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50:1~14/5월29일 우리들교회 주일설교말씀 줄거리 요약/화려한 장례식]
야곱의 화려한 장례식을 위한 대 장정의 길이 다시 광야 길을 따라 길이 기억되게 하시어 400년 후 인 나중에 200만 명이 넘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들 야곱의 12지파 자손들이 출애굽 하라고 예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묘략이라는 김양재 목사님의 촌철살인 같은 설교말씀이 백미입니다.
오직 야곱만을 위해 할 수 있도록 화려한 장례식을 허락하셨으며 이 어마어마한 장례식을 통해 길이길이 기리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에비하심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장차 출애굽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 겸 사전답사 겸 테스트 이벤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대대로 이러한 화려한 장례식 행렬 이야기로써 상기 시킴으로 예비하여 주시는데 400년 후 애굽에서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 강을 넘어가는 광야길 굽이굽이 이스라엘 판 '아리랑 길'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주일 말씀 후 찬송가 귀절 중 다음가사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염려하여도 예수 공로 의지하면 항상 이기리로다”
환경에 장사가 없으니 환경에 순종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회사나 직장에서 상사가 어떤 말을 해도 그 사람의 역할에 순종하고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사람 개인의 인격에 순종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알량한 자존심을 걸고 앞길을 망치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인데 미리 듣는 환난이 복음의 가치이며 그래서 복음은 환난을 대비케 해주시는 예방주사라는 말씀이 은혜로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동체 고백 내용 중 "그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변해서다"라는 댓글이 인상적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사람구원을 위해 손해 보는 쪽에 서는 것이 전도의 이타적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오늘입니다
[우리들교회 김양재 담임목사님 주일말씀 줄거리 요약]
*중국저장성 82세 중국부인의 편법적인 장례식예화에서 보면 자식들이 대형카메라 9대, 100명 악단 연주, 리무진 9대, 국가행사용 폭죽등장, 돈으로 동원된 조문객 수천 명이었지만 결국 당국에 들켜서 장소를 빌려준 초등하교 관계자들이 파면까지 당하는 민폐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인간의 힘으로 돈을 풀어서 억지로 하는 활려한 장례식에는 억지춘향으로 인한 부작용이 따르고 진정한 축복이 임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교회 김양재 담임목사님 2016년 5월29일 주일 설교말씀 중)
*화려한 장례식을 하려면,
1) 세상권세도 쓰입니다
형제들은 죄 지은 것이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보니 울 엄두를 못 내는 반면 요셉은 각별한 감정으로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한 것이 많아 슬피 구푸려 울며 불며 맏이도 아니면서 상주 같아 보입니다. 목사님도 어머니 돌아 가실 때 해 준 것이 하나도 없다 보니 슬퍼서 우는 것 보다는 자기 설움에 복 받쳐 우셨다고 하십니다. 유다도 감정 복받치는 슬픔이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 사랑 받은 그런 경험이 없어서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감정이 다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40일 간 뇌와 내장 꺼내고 시체를 질산칼륨에 담가 방부처리하고 마지막으로 린넨 헝겊으로 감아 향신료로 미라 작업하는 데 40일이 걸렸으며 불신 자들이지만 애굽 사람들이 함께 70일 간 곡을 하였으니 40+70=110일 동안 장례를 치른 것입니다. 아론과 모세도 장례기간이 30일이었으며 애굽의 바로의 국장이 72일 걸리는 것을 생각할 때 국상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분명히 화려하고 거창하고 전무후무한 장례식이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장례비용만 은 1,500세겔이 들었는데 3~4일 간 노동자의 품삯이 은 1세겔이니 노동자 품삯 6,000일, 즉 20여 년의 품삯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장례비용입니다. 성경에서 야곱과 요셉만 미라로 처리되었다고 하십니다. 요셉에게 권세가 가도록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비해 놓으신 것이며 요셉은 권세에 맞게 사치할 정도의 장례식을 치른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의 장래의 장례식의 모습과 어떤 사람들이 올 것 같은가요?
-여러분의 원하는 장래의 장례식은?
2) 전도의 기회가 됩니다
부탁을 할 때 말을 공손하고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요셉이 ‘묘실을 따로 준비해 놓았습니다’라는 말과 ‘애굽(세상을 뜻함)에는 묻히지 않겠다고 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온도 차가 느껴집니다. 가나안(천국을 예표)은 성지이므로 ‘올라간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인 야곱의 장례를 초라한 곳으로 가서 드리겠다고 하니 반대는 안 해도 생각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Mammon신을 섬기는데 바로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그래서 전도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남들로 하여금 ‘왜 힘든 그런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이 나오게 되는데 모든 삶이 전도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기억해야 전도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임해야 선교, 양육, 전도, 결혼, 봉사가 자유자재로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가나안에 무덤을 요구하는 것이 힘든 일이니까 환도 뼈 사이에 손을 넣게 하여 맹세하게 한 것입니다. 도저히 갈 수 없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막벨라 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7년의 가뭄을 경험한 바로는 요셉이 우상이 되어 요셉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 줍니다. 바로 이때를 위해서가 요셉이 총리가 된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적용)
-전도하기 위해 세상권세가 쓰임 받은 적은?
-그것은 어떤 권세?
-전도하기 위해 그렇게 준비되는 인생인가요?
바로를 축복한 야곱은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면서 개인의 윤리가 사회의 윤리로 바뀌는 나라적인 계기와 사건이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야곱에 대한 이야기가 창세기 25장이후 반 분량을 할애할 정도로 ‘야곱행전’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질산칼륨으로 처리된 시체를 미라로 만들었으니 장기간의 장례 여정 동안 썩을 염려가 없었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믿는 자, 안 믿는 자, 신자, 불신자 모두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장례식을 위한 대 장정의 길이 다시 이 길을 따라 길이 기억하여 나중에 출애굽 하라고 예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묘략입니다. 오직 야곱만을 위해 할 수 있도록 화려한 장례식을 허락하셨으며 이 어마어마한 장례식을 통해 길이길이 기리도록 하십니다. 일종의 리허설 겸 사전답사 겸 테스트 이벤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손들이 대대로 이야기로 상기 시킴으로 예비하시는데 400년 후 애굽에서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 강을 넘어가는 굽이굽이 광야길입니다. 모든 행렬이 아닷 타작마당에서 7일 동안 크게 애통하는 것을 지켜보던 가나안 사람들은 대단한 애굽사람들이 히브리 사람을 위한 큰 애통을 하였으므로 이것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기 때문에 ‘아벨미스라임’이라 명명하고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불신자들에게는 유익을 주지 않으면 그들에게 애통 할이 없습니다. 야곱은 기근에서 건져준 요셉의 아버지임을 그들이 압니다. 또한 요셉이 잘나서 전국적으로 많은 오빠부대도 합류했습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의 소외된 백성이기 때문에 죽고 나서도 큰 특권을 누리게 하십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은혜는 요셉이 끼쳤지만 그 특권은 다 야곱이 받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화려한 장례식에는 세상권세도 쓰일 때가 있고 이렇게 전도 기회로 삼고 신자와 불신자가 다 참여하고 큰 애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문자적으로도 우리들교회에서 화려한 장례식에 신자와 불신자들이 모두 참여한 후에 장례식이 끝나고 시동생 이름으로 미전도 지역 학교에 헌금을 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적용)
-신자, 불신자가 모두 참여하여 애통할 수 있는 그 장례식을 위해 여러분은 불신자들에게 유익이 된 일이 있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자손들만 할 수 있습니다
요단 강 아닷 타작마당까지는 모든 사람이 다 왔지만 요단강 건너 막벨라 굴에서 매장한 사람은 지질해 보여도 야곱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 대단한 애굽사람들은 요단 강 건너편 거기까지 입니다. 큰 애통에 속으면 안 됩니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애통해 눈물을 보이는 북한주민들이 정말 슬퍼서 울었을까요? 대통령과 국왕이 죽었을 때 말할 수 없이 애통을 해도 그것 때문에 천국 가는 것은 아닙니다. 소유 매장지로 삼은 것이라는 것은 대대로 물려줄 재산이라는 뜻인데 계속 소유매장지를 강조하는 것은 가나안은 언약의 땅이고 믿는 내가 가야 할 땅이고 소유해야 할 땅이고 영적 매장지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햇 족속 에브론에게서 값을 치르고 밭과 함께 400냥을 주고 산 막벨라 굴이 매장지로 삼은 곳이라는 이야기가 3장에 걸쳐 계속 나옵니다. 구체적인 장소도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아버지가 명령한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바로가 명령한 곳이 아니고 믿음의 아버지가 명령한 길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멘토의 말을 세상 국왕의 말보다 더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지만 아버지의 말, 아버지의 명령한대로 행했다고 합니다. 세상의 매장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우리가 받은 이 매장지는 자랑하고 또 자랑해야 합니다. 이미 마음의 심지에 새겨졌는데 이 영적 매장지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도 졸고 있습니다. 이곳은 오직 보혈의 공로로만 갈 수 있습니다. 막벨라 굴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공인인 요셉이 하루라도 직무를 태만히 할 수 없는 것이고 세계최고의 총리여서 어떻게 자리를 비우고 갈수 있겠냐고 하면 못 가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명 대신인 아버지 야곱의 명을 좇아 갔다 온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막벨라 굴에 가지 못할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이면 환도 뼈 맹세를 시켰겠습니까? 날마다 처리해야 할 중요사안 들이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래도 간다고 하십니다. 내 자식이 다 막벨라 굴에 가야 한다고 해도 예수 믿어야 된다고 해도 다 딴 소리를 하는 것이 다반사라고 하십니다. 매장지인 막벨라 굴로 가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십니다. 중동지역인 가나안까지 너무 더워서 못 가겠다고 한답니다. 우리 휘문도 너무 덥긴 하지만 죽지 않으려고 오니까 더운 게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가나안까지의 거리가 서울-부산 간의 거리 416km보다 더 긴 500km에 달하는 데 더운 여정에 시체도 썩을 텐데 그래서 내장을 다 꺼내고 질산칼륨에 담가서 가는 것처럼 우리의 속도 다 파서 성령의 물에 담가서 가야 한다고 역설하십니다. 하여튼 가지 못할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시작은 해도 작심3일이라 갔다가도 다시 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교회 못 갈 이유가 너무 많고 매장지에 못 갈 일이 또한 너무 많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선포한 식구들은 언젠가 기억하고 돌아 올 줄을 믿는다고 하십니다. 장례식 자체를 가지고 상급을 따지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소반에 목이 잘려 죽은 세례 요한도 있고 돌에 맞아 죽은 스테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화려한 장례식의 본질은 이 땅에서 험악한 세월을 살았어도 천국에서 서서 영접하실 주님께서 계시다는 뜻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요셉 이 세 사람의 삶과 야곱의 삶을 비교해 주십니다. 이들이 삶을 마감할 때에도 위대한 삶을 살았던 성군 다윗이 죽을 때에도 성경은 이들의 죽음을 단 한 줄로 끝냈다고 열왕기 상 2장 10절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에 대하여서는 왜 이렇게 화려한 장례식의 모습을 보여 주실까요?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아도 이들이 야곱보다 다 나은 삶을 살았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험악하고 형편 없이 살았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심지어 여러분 가운데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주를 위해 한 일이 별로 없어도 하나님의 백성이기만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막벨라 굴에 가다가 돌아 오는 사람도 있지만 택자는 돌아 왔다 말았다가 하지만 택자는 결국에 가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늦게 믿어도 잘못 믿어도 때로는 실수를 많이 해도 상관 없다고 하사는 것이 야곱의 장례식의 의미라고 요약해 주십니다. 야곱만큼 실수를 많이 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 하필이면 야곱일까요? 그렇습니다 하필이면 야곱이라고 하십니다. 야곱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부족한 사람도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나는 부족해도 영접해 주시는 분이 주님인 것이라고 하십니다. 야곱도 영접해 주시는 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다윗은 얼마나 일어 나셔서 영접해 주셨겠습니까? 할렐루야~ 이래도 저래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화려한 장례식의 주인공이 될 줄 믿는다고 하십니다.
(적용)
-오직 믿음으로 막벨라 굴에 오지 못하는 식구들은 누구인가요?
-여러분은 전도축제에 초청하는 적용을 하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어려움은 무엇인가? 시간인가요, 감정인가요, 재물인가요?
이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모든 식구들을 막벨라 굴에 인도하는 전도축제가 되길 바라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손이 가고 발이 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공동체 고백/그는 2년 4개월 만에 천국 갔다)
-그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변해서라는 댓글이 인상적입니다
예수 믿고 가는 것이 어떤 조건도 없는 가장 화려한 장례식의 주인공임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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