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2. 2. 3. 11:22

1.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IOC가 참가 대상 2개국(남아공 및 로디지아) 거부:

1968년 제19회 멕시코시티올림픽에서는 아프리카국가들이 남아공과 로디지아의 인종분리정책에 항의하여 대회참가를 보이콧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IOC가 문제의 두 국가의 대회참가를 거부하였다.
이는 IOC가 올림픽의 보편적 참가에 스스로 제한을 둔 첫 번째 케이스엿다.

이로써 남아공은 1970년 제70차 암스테르담 IOC총회에서 올림픽역사상 처음으로 축출된 NOC라는 불명예의 안게 되었다.
그러나 남아공 NOC는 이후 21년만인 1991년 제97차 버밍엄 IOC 총회에서 재가입이 승인되어 다시 올림픽가족의 일원으로 복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1972년 뮌헨 올림픽은 대회기간 중 불상사로 하루 올림픽 중단사태 발생: 

1972년 제20회 뮌헨올림픽은 ‘나치올림픽’으로 불린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처럼 유태인들이 시련을 당한 대회로 기록되었다.
팔레스타인 테러집단인 ‘검은 9월단’ 은 대회 중반인 9월 5일 올림픽선수촌에 난입하여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자동소총을 난사해 11명의 선수가 무참히 희생되었다.
올림픽은 30여 시간 중단되었다가 ‘3자위원회(IOC, 국제경기연맹 및 국가올림픽위원회 대표들로 구성)’ 회의 결과 “대회는 반드시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결론을 도출하여 가까스로 남은 경기일정을 모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사건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간의 적대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만든 계기가 되었으며, 그 후 보복과 복수혈전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각종 테러사태를 촉발하였다.
따라서 국제스포츠경기 때마다 참가선수단 신변안전보호라는 거추장스러운 책임을 대회개최국이 떠맡게 된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3.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집단 보이콧:

이러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또다시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이 문제가 되어 아프리카 26개 국이 대회를 보이콧하였다.

아프리카국가들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앞서 뉴질랜드 럭비팀의 남아공 럭비팀과의 원정경기계획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대회불참을 강행하였다.


4.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서벙진영 집단 보이콕으로 첫 번째 반쪽대회로 전락: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강대국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희생되었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 등 동구권국가들(14개 국 : 루마니아는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 중 불참운동에 동조하지 않고 유일하게 참가)이 1984
년 LA올림픽을 보이콧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5. 1984년 LA올림픽은 소련 등 동구권 국가들의 보복성 보이콧:

LA올림픽 불참국가 숫자는 소련의 보이콧에 동조한 14개 국과 다른 이유로 불참한 리비아, 이라크 등 모두 20개 국이었는데, 소련은 미국 내 반소운동이 격렬하다는 이유로 불참을 선언하였고 대신 ‘우정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반면 중국은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불참했지만 1984년 LA올림픽에는 사상최대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함으로써 스포츠강대국대열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2008년 제29회 베이징 올림픽이 140여일 남은 상황에서 ‘ 올림픽 보이콧’(Olympic Boycott)이라는 올림픽 운동사에서 사라져야할 악성어휘가 그 당시 외신보도에 재출현하였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 성화점화 장면)

2008년도 올림픽 개최국인 중국당국이 티베트 자치구에서의 소요사태에 무력으로 무리한 진압을 감행함으로서 올림픽유치 과정에서부터 우려되어 왔던 중국 내 인권문제가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킨 바 있었다.

자끄 로게 IOC위원장을 비롯한 국제 스포츠 지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보이콧이 결코 문제해결의 열쇄가 아니라면서 북경 올림픽 보이콧 이슈 조기진화를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2013년 차기 IOC위원장 계승자 후보 영순위로 거의 확실시 되고 있는 Thomas Bach(토마스 바하) IOC부위원장 겸 독일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올림픽 보이콧이 역사상 항상 실패로 끝났으며(Every attempt at boycotting the Olympic Games always ended up as a failure.) 이러한 메시지가 뿌리내렸다.(The message has got through.) 스포츠의 역할은 교량구축이지 장벽구축이 아니다.(The role of sport is to build bridges, and not to build walls.)"라고 당시 한 외신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었다.



(Thomas Bach 독일 IOC부위원장)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조차 자신의 조국인 티베트 내 항쟁에 대한 중국 측 무력진압과 관계없이 베이징 올림픽은 반드시 개최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1979년 12월, 당시 소련군대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고, 이 여파로 미국을 필두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서방진영 62개국이 올림픽 역사상 공산권 국가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대회를 집단 불참한 올림픽 보이콧이 올림픽 운동 역사를 그늘지게 하였다.

모스크바 올림픽 폐회식에서 IOC 의 올림픽 의전 규정상 1984 LA 올림픽 차기개최국인 미국 국기가 메인 스타디움에 게양되어야 했는데 모스크바 올림픽 조직위는 보이콧 주동국인 미국국기를 게양하는 대신 개최도시 LA시 기를 게양한 바 있으며, 또한 4년 후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을 위시한 13개국이 1984 LA올림픽 대회를 보이콧 하였다.

그 당시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들 중 루마니아는 유일하게 독자 행보로서 보이콧 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LA 올림픽대회에 참가해 개회식에서 사회주의 국가로서 역시 참가한 중국 선수단과 함께 미국 관중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올림픽 보이콧 악령이 19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사라졌다.

중국 티베트 자치구에서의 긴장사태는 무력진압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을 해결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지구촌 가족들의 바람이었으며 IOC도 그렇게 희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베이징 올림픽은 전 세계 지구촌 가족의 축복 속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구촌 올림픽가족의 염원이기도 하였다.

올림픽 운동사에 보이콧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아야하며 영원히 삭제되어야 한다.



<역대올림픽의 정치개입 사례>


● 1916년 올림픽 : 베를린이 개최지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개최 취소
● 1932년 LA올림픽 : 만주국의 참가신청을 IOC가 거부
● 1936년 베를린올림픽 : 나치독일의 유태인 선수 및 관중의 경기장 출입금지조치/아일랜드 올림픽 참가 보이콧






● 1940년 및 1944년 올림픽 :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개최 중단
● 1948년 런던올림픽 : 아랍권의 보이콧위협으로 이스라엘을 올림픽에서추방
● 1952년 헬싱키올림픽 : 중국(중공) 초청에 항의하여 대만의 대회참가보이콧, 소련 40년만에 올림픽에 다시 참가
● 1956년 멜버른올림픽 : 소련의 헝가리침공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등의 대회불참/영국과 프랑스의 수에즈운하점령으로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등의 대회 보이콧/중화민국(대만) 국기(청천백일기)게양에 항의하여 중공(중국)퇴장/동서독 단일팀 참가
● 1960년 로마올림픽 : 대만의 IOC축출을 주장하며 중공(중국) IOC 탈퇴
● 1964년 도쿄올림픽 : IOC가 남아공의 대회참가를 거부함/북한 및 인도네시아 개회식에서 선수단 철수
●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 남아공 IOC에서 축출
● 1972년 뮌헨올림픽 : 팔레스타인의 ‘검은 9월단’이 올림픽선수촌을 습격하여 이스라엘 선수 11명 피살, 대회 30여 시간 잠정 중단/IOC에서 로디지아 축출(1980년 로디지아는 짐바브웨로 개칭하여 IOC복귀)
●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 뉴질랜드 럭비팀의 남아공 원정에 항의하여 아프리카 26개 국 대회 보이콧





●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격분하여 미국 등 서방진영 67개 국과 일부 공산국가 대회 보이콧




● 1984년 LA올림픽 :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복수혈전으로 소련 등 동구권 14개 국 보이콧



(1984년 LA 올림픽 개회식 장면)


# 올림픽보이콧 종결자: 1988년 서울올림픽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은 정치적 보이콧이 배제된 온전한 올림픽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서진영이 분단국 수도인 대한민국 서울에서 평화와 화합의 지구촌 인류축제를 통해 올림픽에서 정치개입의 고리를 끊는 분수령과 동시에 올림픽의 앞날에 서광을 비추어준 기념비적인 대회로 기록되게 되었다.
북한은 서울올림픽 공동개최무산으로 보이콧했으며, 에티오피아와 쿠바가 이에 동조한 바 있으나 상대적으로 미미한 숫자의 불참으로 ‘The Best Games to date’(당대 최고 올림픽)를 확고히 하는 올림픽사의 의미심장한 전환점이 되었다.

올림픽이여, 팡파레여,  영원하라!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이후 올림픽대회에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보이콧이라는 망령은 자취를 감추었다.



Posted by 윤강로 (Rocky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