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101편(대한민국 국제화 및 세계화의 요람搖籃 한국외국어대학교/HUFS 스포츠 외교 요람Cradle)]
오랜 만에 모교(Alma Mater)인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소재 한국외국어대학교(HUF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교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7080세대 학번으로 재학 당시 낭만의 상징이자 성지처럼 즐거워했던 미네르바 동산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에 각종 건물이 들어선 것이 눈에 띄었다.
단과대학으로 출발한 모교가 이제 버젓이 종합대학교로 발 돋음 한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어쩐지 허전한 느낌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년 전에 2년 연속 대학입학사정관으로 면접 등 모교에 재능기부 활동에 동참한 바 있었고 영어대학 동문회 사무총장으로 몇 년 간 활동한 적이 있어서 가끔 이문동 모교를 방문한 바 있어 생뚱 맞지는 않았다.
(사진 위: 영어대학동문회 사무총장으로 연례총회 행사 사회를 영어과 출신답게 영어로 진행하였다/아래 사진: 영어대학동문회 총회 직후 좌로부터 필자<76학번>, 윤용로 전 기업은행 및 외환은행장<74학번>, 엄홍길 동문<세계의 고봉인 히말라야 14좌를 한국 최초로 완등했다. 이어 얄룽캉, 로체샤르까지 등반해 세계최초로 8,000m이상인 16좌 모두를 완등한 기록을 세웠다>, 박철 외대총장, 임경자 영어대학동문회장, 김인철 외대 부총장>현 외대총장>)
모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휴대폰 카메라에 변모된 모교 건물들을 담아 보았다. 외대 정문 바로 옆 왼쪽에 자리잡은 사이버외대가 새롭게 느껴졌다. COIVD-19 Pandemic 시대(Post Corona Era)를 미리 내다 보고 설립한 것처럼 선견지명으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외대 본관에 들어가 보니 필자 이름이 눈에 띄었다: “윤강로 세미나실” “10억 이상 기증자 명단에도 어김 없이 필자 이름이 들어 있어 뿌듯한(?) 느낌 마저 들었다. 물론 동명이인이자 같은 집안 인척 간인 동명이인(힌디과 77학분)이며’압구정 미꾸라지’란 별명으로 한국 증권가 선물 투자의 귀재로 명성이 자자한 동명이인인 또 다른 윤강로동문이 모교 발전을 위한 장학금으로 30억 이상 쾌척(快擲)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내 은행에 방문해서 계좌를 트다 보면 모교동문후배인 은행원들이 필자를 장학금기증동문인 ‘윤강로’로 오인하여 존경 어린 시선과 말을 걸어 올 때마다 민망하기도 하다. 일일이 설명해 주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좌측이 필자 윤강로, 우측은 외대 동문인 압구정 미꾸라지 윤강로)
필자가 외대에 입학해서 재학기간 동안 부지불식간에 많은 국제활동기회가 주어졌다.
(1)국제핸드볼연맹(IHF)주관 국제심판 강습회 통역-
(2)INTERPOL사무총장방한 시 당시 유흥수 경찰청 치안감 통역-
(3)제42회 UIT세계사격선수권대회 통역단장 겸 미국선수단 통역-
(4)제1회 UIT세계공기총사격선수권대회 통역단장 겸 미국팀통역-
(5)박스컵 국제축구대회 미국 팀 통역-
(6)제8회 FIBA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통역단장 겸 미국팀 통역-
(7)Yongsan American High School 교장 면담을 통해 3학년 여학생들과 외대 영어과 3년생들과의 미팅 주선-
(8)외대학도호국단 주최 전국영어수필대회 가작 입상-
(9) 용산 남영동 소재 USO(United Services Organization)에서 Volunteer로 3년 간 봉사하며 영어 실력 배양-
(10) 회현동 소재 Alliance Francaise프랑스대사관 부설 불어 학원에 겨울방학 3개월간 불어 집중 학습으로 불어 실력 일취월장-
(11)4학년 재학생 시절 외대 부설 동시통역대학원(영-불 동시통역과)입학시험 합격 등
이 같이 외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과 과외 활동(Extracurricular Activities)등은 하나님이 예비하시어 필자를 단련하시어 스포츠외교활동을 위해 정금 같이 나아 가게 위한 훈련의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동시통역대학원 재학 시 유럽위탁교육 결격사유로 도중에 군필을 위해 군 입대하여 KATUSA 는 아니었지만 최전방부대에서 미군병사들과 합동훈련을 통한 교류를 위해 군사 영어 습득의 기회 또한 예사롭지 않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느껴진다.
군 제대 1년 전인 1980년 9월30일 서독 Baden-Baden에서 서울1988올림픽유치성공이 이루어졌고 제대 3개월 후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 국제과 특채 입사로 시작된 필자의 스포츠 외교 초년병부터 30여년 간 이어진 모든 여정은 마치 필자가 스포츠외교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필자의 지난 40년 간 스포츠외교활동을 가능케 했던 것은 모교인 외대의 힘이기도 하다. 그래서 외대는 필자에겐 스포츠외교의 요람(搖籃/Cradle)인 것이다. 다시 한번 외대에 감사하고 이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이끌어 주시며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올려 드린다.
'스포츠 외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103편(향후 아시아대륙 주도권 아시아올림픽평의회 OCA중심축 장악) (2) | 2020.09.11 |
---|---|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102편(서울대 Dream Together Master과정 특강 및 스포츠외교의 가치) (0) | 2020.09.10 |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100편(북한 평양의 태릉선수촌 청춘 거리 태권도 전당 및 묘향산 방문 OST) (0) | 2020.09.07 |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99편(스포츠외교수집품 Tiger호랑이 호돌이 호순이 수호랑 백두산 호랑이 올림픽호랑이 총집결) (0) | 2020.09.06 |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98편(秘史부산2002아시안게임유치 및 개최 스포츠외교협상통한 난관 극복 및 필자 부산명예시민위촉 OST) (0) | 2020.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