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20. 4. 24. 09:06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21편(스포츠외교 미래군단과 안면장사)]

 

역대 대한민국 스포츠외교의 최고봉을 꼽으라면 단연 故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다. 여러 가지 국·내외 정황으로 2005 6 IOC 위원 직을 사임하면서 국제 스포츠 계를 사실상 은퇴하게 되는 분기점이 되었다. 하지만 그분이 국제 스포츠 계에 이룩해 놓은 업적과 전 세계를 향해 열어놓은 지평을 고려한다면 그를 스포츠 계의 칭기즈칸이라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한국스포츠 계 인사로서 IOC(위원, 집행위원, 부위원장, TV 분과위원장, 위원장 후보), IF(WTF 총재, GAISF 회장, ARISF 회장, IWGA 회장), NOC(대한체육회장/KOC 위원장, 대한태권도협회장, 국기원장, 1997 부산동아시아대회/1999 강원동계아시안게임/2002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광범위하고 해당기관 핵심직위를 모두 석권하여 국제 스포츠외교 계를 한때 천하통일 했던 전무후무할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김운용 박사가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할 당시 「스포츠외교」란 단어는 인구에 회자 되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부쩍 많이 유행하기 시작한 최첨단 어휘라고 볼 수 있다.

 

스포츠외교를 잘하려면 영어 등 외국어에 능통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

. 그렇지만 그것은 필요 조건일뿐 충분조건 사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미국인, 영국인 등 영어를 모국어로 완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모두 스포츠외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필자는 지난 38년간 거의 20개 동·하계 올림픽대회에 참석하였다. 그 중 10개 동 하계올림픽에는 대한민국대표선수단 섭외임원 겸 선수단장 대행(각종 선수단 관련 국제회의, 단장회의 등에 단장 대리인 자격으로 붙박이 회의 대표 역할을 수행함)으로 또한 IOC 총회, ANOC 총회, OCA 총회, EAGA 총회 등에도 단 한번도 빠짐없이 KOC 회의대표로서 단골로 활동함으로써 스포츠 계에서 국제대회에 가장 많이 참석하고 발언도 제일 많이 한 국·내외 기록 보유자 중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리라고 확신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각종 스포츠관련 국제회의 등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대표, 영국대표들 중 발언 한 번 변변히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며 오히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대표들이 옹골찬 발언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모국어로서 한국말 잘하는 스포츠 문외한(특정 전문분야에 근무해 본 적이 없는)이 명문대 국문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대한체육회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하여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15개 시·도지부 대표들이 모두 모인 전국체전 비교평가분석회의에 참가할 경우 그 우리말 회의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할 것이며, 더구나 연관된 발언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회의에 참석한 생소한 얼굴의 시·도 지부 대표들과 얼마나 효과적인 대화와 외교를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면 국제 스포츠외교 무대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을지 감이 잡히리라.

 

「스포츠외교는 안면장사」라는 진리 아닌 진리가 스포츠외교의 성격을 가장 효과적이고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물론, 안면이 잘 통하면서 영어 등 외국어 구사능력이 수준급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역대 한국 IOC 위원을 역임한 분 가운데 故 장기영 박사는 영어가 결코 수준급은 아니었지만 동료 IOC 위원들 사이에서 가장 존경 받고 인기 있고, 신뢰감을 주는 국제 스포츠외교통으로 한국스포츠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인물이었다.

 

그러한 예는 지금도 즐비하다. 각 경기단체 인사들 중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힘깨나 쓰고 잘 통하는 분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이분들도 처음에는 영어 등 외국어 구사능력이 수준급이었던 사람들은 아주 드물며 오히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함으로써 실전용 외국어 실력이 갈고 닦여 자기도 모르게 늦깎이 외국어 구사 자들로 변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故 김운용 박사가 대한체육회장/KOC 위원장 재직시절(1993~2002) 필자는 국제부장, 국제사무차장으로서 섬기는 입장이었으며 국제 스포츠외교 무대에서 함께 활약했었다. 어느 날 김박사께서 필자에게 “본인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도 했고 영어 등 외국어에 관한 한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인데도 국제 스포츠 회의에 참가하기 시작하여 10년 지나니까 겨우 귀가 뚫리고 입이 트이더라”라고 술회한 적이 있었다.

 

김운용 IOC부위원장 사임 이후 IOC에서 유일하게 활동 가능한 한국 IOC 위원 청일 점인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었다. 당시 이건희IOC위원과 선출 동기생인 북한의 장웅 IOC 위원 겸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기간 중 필자가 주선한 조선일보 등 한국 일간신문 특파원들과의 인터뷰에서 「스포츠외교 전문가 양성」과정을 일본의 「생선초밥 전문가」의 그것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생선초밥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0년간은 생선초밥을 손바닥 안에서 적절히 뭉치는데 전념해야 하고, 그 후 5년에서 10년간은 회를 적절한 두께로 뜨는 기술을 연마하며 그 후 15년 내지 20년의 초밥 위에 회를 얹는 기술을 연마하는 기간을 지내야만 비로소 생선초밥 전문가로서 인정받게 되는 것처럼 스포츠외교 전문가를 키우려면 국제 스포츠 무대에 15년 이상 꾸준히 내보내서 정성 들여 투자하고 관리해야만 가능하다.”고 힘주어 강조했던 적이 있다.

 

한 국가의 산림녹화사업을 예로 들면 키 크고 우람하게 자란 나무 몇 그루를 옮겨 심어 당장 그늘 만들고 산을 덮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바람과 벼락을 맞으면 뿌리 채 뽑혀 죽어버려 산림녹화사업이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될성부른 묘목을 선별해서 산 전체에 골고루 심고 정성스레 관리해 울창한 숲으로 가꿀 경우 산림 백년대계가 보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스포츠외교 미래 군단을 양성하려면 단발마적, 실적 위주의 비효율성, 사후활용도가 미미한 외국어 연수과정을 중심으로 제한된 스포츠외교원 양성 계획보다는 KOC 국제업무전담 실무직원들과 가맹경기단체 국제업무 담당 직원들, 그리고 국제대회 메달리스트를 포함한 선수 및 경기인들 중 분야별 스포츠외교요원 꿈나무 자원으로 선별하여 이에 상응하는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투자를 통한 중·장기 인재양성 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에는 필자가 목격한 중국의 전설적인 스포츠외교통의 성장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루 쉥롱(Mme Lu Shengrong)여사는 필자가 국제 스포츠 무대에 진출하기 시작할 무렵인 1980년대 초, 중국 스포츠외교 실무자로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필자도 유이균 당시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의 국제배드민턴연맹(IBF) 임원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외교력 수행을 위해 故 박종철 대한배드민턴협회 사무국장의 요청에 따라 KOC의 경기단체 스포츠외교지원 차 참석한 아시아배드민턴연맹 총회 및 이사회 등에서 Lu Shengrong 여사와 조우하게 되었다.

 

필자가 Lu 여사의 역할 등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자 Lu 여사는 중국올림픽위원회 및 중국국가체육위원회의 국제담당실무자로서 중국배드민턴연맹 회장 등 고위직 임원에 대한 영어 통역 등 국제업무를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그 후 필자는 1986년경 1988 서울올림픽대회 전시종목으로 채택되어 향후 올림픽정식종목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조직위원회(SLOOC) 관계자 로비 차 방한한 영국올림픽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필자와 2008년 올림픽 IOC 평가위원으로 함께 활동하였고 영국 IOC위원인 Craig Reedie 당시 IBF 회장과 신라호텔에서 장장 4시간의 마라톤 담판을 벌여 배드민턴의 서울올림픽 전시종목 채택을 조건으로 당시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을 IBF 집행위원도 거치지 않은 채 월반하여 파격적인 조건부 IBF 올림픽 부회장으로 특별 선출되도록 Reedie IBF의 언질을 받아내었으며 실제로 유이균 회장은 당시 최초의 한국인 국제스포츠 단체 부회장으로 특별 선출되어 활동하였으며 그 대가로 유이균 회장은 배드민턴이 서울1988올림픽 전시종목이 되도록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배드민턴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정식종목이 되어 한국은 황혜영, 정소영, 박주봉, 김동문, 길영아, 하태권 선수 등 기라성 같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군단을 탄생하게 한 금메달 밭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반면, Lu Shengrong 여사는 아시아는 물론 국제배드민턴 무대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안면도 익히고 차츰 중국의 회의대표로서 입지도 굳히기 시작하였으며 중국정부 및 올림픽위원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 결과 Lu 여사는 아시아연맹과 국제연맹에서 분과위원으로 집행이사로 부회장으로 결국에는 IBF 회장으로 선출되어 국제업무실무자가 해당분야의 제1인자가 된 입지전적 변신에 성공하였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데 15년 가량 소요된 것이다.

 

Lu Shengrong IBF 회장은 이후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종목인 관계로 국제 스포츠 무대, 특히 IOC에서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국제연맹(IF) 회장자격의 IOC 위원이 되어 IBF 회장직을 그만 둘 때까지 IOC 위원으로서 중국 스포츠외교 권익을 위해 로비 하였고 Beijing2008올림픽유치성공에도 맹활약 한 바 있다.

 

이는 필자가 스포츠외교요원 발굴 및 양성과정에 있어서 좋은 예가 되는 「성공신화」로 인용하는 실화이다.

 

한국 스포츠외교 미래 군단 10만 양병설을 지원하고 투자하고 가꾸어 나갈 제2의 독립적 정부부처로서의 체육부의 부활과 스포츠외교재단활성화를 제안한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