 만나겠습니까? 천국 갈 확률이 많지 않을까요
(적용#3)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은, 사슴 피도 벌컥벌컥 마시는데, ‘이쯤 이야’ 하고 먹는 우상의 죄는 무엇입니까? 최소한의 의무는 무엇이고 최대한의 자유는 무엇입니까?
4. 성경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합니다.
21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그래서 유대인들은 음행을 안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안식일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여기 구절을 낭독하는 거예요 깊으신 뜻은 본질이기 때문에 낭독하게 하는 거예요 이방인들은 행함으로 멀리하라는 거죠. 유대인들이 입으로 읊어 대니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의 낭독 등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거예요. 아직 성령 받지 못했지만 ‘낭독하는 게 어디냐?’라고 하는 거죠. 중요한 점은 유대인 성도나 이방인성도나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유대인 이방인 다 자기를 우상숭배를 하는 죄인입니다. 끊기를 결단하고 힘써야 하죠. 생명을 함부로 여기는 욕심에 대해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들으시면 돼요. 회당에서 매주 율법이 전파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예요. 그들의 율법에 우리는 사랑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없이 율법만 고수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으면 율법대로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성도가 증가해서 우리의 순수성을 해치는 거 아닐까? 걱정하지만 율법이 낭독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유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의견에 동참하도록 돌보는 거예요 이것이 성령의 의논입니다. 이런 식으로 돌보라 이러는 거죠. ‘그러므로’ 하고 들으라는 거죠. 우리들 교회에서도 음행을 봉쇄하기 위해 같이 자동차를 타도 안되고 돈 거래를 해도 안되고 치리를 한다고 날마다 낭독을 하죠. 율법적인 것 같지만 이 낭독으로 거룩이 지켜졌어요. 직분 자건 아니건 다 미혹될 수 있어요. 음행에서 해결되려면 날마다 목장 가고 예배 드리고 큐티하면 공동체에서 해결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떠나거나 하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의장으로 양쪽의 모든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존경받는 지도자가 된 야고보는 잘 듣고 양쪽에 맞는 메시지를 전파합니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습니다. 조심조심 두드려야 가면서 해야 합니다. 결국 죄의 문제가 보이지 않고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어요. 최선을 다해서 서로의 의견을 들으면 인내가 구단입니다. 야고보는 이 상황을 정리하잖아요. 여러분은 야고보 같은 목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떤 상황도 정리하는 목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적용#4)
-성경은 나에게 어떤 책입니까? 역사책? 도덕책? 경전?
-성경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처럼 들리시나요?
<Epilogue>
1) 성령의 의견은 ‘그러므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2) 유대인 베드로(Peter)-바울(Paul)-야고보(James) 모두가 들었던 것처럼 항상 ‘잘 듣자’가 중요하다.
3) 율법이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하고 자유가 제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하고 성경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4) ‘죄 사함 받고 의롭게 된단다’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
5) 교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나의 견해 이자 확신이라고 할 수 있다
6) 성령의 사람은 확실히 듣는 은사가 있다.
7) 의로운 사람일수록 구원 자격 관계에 대해 자신이 세운 옳고 그름에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계속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8) 어떤 기준이라도 하나님보다 높이 올라가면 남을 죽이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9)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지만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보다 위에 있으면 지체들을 막는 장벽이 되는 것이다
10) 여러분의 가치기준을 정말 복음 위에 놓으면 그게 괴롭히는 것이다.
11) 예수님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방언해라 봉사해라’ 강요하고 복음이 아닌 것을 가지고 속박하고 앞세우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면서 지속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12) 복음 설교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인과응보의 예수님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13) 복음이 정확해야 건강해지는 것이 맞다.
14) 교회는 예수를 믿어서 죄 사함 받고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15) 구속사적으로 자기 죄를 보면서 말씀 보라고 하면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괴롭히는데 저의 삶에 안 따라주기 때문에 괴롭힌다고 느끼는 것 같다
16) 여러분은 ‘예수님은 왜 식구들 눈높이로 못 내려 가셨나?’라고 생각한 분들도 있는데 예수님이 흠이 없는데도 식구들이 구원이 안 되었다.
17) 우리가 주님처럼 식구들이 안 들어와도 열매를 맺는 것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기다리시면서 대부분은 다 살아서 모두를 심방해 주실 줄 믿는다.
18) 우리가 모든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괴롭히는 사람은 건강해도 치명적일 수 있는데 100세 건강 비결에서 김영석 교수님은 최선의 건강은 최고의 수양의 인격의 산물이라고 한다.
19) 김영석 교수님 원장님은 비결은 심호흡을 하라고 하는데 ‘그러므로’(therefore)가 복식호흡이므로 누가 뭐라고 하면 ‘그러므로’ 이렇게 심호흡하시라
20) 그 이외에는 긍정적인 사고 올바른 식사 등이라고 하며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참 사랑이라고 한다.
21) 기도하면서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희망을 품게 되고 뇌의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고 치매 가능성도 낮아지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가지 살자고 하는 의지가 난다고 한다
22) 우리들교회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만져주고 듣기 때문에 우리 교인들이 100세 넘어서 살 것 같다
23) 목장에 가서 다른 사람을 품고 들어야 한다는 게 성령의 사람이다.
24) 여러분이 잘 듣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므로 가서 듣기만 해도 장수의 비결이니까 듣는 게 큰 비결이다
25) 20절에 다만 (1)우상의 더러운 것과 (2)음행과 (3)목매어 죽인 것과 (4)피를 멀리하라고 편지 하는 것이 옳으니
26) 다만 이 4가지 사항만을 이방인 신자들이 최소의 무저항으로 지키도록 제안했다는 것으로 율법 조항 중에서 4가지만 지키라고 하는 것이다
27) 최소 의무 조항만 주고 최대의 자유를 지키게 하셔야 한다.
28) 우상의 더러운 것은 음행으로 이어지고 먹지 말라는 생명 경시로 이어진다
29)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과 접촉함으로 숭배하게 되고 그런 재물을 먹음으로 마음이 우상에게 기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음행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30) 순교자의 믿음의 가문이라도 작은 일에서 시작해서 믿음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31) 영혼만 귀하고 육체만 악하기 때문에 교회를 다녀도 육체는 악한 것이 돼서 행음을 행하는 것인데 이 시대가 그렇다.
32) 올무를 놓는 것도, 걸려 넘어지는 것도 악이다.
33) 발람처럼 앞으로 남고 뒤로 밑져서 구원의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34) 한 번의 유혹을 거절하면 믿음이 좋다고 속고 속이는데 계속 유혹하면 결국 넘어가게 되는 것으로 집요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35) 음행은 돈 가지고 죄를 짓는 것이다.
36)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
37) 짐승을 잡을 때마다 대속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만큼 악에 물들어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이기적으로 하는 피조물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38) 인간은 필요한 게 너무 많고 자기만족을 위해 몸부림치는데 늙어지면 못 노나니 놀다가 일찍 가는 것이다
39) 우리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피라는 것이다.
40) 십자가의 피를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도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다.
41) 중요한 점은 유대인 성도나 이방인성도나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42) 유대인, 이방인 다 자기를 우상숭배를 하는 죄인이므로 끊기를 결단하고 힘써야 하는 것이다
43) 생명을 함부로 여기는 욕심에 대해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들으시면 되는 것으로 회당에서 매주 율법이 전파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44) 그들의 율법에 우리는 사랑으로 완성해야 한다.
45) 그리스도 없이 율법만 고수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으면 율법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46) 그러니까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성도가 증가해서 우리의 순수성을 해치는 거 아닐까?’ 하고 걱정하지만 율법이 낭독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유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의견에 동참하도록 돌보는 것으로 이것이 성령의 의논이다.
47) 이런 식으로 돌보라 이러는 것이고 ‘그러므로’ 하고 들으라는 것이다
48) 우리들 교회에서도 음행을 봉쇄하기 위해 같이 자동차를 타도 안되고 돈 거래를 해도 안되고 치리를 한다고 날마다 낭독을 한다
49) 율법적인 것 같지만 이 낭독으로 거룩이 지켜졌다.
50) 직분 자건 아니건 다 미혹될 수 있기에 음행에서 해결되려면 날마다 목장 가고 예배 드리고 큐티하면 공동체에서 해결이 된다.
51) 믿음에는 분량이 있으므로 조심조심 두드려야 가면서 해야 한다.
52) 결국 죄의 문제가 보이지 않고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는데 최선을 다해서 서로의 의견을 들으면 인내가 9단이 된다.
53) 믿음으로 구원 얻고 잘 살아야 한다
54) 율법도 복음 위에 놓으면 장벽이 된다
55) 복음이 아닌 것으로 속박하면 지속적, 반복적, 습관적 괴롭힘이 되는 것이다
56) 내 삶이 안 따라주면 지속적, 반복적, 습관적으로 괴롭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57) 그때는 모르나 지금은 알리라-지금은 모르나 나중엔 알리라
58) 발람(히브리인이 아니면서 선지자)의 교훈을 따르는 것이 니골라 당인데 이는 영혼만 귀하고 육체는 악하니 마음껏 행음하라는 것이다
59)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을 능수능란하게 현혹하며 돈을 사랑한 선지자다
60) 올무를 놓는 것도 올무에 걸려 넘어지는 것도 죄다
61)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니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62) 음행은 돈 가지고 짓는 죄다
63) 4가지 죄란 (1)우상숭배-(2)음행-(3)목매어 죽인 것(먹지 말라/제사)-(4)피<멀리하라>인데 이것이 모압의 교훈이다
64)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에 속하니라
65) 예수가 없으면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66) 인생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예수님 보혈의 십자가다
67)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평강이 없는 것이다
68) 내가 십자가의 고난에 처해 있을 때 도와준 것은 평생 간다
69) 감사와 찬양을 하면 의지할 대상이 바뀌는 것이다
70) 세속적 고정관념 속에서 굴레와 억지 속에서 고통 받는다
71) 십자가 죄사함과 부활이 율법의 완성이다
72) 말씀 낭독으로라도 거룩이 지켜지는 것이다
73) 듣다 보면 지혜가 생긴다
74) 정좌와 미움과 살기도 낙태살인처럼 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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