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9. 8. 10. 15:19

[우리들교회 2019 84 주일말씀 요약(왕상 221절로 12/ 전쟁 없이 년을 지냈더라)]

 

 

 

<Prologue>

우리가 입시 전쟁, 바람 전쟁이 끝나고 대학은 붙고 배우자는 집으로 돌아왔다면 그것으로 전쟁이 걸까?

전쟁의 가운데에서는 하나님만을 부르고 겸비함을 보이며 아이만 붙는다면 남편만 돌아온다면 이번 사업만 해결해준다면 주님 하라는 대로 모든지 하겠습니다.하면서 겸비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면 겸비함은 사라지고 주님도 멀리멀리 가버리고 이제 다시 교만해진다.

주님이 가버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주님을 버리고 간다.

다른 과시를 위해 일을 꾸미게 된다.

22장은 아합의 마지막 장이다.

결론이 참담하게 나는데 여전히 계속 이겨야 하고 과시해야 하니 문제인 것이다.

오늘은 아합(Ahab)처럼 3년 간 전쟁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겠다.

 

 <말씀 요약>

1.  다른 세상전쟁을 꾸민다. (1-4)

(1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년을 지냈더라)

아람과 이스라엘이 3 동안 전쟁 없이 살았다는 평화는 아합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라 쥐약이다.

아합의 겸비함이 오래 가지 못하는 비결이다.

그러나 동안은 가뭄도 오고 벤하닷이 쳐들어오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서 드디어 이제 겸비함까지 갔다.

겸비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자신의 대가 아니라 자녀의 대로 재앙을 유보하신다고 했다.

자녀는 무슨 죄인가? 하겠지만 자녀에게도 아합과 같이 회개하면 유보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인 아합은 자녀에게 재앙을 주신다면 재앙을 나에게 주세요, 우리 자녀는 건드리지 말아주세요.해야 되겠는데 그리고 3 동안 자녀들을 위해서 열심히 회개를 해야 (옷을 찢는 것이) 겸비함에 맞는 태도다.

사무엘하 24장에서 다윗이 재앙을 당해서 나와 아버지 집을 치소서.했더니.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에 재앙이 그쳤다고 했다.

다윗은 재앙이 오니깐 본인이 나와 아버지 집을 치시라 했고 아합이 겸비함을 보이니까 하나님은 죄를 자녀 대에 묻겠다고 유보하셨다.

아합의 수준이 낮으니 호호 불어가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 때는 아비와 자녀 치소서하는 맞고 아합 때는 재앙이 자녀 대에 가지 않게 내가 재앙을 받겠습니다 맞는 같다.

그런데 다윗이라면 경우 맞게 같은데 아합은 수준이 낮아서 오늘 보니까 내가 재앙을 받겠다. 된다.

[적용]

- 죄를 나에게 묻는 것이 좋나? 자녀 시대에 묻는 것이 좋나?

- 다윗의 아버지 집을 치소서. 아합이라면 재앙을 나에게 물으세요. 자녀에게 묻지 마세요.. 여러분은 어느 기도를 하겠나? 듣기만 해도 어렵죠? 신앙이라는 이렇게 어렵다.

아합에게 3년이라는 시간을 편안하게 줘보니까 예전으로 도로 BACK, 돌아갔다.

저는 남편처럼 회개하자마자 천국에 가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아합을 보면서 알았다. 죄가 훨씬 많아서 이렇게 남았다.

우리는 아합이 어떻게 이겼나를 알지만, 시간이 가니까 아합은 승리에 속아서 자기가 대단한 책략가라는 생각이 것이다.

그래서 위기를 잊어버렸다.

나봇 따위도 잊은 듯하다.

아합의 악행은 이세벨의 율법을 빙자한 간교한 술책에 가리어져 있었다.

죄가 아무리 가리어져 있었어도 하나님을 속일 없어서 엘리야를 보기만 하면 대적자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말한다.

아합처럼 우리도 이기면 실력/덕이고 지면 , 하나님 탓을 한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이다.

욕심 잉태한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드디어 아합에 대한 여러 차례 심판의 예언이 드디어 사망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본문의 시작이다.

[적용]

-여러분은 지금 전쟁의 시대인가? 전쟁이 잠깐 없는 시대인가? 여러분은 어떤 때가 유익했나?

2. (2 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이제껏 나오던 유다의 여호사밧(Jehoshaphat) 갑자기 등장한다.

물론 나라 북이스라엘, 유다는 이제 하나의 국가였기 때문에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남북은 계속, 항상, 일생 동안 일평생 전쟁이 있었다는 것인데 동맹을 맺어 적이 없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쪽은 계속 여호와를 섬기고 쪽은 바알을 섬기니까 전쟁은 당연하고 싸움은 당연하게 있는 아니겠나?

우리가 믿는 친척들과 너무 지내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다. 더구나 아합의 딸이 이세벨의 딸이다 아합과 결혼 동맹을 맺은 것은 결국 위기를 가져왔다.

솔로몬의 노역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졌다.

그래서 오랫동안 유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나라 선한 없다.

여호사밧의 아버지 아사는 어머니인 태후의 위도 물리치면서 개혁을 했다.

그런데 열왕기상 15 18절을 보면, 아사왕이 이스라엘 바아사 왕이 쳐들어오자 성전 왕궁 곳간의 은금을 모두 벗겨서 아람 왕에게 바치면서 형제나라인 이스라엘 간의 약조를 깨달라고 요청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아람에게 와서 붙었다 깨졌다 하는 것이다.

형제 나라도 형제가 아니다. 이스라엘과 다를 하나 없다. 남북은 불순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지 못하고 함께 없었다.

이렇게 함께 없는 상황 가운데서 너무나도 악한 왕이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 정치, 경제, 군사력이 너무 막강한 것이다.

왜냐하면 벤하닷(Ben Hadad) 알다시피 서른 개국을 연합한 아람 왕인데 그런 벤하닷과의 전투에서 번이나 물리친 것이 팩트가 되다보니까 지금 생각하면 아합은 이순신 장군과 방불해 보이는 것이다.

이길 수가 없는 7 명을 가지고 10 명을 물리쳤으니까 그래서 아합에 대해서 7장이나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시대가 아합의 시대이기 때문에 , 포스터 모던니즘(post moderism)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이 노릇하는 인권의 시대가 맞다. 그리고 꽃을 핀다.

아합이 7장에나 걸쳐 등장하고. 역대하에는 이스라엘 왕이 등장하지 않는데 역대하에서도 장이나 아합에 대해서 할애를 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끌어내리고 초토화시키고 있는 아합과 이세벨인 것이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내려갔다.

믿음을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엘리야를 죽이고자 해도 나봇을 죽였어도 차례 엄청난 전쟁을 이겼기 때문에 아합은 국부(國父)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국부인 것이다.

아합의 위상이 여호사밧보다도 당연히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아들도 주면서 혼인동맹도 맺고 아람과 전쟁을 하면 이기겠지 싶어서 여호사밧이 북으로 내려갔다고 하는데 북으로 올라갔다고 하지 않고 내려왔다고 한다.

영적으로 다운된 길이었다는 것이다.

아합과 이세벨은 (백만 대군의 유다도 대단한 강대국이 되었다.) 백만 대군의 여호사밧을 영육 간에 끌어내린 것이다.

이렇게 악의 영향력은 놀랍다.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있었어야 했다.

나라는 하나님나라의 예표이기 때문에 그렇게 악한 아합을 도우면 되는 것이다.

역대하 19 2절에 보면, 예후선지자가 여호사밧에게 그렇게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돕는 것이 옳으니이까!하면서 책망을 했다.

이렇게 정치를 보이는 아합이지만, 아합은 성경에서 악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도 아무리 땅에서 먹고 살아도 훗날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적용]

-누구의 영향으로 지금 너무 대단해보이지만 어디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고 있나?

-누구의 영향으로 어디로 좋아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고 있나?

3(3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Ramoth Gilead>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신하들 보고 그냥 길르앗 라못(Ramoth Gilead 능히 탈환할 능력이 있는데 잠잠하냐? 하면서 자기와 자신이 소유한 군대 힘을 과시하면서 교만하게 이곳을 탈환해야한다고 한다.

20 10절에 불신자 아람의 벤하닷이 보여준 교만함 모습과 똑같다.

아합하고 벤하닷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면서, 아람과 연합을 했지만 이제는 예전에 전쟁을 통해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찾아오고자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길르앗 라못은 아람이 빼앗은 땅이고 형제요~하면서 빼앗은 땅으로 20 14절에서 돌려주겠다고 약조하고 벤하닷이 목숨만 살려달라고 하면서 약조하고 벤하닷의 목숨대신에 받기로 했는데 예전에 이미 벤하닷 1 땅들을 뺏겼었다.

다시 돌려주기로 했는데 벤하닷이 약속을 지키니까 이제는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참으로 명분도 있고 실리도 있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이곳을 미국이라 말해야 하나요? 러시아라고 해야 하나? 일본이라고 해야 되나.

벤하닷은 약조를 하고 지키지 않았을까? 돌려주지 않았을까? 이런 것들을 Think 해봐야 한다.

아무리 봐도 아합이 실력이 없어 보이고 무시가 되는데, 7천명이 어떻게 10 대군을 물리칠 있지? 가만 생각해보니까 결국 여호와라는 때문에 이겼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2 전쟁 때도 여호와가 산의 신이라서 우리보다 강하다고 했던 기억하시나?

그래서 형제 싸움에서 이길 것이다. 졌잖아요?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가 무서워요. 그런데 너무 우습지 않나?

아람은 도리어 무서워하는데 아합은 내가 잘나서 이겼다고 하는 것이다.

동안 계속 하나님 나라 때문에 어쩔 없이 하나님께서 아합을 지켜주셨는데 이것을 다른 사람은 아는데 아합만 모르는 것이다.

네가 여호와를 버리면 다음은 그날로 지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져본 적이 없으니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벤하닷은 길르앗 라못을 돌려주기가 너무 아까워서 기회가 있으면 빼앗을 있다고 생각하고, 안줘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합은 3 동안 회개하지 않고 3년을 보내니 둘은 똑같다.

그런데 사단은 3 동안 아합을 편하게 해서 아합을 여호와를 떠나게 하는 전략을 것이다.

3년을 편하게 하니까 아합이 완전히 멀리멀리 가더라.

사단 쪽으로. 아합이 아무리 깨어 있으려고 해도 아합은 벤하닷 전쟁 2, 가뭄 3, 엘리야하고 때는 믿는 흉내를 냈는데 이런 인간이 되는 밖에 없으면 깨어 있으려고 해도 깨어있을 수가 없다.

누구한테는 전쟁이 없는 것이 쥐약인 것이며 아주 그것은 축복이 아니다.

내가 전쟁이 없어도 깨어 있는 사람, 사람이 진짜 믿음 있는 것인데 대부분 그러기 어렵다.

교만이 올라오고 아람을 물리치겠다고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전쟁이 없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것인데 결국 이것 때문에 아합은 죽게 되어 있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강 동쪽 도피성 중에 하나였고 동편 지파의 르후벤, 므낫세, 지파에게 주어졌던 땅이다.

중에서 요단강 동편 도피성 중에 하나인 레위인의 성읍이었다. 이스라엘이 빼앗긴 땅도 많았지만 이곳(요단동쪽) Trans Jordan , 전략적 요충지였다.

산악지대인 지역은 농업에도 적합한 아주 비옥한 땅이었다.

무역의 중심지고.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종교, 농업, 상업적 이유에서 아람으로부터 반드시 빼앗아 와야 하며 본래 건데 가져와야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구려(광개토대왕) 우리 영토가 중국까지 영토가 넓혀졌지만 그것을 것이라고 찾으러 없다. 그런데 이거 내거다이러는 것이다.

***이것을 생각해보면 한국 또한 세계 강국에 요충지 아닙니까? 세계 강국은 모여 있다. 다들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저는 이제 진보, 보수를 떠나서 한국이 위기이기 때문에 말씀 드리고자 한다. 왜냐하면 나라가 있어야 교회도 있고 예배를 드릴 있지 않나? 나라를 엄청 사랑한다. 한국은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지만, 이렇게 지켜지고 있다는 것은 동방의 예루살렘 맞다. 우리가 언제부터 살았나? 기독교가 들어오고 난부터 것을 누구도 부인할 없다. 우리는 최대 빈국이었지 않나? 그런데 기독교에서 무당 보이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너무 번영신학, 기복의 신앙으로. 그래서 우리를 회개케 하시기 위해서 지금 이제 일본 무역 전쟁으로 쳐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공을 들이던 북한도 미사일을 마구 쏘아대고 미국은 자기 나라에 것이 아니라고 싸면서 이제 관심이 없다. 그런데 이참에 중국은 사드(SAAD) 철회하라고 한다. 정말 이것은 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반일 감정이 국민감정이라고 해도 명분이 없으면 밖에 없다. 평범한 우리는 과거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가 너무도 어렵다는 안다. 전라도, 경상도가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우리도 일본은 영원히 나쁜 놈인 것이다. 이건 제가 오늘 얘기한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얘기다. 그런 고정관념 너무 무서운 것이다. 무엇을 해도 일본은 무조건 나쁜 놈인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알고 있지만 제가 팩트를 집어보려고 한다. 일본은 1965년에 한일협정을 맺을 무상으로 현금으로 3억불, 차관으로 2억불 해서 모든 청구소송을 종료했다. 그런데 5억불이 지금은 작아도 당시에는 일본도 전후였는데 일본 예산의 절반이었다고 한다. 그걸로 거기도 잘못을 했으니까 돈으로 우리는 박대통령 경제개발 5개년 (유명했잖아요.) 차례 걸쳐 했다. 그래서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으로 진입을 것이다. 당시에도 한일협정 반대 데모하느라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가 작년에 대법원에서 개인 청구권을 인정해가지고 일본의 미쓰비시 중공업에 강제징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럼 일본에서 이것이 문제인가 하면, 이것이 줄줄이 앞으로 개인들이 청구할 아니겠나? 그런데 똑같은 사건이 미국에서도 있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 법원의 판결사례를 소개하면, 1941 태평양 전쟁 당시 포로였던 제임스 등이 강제 노역에 대해 일본을 상대로, 회사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 연방법원 판결문은 일본과의 평화협정이 원고들의 주장을 가로막고 있고 원고들이 충분히 받아야 보상은 평화와 교환하게 됐다. 하지만 후손들이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무한한 포상은 빚을 갚을 만한 것이다. 원고들의 희생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면서도 그들의 청구는 기각한다.라는 이런 판결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같은 시각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박정희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문제에 대해서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국익과 연결이 되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억울해도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때문에 30 만에 살게 인정해야 되는 아닌가. 미얀마는 1970년대에 제일 살다가 지도자 사람 때문에 최대 빈국이 되었고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게 인정해야 되는 것이다.

문제에 있어서  외교적으로 처리를 했으면 좋겠고. 지금 개인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과 화이트 백색국가리스트에서 빠지게 것은 비교도 만큼 손해가 크기 때문에... 원자재를 생산하도록 조금씩 실력을 키워야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력이 없으면 평등도 없다. 무법자 북한도 이제 핵을 가지고 있으니까 모두 떨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감정에 호소할 때가 아니다. 이혼도 회사생활도 마찬가지다.... 인정을 못해서 대사를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팩트를 인정하는 것이 실력 중에 실력이라고 한다.

4 (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아합은 여호사밧을 꼬여서 전쟁에 참여하게 했다.

그리고 여호사밧이 스스로 전투에 참여하고자 결단을 했다.

나는 당신과 같고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노래를 하면서.

여호사밧이 긍정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왕은 어쨌든 간에 연대의식은 매우 강했지만 그러면 뭐하나?

남쪽 북쪽은 영원히 원수처럼 지냈는데...

둘이 완전히 망할 때까지 남북은 어떤 약속을 해도 결국은 다시 원수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럴까?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된다는 것을 너무도 수없이 보게 된다.

그러니 아람과도 20장에서 형제여~하면서 것이 당신 이라 외쳤지만 북이스라엘도 유다도 아람도 모두 자기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지금도 나라들이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마찬가지인 같다.

*** 신문의 칼럼에 이런 내용이 있다. 6.25 당시 한미방위조약 체결을 것을 읽었는데 마찬가지인 같다. 1953 6 17 이승만 대통령이 주한미국대사를 경무대(청와대) 불렀다. 한미 방위조약 체결을 아무리 역설해도 미국이 들은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닦달하면서 오늘 한국은 공산집단 위협 때문에 조약이 필요하지만 내일은 일본의 위협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조약이 필요하다고. 우리도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난 얼마 안됐던 때였다. 얘기를 여기에 넣은 것이다. 조약 전문에 어떤 구절이냐면 어떤 잠재적 침략자도 조약 당사국 어느 나라가 고립되어있다고 착각되지 않도록 조약을 해야 된다.이런 일들이 정말 일어났다. 70 전에 이런 조약을 이대통령이 맺어놓은 것이다.

지금 한국에 전쟁이 없다보니깐 다른 세상전쟁을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요셉처럼 일본의 피해자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가해자이라는 것을 알고 요셉이 화해했듯이 대한민국은 감사하게도 믿는 사람이 일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일본은 아무리 살아도 기대할 것이 없다. 그러면 믿는 우리가 훨씬 품위가 있어야 되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일본이 훨씬 품위가 있는 같고 살기 좋은 나라인 것은 여러분도 아신다. 36 식민지 생활을 했으면 우리가 선두를 지켜야 되지 않나? 그런데 똑같이 전후 거기도 히로시마 폭격으로 우리도 6.25 전쟁으로 폐허로 시작했는데 선두를 일본에게 뺏겼다 이거다. 우리의 실상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적용]

-여러분이 편안하니 본래는 것이라고 탈환하고 싶은 길르앗 라못 전쟁은 무슨 전쟁인가?

-여러분 말이 이해되나? 우리가 경상도, 전라도도 ...맨날 애매한 소리들을 서로 한다. 무조건 도로 BACK 무슨 결정을 해도 도로 . 도로하고 백하고 똑같네. 이게 어려서부터 일본하면 나쁜 놈인 것이다. 거기서 우리가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데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라 빨리 외교적으로 해결하고 시간을 벌어서 실력을 키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쟁이 없으면

2. 물을만한 선지자 미가야를 미워한다. (5-9)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막으니까.

(5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여호사밧이 이처럼 모든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는 것은 이제 아합에게는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이고 여호와께서 계속 보고 계시는 사건이다.

여호사밧이 전쟁엔 동참은 하겠는데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물으라고 것은 여호사밧이 하나님이 보내준 하나의 선지자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이 아합같아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혼자서 큐티하기 어렵지 않나?

곁에서 Movement 그래서 중요하다.

큐티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 중요하냐면 혼자서 하면 힘드니까 날마다 물어봐 주는 것으로 오늘 큐티했어? 오늘 깨달았어? 오늘 사건이 났는데 너는 어떻게 들었어?이것이 정말 일본을 물리치는 비결인 것이다.

때문에 큐티를 하고 한마디 때문에 걸려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어보라는 말이 우리들의 공용어, 관용어지 않나?

이렇게 목장에서 물어봤어요. 가지고 있는 농토의 이축권을 사려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곳에 5년만 지나면 신도시가 완성되기 때문에 무조건 개발돼야지 되겠는데 개발업자가 땅은 허가가 나지 않을 없는 곳이라고 하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런데 허가가 안날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이것을 목장에서 물어보고자 한다고 했더니, 목자부터 목원까지 같이 들고 일어나서 반대를 해주더만요. 그거 하나님 일을 위해 쓰일 돈이라는 마음가짐이 있으면 해도 좋은데 그런 마음 없다면 하지 마시고. 이게 토지 보상 받는 것이 마치 공돈처럼 느껴지지만 도박과 모험하는 기분이 들어 반대한다고. 당장 먹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 아니라도 자식 대에서 개발할 수도 있어서 하시면 좋겠다고. 수준들 대단하시다. 그래서 그날로 결정해야 한다는데 부목자님은 어떻게 적용하셨는지 매우 궁금하다. 알려주시기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사소하고 아무 것도 아닌 같아 보이는데 물었다는 그것 때문에 가정이 살아나고 회사가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번이 아니다. 아합이 잘나서 벤하닷과 이긴 것이 아니지 않나?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셨지 않나? 그런데 아합은 아무리 들려줘도 듣지를 않는다.

6 (6 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물을만한 선지자가 있냐?라고 했더니 400명을 모았다.

그런데 선지자 400명이 기도도 없이 말씀도 찾지 않고 즉시 올라가소서, 것입니다.이렇게 얘기를 해주는 ㅇㅣ.

아합은 850 죽었는데 어디서 이렇게 400명을 금방 뚝딱 만들어 냈을까?

그러니까 사람은 굉장히 조폭 두목 같지 않나?

맛있는 , 멋있는 , 의시되는 것을 좋아하니까 400명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자격도 없는 이런 선지자를 400명이나 모아서 자기 말에 Yes 하는 어용선지자를 모았다.

사람은 항상 최고를 좋아하니까 맛과 멋을 좋아하니 오죽하면 이세벨은 죽을 때도 화장하고 죽는 것이 잠시 후에 나온다.

그런데 바알 선지자들이 죽었고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영이라는 표현(24) 하는 것으로 보아 명목상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임에도 분명한데, 그들이 여호와를 입으로만 섬기는 것이다.

아합은 마음먹으면 반드시 가져야 되는 것을 보았지 않나?

나봇의 포도원 가지려고 나봇을 죽이려는 것을 봤다.

말하지 않아도. 여기에 사람도 No 안하는 것이다. Yes 부대만 있는 것이다.

다수가 그래서 옳은 아니고 맨날 한다고 옳은 것은 아니다.

법이 있지 않나? 우리가 가서 행진도 해야 일도 있지만, 이처럼 분별이 어렵다.

나치가 독일 교회를 히틀러에 의해서 핍박을 했어도 한마디도 소리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독일이 히틀러 정권에 맞서 회퍼목사 혼자서 투쟁하다가 순교를 했다.

아합의 대적은 다른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엘리야가 850대의 대결에서 이겼다.

그런데 무명의 하나님 선지자가 그렇고 미가야를 위해서 400명을 준비했다.

사람을 대적하기 위해서 400명의 어용 선지자를 고용한 것이다.

지는 데도 만들고 지는 데도 만들고 하는데 과연 사람을 능력의 국부라 해야 하나?

7 (7 여호사밧이 이르되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6절에 선지자는 소문자 lord, 7절에 여호와의 선지자는 대문자 Lord. 영어 성경에는 그렇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니 주는 불교의 주도 있고 유교의 주도 있고 이슬람의 주도 있는데 여기서 주는 오직 여호와의 선지자 Lord 되어 있는 것이다.

역대하 17장을 보면 여호사밧은 산당을 제거하고 특별히 말씀을 순회하면서 가르치면서 개혁을 주도했다.

당연히 영적 분별력이 있다. 다윗의 후손 아닌가?

여호와 선지자를 찾았는데 역대하 17장에 개혁해놓고 역대하 18장에 아합과 사돈을 맺는 뭔가?

그러니까 보면 행위로 판단하시면 되는 것이다.

부족해도 여호와를 믿고 나가는 것에 마음을 둬야 하는데, 다윗의 등불처럼 꺼져가는 듯해도 예수 씨가 있는 것을 봐야 한다.

8절에 (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미가야 사람이 있는데 사람은 나한테 흉한 일만 예언한다고 하니 여호사밧이 왕은 그딴 하지말아요하면서 질책을 것이다.

여호사밧이 여호와 선지자를 찾으니 미가야 사람이 있다고 한다.

미가야가 여호와께 묻는 다는 것을 아합이 알고 있다.

아는데 아합이 자기중심적이니까 하나님 말씀인가, 아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나한테 좋은 , 아닌가? 교회를 다녀도 이것만 중요한 것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합이 미가야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하며 그가 나한테 흉한 일만 예언하기 때문에 내가 미가야를 미워하는데 미워한다는 뜻은 누군가에 대해서 참을 없을 정도로 깊이 증오함을 나타내는 동사다.

아합은 이렇게 참을 없을 정도로 미워하는 사람이 미가야, 엘리야인데 그냥도 아니고 죽이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서 유추해볼 있는 것은 내가 진짜 선지자라면 나를 참을 없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되는 구나이며 그럼 여러분은 진짜인 것이다.

어저께도 여인이 이단 관련 10권을 앞에 놓고 갔다.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나를 죽이고 싶은가 보다.

그런데 멀리 이단 없이 예수를 믿는데 그렇게 웬만큼 믿지 않으면 그렇게 참을 없이 죽이고 싶을 만큼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도 없다.

쪽에서는 좋아하고 쪽에서는 죽으리만큼 미워하는 있을 있다.

그런데 아합은 자기에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용서 못한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은근슬쩍 질책하면서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오게 했다.

9절에 (9 이스라엘의 왕이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전쟁을 앞두고 그렇게 듣기 싫은 흉한 말을 미가야로부터 들어야 하는 것을 예견하면서 사실은 지금 여호사밧이 미가야를 데리고 와서 흉한 일을 듣게 하는 것이 아합으로 오는 죽음의 길로부터 돌이킬 있는 기회가 아니겠나?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여호와께서 계속 아합을 보고 계시는 것이다.

계속 여호사밧을 보내서 메신저를 주시는 것이다.

기회를 주시고 주시는데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합을 보고 계신데 아합은 돌이키지 않는 것이다.

전쟁 없이 3년을 지냈는데 사람이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국부로, 이순신장군 같이.

[적용]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가깝게 지내나?

-여러분은 물을 만한 선지자를 머리로 좋아하나? 가슴으로 좋아하나? 참을 없을 정도로 증오하나?

전쟁이 없으면,

3. 길한 말만 듣기를 원한다. (10-12)

(10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이제 아합과 여호사밧이 왕복을 입고 왕좌에 앉아 있고 400명이 앞에 앉아 있으니 이것은 개인적 의견이 아니고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가?

400명의 선지자 집단이 공개적으로 예언 활동하는 것으로 예수 무당이 전하는 말을 듣는 풍토가 아합에게는 조성이 되었다는 것인데 어용 선지자들이니까.

11.

(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이제 시드기야가 뿔을 만들어 뿔로 아람왕을 죽이면 된다고 한다.

그렇게 실물 교육을 하면서 실감나게 예언을 했다.

교보재까지 써가면서 완벽한 브리핑을 했는데, 예언은 신명기 33 16-17절에 모세가 수송아지의 위엄과 들소의 뿔에 비유해서 요셉지파를 축복한 이야기다.

에브라임지파가 세상 열방과 싸워 승리할 것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는데, 에브라임은 요셉지파의 후손인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대표하는 아합이 시드기야가 요셉지파를 축복하는 예언을 말씀을 가지고 하면서 뿔을 만들어가지고 와서는 열방과 싸워 이렇게 하면 승리할 것이라고 하니 흥분한 아합은 맞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400명이 모두 같이 아합 왕의 승리를 예언했다.

길르앗 라못(Ramoth Gilead)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승리합니다. 왕의 손에 넘깁니다. 왕이 최고입니다. 연신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1절에 처음 보니까 모든 것이 시드기야가 자기를 위하여 예언했다는 것이다.

시드기야 자신을 위해 예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ᄁᆞ 우리가 모두 사역을 자기를 위하여 모이고, 자기를 위하여 사역하고, 교회에서도 성경 가지고 수많은 우리가 기획안을 만들지만 다들 자기를 위하여 기획안을 만든다.

보기에는 멋있는 뿔이지만 열매가 없는 것이다.

여호와를 위하여! 아시겠나?

[적용]

-여러분은 남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고, 내가 하는 일에는 길한 말만 듣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눔>

지난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아합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엘리야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에 와서 계속 악을 행해도 여호와께서 계속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눈길이 느껴진다고. 이게 말씀을 듣고 나눔을 했다. 아합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간단하다고.

오늘 비가 와서 아침 일찍 가야 진흙탕 운동장 보다 아스팔트에 주차를 있을 거라 생각해서 권찰을 재촉해서 같이 1부예배에 왔는데 권찰이 옆에서 지적을 했다는 것이다. 집도 가까운데 멀리서 오는 사람에게 양보하려는 마음이 눈꼽 만큼도 보인다고. 자기만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네가 그러고도 목자냐! (나눔에 이렇게 그대로 나와 있었다.) 이세벨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누워있는 아합한테 일어나 식사하라고 북돋아 주는데 권찰은 나한테 오히려 대적자라 부르고 올바른 얘기를 해주니 내가 아합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흉한 들었잖아요? 권찰님이 뭐라고 했냐면, 그러면서도 운동장 진흙탕 지나 가는데 여기서만 회개하는 거다, 속지 마시라.했단다. 이렇게 흉한 말을 해주시네요.

나눔을 듣고 '목자님과 권찰님이 얘기하시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계속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이제는 빚도 정리해가고 특별한 일도 없으니 앞으로 우리들 공동체 붙어가면서 천국 까지 교회 일을 열심히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니까. 권찰님이 집사님, 훌륭한 고백을 하셨는데, 꼬투리 잡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재미난 일이 있어도 교회 사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여가 선용으로 재미난 일이 없어서 교회 일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 않아요?계속 이렇게 흉한 말을 해주시네요.

다른 목장은 보니깐. 외도 사실을 고백하고 회개했지만은 목장을 새식구 때마다 죄를 오픈하라고 매일 아내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얘기를 하는 것이 삶의 몫인 같다고. 여기도 흉한 일을 예언하라고 계속 얘기해주네요. 이렇게 길한 말이 아닌 것을 듣고 산다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지 않겠어요? 말이 맞지 않습니까? 남편이 열등감이 없으니 말을 듣는 것입니다. 열등감이 없으면 네가 뭔데.이러지 않겠어요? ... 열등감이 없으면 모든 것이 드러내요. 열등감이 많으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열등감 많은 것이잖아요. 그래서 싸우는 것입니다. 나는 훌륭하시다고 생각해요. 목자님께서. 아합이라고 생각하시니.

<Epilogue>

전쟁이 삼년간 없으면 다른 세상 전쟁을 꾸민다.

그런데 내가 워낙 꾸미는 것이 너무 갖고 싶은 것이고 가고 싶은 곳이라서 물어볼 만한 선지자를 싫어한다.

가지 말라고 할까봐.

그리고 나에게 길한 예언을 해주는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다.

정말 오늘 제가 하는 얘기도 이것을 꼬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된다.

우리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고 주님 말씀하시면 잠시 멈춰서는찬양하고 기도하겠다.

 

<말씀 찬양: 주님 말씀하시면>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주님 뜻에 있으니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뜻을 위하여

 

주님 나를 이끄소서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