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아카데미(IOA: International Olympic Academy)연수과정이수 현장 속 체험 및 기행실록]
쿠베르탱 남작의 꿈 실현
국제올림픽 아카데미(INTERNATIONAL OLYMPIC ACADEMY)는 근대 올림픽 대회를 부활시킨 쿠베르탱 남작이 1930년대부터 그 필요성을 강조하여 오다가, 칼 디엠(CARL DIEM)과 존 케씨아스(JOHN KETSEAS) 2인이 주동이 되어 1961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동의와 지지를 받아 그리스의 고대 올림피아에 동 아카데미를 창설하여 쿠베르탱 남작의 생각을 실현시킨 것이다. 국제올림픽 아카데미의 역할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Baron Pierre de Coubertin IOC설립자 겸 근대올림픽 창시자)
첫째, 올림픽 운동에 있어서 올림픽의 기본 원칙을 헌신적이고도 일관성 있게 촉진하며, 모든 시대, 어떠한 곳에서나 모든 문명권이 수령, 호응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인 이상을 가지고 올림픽대회 개최에 필요한 정신적인 뒷받침을 줌으로써 올림픽대회를 모든 인류가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전인류적인 행사가 되도록 고무한다.
둘째, 근대사에 있어서 드높은 삶의 철학으로서 올림피즘의 확산에 공헌, 동 아카데미를 이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올림피즘의 원리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전파시키기 위한 각국 내 국가별 올림픽아카데미 창설을 장려, 고무한다.
셋째, 올림픽 교육을 올림픽 운동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부분으로 정착시켜, 올림픽 운동이 급성장함에 따라 발생되는 부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신무장을 용이하게끔 하여, 그 해결책을 제시하여 준다.
넷째, 체육의 한계를 넘어서 교육의 모든 영역에 있어, 여타 지적인 활동이나 과학적인 행위에 대한 필요한 보완 조치로서 올림픽 교육을 장려 촉진한다.
이상 4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국제올림픽 아카데미는 1986년에 창립 제25주년을 맞이하였으며, 따라서 필자가 참석한 행사는 제26차 국제올림픽 아카데미코스가 된 셈이다. 한국측에서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3명, 체육부 2명,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 1명, 모두 6명으로 구성되었다.
이틀 먼저 스위스, 이탈리아 관광기회 가져
1986년 당시 국제 아카데미연수 시작은 7월3일부터였으나 다소 일찍 출발하여, 이 기회를 빌어 외국의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따뜻한 배려가 있어 예정보다 2일 앞선 6월28일(토) 날 우리는 장도에 올랐다.
장장 스물 한 시간이나 소요된 비행을 마치고 취리히 현지시간으로 오전 8시38분에 공항에 도착, 우선 다음 기착지인 밀라노 행 스위스 항공 622편 예약 재확인을 함과 동시에 스위스 프랑으로 환전하고 나니 오전 10시.
숙소인 Movenpick호텔은 중상 급 수준. 여장을 풀고 제1관광지는 유명한 처녀 봉(處女峰)-융프라우(Jung Frau/독일어로 처녀라는 뜻)였다. 스위스 푸른 초원의 산길을 따라 달리는 기찻길은 5시간. 오전 11시 조금 넘어 출발한 처녀 봉의 산행(山行)은 말없이 굽어보는 정상의 모습만을 가슴에 느끼며 필자와 일행은 돌아올 시간까지의 여유가 없어 처녀 봉 山行을 기약 없이 미루고 취리히 시가지를 전차(TRAM) 누비며 그 옛날 막강했던 프러시아 제국의 古風 어린 건물들과 역사 유적지들을 살펴보았다.
인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영위하는 취리히(Zurich) 나체족
LAUSANNE(로잔) 지역을 휘감고 흐르는 아름다운 레만 호(Lac Leman)에 필적할 만한 취리히 호수의 경관은 예기치 못했던 즐거움으로 이번 여정의 첫 페이지를 상쾌하게 장식하여 주었다. 유람선의 생긴 모습, 구조, 역할, 운행방법 등이 그야말로 이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의 편의와 쾌적함을 위하도록 세심하고 부담 없이 꾸며져 있었다.
호수 양쪽 편에는 아름다운 조그만 요트와 보트를 즐기는 시민들과, 동시에 수영과 일광욕을 아무 스스럼없이, 더구나 젊은 처녀들이 아무 부끄럼 없이 「버금으뜸 부끄러운」 부분을 알몸으로 내보이는 장면도 보는 이들의 시선을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찡그리지 않게끔 밝은 인상을 주었다. 정말로 인생을 즐겁게 보내고, 편안하게 영위하고 있는 축복 받은 인간의 표상이랄까?
MOVENPICK호텔 1층 식당에서 고래고기 요쿠르트(새큼한 죽: 요플레와 흡사), 치즈, 생선 등 스위스 식으로 조반을 마치고 CHECK-OUT을 한 다음, 호텔을 나와 평생 교육자로 일생을 보낸 페스탈로찌 先生의 동상이 있는 취리히 市 중심부에서 기념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여유 있게 공항으로 향했다.
기착지는 이태리 북부에 위치한 최후의 만찬(LAST SUPPER) 그림이 소장되어 있고, 이탈리아 경제의 심장부이기도 한 밀라노였다. 출발시간은 12시5분. 기내에서 제공하는 점심으로 한 끼니를 때우고, 비행기 창문을 통하여, 다시금 몽블랑(Mont Blanc)과 융프라우(Jung Frau)일 것이라고 느껴지는 수많은 알프스의 산봉우리들과 산 정상에 덮여있는 하얀 눈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정취에 젖어 들었다.
얼마 안 있어 밀라노 공항에 도착하였다(12시50분). 베네치아(베니스)行 ALITALIA 363편 탑승권 발급수속 중 베네치아 공항내부의 파업(STRIKE)으로 인한 모든 베니스行 항공편이 취소되었으며, 대비책으로 밀라노에서 베네치아까지 열차 1등석 좌석표와 밀라노 중앙철도 역(Hauft Bahnhof)까지의 버스표를 대신 발급하여 주는 것이었다. 별로 달갑지는 않았으나, 이번 베네치아까지의 일정이 특별히 어떤 시간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어서, 또 열차를 통해 이탈리아 북부의 풍물을 접해 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마침 오후 3시5분에 출발하는 초특급 열차(SUPPRA RAPIDO)에 좌정, 오랜만에 망중한을 느껴보았다.
세 시간을 달려 수상도시인 베네치아 본 역에 도착하였다. 마침 밀라노에서 베네치아로 같은 비행일정이었다가 동행하게 된 보스톤 産 미국 女人(이혼경력이 있는 깔끔한 인상의 독신녀: 화가로서 보스톤 대학의 미술교류 프로그램과 관련 2~3개월 체류예정으로 전세 아파트에서 기거할 예정이라 하여, 우리 일행은 염치불구하고 하룻밤 신세지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였으나 「one bedroom only!」라는 대답에서 우리 일행은 현재 처해 있는 우리의 주제를 파악하고 물러났음)의 엄청난 이삿짐을 우리 짐과 함께 운반해주어야만 하는, 국제 매너를 발휘한답시고, 포터 아닌 봉사 포터 노릇까지 겸해야 했다(한국인의 이미지, 친절 봉사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준 제1탄이었다.).
베네치아 물길 배로 활보
온통 물길 위에 세워진 도시인 베네치아는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한려수도인 셈. 베네치아 역 앞에서 한 젊은 친구가 AIRONE호텔 배지를 달고 다가와서 용케도 우리가 아직 숙소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추파(?)를 던졌다. 우리도 마다하지 않고 흥정을 끝낸 뒤, 역 근처에 있는 AIRONE호텔에 우선 여장을 풀었다.
베네치아 경관의 아름다운 유혹, 아니 여흥을 이기지 못해, 짐 속에서 간편한 반바지를 꺼내 입고, 신기한 듯이 이거리 저 거리를 기웃거렸다. 얼마 안 가서 시장기를 못 이겨 근처 베네치아 풍 레스토랑에 들어가 앉아 Fish soup(해물잡탕: 식초 한 방울을 곁들여 들면, 정말로 끝내주는(?) 맛이었음), 생선튀김, 볼로냐 식 스파게티 및 샐러드와 함께, 1,500cc생맥주까지 해치우고 배부르고, 약간 거나하고, 경치 좋고….
베네치아의 교통수단은 「배」를 빼놓고는 언급할 수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이곳에서 통용되는 버스, 택시가 곧 「배」를 의미한다. 저녁식사 후,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수로 전구간을 종횡무진 누볐으며, 밤이 깊어지면서 「곤돌라(카누 모양의 소형 배로서 5~6인승이며 그 운치는 베네치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전매특허품이랄까?)」와 함께 아코디언 소리에 맞춰 낭만적인 이탈리아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고, 모든 베네치아를 사랑하는 이들은 바야흐로 낭만 속으로, 깊은 열락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에 잠 못 들어 하노라! 그러나 다행히도(?) 생맥주 1,500cc덕분에 어느 정도 골아 떨어질 수 있었고, 덕분에 시차적응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었다.
다음날(7월1일), 아침 일찍 기상, 아침산보 겸 베네치아가 자랑하는 ST. RIALTO광장과 ST. MARCO광장을 거쳐 굽이굽이 이어진 육로로 목표지점에 도달하였다. 또 다른 매력이 그곳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이곳 저곳 사면팔방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우리 일행은 정말 큰맘 먹고 그 값비싼 택시를 전세 내어 운하(canal) 전체를 일주하면서, 상쾌한 베네치아의 아침 거리(수로)를 활보(배로)하였다. 숙소인 AIRONE호텔로 돌아와 짐을 꾸린 후, ALITALIA항공사와 베네치아 항공에 로마行 ALITALIA 147便 운항을 문의했으나 전화통화도 하기 힘들 정도로 시끌벅적, 아예 전화조차도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는 여행사에 가서 알아본 결과, 「오늘도 파업이 중단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였다.
베네치아 공항이 AIRONE호텔에서 50분가량 소요되는 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다시 밀라노 공항에서와 같은 경험을 피하기 위해서, 다시 열차 편으로 로마까지 여행하기로 의견이 모아졌으므로, 「쌩돈」을 염출해서 COMPARTMENT(6개 좌석)로 되어있는 보통 열차에 몸과 짐을 실었다(초특급 열차는 보통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만 이용이 가능하므로 7시간 이상 소요되는 보통열차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기차여행은 언제나 쾌적하기만 하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이태리 전역을 열차로 횡단하며 차창밖에 펼쳐지는 이국의 정취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볼로냐와 피렌체를 거쳐 로마로 향하였다. 피렌체 역에서 정차하고 있는 동안, 역승강 장 벤치에서 정열적인 피렌체의 남녀 한 쌍이 떨어질 줄 모르고, 열렬하게 아무 거리낌없이 폭발하는 젊음을 불사르고 있었다. 누구 약 올리나?! 하염없이 기나긴 굴(TUNNEL)들이 우리 열차를 집어 삼켰다가는 토해놓았다. 수십여 개의 시꺼먼 터널이 목구멍을 딱 벌리고 기다렸다가는, 다시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열차를 멍하니 바라보니 또 다른 감상이 들쭉날쭉.
마른하늘에 「비나리오」 「치우소」 무엇을?
드디어 로마 역이 보인다! 정차하는 역마다 강한 이탈리아어 액센트로 안내방송을 통하여 여자 음성으로 「비나리오」를 연발하는데, 하늘은 저녁 7시40분을 가리켜도 햇살을 선사하고, 비(RAIN)는커녕… 그러나 「비나리오(BINARIO)」가 플랫폼의 트랙(TRACK)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역에서 빠져 나와 역 대합실 안내창구 쪽으로 다가갔다. 「치우소(CHIUSO)」라고 씌어 있었다. 「치우다니? 치우긴 뭘 치운다는 건가?」 또 당해야 하나? 잘 음미해 보니 이 또한 「CLOSED」라는 뜻임이 분명하였다. 점차 이탈리아어가 친숙해져 가고 있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니깐!!…」
다시 공중전화 동전 200리라(150원 정도)를 넣고 서울서 적어온 전화번호 다이얼을 돌렸다. 한국의 집(KOREA HOUSE)이란 현지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었다. 마침 로마 역에서는 5분 이내의 가까운 위치에서, 오른손으로는 바퀴 달린 큰 가방을 끌고, 왼손으로는 서류가방을 들고 마중 나온 이철준씨 안내로 그곳으로 향했다.
「한국의 집」에서 오랜만에(?) 김치를 곁들여 육개장 한 그릇씩을 비우고, 시원한 도르트문트 식 독일맥주를 한 조끼씩 들이켰다. 모든 피로가 싹 가시는 순간이었다. 예약된 호텔 캐나다라는 곳에서 방을 지정 받고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니 피로가 엄습해 왔다. 깨어보니 이튿날(7월2일) 아침 5시였다. 호텔 1층에 마련된 뷔페 식 조반식사를 하고, 서울에 우리 일행 여정의 중간보고와 함께 안부전화를 하였다.
아침 9시 정각. KOREA TOUR(이탈리아 한국 현지인 설립 소규모 여행사) 직원인 이철준씨가 벤츠230을 가지고 왔다. 관광 스케줄을 보니 3년전 로마 방문 시 보았던 것들이었으나 어디까지나 단체(?)행동이니 만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도 복습효과(?)를 노리는 측면에서 기꺼이 동행하였다.
로마 시는 이탈리아의 수도로서 1986년 당시 인구 400만에, 자동차수 200만대, 대다수의 건물은 400~500년 이상씩 된 고색창연한 현대 속의 고대 및 중세도시처럼 보였다. 지하철은 A, B 두 개의 노선으로 되어 있었으며 총 연장은 20km에 불과하여 우리 大韓民國의 수도 서울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라고 나 할까? 그러나 모든 길은 역시 로마로 통한다니까….
먼저 오전에는 바티칸박물관(MUSEO DI VATICAN)과 베드로 성당을 보기로 하였다. 그 이유로는 바티칸박물관이 오전 중에만 일반 관광객들에게 관람이 허용되고, 오후 및 일요일에는 아예 폐쇄되기 때문이었다.
바티칸박물관이 위치한 바티칸市國은 1929년 라트란 조약으로 이탈리아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국가이다. 연간 바티칸박물관 및 베드로 성당을 찾는 관광객수는 6천만명에 이르며, 관광수입도 200억불이나 된다고 한다. 바티칸의 語原은 성 베드로가 순교한 바티쿰 언덕의 이름을 따서 바티칸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바티칸박물관은 크게 A, B, C, D로 구분되는데, 「천지창조」를 보여주는 첫 번째 A홀(hall)에서 1시간, B홀에서 3시간, C홀에서 3시간, D홀에서 5시간이 소요되어 그냥 「주마간산」 격으로 보아도 줄잡아 12시간이나 소요되는 곳이다. 그러나 요점과 급소만을 약 1/3로 압축 요약하여 4시간만에 모두 독파하기로 하였다.
몸은 파 김치 되어도 「로마의 휴일」은 뿌듯
먼저 기원전 4천500년이 되는, 미라를 완전히 공개한(“절대”로 사진촬영은 금지) 이집트박물관부터 답사(?)를 시작하였다.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신비스러운 미라의 모든 것을 관찰하였다.
정교함은 물론 신비스러운 수수께끼로 되어있는 미라의 모든 것을 「수박 겉 핥기」 식이었으나, 나름대로 많은 감명을 받았다. 바티칸박물관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시스티나성당(CAPPELLA SISTINA)의 진귀한 그림들을 비롯한 예술작품들이며, 어느 정도씩만 음미한다 하더라도 한 달이 족히 넘게 걸릴 불후의 명작들이었다.
그밖에 천사의 성,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 천주교 신자들의 지하묘소이며 박해를 피해 신앙활동을 영위하였던 카타콤브(CATACOMBE), 쿼바디스로 유명한 성 베드로 사원(성당),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남긴 아피아 가도, 영화 벤허를 통해 더 잘 알려진 대전차 경기장, 2천600명을 동시에 수용하였던 초대형 황제 목욕탕, 로마공회당(ROMAN FORUM), 이전에 교황청 교구가 있었던 두 번째로 큰 세례 요한 성당(CAPPELLA DI SAN JO NANI), 소원을 들어준다는 애천 분수(FONTANA DI TREBI), 사르데니아 왕인 에마뉴엘 2세가 명하여 세워진 통일 기념관이 있는 베니스광장(PIAZZA VENEZIA), 137개의 돌계단 양 옆에 아름다운 화초가 잘 가꾸어져 남녀노소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는 스페인광장(PIAZZA DI SPAGNA)에 놓여있는, 우리에게는 영화 「로마의 휴일」을 통해 더 잘 알려진 스페인 계단(SCALINATA DI TRINITA DEI MONTI), 로마의 대표적 광장인 공화국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을 비롯하여 거짓말을 한 사람의 손을 그 속에 넣으면 잘라버린다는 BASILICA 건물에 있는 그 유명한 「진실의 입(THE MOUTH OF TRUTH)」 등등의 명소와 문화유적지들을 하루 만에 강행군하여, 그야말로 몸은 모두 파김치처럼 되어버렸지만, 역사적(?) 교양을 쌓고, 문화적 견문을 넓혔다는 자부심으로 모두의 마음은 어딘지 뿌듯하게 부풀어올랐다.
다음날(7월3일) 아침 일찍 여장을 꾸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태리의 수도 로마, 널리 유럽인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며, 실제로 르네상스의 성지로 오늘날에도 발걸음이 그치지 않는 피렌체(플로렌스), 물위에 떠있는 도시 베네치아(베니스), 경제의 심장이라는 밀라노, 그리고 베수비우스 화산재와 함께 자취를 감춰버린 폼페이, 이탈리아 민요의 메카인 나폴리, 그리고 소렌토 등이 살아 숨쉬고 있는 아름다운 이태리를 등뒤에 두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독려하여 목적지인 그리스 아테네 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속속 모여든 각국의 IOA 참가자들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을 이륙한지 2시간30분만에 우리 일행을 실은 올림피아항공사 소속 보잉707기는 오후 5시경에 아테네 공항에 착륙하였다. 공항 내부에는 희랍 올림픽 위원회와 국제 올림픽 아카데미 직원들이 나와 동 아카데미 교육 참가자들을 영접하고 공항출구에 대기하고 있는 안락해 보이는 버스로 안내했다. 공항에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캐나다 참가자들이었으며 바로 뒤이어 무척 재미있고 발랄한 이태리 및 프랑스참가자들과도 상견례를 나누었다.
(프랑스 올림픽아카데미 대표 참가들과 함께)
기타 포르투갈,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참가자들과 함께 같은 버스에 동승하여 마치 오랜 친구들 인양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서 숙소인 프레지던트 호텔로 향하였다. 호텔에 도착하여 각각 방을 배정받고, 호텔로비에 마련된 등록데스크로 가서 교육일정 등 필요한 자료를 교부 받고 등록을 마쳤다. 호텔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각국 참가자들과 상호 인사교환을 하였고 그리스에서 맞는 첫 식사를 만끽하였다. 식사 후 등록데스크와 숙박데스크로 가서 참가자 등록현황을 살펴보았다. 아직 북한이나 중국 참가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날 저녁 현재 31개국에서 107명 가량이 등록을 마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곧바로 텔렉스를 기안하여 한국 참가자들의 아테네 안착과 등록현황을 체육회 사무총장 앞으로 타전하고 나서, 아테네의 밤거리를 일행과 함께 산책하였다.
이튿날 아침 8시부터 짜여있는 스케줄에 따라 아테네 시가지와 국립박물관, 그리고 파르테논 신전 등 유적지를 답사하고,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국제올림픽아카데미 창립 25주년 기념식 및 제26차 국제올림픽아카데미 개막식 행사에 참석하였다. 동 행사는 파르테논 신전이 멀리 보이는 유서 깊은 피닉스(PNYX) 언덕에서 거행되었는데, 사마란치 IOC 위원장을 비롯하여, IOC내 IOA 분과위원회 위원들, 그리스 정계, 재계, 스포츠 계 인사들, 희랍 올림픽 위원회 니콜라우 위원장을 위시한 간부들, 제26차 IOA 교육참가자 파견국, 그리스 주재 대사들, 제26차 IOA 강사들, 교육참가자들, 각국 NOA 관련 국장들, IOA 본부 임원진, 그리고 6월28일부터 개최된 제7차 IOA 교육자 과정 참가자들, 모두가 참석하였으나, 준비시설 등이 너무 미흡하여 을씨년스러운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졌다. 우리가 이러한 행사를 준비하였다면, 이보다 수십 갑절은 더 잘 치렀을 것이겠지만, 그만큼 더 많은 물자와 정력이 소모되었으리라. 어떤 행사이건 간에 지나친 것보다는 약간 모자라는 듯 검소하게 치르는 방안도 한번쯤 고려해 봄직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대 올림피아에 위치한 IOA 본부
다음날(7월5일) 아침 일찍 각국 참가자들을 태운 버스는 코린트와 파트라스를 경유하여 고대 올림피아에 도착하였다.
지중해성 기후에 건기를 맞이하여 햇볕은 쨍쨍 내리쬐고 타는 듯이 뜨거웠으나 무덥지는 않았다. 맑은 공기와 수려한 자연경관에 모든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IOA 본부에 도착하자 먼저 방 배정을 하였다. 전년도 참가자들에 의하면 싸이프러스 출신인 턱수염이 울창한(?) 스테파노 영감을 찾아 선물공세를 하면서 부탁하면 좋은 방을 우선 배정해 줄 것이라는 귀띔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지라, 우리 일행은 먼저 스테파노 영감의 소재부터 알아보았으나, 불행히도 금년에는 사정상 올림피아에 오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이야기였다.
IOA 교육참가자 숙소배정은 국제친선을 도모한다는 취지 하에서 각국 참가자들을 임의로 섞어 8~10인씩 1방에 배치함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물론 남녀 별도배정이며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혼숙이 금지되어 있다.) 우리 일행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대개 동양권 사람들이 대중 지향적이 되지 못하고, 더구나 외국어 의사소통이 그리 원활하지 못한 관계로 이대로 2주일간을 견딘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리라.
더구나 방의 시설을 살펴보니 칸막이 샤워, 화장실 및 세면대가 각각 2개씩 밖에 구비되어 있지 않아 이 또한 많은 불편을 안겨줄 것임이 명약관화하였다. 모두들 암담한 표정이었다. 피곤해하는 우리 일행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잠자리를 편히 해주어야만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였겠다, 요리조리 궁리 끝에 묘책을 내어, 많은 참가자들도 방 배정에 불만을 표시하여 모두들 바꿔달라고 아우성치는 판에 끼어들어 관망하다가 책임자격인 직원에게 우리 일행 중 몇몇이 만성(CHRONIC) 불면증(INSOMNIA) 환자들이라고 정색을 하면서 호소하니, 그 와중에도 신경이 날카로워진 실무자에게 그 뜻이 전달되었고 그도 하는 수 없이 강사들에게 배정되는 안락한 방을 결국에는 우리 일행들에게 배정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은 오붓한 잠자리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일행은 아테네에서 거의 7시간 걸린 장거리 버스여행과 뜨거운 햇볕에 지친 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듯이 짐을 옮겨 보금자리(?)를 차지하고, 스케줄에 따라 근방에 있는 올림피아 유적박물관 및 올림픽 성화를 채취하는 고대 올림픽 개최지 및 제우스 신전 등 유적지 등을 신나게 다니면서 연방 사진도 찍고 답사도 하며 일과를 즐겼다. 이렇게 하여 올림피아에서의 첫날은 지나갔다.
48개국서 178명, 8시 반부터 강의 시작
7월6일은 일요일이었지만 아침 9시부터 제26차 IOA 교육 개막식을 포함하여 강의 등 정식으로 아카데미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올림픽 찬가가 울려 퍼지고, 그리스 IOC 위원이며, IOA 회장인 Nissiotis 교수의 개막연설과 이 지방 지사의 환영사 등이 있었고 이어 IOA 학장이자 모든 강의의 진행을 도맡아 담당할 오토 슈미체크 박사가 교육참가자 전원을 알파벳순으로, 국가별로 신상소개를 하였다.
참가자수는 모두 48개국 178명에 이르렀다. 이중 아시아에서는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대만(Chinese Taipei), 홍콩, 인도,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 7개국 20명이 참가하였다. 이어서 IOA 본부 전면에 있는 계단에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한 다음, 근대 올림픽의 부활자인 쿠베르탱 남작과 IOA의 창설자인 칼 디엠 및 존 케씨아스, 세 분의 기념비 앞에서 헌화하고 묵념하였다.
올림피아에서의 하루 일과는 먼저 기상과 동시에 은은한 음악이 새벽의 적막을 적시면서 시작된다. 아침 6시 반부터 에어로빅댄스 및 조깅, 그리고 인근에 있는 크로니온 산 정상까지의 산책 등으로 나뉘어 많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받아들여 건전한 신체의 바이오리듬을 모든 참가자들이 즐기도록 배려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인지상정인가보다!
7시부터 8시까지라야만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침식사라야 삶은 달걀 1개에 토스트 2조각과 커피 또는 차 한 잔이 고작이다. 그러나 그나마 먹어두지 않으면 오후 1시까지 쫄쫄 굶으면서 오전 강의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전날 아무리 늦게 취침한다 할지라도 7시에는 기상해야 했다. 아침 8시30분부터 첫 강의가 시작되어 1시간 단위로 되어 있으나 강의 후 질의 응답순서가 있기 때문에 100분짜리 수업이라고 해야 적당했다.
점심식사시간 전까지 3개의 강의가 계속되며, 오후 1시부터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5시에 오후 강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오수시간으로 되어있으나 대다수 참가자들은 이 시간을 이용하여 스포츠를 즐기거나 고국으로 전화를 하거나 잡담을 하거나 구내 풀장에서 일광욕과 수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IOA Pool장에서 함께 한 영국올림픽아카데미 참가자대표<좌측> 및 호주 올림픽아카데미 참가자 대표<우측>와 함께/그리스 Olympia)
부대시설로는 200명가량을 수용하는 통합강의실, 통합식당, 4개의 탁구대와 음료수만을 판매하는 매점이 한 군데 모여 있는 휴게실, IOA 회장실과 IOA 행정사무실, 도서실, 우체국 겸 간이은행, 국제전화통화용 공간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행정편의 블록과 3개 동으로 되어있는 숙소, 운동장, 농구 대, 배구 대, 풀장 등으로 되어 있으며 사이사이마다 푸릇푸릇한 잔디와 울창한 나무들이 계속 교대로 돌아가며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주는 스프링클러 덕분에 보는 이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해주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나게 해주었다.
다시 오후 5시에는 수업종이 땡땡 울리고, 4시부터 아이스크림 또는 복숭아 등으로 간식을 먹고 난 참가자들은 더위를 피해 강의실로 모여들어 그날의 마지막 강의에 진지하게 임하였다. 8시부터 저녁식사를 하고 9시에는 역대 올림픽의 개 폐막식 및 감명 깊었던 경기장면을 영화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영화상영은 참가자들의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매일 밤 상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IOA 기간 중 3번에 걸쳐 저녁 9시부터 친선장기자랑 겸 사교의 밤(SOCIAL EVENING)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은 각국 참가자들이 각자 고유의 춤, 노래 등을 소개하고 함께 참여토록 하여 정겨운 국제친선을 도모하는 한 여름 밤 추억의 사교모임으로서, 계속되는 강의에 새로운 활력과 각국 참가자 상호간의 우애를 돈독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간은 IOA 프로그램 중 단연 최고의 참여도와 인기를 누렸다.
바쏘스 콘스탄티누(VASSOS CONSTANTINOV)는 사이프러스 사람으로서 10여년간 IOA의 SOCIAL EVENING 사회진행 및 교육참가자들의 모든 과외 여가선용 활동 안내 및 지도는 물론, 친절한 해결사 노릇까지도 도맡아 하는 유머와 익살이 풍부한 IOA의 최고 인기 꾼으로 역대 IOA 교육참가자들로부터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하는 IOA의 숨겨놓은 보물 1호라고 해도 좋을 만했다.
각국 참가자들의 출연신청이 연일 쇄도하여, 우리나라 참가자들은 ’86 및 ’88 양 대회 주최국의 아량을 베풀어 예정된 두 번째 날에 참가키로 양보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 무대에 선보인 그리스 고유의 발랄한 춤사위는 이를 지켜보는 모든 참가자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였으며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특유의 민속춤 또한 발랄함과 경쾌함으로 한껏 분위기를 돋구었으며, 대만 참가자들도 필요한 의상을 갖추고 나와 음악에 맞추어 민속무용과 쿵푸시범을 보여 장내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태권도 시범, 미스 IOA 선발 등, 흥겹던 사교의 밤도 지중해에 저물어
두 번째 사교의 밤에서는 한국 참가자들이 출연해 우선 동방의 아침의 나라 1988년 제24회 올림픽이 개최되는 나라임을 한껏 소개하고 나서 우리의 민속노래인 아리랑과 도라지를 메들리로 엮어 불러 역시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회자인 바쏘쓰가 한국 정통무술인 태권도의 정수를 보여 달라는 요청이 있어 필자는 이를 쾌히 받아들여 즉석에서 한 손 팔 굽혀 펴기 시범을 보인 뒤, 태권도 기마 자세와 대표적인 품세 여러 가지를 기합소리에 맞춰 보여주고 나서 태권도의 우수성과 서울올림픽대회 정식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사실도 아울러 설명하자 모두 깊은 감명을 받은 듯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세 번째이자 IOA 폐막 전야제 행사로 거행된 마지막 사교의 밤은 IOA 사상 최초로 「미스 IOA 1986」이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었다. 필자가 제안한 아이디어여서 사회까지 보게 되었다.
선정 기준은 금번 IOA 교육기간 중 특이한 남녀 참가자들을 소개하고 각국 참가자들이 기증한 선물을 부상으로서 선정된 영예(?)의 인물들에게 시상하였다. 참가자들 상호간에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의 독특한 개성 또는 버릇을 모두가 알고 있는 관계로 참가자 별 특징을 부문별 시상명칭으로 개조, 발표하였고 영예의 이름이 발표될 때마다 박장대소하였다.
금년도 제1회 미스 IOA는 여자 참가자들 중에서 추첨을 하여 이탈리아의 VALERIA PIANA양이 선정되었다. 물론 추첨은 IOA 학장인 오토 슈미체크 박사가 하였다. 이 행사는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계속해서 거행되기로 공식 건의되었다. IOA 프로그램 중 참가자들의 참여도가 극에 이른 것이 한 가지 더 있다면 그것은 아드리아 해의 KAIAFA 비치와 지중해의 MIRAMARE 비치에서의 해수욕 일정이었다. 특히 지중해의 햇볕과 광활한 모래사장, 그리고 맑은 물과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파도, 글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기가 막힌 한여름 낮의 정취, 이 모든 것이 한데 앙상블을 이루어 모든 참가자들의 마음에, 가슴에, 피부에, 저마다의 곱고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주었으며, 귀중한 강의시간을 통해 인식한 올림피즘에 대한 강한 애착과 숭고한 사명감을 보다 심오하게 통찰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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