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17. 11. 10. 18:13

[평창2018 북한참가관련 과거 북한체육계 인사들과의 인상 깊었던 Episodes 회상 및 남북스포츠교류 일지 Update]

 

*순서:

 

가. 북한스포츠 계 인사들과의 교분

(1) 장웅 북한 IOC위원과 올림픽운동

(2) 평양방문과 故 김유순 IOC위원

(3) 박명철 북한 NOC위원장 겸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4) 류성일 북한 NOC서기장

(5) 조상남 북한 NOC부위원장 겸 서기장

(6) 문시성 북한 NOC서기장

(7) 고철호 북한 NOC서기장

(8) 리혜경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국장

(9) 인도 뉴델리 1982 아시안게임이 북한체육인 첫 만남 장소

(10)        북한 NOC 농구선수출신 라복만 임원(조선태권도 연맹 서기장 역임)

(11)        북한 태권도연맹 위원장 및 조선무술연맹위원장 황봉용

(12)        북한스포츠인사들과의 해외에서의 만남 이야기

 

 

나. 북한방문이야기 및 북한스포츠 계 인사 개략스케치

 

(1)   북한 NOC 위원장 동정

(2)   북한의 Rio2016 참가와 남북한 선수들의 Great Gesture

(3)   북한 평양방문 이야기

(4)   북한 스포츠 계 인사 개략 스케치

다. 북한 말 표현 정리

 

라. 남북한 스포츠 교류일지 종합요약정리 Update

 

마. 최근 북한의 동계올림픽 및 국제대회 참가 현황

 

바. 남북한 선수단 국제종합대회 개회식 공동행진 성사 일지

 

 

1. 북한스포츠 계 인사들과의 교분

 

 

1)   장웅 북한 IOC위원과 올림픽운동

 

Blood is thicker than water"(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 말은 2001 6월 당시 IOC 위원장후보였던 김운용 KOC 위원장 겸 IOC 부위원장, 최재승 전 국회 문광위원장, 이금홍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총장 그리고 필자가 북한 평양 방문 시 장웅 북한 IOC 위원이 IOC 위원장선거에서 김운용 후보가 피선되도록 적극 돕겠다는 뜻을 함축해서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장웅 위원의 의지는 IOC 위원장선거뿐만 아니라 2010년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운동과정에서도 또 확인된 바 있었습니다.

 

 

장웅 IOC 위원은 1950년대부터 10여 년간 북한농구(북한식 발음은 “롱구”)대표선수생활을 하였고, 평양체육대학을 거쳐 평양시 체육구락부 코치를 하다 체육지도위원으로 발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북한 올림픽위원회 서기장(사무총장)을 역임하다가 당시 김유순 북한 IOC 위원의 사망 후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림픽대회 시 개최된 제105 IOC 총회에서 한국의 이건희 삼성그룹회장과 함께 개인자격 IOC 위원으로 피선되어 활동 중이며 1938년생인 장웅 IOC위원의 임기는 80세가 되는 2018년으로 평창2018IOC위원으로서 참석하는 마지막 올림픽이 됩니다.

 

 

장웅 IOC 위원에 의하면, “스포츠가 다른 건 앞서가는데 사람관계만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어서 진정으로 서로 아는데 10년이 넘게 걸린다”고 하면서 “남쪽이나 북쪽이나 국제 스포츠 계의 오랜 세월 동안 인맥에 정통한 사람들을 앞장세워 외교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길만이 국제 스포츠 계에서 손해 보지 않고 자기 밥을 찾아 먹는 길”이라고 힘주어 강조하곤 하였습니다.

 

 

아테네2004 올림픽대회 기간 중 필자와 친분이 두터운 장웅 IOC 위원과 단독 면담을 요청하는 한국 취재기자 및 방송사가 많았습니다.

 

 

 

(Athens2004올림픽 IOC본부호텔인 아테네 Hilton호텔에서 장웅 북한 IOC위원과 함께)

 

 

 

 

IOC 본부 호텔인 아테네 힐튼 호텔은 원칙적으로 IOC카테고리 AD카드(Accreditation Card)를 소지한 투숙객만이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비록 VIP급 올림픽 AD 카드소지자라고 해도 출입코드(Access code)가 부여되지 않았다면 호텔입구부터 방문대상 인사의 에스코트(escort)를 받은 후 보안검색을 거쳐 신분증 대조 및 서명날인 후 임시 출입카드를 발급받은 후에야 비로소 호텔로비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테네 힐튼 호텔 11층에 위치한 IOC Family라운지에는 IOC 위원, 가족 및 IOC 특별 게스트(Distinguished Guests)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므로, 대회기간 중 이곳 11층 라운지를 출입한 사람들은 일종의 특권층(?)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마침 11 IOC 위원 라운지 관계자들과 친분을 두텁게 한 덕에 필자는 필자자신(IOC 특별 게스트)은 물론이고 기자들까지도 동반하여 무료음료 및 간식도 항시 마시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중앙일보 스포츠 부 성백유 차장(현 POCOG대변인)과 조선일보 강호철 기자도 필자의 안내로 이곳 라운지에서 장웅 IOC위원과 각각 단독 취재를 하였고, YTN TV도 장웅 IOC 위원과 단독 인터뷰를 하여 YTN 인터뷰기자가 특종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기간 중 IOC본부호텔에서 만난 장웅 북한 IOC위원 겸 ITF총재와 함께/ 필자와 함께 중국 인민대학교 객좌교수를 함께 역임함)

 

 

 

 

 

2)   평양방문과 故 김유순 IOC위원

 

 

필자는 제7 EAGA(동아시아대회 협의회) 총회 한국회의 대표자격으로 박상하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집행위원장 및 이강평 당시 KOC 사무총장과 함께 19931020일 첫 번째 평양을 방문한 바 있었습니다.

 

 

그 후 2001 6 2차 평양방문을 포함하여,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남북한선수단 개·폐회식 공동입장에 따른 실무회의대표자격으로 금강산에서 3차례 북한 올림픽 위원회의 故 조상남 서기장등과 회동을 갖은 바 있습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아 게임 때부터 30여년간 각종국제대회, 올림픽대회, 국제회의시마다 많은 북한 스포츠 관계자들과 만나 지속적이고 끈끈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온 바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유순 북한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겸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체육장관 겸 북한 IOC 위원) IOC 측과의 연석회담 시 북 측을 대표한 인물로서 과묵한 편이었습니다.

 

 

 

(아시아 IOC위원들: 앞줄 좌로부터 故 김운용 IOC위원, Elizalde 필리핀 IOC위원, 김유순 북한 IOC위원, Henry Hsu 대만 IOC위원, Igaya 일본 IOC위원/출처: 김운용 닷컴 홈페이지)

 

 

 

3)    박명철 북한 NOC위원장 겸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김유순 IOC위원 경 북한 NOC위원장(체육지도위원장 겸직) 뒤를 이어 박명철 북한 NOC 위원장(체육장관겸임) IOC 위원은 다소 활달한 편으로 故역도산의 사위이고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는 김일성 대학 동기동창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역사적 평양 방문 시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중 나와 김 전대통령과 포옹할 때 바로 뒤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
앞줄 왼쪽에서 5번째가 박명철 북한 NOC위원장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위원장<장관 급> 뒷줄 좌측 편 키 큰 사람이 장웅 북한 IOC위원)

 

 

 

(사진 앞줄 우측에서 5번째가 당시 북한 NOC 박명철 위원장,필자는 둘째 줄 좌측에서 4번 째)

 

 

 

TV등 방송매체에서는 박명철 IOC 위원의 얼굴을 모르던 터라, 엉뚱한 사람으로 오인하여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4)   류성일 북한 NOC서기장

 

 

장웅 IOC 위원이 북한 NOC 서기장직에서 제1부위원장으로 승격된 후, 그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류성일 서기장입니다.

 

 

류 서기장은 본래 축구 인으로서 축구관계 일을 보다가 발탁된 케이스였습니다.

 

 

영어도 잘하고, 농담도 좋아해서 필자와는 1998 5 30일부터 6 7일까지 스페인 세비야(Seville/Sevilla)에서 개최된 제11차 국가올림픽위원회 총 연합회(ANOC: Association of National Olympic Committees)총회에서 각각 남·북한 NOC 회의대표로 만나, 세비야 인근 중국식당에서 고량주를 통음하면서 친해진 바 있습니다.

 

 

유머와 농담을 즐겨 했고, 배짱과 소신도 투철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필자는 북한 스포츠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결코, 사상이나 이념, 정치 등 민감한 내용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고 서로 부담이 없는, 스포츠관계 일이나 신변잡기 등을 주제로 교분을 다져 온 관계로, 북한 스포츠 계에서 필자에 대하여 여러 개 외국어가 능통하고 국제 흐름에 정통한 국제 스포츠 계 마당발로 평이 좋은 편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류 서기장은 정몽준 대한 축구협회장이 아시아 축구연맹(AFC: Asian Football Confederation) 총회에서 쿠웨이트의 셰이크 아메드(Sheikh Ahmad Al-Fahad Al-Sabah: OCA 회장 겸 IOC 위원)와 격돌한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최종결정투표 시에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원칙을 지킨 것으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류성일 북한 NOC서기장<우측>과 함께)

 

 

 

 

현재 조선태권도위원회 및 조선무술연맹 부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통일부 북한 체육관계 인명록 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Sydney2000올림픽 개회식 남북한선수단 공동행진 직전 올림픽선수촌에서 재회한 류성일 북한 NOC서기장)

 

 

 

5)   조상남 북한 NOC부위원장 겸 서기장

 

 

 

류 서기장의 뒤를 이은 인물은 故 조상남 서기장으로 1959(돼지띠) 평안북도 철산리 태생으로 필자보다는 3년 연하이며 2003 5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개최 제12 ANOC 총회 시부터 교분을 맺어온 바 있었습니다.

 

 

故 조 서기장도 중국어와 영어도 잘하고 활달하고, 소신과 철학이 뚜렷하고, 논리 정연하여 토론에도 능했지만 의리파이며 다정다감하기도 했습니다.

 

 

필자(1956년 원숭이 띠)와는 나이 연배를 따져 형님, 동생 사이로 지내기로 약속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故 조상남 북한 NOC부위원장 겸 서기장은 2004년 말 심장마비로 사망함)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대회 참가 남·북한 선수단이 개·폐회식 공동행진(Joint Parade)과 관련 금강산에서 3차에 걸친 실무대표 회의 때 필자는 낮에는 남측 3인 실무대표의 일원에 불과했지만, 저녁만찬 테이블에선 수석대표(?)역할을 톡톡히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의석상에서는 양측 주장으로 열띤 대화가 이어졌지만 막상 만찬석상에서는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라서 필자가 총대를 메고 분위기 메이커 겸 이런저런 화제를 꺼내고 허심탄회한 만남의 장을 연출해 보기도 했습니다.

 

 

故 조 서기장 고향이 평북 철산리 바닷가라서, 필자가 “부산 아시안게임기간 중에 다시 만나면 형님으로서 뭘 사주고 싶은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날래 말하라우”라고 이북 사투리로 묻자, 故 조 서기장은 “기라면 이왕이면 털게가 먹고 싶긴 한데, 귀하단 말씀이야, 가능 하갔소?”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부산 아시안게임 기간 중, 부산 롯데호텔에서 오찬을 겸한 남·북한 NOC협의회의 시작 전에 필자는 평소에 비교적 친분이 두터웠던 박명철 북측 NOC위원장에게 지난날 금강산 회담 시 이야기를 상기시키면서, 털게를 대접해도 되겠냐고 예의를 차렸고, 박 위원장도 “거저 조 서기장 먹고 싶은 거라면 먹어야 되지 않갔어?”라고 장단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박명철 북한 NOC위원장 겸 체육상의 부산아시안게임 당시 모습으로 2003년 말 교통사고로 타계하였음)

 

 

 

그 후에도 국제회의 시 여러 번 만났고 필자가 2004년초 대한체육회/대한올림픽위원회를 명예퇴직(국제담당사무차장1)한 후 필자 걱정도 많이 해주고 인간적이고 훈훈하고 자상하게 대해주었던 조상남 북한 NOC서기장은 그 후 후배에게 서기장 자리를 물려주고 부위원장 직을 맡을 참이었다고 합니다.

 

 

2004 2월 그리스 아테네 개최 제14 ANOC 총회가 끝나가는 무렵, “공석이될 서기장 후보를 이제야 찾았다”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2004년 말 연합뉴스를 통해 그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필자는 친동생이상의 가족 중 한 명이 죽은 것 같은 아찔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함께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졸지에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한 故 조상남 서기장 영전에 생전에 좋아했던 「털게」를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6)   문시성 북한 NOC서기장

 

故 조상남 서기장 뒤를 이은「서기장」은 북한 NOC 사무처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문시성 이었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기간 중 IOC본부호텔인 힐튼호텔에서 만난 문재덕 북한 NOC위원장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좌측> 및 문시성 북한 NOC서기장<우측>과 함께)

 

 

 

필자에게 깍듯이 형님 호칭을 빼먹지 않는 문 신임 서기장 직무대리는 연배는 어린 편(40대 초반으로 추정)이지만, 각종 국제스포츠회의나, 올림픽대회 등에서 통역도 잘하고, 예의 바르지만, 할 말은 매섭게 해대는 북한 스포츠 계 국제 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대회 기간 중 박명철 위원장의 뒤를 이은 문재덕 신임 북한 NOC 위원장과 IOC 본부호텔에서 만나 위원장 및 서기장취임 축하인사와 기념사진도 촬영한 바 있습니다.

 

 

 

 

7)   고철호 북한 NOC서기장

 

 

문시성 북한 NOC 서기장 뒤를 이은 북한 체육인사는 故 조상남 북한 NOC 서기장을 수행하던 NOC서기출신 고철호 서기장입니다.

 

 

2017425일자로 IOC홈페이지에 소개된 IOC분과위원회 명단 중 20대 국회의원 겸 IPC집행위원 겸 2013년 평창개최 스페셜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한 나경원의원과 함께 IOC ‘스포츠 및 활기 넘치는 사회구현 위원회’(Sport and Active Society Commission/ 과거 IOC Sport-for-All Commission이 개편된 위원회)위원으로 북한의 고철호 NOC서기장이 장웅 IOC위원과 동반 임명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고철호 북한 NOC서기장<-1>이 국제정구연맹 박상하회장<-1>으로부터 정구 테니스 용품을 기증받고 있음)

 

 

 

 

8)   리혜경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국장

 

 

필자가 서울올림픽대회 직후인 1988 11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IOC올림픽 솔리다리티(Olympic Solidarity)국제 세미나에 당시 하춘웅 운영부장과 심용택국제팀장(현재 명예퇴직 후 미국 애틀랜타 거주)과함께 한국대표로 당시 공산세력의 심장부인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북한 측 회의대표들은 마치 자기 집 앞마당(Home Ground Front Yard)인양, 기세등등한 분위기였습니다.

 

 

필자가 세미나에서 한국대표자격으로 많은 질문공세와 의견개진을 많이 하였습니다.

회의 제2일째인 11 13일 오후 회의 중간 coffee break시간에 북한 측 수석대표자격인 리혜경 북한체육위원회 국제 국장과 마주쳤습니다.

 

 

필자를 보자마자 “윤강로 맞디? 회의에서 하는 거 보니 끼니 국제적으로 쓸모가 많갔어! 내래 통일되면 한자리 주갔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동·서진영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고, 남·북한간의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국제정세에서, “통일되면 한자리 주갔어!”라는 말을 듣자 필자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내심 걱정이 앞섰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명색이 대한민국 회의대표인데 주눅만 들고 있을 수 없어서, 필자는 이렇게 맞받아쳤다. “거져, 남남북녀라고들 하는데, 예쁜 북쪽 처녀 아가씨래 있으면 소개해 주시라요”하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1993년 평양개최 동아시아경기대회협의회 이사회 만찬 장에서 재회한 리혜경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국장과 함께)

 

 

 

필자는 사실 그때까지 임자(?)없는 노총각 신세였기 때문에, 반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러자 다짜고짜 리혜경 북한대표는 이렇게 쏘아붙이는 것이 아닌가? “거저 보니끼니, 벌써 아새끼래 여럿 깠깠구먼 와그러네?

 

 

그때까지 순진무구(?)(native and pure in heart)했던 필자는 당황했지만 솔직하게 다시 항변했습니다.

 

 

“진짜로 총각이니끼니 기딴 소리하지 마시라요!” 회의가 끝나가는 마지막 날 리혜경 대표는 헤어지면서 필자 보고 “거저, 너무 기리지 말고 참한 샥시 골라서 날래 장가 들라우.” 라고 말했는데 진심 어린 말 같았습니다.

 

 

 

(Sydney2000올림픽 남북선수단 개회식 공동행진 참가 직전 올림픽선수촌에서 두 번 째 재회한 리혜경 북한체육지도위원회 국장<-2>와 필자<-1>)

 

 

 

 

 

 

(시드니2000올림픽개회식에서의 남북한선수단의 역사적인 공동행진)

 

 

 

(Sydney2000올림픽 참가 윤성범 북한선수단장<-2>과 故 이상철 한국선수단장<-1> 그리고 윤단장과 대화중인 필자<-2> 옆모습과 그 바로 옆이 조경자 부단장/시드니올림픽선수촌)

 

 

 

 

그 후, 국제회의나 올림픽대회. 아시안게임 등 국제 스포츠행사 때마다 당시 북한 김유순 IOC 위원을 수행하여 통역도 하고 회의참석도 할 때마다 마주치게 되었고 필자보다 연배가 많은 관계로 깍듯이 「누님」호칭을 붙이게 되고, 서로 안부도 묻고, 연인사이가 아닌 「남남북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남남북녀」란 용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회 시 우리 역사에 길이 남는 최초의 남북한 선수단 공동행진에서 「남녀북남」으로 용어가 바뀌어 한반도기를 함께 맞잡아 든 남측 선수단 기수는 여자 선수(정은순; 농구선수), 북측 선수단 기수는 남자 감독(박정철; 유술/유도)이 맡아 전세계로부터 격려와 찬사를 받으면서 시드니올림픽대회 최고의 하이라이트(Highlight)로 조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9)   인도 뉴델리 1982 아시안게임이 북한체육인 첫 만남 장소

 

 

1982 112일부터 126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9회 아시아 경기대회는 필자가 KOC(Korean Olympic Committee) 국제 과에 특채되어 참가한 처녀국제경험이었습니다.

 

 

필자는 당시 김집 부회장(체육부장관역임), 오진학 훈련과장등과 함께 한국선수단 선발대로서 대한항공(KAL)을 타고 난생처음 공중부양(Soaring up to the sky)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뉴델리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관계자들과의 업무회의를 무사히 마치고, 한국선수단 본 단이 선수촌에 입촌하게 되면서, 아시아 43개국 참가선수단과 함께 본격적인 선수촌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1982년 인도 뉴델리 아시안게임 선수촌 모습)

 

 

 

잠은 각각 배정된 숙소에서 자지만, 하루 세 끼 음식은 선수촌 식당에서 같이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아시아각국의 인종들, 음식도 다양하였지만, 한국음식은 전무한 상태, 인도 특유의 독특하고 매콤한 오리지널 본토의 카레향이 식당 분위기를 압도하였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음식도 입에 안 맞고, 시차적응도 그리 순조롭지도 못하고 물 상태는 최악이었다. 매일 목욕을 하고 나면 욕조표면에 머리카락이 둥실둥실 많이도 떠다녔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혹시 대머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하면서 매번 목욕을 마쳤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북한선수임원들, 이들을 처음 보는 순간 필자는 자칫 이들에게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대화를 걸 뻔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

 

 

북한의 나이 어리고 자그마한 체조선수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수촌 식당 식대에 줄을 서게 되어 말을 걸었으나, 그때만 해도 남·북한 이념갈등이 아주 심각하여 한민족이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들」인 상황이어서 그런지, 그냥 얼굴만 쳐다보니까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지긋한 북한선수단의 보장성원(임원)들은 다소 여유를 보이면서 오히려 필자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선수 같지는 않고, 남조선 감시 공작원 같구만”. 필자도 본능적으로 대꾸했습니다.

 

 

“같은 입장 같구만요. 앞으로 잘 해보시자구요”. 한마디 더 물었습니다. “여기 음식은 입에 맞습니까?.

 

 

퉁명스러운 대답이 기다린 듯 튀어나왔습니다. “조선사람 입이야 다 똑같갔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당시 북한선수단장과 함께)

 

 

 

선수촌에 있는 아시아 각국선수단 본부를 방문하여 故 김종열 단장(대한체육회장역임)이 한국 선수단의 선물을 전달하였습니다.

 

 

몽골 선수단 본부에 들어선 필자는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곳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모습은 한국 사람들보다도 더 한국 사람들 같은 원조 한국인들의 인상이었습니다. 영어가 나오려다 멈칫한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도 김치를 잘 먹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10) 북한 NOC 농구선수출신 라복만 임원(조선태권도 연맹 서기장 역임)

 

 

북한의 체육계 인사들 중 라복만 선생은 농구선수출신으로서 장웅 IOC 위원처럼 키도 훤칠하게 크고, 술도 두주불사(drink like a fish)형으로 북한스포츠 계의 대표 급 주당(drinking Champion)으로 명성(?)을 두루두루 떨친 분이며 도량이 크고, 낙천적이고, 적이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라복만 선생<우측>과 함께)

 

 

 

가끔 술을 너무 많이 마시다 보면 실수 아닌 실수도 하기 마련, 대한민국 농구 계의 원로이시며 대모(God mother)인 故 윤덕주 고문께서는 라복만 선생과의 일화를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라복만이가 국제 대회 때 만나서 술을 먹고는 나보고 누님, 누님 하면서 예의 없이 굴길래 크게 꾸짖어 주었더니 그 다음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더구만. 그 친구 그래도 농구 인이고 많이 도와주고 싶고 정이 가는 사람이야”

 

 

 

11) 북한 태권도연맹 위원장 및 조선무술연맹위원장 황봉용

 

 

 

그 후, 국제행사에서 라복만 선생 만나면 故 윤덕주 회장께 안부 전해 드리고 고맙다고 정중하게 인사 꼭 전해달라고 부탁하곤 해서 필자는 연인이 아닌「남여북남」농구인 사이의 메신저 역할도 하곤 했습니다.

 

 

 

지난 2001 6월 평양 방문 시 남측의 태릉선수촌에 해당하는 평양시 청춘 거리에 있는 북한 국가대표 선수훈련센터를 방문하여 체육시설과 북한 선수들의 훈련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북한이 자랑하는 태권도의 전당을 방문하여 같은 뿌리의 태권도시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실전에 입각한 공격과 무차별한 격파시범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뒤늦게 시범 장에 나타난 인물은 바로 그 유명한 라복만 선생이었습니다.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고 국제무대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웬일일까 하고 물어보니, 농구관계는 그만두고 태권도 전당의 서기장(사무총장)직을 맡아보고 있다고 하면서, 필자의 두 손을 꼭 잡고 반가움을 표했습니다.

 

 

 

 

북한 국가 체육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오다가 2000년대 들어서 조선태권도련맹 위원장 직의 책임을 맡은 황봉용 위원장은 작년에 남·북 태권도 시범 단 교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북측 시범 단을 인솔하고 서울에 와서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공식 만찬 시 만난 바 있는데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논리정연하고 책임의식이 투철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2000년 비엔나 개최 ANOC총회시 좌로부터 황봉용 북한 NOC부위원장 겸 추후 한국방문 북측 태권도시범단장, 문시성 북한 NOC 서기장, 필자)

 

 

 

 

 

 

2004년 북한선수단장을 역임한 바 있는 리동호 북한 NOC부위원장, 장선강 북한 국가체육위원회 부위원장, 고철호 북한 NOC 서기장, 렴윤희 북한 대학생 체육협회서기장, 정순원 전 북한 올림픽 위원회 서기, 리학무 서기, 리민호 서기, 한필화 조선빙상경기협회 부위원장 겸 조선빙상피겨협회 위원장 등이 북한의 국제 스포츠 관계를 함께 담당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좌로부터: 필자, 정순원 북한 NOC 부서기장, 이강평 KOC사무총장, 박상하 대한체육회 부회장 등/평양시내 소년인민궁전에서 /1993년 평양방문 당시)

 

 

 

 

12) 북한스포츠인사들과의 해외에서의 만남 이야기

 

 

필자는 국제 스포츠관련행사 관계로 해외 출장을 갈 때면 기존 선물이나 기념품 외에 언제나 준비해가는 우리 고유의 음식이 있었습니다.

 

 

먼저 골뱅이 통조림, 죽방이라 불리는 마른 멸치, 마른 오징어 등을 동네 슈퍼 등에서 미리 구입하고, 공항상점에서 진공 포장된 김치 2종류, 팩소주 10~20개 그리고 기내에서 제공받는 치약 용기 형태의 고추장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해외에 나와서 시차적응과 컨디션(physical condition)을 적절히 조절하려면 우리 음식만큼의 특효약(a wonder drug)은 어디고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준비된 우리 음식물을 필자가 먹으려고 구입한 것이 아님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해외현지에 도착해서, 며칠 지나면(그때까지는 호텔 객실 내 냉장고 공간에 기술적으로 보관하는 것이 필수) 북한 스포츠 계 인사들도 한민족인지라 슬슬 우리 음식이 땅기기 시작하게 되고 「불 감청 고소원」이라, 원하지만 감히 청하지 못하는 우리 고유의 체면치레(face-saving matter)라고나 할까요?

 

 

 

바쁜 회의일정, 오·만찬 행사일정 등에 쫓기다 보면 한식 구경은커녕 현지 음식에 질리기 십상이다 보니,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더 잘 아는 법, 이때 북측인사 객실번호 알아내어 객실에 보관 중이던 「비장의 음식」을 슬쩍 벨 보이(Bell boy)를 통해 전달해 놓으면, 백발백중(Every shot told) 그 날 중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잘 먹었시다.”라고 감사의 인사가 필자에게 건네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3대 필수요소 중 의식주(영어로는 식의주; food, clothing, and shelter)중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故 정주영 회장이 대한체육회회장 시절 필자가 통역해 드릴 때 가끔 말씀하시던 말을 새겨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음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법입니다.

 

 

(1987년 당시 정주영회장과 함께)

 

 

(좌로부터: 노태우 당시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사마란치 IOC위원장, 통역 중인 필자, 정주영 KOC/대한체육회 회장/1983년 당시)

 

 

 

"식보가 제일 일세, 윤군!". 이 말은 음식이 보약이란 뜻으로 음식을 제때 잘 가려 먹으면 보약이 따로 필요 없다는 故 정주영 회장의 지론이기도 했습니다.

 

 

 

음식을 함께 입으로 먹는 사람들이 식구(食口)아닌가?

 

필자는 국제회의 등에서 적시에 좋은 발언과 제안 등을 많이 해서 북쪽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음식으로 서로 배려해 주는 우리 민족 고유의 먹거리로 통하는 ‘정’(Friendly Feeling of Congenial Spirits)도 남북한의 친목도모에 크게 한 몫 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2. 북한방문이야기 및 북한스포츠 계 인사 개략스케치

 

 

1)   북한 NOC 위원장 동정

 

 

북한은 철저히 정부주도의 스포츠정책과 조직을 운영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역대 북한 NOC위원장은 예외 없이 북한 정부부처인 체육지도위원회(체육부)위원장입니다.

 

 

                     (북한 NOC로고/출처: insidehtegames)



 

1988년 서울올림픽유치 및 개최에 이르기까지 KOC와 서울올림픽 분산개최를 위한 여러 차례 로잔느 남북체육회담에서 북한측 단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유순 북한 IOC위원은 북한 NOC위원장 겸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장관 급)이었습니다.

 

후임 박명철 북한 NOC위원장 겸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장관 급)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대학 동기로서 실세였습니다.

그는 역도산의 사위이기도 합니다

그의 후임으로 문재덕 북한 NOC위원장이 영어에 능통한 북한 스포츠 계 국제 통 문시성 NOC서기장(사무총장)과 함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스포츠무대에 등장하였습니다.
 

 


(2004
년 아테네 올림픽 기간 중 IOC본부호텔인 힐튼호텔에서 만난 문재덕 북한 NOC위원장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좌측> 및 문시성 북한 NOC서기장<우측>과 함께)



 

2016 320일 자 한 외신에 의하면 리종무(Ri Jong Mu)가 북한 NOC 새로운 위원장으로 임명된 바 있습니다.

 

이종무 신임 북한 NOC위원장은 전임자인 김용운(Kim Yong Un)을 교체한 것으로 발표 및 보도된 바 있었습니다.

 

 

(리종무 북한군 중장/자료 출처: 연합뉴스 yna)

 

 

북한군부 중장 출신 리종무 북한 NOC위원장(2016년 당시 67) 2012~2014년 북한체육상을 역임한 바 있는 핵심스포츠 전문가(a key sporting expert)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는 2016 1, 2년 만에 체육 계로 복귀한 셈이었는데 평양개최 북한 NOC임시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전임 김용운 북한 NOC위원장을 교체하고 그 역할을 맡아온 바 있습니다

 

이러한 NOC위원장 교체사실은 송광호 북한 NOC부위원장 겸 서기장에 의해 OCA Sheikh Ahmad Al-Fahad Al-Sabah회장에게 통보되었다고 OCA가 밝힌 바 있습니다.

 

김용운 전임위원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직위에서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North Korean athletes parade during the Opening Ceremony of London 2012 ©Getty Images (런던2012올림픽 개회식에서 입장하고 있는 북한 선수단 모습/출처: insidethegames)

 

 

북한 NOC지도부경질 관련 더 이상의 정보는 세계에서 가장 비밀주의 국가로부터(by the worlds most secretive state) 공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장웅 북한 IOC위원은 북한 NOC부위원장 직을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 NOC위원장 경질은 북한 스포츠당국으로선 중요한 시간대에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북한이 향후 유도와 역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유치를 계획 중이었던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2016 1월 북한 체육상(장관급)으로 복귀했던 리종무 북한 NOC위원장의 임기가 채 1년도 되지 않은 2016 125일 경에 후임으로 김일국 제1체육 부상이 북한 내각 체육상(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고 보도된 바 있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017 12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위원회 총회가 1 23일 평양에서 진행됐다"고 하면서 "총회에서 김일국 체육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올림픽위원회(DPR Korean NOC) 위원장으로 선출됐다"고 짤막하게 전했던 것으로 KBS News를 통해 124일 보도된 바 있습니다.

 

 

(김일국 북한 NOC신임위원장 겸 체육상/출처: IOC홈페이지)

 

 

KBS New에 따르면 김일국은 지난해 20163월 김정은의 노작 발표 1돌 기념 체육 부문 연구 토론회를 소개하는 북한 매체 기사에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서기장'으로 소개됐고, 그 해 12월 내각 체육상(장관급)으로 임명된 바 있다고 합니다.

 

 

이어서 김일국 체육상 교체임명 1개월 만에 북한 NOC는 최근 2017123, 다시 특별 NOC총회를 개최하여 북한 NOC위원장 교체 1년 만에 북한 NOC위원장이었던 리종무(Ri Jong Mu)의 후임으로 오랜 기간 부위원장(Executive Vice President)직을 맡아온 김일국을 재 교체하여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NOC 부위원장 겸 서기장인 손광호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Olympic Council of Asia) 회장 HE Sheikh Ahmad Al Fahad Al Sabah에게 전달한 서한에는 리종무 위원장이 건강 악화로 위원장 직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으며 위원장 직 교체로 OCA와의 관계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한 바 있다고 합니다.

 

 

2)   북한의 Rio2016 참가와 남북한 선수들의 Great Gesture

 

북한은 Rio2016올림픽 참가를 위한 준비에도 박차를 가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은 Rio2016 올림픽에서 역도와 체조에서 각각 하나씩 2개의 금메달과 역도에서 은메달 3, 탁구와 사격에서 동메달 2개 등 모두 7개의 메달을 따 종합순위 34위를 기록한 바 있으며 이는 런던2012 올림픽 때( 4 2)보다 전체 메달 수는 늘어났지만 금메달 수는 줄었다고 보도된 바 있습니다.

 

 

(Rio2016올림픽에 참석한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3>과 그 일행/출처: sports. news. naver. com )

 

 

North Korea are also finishing their preparations for this year's Olympic Games in Rio de Janeiro. (Rio2016올림픽에서 북한 홍은정 선수<당시 27>와 이은주 선수<17>/출처: Reuters)

 

 

Thomas Bach IOC위원장은 로이터가 보도한 위 사진에 대하여 “Great gesture (엄청난 몸짓)이라고 소감을 표명한 바 있었습니다

 

 

3)   북한 평양방문 이야기


2
년 마다 개최키로 하고 결성된 동 아시안게임(East Asian Games)은 제1회 대회를 중국 상하이에서 1993년 개최하였습니다.

 

1995년에는 평양에서 제2회 동 아시안게임이 개최키로 되어있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1993 1024일 제7 EAGA(East Asian Games Association: 동아시안게임협의회)총회가 평양에서 개최된 바 있었습니다.

 




북한 사정으로 1995년 평양대회가 무산되자 EAGA는 동아시안게임을 2년이 아니라 4년마다 개최키로 하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1997년 제3회 동아시안게임 개최도시로 되어 있었던 한국의 부산광역시가 제2회 대회 개최도시로 조정되어 개최한 바 있었습니다.


 

필자는 KOC회의 대표자격으로 박상하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집행위원장 겸 대한체육회부회장 및 이강평 KOC사무총장과 함께 1993 10월 홍콩과 베이징을 경유하여 역사적인 첫 번째 평양 공식방문 길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어 2001 6월에는 제2차 평양 방문이 있었습니다.

이때는 2001 7월로 예정된 모스크바 IOC총회에서의 김운용 KOC위원장 겸 IOC부위원장의 IOC위원장 출마에 따른 북한 장웅 IOC위원의 선거지원 및 남북한 태권도 교류협의가 주 목적이었습니다.

 

대표단은 김운용 WTF총재 겸 IOC부위원장, 최재승 국회문광위원장, 이금홍 WTF총재 그리고 필자 등 4명이었습니다.



 

 

(좌로부터: 故 이금홍 WTF총장, 故 김운용 당시 WTF총재 겸 IOC부위원장 겸 KOC위원장, 장웅 북한 IOC위원 겸 당시 ITF총재, 북한 여성안내요원 2, 최재승 당시 국회 문광위원장, 필자)

 

 

 

 

(평양소재 10만 명 수용 능라도 경기장)

 

 


 

 

 

 


(
평양 모란 각 인근 을밀대에서/좌로부터 故 이금홍 WTF사무총장-故 김운용  당시WTF총재 겸  IOC부위원장-최재승 당시국회 문광위원장-필자)



 

평양에 도착하자 국빈 급 호텔 격인 모란 각 초대 소에서 체류하면서 령변(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으로 유명)과 묘향산도 방문하였습니다

 

4)   북한 스포츠 계 인사 개략 스케치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북한선수단 개 폐회식 공동입장에 따른 실무회의 대표자격으로 금강산에서 3차례 당시 북한 NOC 서기장(사무총장: 심장마비로 2004년 말 사망) 등과 공식 회동을 갖은 바 있습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때부터 28년 간 각종 국제스포츠행사, 올림픽대회, 아시안게임, 국제회의때 마다 많은 북한 스포츠관계자들과 만나 지속적이고 끈끈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왔었습니다.

 

물론 통일부의 '북한주민접촉승인'은 국제행사 시 사전에 받아왔음은 불문가지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유순 북한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위원장(체육장관 겸임) IOC위원은 과묵한 편이었습니다.

 

뒤를 이어 박명철 북한NOC위원장(체육장관 겸임)은 다소 활달하고 호방한 편으로 고 역도산의 사위이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는 김일성 대학 동기동창생으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사적 평양 공식방문 시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마중 나와 김 전 대통령과 포옹할 때 바로 뒤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
앞줄 왼쪽에서 5번째가 박명철 북한 NOC위원장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위원장<장관 급>)


 

한국 TV 등 방송매체에서는 박명철 북한 올림픽위원장의 얼굴을 모르던 터라 엉뚱한 사람으로 오인하여 설명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장웅 북한 IOC위원이 북한 NOC서기장직에서 제1부위원장(체육차관 급)으로 승격된 후 그 바통을 이어 받은 사람은 류성일 서기장이었습니다.

 

류서기장은 본래 축구 인으로서 축구관계 일을 보다가 영어실력이 뛰어나 발탁된 케이스였습니다.

 

필자는 북한 스포츠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결코 사상이나 이념 등 민감하고 불편한 화제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으며 서로 부담이 전혀 없는 스포츠관계 일이나 신변잡기 등을 주제로 교분을 다져 온 까닭에 필자의 경우 북한 스포츠 계에서는 여러 개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제 스포츠 계 흐름에 정통한 국제 스포츠 계 마당발로써 평이 좋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양궁 장에서 해후한 류성일 북한 NOC서기장<가운데> 및 박상하 당시 대한체육회 부회장 겸 현 ISFT회장<우측>과 함께)


 


류서기장은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 자격으로 아시아 축구총연맹(AFC: Asian Football Confederation)총회에서 쿠웨이트의 Sheikh Fahad OCA회장 겸 IOC위원 겸 아시아핸드볼 연맹회장과 격돌한 아시아대륙 할당 FIFA부회장 선거전 최종투표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원칙을 지킨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 바 있었습니다

 

류 서기장의 뒤를 이은 인물은 고 조상남 서기장으로 1959(돼지띠) 평안북도 철산리 태생으로 필자보다는 3년 연하이며 2003 5월 브라징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개최 ANOC총회 시부터 교분을 맺어 온 바 있었습니다.

 

故 조 서기장도 영어 잘하고 활달하며 소신과 철학이 뚜렷하였고 논리 정연하여 토론에도 능했지만 의리파이며 다정다감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참가 남 북한 선수단의 개 폐회식 공동행진(Joint Parade/ Joint Marching)과 관련 금강산에서 3차례에 걸친 실무대표 급 회의 때 낮 동안은 남측 3 실무대표의 일원에 불과했지만 저녁만찬 테이블에선 수석대표(?)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의석상에서는 양측 의 각기 다른 주장으로 열띤 토론과 대화다 되었지만 막상 만찬석상에서는 서로 서먹서먹한 사이라서 필자가 총대를 매고 분위기 메이커 겸 이런 저런 화제를 꺼내고 대화를 주도하면서 허심탄회한 만남의 장을 연출해 보기도 한 바 있었습니다.

김유순 북한 NOC위원장과 함께 북한 스포츠외교 책임을 도맡아 북한 NOC서기장직을 역임한 장웅 현 북한 IOC위원 겸 국제태권도 연맹(ITF: 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 본부: 오스트리아 비엔나)총재가 김유순 IOC위원의 후임으로 1996년 애트랜타 올림픽 기간 중 개최된 IOC총회에서 이건희 삼성그룹회장과 같은 날 IOC위원으로 선출되는 바람에 박명철NOC위원장이나 문재덕 NOC위원장 모두 북한 체육부 격인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장관 급)이었지만 IOC위원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장웅 북한 IOC위원이 이미 개인자격 IOC위원이고 IOC위원 1 1명 원칙 때문입니다.

 

당시 북한 스포츠외교의 핵심은 장웅 북한 IOC위원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본부를 두고 ITF총재로서 활동했던 바 있습니다.

 


이제 ITF장웅총재 후임으로는 ITF서기장 역할을 해 왔던 리용선이 임명되었으며 지난 무주개최 ITF태권도 시범 단 한국 방문 당시 장웅 IOC위원 겸 ITW명예총재와 함께 다녀간 바 있습니다.

 

 

 

(Athens2004올림픽 당시 한국 유도 간판스타 한판 승의 사나이 이원희 유도 금메달리스트<가운데>, 리용선 현 ITF총재<> 및 필자<>)

 

황봉용 북한 NOC부위원장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부위원장(차관 급)은 몇 년 전 남북 태권도 교류의 일환으로 북측 태권도 시범단장 자격으로 서울을 방문 한바 있습니다.

 

 

3. 북한 말 표현 정리

 

 

북한에서 통용되는 우리말은 어찌 보면 말 표현이 행동자체를 연상시키게끔 함축시킨 듯한 느낌이 든다. 다음은 필자가 지난 아테네 올림픽 대회 기간 중 장웅 IOC 위원과 동행하면서 메모했던 몇 가지 이북표현입니다.

「발길질해야 되갔어! = 혼 좀 내야 되겠어!

「똥내난다」 = (뭔가 수상쩍은)냄새나는구만!

「수표하라! = 서명하라!

「수표하고 리행 해야 되지 않갔어? = 서명했으면 이행해야지

「그렇게 말하면 동요된단 말이야」 = 그렇게 말하면 망설여진다

「생기는 대로 먹고 닥치는 대로 해치우는거다」 = 부딪치는대로 해결해야겠지

「배꼽이 뚝 튀져 나오도록 먹자꾸나」 = 허리띠 풀고 실컷 먹자

「발킁내 나도록 돌아다녔어」 = 이리저리 한참 돌아다녔어

「절구통에 치마만 씌워나도.... = 치마만 두르면....

「야들시」 = 여덟시

(술잔 받으면서) 일 잘 하갔습네다! = 건배! 위하여!

「요란하구나」 = 대단하구나

「일없소! = 괜찮소!

「시집올때 웅성웅성 했다고 그래」 = 시집올때 말이 많았다지?

「꼬득이지 말라우」 = 꼬시지 말라구

「정 붙었구만」 = 친해졌군

「기러다 간판 맞는다」 = 그러다가 얼굴에 한방 맞는다

「구두식사 많이 했시다」 = 식사제의만 여러 번 받고 실제로 식사한적은 없다

「입 꽉 다물라. 기리치 않으면 양쪽에서 총 맞는다」 = 말 옮기면 양쪽에서 비난 받음

「북쪽에서 큰 물난리 났을때... = 북쪽에서 홍수 났을때...

「골짜기가 깊어야 물이 고인다」 = 그릇이 커야 사람이 모인다

「백 번 물으면 백 번 웃으며 대답하자. = 항상 변함없이 성의 있게 대하라

「백 번 주문하면 백 번 웃으며 봉사하자」 = 항상 변함없이 즐겁게 일하자

「믿음은 충신을 낳고 의심은 배신을 낳는다」 =(그네들 장군님 어록을 인용하면서)믿고 대해야 신뢰하게 된다.

「相好 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 얼굴 좋은 것은 신체 좋은것만 같지않고, 신체 좋은 것은 심성 좋은 것만 같지않다」

60이 넘으면 죽음이 눈썹 위에 있고, 내려오면 눈감는다」 = 60세가 넘으면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고 대비하라는 뜻」

「늙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일어나기 싫고 앉아 있으면 꾸벅꾸벅 졸고, 누우면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 이북에서 나이 들면 생기는 현상을 표현한 말」

「남정네 아랫도리에 좋습네다」 = 정력에 좋다

「들박이」 = 들뱀

「탁배기」 = 탁주, 막걸리

「두꺼비 한 마리 있네? = (진로)소주 한 병 있소?

「연애질하는 이야기」 = 스캔들

「구석 차기」 = 코너킥

「물 속 뛰어들기」 = 다이빙

「보장성원」 = 지원임원

「일꾼」 = 요원

「사업수첩」 = 업무일지

「어름 뽀숭이」 = 아이스크림

「심장에 남는 사람」 = 인상 깊은 사람

「오네월 개 헤떼기다」 = 오뉴월 개 혓바닥처럼 축 처졌다

「악질적으로 다니누만」 = 끈질기게/독하게 다니는 구먼

「대상하기 힘들다」 = 상대하기 어렵다

「간단티 않아」 = 쉽지 않아

「돼지 발족」 = 돼지 족발

「날래 조지라! = 빨리 달려라!

「연대성(solidarity) = 단결

「용서 없는 시간의 흐름」 = 사정없이 흐르는 시간

「곡절 많고 각이한」 = 사연 많고 여러 가지 각각 다른

「대인 예술」 = 대인관계 기술

 

 

4. 남북한 스포츠 교류일지 종합요약정리 Update

 

1) 1963 1 24 ~ 7 20

-Tokyo1964올림픽 단일팀구성문제 토의(3. 결렬 후 별도 참가)

2) 1978 5 6

-남북한 축구 사상 첫 대결(방콕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3) 1979 2 27~3 12

-35회 평양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구성 토의(4회결렬후 한국참가무산)

4) 1984 4 9~5 25

-LA1984올림픽, 서울1986아시아게임, 서울1988올림픽 남북한 단일팀구성을 위한 제1차 남북한 체육회담(3)

5) 1985 2 1

-故 사마란치 당시 IOC위원장 주재 남북한체육회담 개최 제의

6) 1985 7 30

-북한, 서울1988올림픽 남북공동주최 주장

7) 1985 10 8~1987 7 15

-서울1988올림픽 단일팀구성 및 공동 개최협의(4/ 북한 IOC수정안 거부로 북한불참)

8) 1986 3 3

-북한, 북한지역에 8개종목 배정 요구

9) 1988 2 6

-북한, 서울1988올림픽 공동 개최에 정치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공동개최 거부

10) 1989 3 9~1990 2 7

-베이징1990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9)

11) 1990 2 21

-김형진 남북체육회담 북측대표 회담결렬 비난 성명

12) 1990 9 18

-북한, 베이징1990아시안게임, 지바(Chiba)1991세계탁구선수권, 바르셀로나1992올림픽 남북단일팀구성제의

13) 1990 10 9~10 13

-남북통일축구 평양대회 개최

14) 1990 10 21~10 25

-남북통일축구 서울대회 개최

15) 1990 11 29

-남북스포츠교류 및 바르셀로나1992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제1차 남북체육회담

16) 1991 2 12

-지바(Chiba)1991세계탁구선수권 및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구성을 위한 제4차 회담

17) 1991 3 25~5 9

-지바(Chiba) 세계탁구선수권 남북한 단일팀참가 (금메달 1, 은메달 1개 및 동메달 2개 획득)

18) 1991 56~6 28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 남북한 단일팀 참가 (남북 각각31명씩 참가 및 8강 진출 쾌거)

19) 1991 8 12

-북한, 유도선수 이창수 귀순을 문제 삼아 체육회담 무기연기 통보

20) 1995 11 20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 2002 Korea-Japan FIFA월드컵 개최 시 남북 공동개최 의사 표명



21) 1997 3

-Jeff Blatter 당시 FIFA 사무총장 월드컵 분산개최 불가표명

22) 1997 11

-Havelnage 당시 FIFA회장 2002 FIFA월드컵 북한참가 설득 발언 후 북한에 서한 발송

23) 1998 11 30

-Jeff Blatter 당시 FIFA 회장 서울방문 시 남북한 정치권 합의 시 분산개최 수용시사

24) 1998 12 21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 CNN 인터뷰에서 두 경기 북한 개최 시사

25) 199912

-남북통일 농구대회 서울개최

 

26) 2000 915~101

 

-시드니2000올림픽 개회식에 남북한 역사적인 공동행진 성사

  

27) 20029 29일∼10 14

 

-부산2002아시안게임 개회식에 남북한선수단 공동행진 2연속 성사

 

27) 20032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개회식 남북한선수단 공동행진 3연속성사

 

28) 2003 821

 

-대구2003 하계유니버시아드 개회식에 남북한 선수단 공동행진 4연속 성사

 

29) 2004

-Athens2004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행진 5연속 성사

 

30) 2005 2

-Torino동게유니버시아드대회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행진 6연속 성사

 

31) 2005

-마카오 동아시아대회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행진 7연속 성사

 

32) 2006 

-Torino 동계올림픽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행진 8연속 성사

 

33) 2006

-카타르 Doha아시안게임 개회식 남북한 선수당 공동행진 9연속성사

 

*베이징2008올림픽 및 광저우 2010 아시안게임에서도 남북한 공동행진 무산

 

34) 2011

-카타르 Doha개최 Peace and Sports Cup 탁구대회 남북한 선수단 단일팀 구성 및 참가

 

*남북한 단일팀 구성 성사 및 참가는 총 3/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일본 지바 및 세계청소년축구 선수권대회/포루투갈 포함)

 

35) 2014 919~104

 

-인천2014 아시안게임 참가 성사(개회식 공동행진은 무산)

 

36) 2015 73~14

 

-광주2015 하계유니버시아드 개최직전 참가 철회

 

37) 2017 42~8

 

-강릉개최 2017 IIHF 여자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 Division II 대회에 북한선수단 30(선수 20명 및 임원10)참가

 

38) 2018 29~25

 

-평창2018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

 

 

5. 최근 북한의 동계올림픽 및 국제대회 참가 현황

 

. 동계올림픽대회(1998~2014)

1)나가노1998 (2종목, 선수 8)

(1) 쇼트트랙: 남자 2, 여자 4

(2)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2

 

2) 솔트레이크시티2002 (정치적 이유로 불참)

 

3) 토리노2006 (2종목, 선수 6)

  (1) 피겨스케이팅 (남자 2, 여자 2)

남자: 한종인, 쇼트 30위로 프리스케이트에 진출하지 못함

여자: 김영숙, 쇼트 27위로 프리스케이트에 진출하지 못함

페어(Pairs): 정용혁&표영명, 쇼트 20, 프리스케이트 기권

(2)쇼트트랙 (여자 2)

리향미: 500m(실격), 1000m 15(예선3위로 8강전 진출 못함)

윤정숙: 500m 15 (예선3위로 8강전 진출 못함)

 

4) 밴쿠버2010 (2종목, 선수 2)

(1) 피겨스케이팅 (남자 1)

리성철, 쇼트 25위로 프리스케이트(Free Skate) 진출하지 못함

(2)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

고현숙, 500m 9 / 1000m 13

 

5) 소치2014 (출전권 획득 실패로 불참)

 

. 동계 아시안 게임

 

1) 2011 1 28~27

-아스타나-알마티2011동계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 (개인종목 12명 및 여자 아이스하키 등 빙상종목에만 참가-피겨 페어 부문 동메달 1개 성적-여자아이스하키 한국을 6:1로 꺾고 5개국 중 4)

     

      4) 2017 2 19~26

-삿포로2017동계아시안게임 북한선수단 참가(쇼트트랙 5명 및 피겨 2명 등 7명 선수 및 임원 참가/피겨 페어 동메달 1개로 종합순위 5)

 

 

6. 남북한 선수단 국제종합대회 개회식 공동행진 성사 일지

 

1) 2000915

-Sydney2000올림픽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입장 및 행진

 

2)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개회식 남북선수단 공동입장 (북측 미녀 응원단/북측 만경봉 호 부산 입항)

3) 2003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입장

 

4) 2003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남북한 선수단 개회식 공동입장(북측 미녀응원단)

 

5) 2004

-Athens2004올림픽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입장

 

6) 2005

-Torino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입장

 

7) 2005

-마카오 동아시아대회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입장

 

8) 2006

-Torino 동계올림픽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입장 

  

9) 2006

-카타르 Doha 아시안게임 개회식 남북한 선수단 공동입장 등 총 9회 공동입장 성사

 

*** 2011.

-카타르 Doha개최 Peace and Sports Cup 탁구대회 남북한 선수단 단일팀 구성 및 참가 (남북단일 팀 성사는 총 3/1991년 세.. 및 세... 포함)

 

 

 

 

*References:

-총성 없는 전쟁(윤강로 저)

-통일부 북한 인사 인명록

-연합뉴스(YNA)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