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외교 O.S.T.(Olympic Stroy Telling) 제2편 (세계를 움직이는 스포츠 계 큰 별들: 故 정주영 대한체육회장 겸 현대그룹창설회장과의 만남)]
*故 정주영 회장과의 만남(The late Ju-Yung CHUNG, Founder President/Chairman of Hyundai Group)
(좌로부터 이영호 체육부장관<옆 모습>,노태우 1983년 당시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역임>, 사마란치 제7대 IOC위원장, 통역 중인 필자, 정주영 대한체육회장 겸 KOC위원장/무교동 9층 대한체육회장 집무실에서)
-1915년 11월25일생(토끼띠)
-주소: 종로구 청운동(집)
종로구 계동(사무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의 주인공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1981년 9월30일 바덴바덴의 기적인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 작전/Thunderbolt Operation」의 선봉장 격으로 6·25 한국동란 이후, 전 세계에 MASH(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야전이동육군병원)라는 전쟁드라마를 통해 비참한 전쟁 폐허국으로만 알려졌었던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운 「1988 서울올림픽 개최국」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직을 맡았다가, 1982년부터 대한체육회장 및 KOC 위원장을 맡아 1984년 LA 올림픽에서 해방 후 한국선수단이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데 혁혁한 이바지를 해 주셨다. 사마란치 IOC 명예위원장을 포함한 전 세계 올림픽 가족 모두는 아직도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야말로 20세기 가장 훌륭한 대회(The Best Games Ever)라고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 입사한 것은 1981년 9월 바덴바덴에서의 성공적인 올림픽유치가 있고 난 다음해인 1982년이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성공적인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체육부를 신설하고 서울올림픽조직위를 발족시켰다. 대한체육회 및 KOC는 태릉 선수촌을 근거지(Base Camp)로 하여 꿈나무 선수 발굴 및 육성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성공적인 대회운영과 사상 최고의 성적이라는 「두 마리 올림픽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떨치고,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데 견인차 역할을 다하였다.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대한민국 역사적 부흥기(Renaissance)로 기록되고, 그 이후 대한민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Land of Morning Calm)」에서 「올림픽운동의 나라(Land of Olympic Movement)」로서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2004년 7월2일 체코 프라하에서 이룬 작은 기적(2010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과 다름없는 경천동지의 큰 성과)으로 까지 뻗치게 되었다.
필자는 故 정주영 회장께서 대한체육회장 겸 KOC 위원장 재직 시 각종 국제회의의 통역을 비롯, 1988 서울올림픽 유치 이후 방한하는 수많은 IOC 위원, 각국 올림픽 위원회(National Olympic Committees) 위원장, 각 종목 국제경기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회장단, 각국 체육장관(Sports Ministers) 등 전 세계 스포츠 관련 고위 인사들과 故 정주영 KOC위원장과의 공식 면담, 오찬, 만찬 통역을 도맡아 하였다. 필자는 영어/불어 통역을 하면서 故 정주영 회장께서 외국어를 직접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통역의 의사전달 내용과 맥락을 기가 막히게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83년 당시 미수교국이었던 중국이 최초로 자국 여자 농구팀을 한국에서 개최하는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 시켰을 때, KOC위원장 주최 만찬 시 중국선수단장 통역 중 일어났던 한 예를 회상해 본다.
- KOC 위원장: 대한민국은 3,500만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 필자(통역): Korea has a population of 40million.
(※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4천만에 이르렀기 때문에 필자는 통계에 근접하게 수정 통역하였음)
- KOC 위원장: 내가 언제 4천만이라고 그랬어? 이 사람 큰 일 낼 사람이구만!
- 필자(통역): 회장님, 우리나라 인구는 현재 4천만입니다.
- KOC 위원장: 이 사람아, 통역이 내 말을 그대로 전달해야지, 왜 함부로 고치고 난리야!
- 중략 -
- KOC 위원장: 소련군이 평양에 진군해서 북한을 점령했다구.
- 필자(통역): Soviet troops came into PyeongYang, and they began to rule North Korea when Korean War broke out in 1950.
- KOC 위원장: 이봐, 내가 언제 한국전쟁 이야기 했어?
- 필자(통역): 회장님, 제가 추가 설명을 곁들였을 뿐입니다.
- KOC 위원장: 이 사람, 안되겠구만.
다음날 故 정주영 회장은 정례 회장단 회의석상에서 전날 통역 문제로 필자에 대해서 좋지 않은 평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이후 필자는 故 정주영 회장 통역 시에는 아무리 틀린 이야기를 하여도 판박이 통역만 하였고,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동안 필자에 대하여 많은 칭찬을 하여 주셨고 그랬기 때문에, 혹시 기고만장할까 봐 자만하지 말도록, 가끔 일침을 가하셨던 것이라고 전언하는 것을 들었다. 심지어 현대그룹 사장단 전체 회의에서도 윤군(필자)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칭찬을 하였고,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었던 이명박 前 서울시장(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 역임)께서도 현대그룹 회장비서실에서 필자와 만났을 때 “자네가 그 유명한 체육회 윤군인가?”라고 호기심 어린 인사를 건넨 적도 있었다.
이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2008~2013)이 되신 이명박대통령과의 조우는 2011년에 평창2018이 남아공 더반 개최 IOC총회에서 2018년동계올림픽유치에 성공하고 강릉의 한 골프장 소재 성공 축하 피로연장에서 이루어 졌다.
그 당시 도열해 있던 필자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자 필자는 이 대통령께 “제가 정주영회장 대한체육회장 시절 통역하던 대한체육회 윤군 입니다”라고 소개하자 이 대통령은 감개무량한 듯 “그~래, 맞아! 그렇구만. 왜 진작 날 찾아오지 않았어?”라고 반가워하며 정답게 악수했던 기억이 난다.
대한체육회장을 그만두시고, 작고하실 때까지 간간이 공식석상에서 만나게 되면, 따뜻하게 격려도 해주시고, 함께 사진도 찍고 다정다감한 면을 많이 보여주셨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Don't let your ordeal get the better of your life deal)」의 주인공이신 정주영 회장께서는 지금은 소떼를 몰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셨던 정 회장님은 유세도중 시간이 나면 어쩌다 무교동 대한체육회 9층 회장비서실에 들르셔서 당시 김종하 대한체육회장 비서실장이었던 필자와 차를 한잔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필자에게 장가갈 때를 대비해서 30평대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현대그룹 직원가격으로 해 줄 테니 이야기 하라는 제안에 대하여 당시 “제가 주택청약부금 1순위이니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바보같이 사양했던 일이 두고두고 후회막급이지만 정주영회장님의 따뜻한 배려의 말씀에 감사하며 그 제안 내용이 아직도 귓가가 쟁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