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20. 12. 20. 22:12

[우리들교회 20201220일 주일예배 말씀 요약(사도행전14: 8~ 18/ 성령의 주목)]


 



<사도행전 14:8~18>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In Lystra there sat a man crippled in his feet, who was lame from birth and had never walked)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He listened to Paul as he was speaking. Paul looked directly at him, saw that he had faith to be healed)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and called out, "Stand up on your feet!" At that, the man jumped up and began to walk)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When the crowd saw what Paul had done, they shouted in the Lycaonian language, "The gods have come down to us in human form!")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Barnabas they called Zeus, and Paul they called Hermes because he was the chief speaker)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The priest of Zeus, whose temple was just outside the city, brought bulls and wreaths to the city gates because he and the crowd wanted to offer sacrifices to them)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But when the apostles Barnabas and Paul heard of this, they tore their clothes and rushed out into the crowd, shouting:)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Men, why are you doing this? We too are only men, human like you. We are bringing you good news, telling you to turn from these worthless things to the living God, who made heaven and earth and sea and everything in them)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In the past, he let all nations go their own way)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Yet he has not left himself without testimony: He has shown kindness by giving you rain from heaven and crops in their seasons; he provides you with plenty of food and fills your hearts with joy.")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Even with these words, they had difficulty keeping the crowd from sacrificing to them)

 

<Prologue>


주목이란 단어를 사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목의 뜻

①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핌

②조심하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살핌

③감탄사로 군사 구령자에게 시선을 모으라는 구령

 

성령의 제자는 볼 것을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봐야한다. 또 보지 않아야 할 것은 경계의 눈으로 살펴야 한다. 그리고 군사 구령자인 하나님만 감탄하며 주목해야 한다.

오늘 성령의 주목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다

 

<말씀 요약>

 

1.   한계상황적인 (치료 불가의) 한 영혼을 주목해야 한다(8~9)

 

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이 두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치려고 하니 도망가는 루스드라는 당시에 퇴역한 로마 군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조성지가 되었다. 그들이 곳곳에 원근각지로 정복전쟁에 나갔다가 베어오고 가져온 우상 때문에 미신적인 경향이 많았다. 루스드라는 비시디아 안디옥이나 이고니온에서와 달리 유대인의 회당이 없어서 광장과 같은 곳에서 전도하였으리라 본다. 이 때 바울이 한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려 그의 눈을 주목한다. 마치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울도 루스드라의 앉은뱅이에게 그렇게 눈길을 주었다. 발을 쓰지 못하는,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이런 중복적인 표현은 본래 직업이 의사였던 누가가 전혀 걸을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강조해서 표현을 한 것이다.


3장에 성전 미문에 앉았던 앉은뱅이는 동전한 푼 구걸할 수 있을까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보았지만 이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는 바울의 전하는 말씀에 이끌려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듣는다”는 말은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듣는데 지금 좋아서 혼자 경청했다는 말이고 십자가의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바울의 복음이 믿어진 것이다. 물론 그는 뱃속부터 장애우이다. 불치 상황에 있었고 전적 무능을 실감하는 환경이다. 그런데 날 때부터 장애를 입고 태어났어도 말씀을 듣고 자신이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자건 건강하건 믿지 않으면 인생은 죄인이기 때문에 평강이 없다. 그런데 불치 상황의 앉은뱅이가 주님을 만나기가 여기서 보니 훨씬 쉽다.


바울은 바로 그런 생각을 가진 앉은뱅이에게서 자기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성령의 기운을 느끼고 그러한 그를 주목했다. 4:26 셋의 아들 에노스의 뜻이 한계 상황의 불치병이라는 뜻인데 아들을 에노스라고 불렀다고 했다. 아담의 장자인 가인의 후예는 강성하고 강하고 쓸어버리고 모두 이름을 그렇게 붙였는데 셋이 아담과 아벨과 셋, 3대를 내려오면서 인생이 참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뜻의 이름인 에노스로 이름을 지었다. 그러니까 자기 아들에게 에녹성의 이름을 붙인 가인과 달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죄인 됨과 전적부패, 전적무능인 연약함을 그대로 고백하는 이름을 자기 자식에게 붙여준 것이다. 여러분이 이름을 겸손하게 지어야 한다는 것은 이렇게 성경적인 것이다.


날마다 에노스를 부르며 죄인 됨과 부패함과 연약함을 외치니 옆의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다. 이것이 최초의 공 예배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로 내 자신의 연약함을 외치며 내 옆의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라구요.


원어로 자궁에서부터 앉은뱅이인 불치병의 이 사람에게 말씀이 들리니 여호와를 부르고 또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비로소 예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보이는 이적       곧게, straightly                   미완료. 계속 걸었다.

 

믿음을 보고 바울은 바로 일어서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이니 발에 무슨 힘이 있겠어요? 젓가락 같지 않았겠는가? 그런 사람을 보고 두 발 펴고 쭉 일어나라 고 했다. 부정과거로 힘겹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펄쩍 뛰어오르며 일어났고 걸었다는 것은 미완료로 계속 걸었다는 뜻이다. 큰 소리로 외친 이유는 이 이적을 주위 사람들도 보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이 구약의 배경이 없기 때문에 구속사적인 설교를 이곳에서는 성경으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보이는 삶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루스드라 전도를 위해서는 보이는 이적을 준비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때마다 비시디아 안디옥식, 루스드라식의 전도방법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한 영혼을 주목하는 나눔들을 이번 주간에 읽었다.

 

(적용#1)

-치료 불가의 한 영혼을 주목한 적이 있나?

 

2.   자기 주제를 (전적 부패로) 주목할 수 있어야 한다. (11)

 

11: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그 당시에 로마의 속주이니 모두 헬라어나 라틴어를 써야했다. 그런데 바울의 헬라어 설교를 듣고 있는 루스드라 주민들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기적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들의 모국어인 루스드라 방언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한 목소리로 소리 높였다. 자기도 모르게 방언이 나왔다. 계시된 말씀이 없으니까 눈앞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 기적을 통해 그러나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성육신의 그림자, 즉 자연세계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자취를 부분적으로나마 고백한 것처럼 되기는 했다. 루스드라 지역에는 헬라의 주신인 제우스와 그의 전령신, 비서신 헤르메스신이 있었는데 과거에 사람의 모양으로 그곳에 방문을 했는데 한 사람 빼고 아무도 영접하지 않아서 홍수로 그곳을 멸망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전설이 자기들의 시대에 다시 삶의 현장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생각한 이 루스드라 사람들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물 좋은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하고 비서같이 말 잘하는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불렀다.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성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굉장히 좋은 최고의 제물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대접하지 않았다가 큰 홍수로 멸망을 당했다고 하니까 그 화를 면하고자 바나바와 바울을 신으로 모시고 일치단결해서 일사천리로 제사를 드리고자 한 것이다. 인간본성에서 비롯되는 종교성은 근본적으로 자동적으로 기복적이다. 복을 구하고 화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를 한다. 루스드라 시민들의 반응은 숨 쉴 틈 없이 우상숭배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보기에 얼마나 열심히 예배를 드리는 모습인가? 이것은 각자 자신의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찬가지다. 예배 중독자나 과학 만능주의에 젖어 있거나 반대로 미신과 우상숭배에 빠져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하나님을 우상 중 하나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다 똑같다. 일치단결해서 돌진을 한다. 오늘날에도 힌두교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네팔과 같은 나라에서는 4~5세 소녀를 정선해서 신으로 격상시킨 다음 마을 밖 산당에 모셔놓고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가져다 놓고 있다. 바로 루스드라 성 사람들이 이런 우매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바나바와 바울을 쉽게 신으로 단정한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모두 사람의 모습이거나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인데 그들이 생각하는 신들은 뭔가 시공을 초월하지 못하는 제한된 공간 속에 인간과 동일한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유한한 신들을 신의 자리에 모셔놓고 숭배하는 것이다.

 

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루스드라 사람들에게는 바나바와 사울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멋있는 바나바가 그들 생각에 제우스가 되야 되고 대머리에 매부리코인 바울은 뒤로 밀려서 비서격인 헤르메스가 되었다. 그러니까 루가오니아 언어로 말할 때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던 바울과 바나바도 자기들에게 제사 드리러 오는 행동을 취하자 드디어 자기들을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전도하며 시기, 비방만 받고 돌로 치려하는 경우를 당하던지 또 기쁨과 성령이 충만해서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경우는 보았어도 이렇게신 이로다!” 하는 경우가 처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럴 때 전자동으로 옷을 찢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는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교회, 공부, 직장, 결혼을 해도 늘 누군가보다 높아지고자 하는데 결국은 그것은 하나님 자리에 가고자 하는 것인데 그 자리에 딱 갔다. 저절로 하나님 자리에 갔다. 그런데 그 때 어떻게 영광을 거절하겠는가? &바는 그것이 얼마나 신성모독적인 죄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뛰어나가서 옷을 찢으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옷을 찢는다는 것은 근심과 슬픔을 표시하는 유대적 관습이고 또 하나님 앞에 크나큰 죄가 되는 일을 목도했을 때 취하는 행동이다. ‘듣고와 옷을 찢고는 부정 과거 분사이기 때문에 듣자마자 옷을 찢었다는 말이고 또 소리를 지르면서 무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는 것이다. 즉시. 즉시 다 옷을 찢고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헤롯이 백성에게 연설한 뒤에 그들로부터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는 칭송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다. 그런데 또 예수님의내가 그로다. 내가 창조주 하나님이다.” 그 말씀을 신성 모독이라고 여기면서 또 자기 옷을 찢었던 대제사장의 모습과도 대조된다. 대제사장이나 헤롯이나 스스로 왕으로 여기니 받지 말아야 될 칭송을 받거나 찢지 말아야 될 옷을 찢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신성 모독이라고 옷을 찢는 것과 바울이 옷을 찢는 것은 완전 다른 것이다.


이것을 잘 분별해야 된다. 바울은 거듭되는 고난 가운데 자신이 스테반을 죽인 지난날을 기억하면서 영혼 구원의 사명을 위해 순종을 하니까 옷을 찢으며 애통해야 될 때와 안해야 될 때를 분별하게 해주시는 것이다. 13:25 세례요한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기를 비우시고 낮아지시고 죽어지는 예수님처럼 창조주가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낮아지셨는데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창조주가 창조물인 사람의 모습으로 낮아지셨다. 사람은 벌레 하나도 만들지 못한다. 그러니까 벌레처럼 낮아졌다는 말도 주님의 낮아짐과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가 벌레보다 무생물처럼 낮아진 것이 더 낮아진 것인데 따라가지 못할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이 받는다는 것은 옷을 찢어야 할 일인 것이다. 앉으나 서나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인정받으면 교만해지는 것이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동으로 하나님께 갈 영광을 가로채고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목자 직분을 처음에는 너무 기쁘게 감당하다가 사업이나 아이들이 잘 되면 다 내려놓고 싶어 한다. 주님의 낮아지심을 모르고 기복으로 믿기 때문에 잘되면 내려놓고 떠나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섬기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인생은 사명에서 왔다가 사명 때문에 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이다. 그래서 사람을 택해주셨다. 그래서 한 결 같이 여전한 방식으로 전도와 개척을 위해서 큐티하고 예배드리고 공동체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갑갑하고 지겨우신 분은 아직 성령의 제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세상을 주목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여행도 동반자가 중요하다. 여전한 방식대로 사는 것이 지루해 보여도 그것이 최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적용#2)

-예배는 왜 드리나? 자기 주제를 주목하려고? 화를 피하기 위해서인가?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시기 때문인가?

 

3.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이다(15)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설교를 시작한다. &바는 자기들은 신이 아니다.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섬기는 일은 모두 우상숭배이고 헛된 일이라고 그것은 속이는, 쓸데없는 무가치하고 망령된 일이라는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 자식을 우상 삼고 돈을 우상 삼는 것은 이게 얼마나 하나님을 속이고 쓸데없는 일이고 무가치하고 망령된 헛된 일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나님 외에 것을 숭배하면 남들도 속이는 일이다. 남편(아내)을 우상 삼으면 남편도 속이는 행위이다. 복음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하는 사람이 무당 찾는 사람이라면 루스드라 식 전도를 하고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비시디아식 전도를 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했다.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인류 전체를 죄 가운데 내버려 두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들이 죄 가운데 있기를 원하는 대로 그들을 죄에 넘기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범죄를 방임하셨다는 것은 그들의 죄를 허용하시고 용서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즉각적인 심판을 유보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유대교 배경이 전혀 없는 이방인 청중의 눈 높이에 맞춰서 같은 내용을 그들이 소화할 만한 표현으로 부드럽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임하셨지만 17절에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이중 부정이니까 증언 했다란 뜻인 것이다. 범죄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인생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 것이다.

 

17: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비록 특별 계시인 성경을 접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방임하신 허망한 삶을 산다고 하여도 그들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고 모른 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 지니라.


우리는 사시사철만 봐도 그냥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다 보인다. 우주만물을 다 보면서 우리가 예수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나라도 믿는 사람이 있었다. 허준 같은 사람을 보면 그런 자연계시와 일반은총을 통하여서 믿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내일 모레 1222일에는 1623년 이후 약 400년 만에 목성과 토성이 가장 근접한 형태로 관찰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난 12~14일 사흘 동안 70개의 유성이 찾아온 것을 보았다. 이러한 별똥별 우주 쇼를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할 수 있겠나?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바울의 설교는 성공적. 물론 이 설교가 듣는 그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불러 일으켰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바&바를 신으로 여겨 제사 드리지 못하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우리가 자기 주제를 주목한다면 자기들을 숭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인생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을 해도 자기 일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성령의 최고의 주목이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자기가 아니라 자기 주제를 주목하게 하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신이 아니라고 그렇게 주목을 제대로 해야 된다는 것이다. 자기 주제를 주목하는 것이 최고의 성령의 주목이 될 것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며 자기가 한 것이 한 개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박수를 받으면 자꾸 착각한다.


(적용#3)

-자연 계시와 일반 은총으로 경험한 하나님을 나눠보라

)별을 보고 하나님을 만났다. 좋은 의사를 만나서 병을 고쳐서 하나님을 만났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전해야 되는가? 성경 없이 전해야 한다. 그래서 각종 방법이 달라야 한다.

이혼과 낙태의 죄를 경험했기 때문에 낙태 반대를 호소함.  영화 “unplanned”

보여야 죄고 안 보이면 죄라는 것을 모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자기 죄의 얘기이다.

낙태를 하고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죄를 모른다.

 

올바른 예배를 통하여 낙태법 개정 동의 취지는 자녀들 임신 하더라도 아이는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Epilogue>

 

1)  성령의 제자는 볼 것을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봐야한다.

2)  또 보지 않아야 할 것은 경계의 눈으로 살펴야 한다.

3)  군사 구령자인 하나님만 감탄하며 주목해야 한다.

4)  어떤 상황에서도 부자건 건강하건 믿지 않으면 인생은 죄인이기 때문에 평강이 없다.

5)  인간본성에서 비롯되는 종교성은 근본적으로 자동적으로 기복적이다.

6)  복을 구하고 화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를 한다.

7)  예배 중독자나 과학 만능주의에 젖어 있거나 반대로 미신과 우상숭배에 빠져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하나님을 우상 중 하나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다 똑같아서 일치단결해서 돌진을 한다.

8)  교회, 공부, 직장, 결혼을 해도 늘 누군가보다 높아지고자 하는데 결국은 그것은 하나님 자리에 가고자 하는 것인데 그 자리에 딱 갔다. 저절로 하나님 자리에 갔다. 그런데 그 때 어떻게 영광을 거절하겠는가?

9)  자기를 비우시고 낮아지시고 죽어지는 예수님처럼 창조주가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낮아지셨는데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창조주가 창조물인 사람의 모습으로 낮아지셨다.

10) 사람은 벌레 하나도 만들지 못한다. 그러니까 벌레처럼 낮아졌다는 말도 주님의 낮아짐과는 비교가 안 된다.

11) 우리가 벌레보다 무생물처럼 낮아진 것이 더 낮아진 것인데 따라가지 못할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이 받는다는 것은 옷을 찢어야 할 일인 것이다.

12) 앉으나 서나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 조금 인정받으면 교만해지는 것이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14) 그런데 전자동으로 하나님께 갈 영광을 가로채고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15) 예를 들면 목자 직분을 처음에는 너무 기쁘게 감당하다가 사업이나 아이들이 잘 되면 다 내려놓고 싶어 한다.

16) 주님의 낮아지심을 모르고 기복으로 믿기 때문에 잘되면 내려놓고 떠나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17) 섬기는 게 힘들다는 것인데 그것이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18) 인생은 사명에서 왔다가 사명 때문에 가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이다.

19) 그래서 사람을 택해주셨다.

20) 그래서 한 결 같이 여전한 방식으로 전도와 개척을 위해서 큐티하고 예배드리고 공동체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갑갑하고 지겨우신 분은 아직 성령의 제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세상을 주목하는 것이다.

21) 우리 인생의 여행도 동반자가 중요하다. 여전한 방식대로 사는 것이 지루해 보여도 그것이 최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22) 하나님 외에 그 어떤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섬기는 일은 모두 우상숭배이고 헛된 일이라고 그것은 속이는, 쓸데없는 무가치하고 망령된 일이라는 것이다.

23) 남편이나 아내, 자식을 우상 삼고 돈을 우상 삼는 것은 이게 얼마나 하나님을 속이고 쓸데없는 일이고 무가치하고 망령된 헛된 일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

24) 하나님 외에 것을 숭배하면 남들도 속이는 일이다.

25) 남편(아내)을 우상 삼으면 남편도 속이는 행위이다.

26) 복음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다.

27) 우리가 전도하는 사람이 무당 찾는 사람이라면 루스드라 식 전도를 하고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비시디아식 전도를 해야 되는 것이다.

28) 그런 방식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했다.

29) 인류 전체를 죄 가운데 내버려 두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다.

30) 그들이 죄 가운데 있기를 원하는 대로 그들을 죄에 넘기셨다.

31)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범죄를 방임하셨다는 것은 그들의 죄를 허용하시고 용서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즉각적인 심판을 유보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32) 범죄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33) 인생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 것이다.

34) 비록 특별 계시인 성경을 접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방임하신 허망한 삶을 산다고 하여도 그들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35) 자연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고 모른 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6) 우리는 사시사철만 봐도 그냥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다 보인다.

37) 우주만물을 다 보면서 우리가 예수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나라도 믿는 사람이 있었는데 허준 같은 사람을 보면 그런 자연 계시와 일반 은총을 통하여서 믿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38) 별똥별 우주 쇼를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할 수 있겠나?

39) 우리가 자기 주제를 주목한다면 자기들을 숭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인생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40) 무슨 일을 해도 자기 일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성령의 최고의 주목이 되는 것이다.

41) 우리 인생의 목적은 자기가 아니라 자기 주제를 주목하게 하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신이 아니라고 그렇게 주목을 제대로 해야 된다는 것이다.

42) 자기 주제를 주목하는 것이 최고의 성령의 주목이 될 것이다.

43)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며 자기가 한 것이 한 개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박수를 받으면 자꾸 착각한다.

44) 성경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전해야 되는가? 성경 없이 전해야 한다. 그래서 각종 방법이 달라야 한다.

45) 보여야 죄고 안 보이면 죄라는 것을 모른다.

46)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자기 죄의 얘기이다.

47) 낙태를 하고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죄를 모른다.

48) 올바른 예배를 통하여 낙태법 개정 동의 취지는 다름 아닌 자녀들이 임신 하더라도 아이는 낳아야 한다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다.

49) 믿지 않으면 죄인이기에 평강이 없는 것이다

50) 인간의 존재는 늘 높아지고자 하는 것으로 하나님 자리에 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51) 인정 받으면 교만해 지는 것이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52) 여전한 방식으로 예배 드리는 것이 지루해 보여도 최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53) 무엇이든지 우상 삼으면 (1)쓸데 없고, (2)무가치 하고 (3)헛되고 (4)망령된 것이고 (5)속이는 것이다

54)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자기 죄(수치)를 오픈 하는 것이다

55) 주님을 만나 깨닫지 못하면 모두 인권을 부르짖는다

56) 예수의 이름 밖에는 달리 일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57) 인간은 전적 부패, 전적 무능, 전적 죄인이다

58) 자연 계사와 일반 은총으로 전도 할 수 있어야 한다

59) 성령의 부목은 자기 주제를 주목하는 데서 시작된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