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8. 6. 21. 18:11

[스가랴(Zechariah)말씀과 함께 나눈 4주간 큐티 은혜와 회개 현장후기 스케치]

 

 

삶 속에서 주님께 고백하는 진솔한 간증이 주님이 주신 부활의 행진곡이며 부활의 사명감당임이 깨달아지기를 소망하는 오늘입니다.

 

말씀의 생수(living water)를 사모하면 팔복을 나누어 주신다고 하시네요~^^~



 

 

 

사람을 외모로, 외식으로, 스펙으로 판단하여 격동, 충동, 감동되지 말고 이해하고 보듬어 주려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것을 평강이라 부르신다고 하시는 것 같은 좋은 글 속의 메시지가 회개로 인도하십니다


인간의 너무나 나약함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내 능력으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이 절절이 깨달아지기를 소망합니다


나부터 불신 부모님에 대하여 임종하시기 전에 반드시 주님 영접하시도록 기도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담대히 말씀 전하시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인도해 주신답니다. 할렐루야~


스가랴(Zechariah) 이전에 묵상했던 사도행정(Acts: 26) 큐티 본문 중에서 부임한지 얼마 안되다 보니 지역 실력자들과의 실리추구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시민인 바울에 대하여서도 나중에 추궁 받을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베스도(Festus) 총독의 우유부단함이 저의 과거 사회생활과 가정에서의 행태와 일맥상통한 것 같아 불현듯 부끄러움이 엄습하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책임지고 소신껏 처결해야 할 일에 대하여 구실을 찾아 골치 아픈 일로부터 빠져나가려는 무사안일 함과 귀차니즘 성향과 합리화하기를 즐겨 하는 습성을 회개하며 내 안에서 끄집어 내어 목매달기를 원합니다.


(적용) 아들에게 일주일에 한번 문자나 통화를 해서 아내에게 지웠던 멍에의 십자가를 도로 찾아 와서 적용할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하여 실행에 옮기는 적용을 하겠습니다.


사도행전(Acts 27:1~11) 큐티 본문에서 바울이 로마로 황제에게 상소 차 배로 바다항해 중 크고 작은 풍랑과 어려운 항로를 계속하면서 인솔자인 백부장(centurion) Julius에게 항해에서 닥쳐올 재앙을 경고하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리고 선장과 선주 말에 더 무게를 둡니다.

 

우리 인생항로에서도 고난의 행진 속에서 교회공동체의 처방에 따라야 하는데 부지불식 간에 세상적 가치관과 인간적 판단에 더 의존합니다.


평창2018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시절 수년 간 매주 월요 간부회의에서도 그 다음 주 예정된 국제회의의 험난한 질문공세가 장난이 아닐 것이니 철저히 상대방 눈높이 전략과 지혜로써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 섞인 충고를 콧등으로 듣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내 분야에서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과 교만함이 남들을 속으로 무시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해 온 것이 내 삶의 결론으로 지휘하는 직위를 부여 받지 못하니 아무리 슬기롭게 헤쳐갈 처방을 제시해도 '선장과 선주'의 주장대로 밀고 가나 봅니다.


오늘 말씀에서 겸손하고 내 주제를 파악하여 경거망동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최우선인가 봅니다.


사도행전 큐티 본문(27:12~26) 당시(310) ‘유라굴로’는 허리케인 급 광풍이 불더니 우리나라에도 봄 시샘 ‘한파굴로’가 불어 닥쳐 긴장하게 하였습니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느긋함이 없고 경칩에다 춘풍(남풍)이 며칠 불어 주니 조급함에 장갑포함 겨울 옷을 모두 박스에 담아 테이프로 칭칭 감아 놓았더니 아침나절부터 ‘유라굴로’가 등장하였나 봅니다.


인생에서도 조급증에 내가 먼저 앞서 섣불리 판단하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안달을 떨던 내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양평 집이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난방 잘되는 잠실로 왔던 내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그네들의 행태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이니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별 인생 별 인간이 없다고 하시나 봅니다.

그날 오랜 만에 아들과 20여분 통화했습니다.


인생항해가 어려운 법인데 우리들교회에서 말씀 붙잡고 공동체를 통해 안식 모드로 인생의 유라굴로를 피하는 도피처를 마련해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고 찬송하는 마음이 새롭게 나오도록 인도해 주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 목장식구 모두에게도 평강이 깃들도록 중보기도 드리고픈 축복된 아침이었습니다.


내가 죽기까지 낮아지면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 백성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조건임을 알고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20153월 둘째 주에 문래동으로 이사를 하느라 큐티 빼먹은 지 2일째 되는 날 아침 이틀 치 큐티를 광풍처럼 휘몰아 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적용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311일 큐티 본문(27:27~44) 말씀에서 방황의 바다에서 유라굴로 광풍 맘 고난의 광야에서 난파위기였지만 말씀의 널빤지 조각에 의지하여 예비하여 마련해 주신 피난처인 멜리데(Malta) 문래동에 무사히 이사함으로 상륙하였습니다.


집은 햇살이 주님 얼굴처럼 밝고 따사로워 안정되고 안식처로써 따봉입니다.


이젠 겨울도 났으니 피안 처인 멜리데 문래동에서 말씀의 본향인 우리들교회와 공동체로 가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 드리면서 아둘람 공동체형제들과 빵도 함께 떼어 나눠 먹고 주님 찬양하는 시간을 고대하는 수순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비 본질인 뱃머리 장식에 맘 빼앗기지 않고 본질인 내 죄 보기와 날마다 회개함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 인생이 되기를 소망하며 간구하는 찬란한 아침나절입니다.


드디어 313일의 큐티 본문(28:16~31)은 사도행전의 종결 편이었습니다.


날마다 세상적 가치관이란 쇠사슬에 매이고 기복을 소망하는 멍에에서 못 벗어나니까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목사님의 주일 및 수요 말씀을 정리하고 요약하여 지난 세월 줄기차게 자유 나눔에 올렸을지라도, 뜨거운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여 보고 듣고 글 쓰며 떠들기는 하였을지라도, 도무지 적용할 엄두조차 못 냈던 것이 제 믿음의 현실이었던 것 같아 되돌아 보게 됩니다.


내가 갇혀 있는 환경이 이사 온 셋집이고 내가 매어 있는 환경이 세상적 가치관과 세상 유혹의 쇠사슬일지라도 주어진 더 강한 결속력을 주시는 말씀의 쇠사슬에 묶여 주님의 몸 되신 교회공동체란 환경을 사모하며 담대히 말씀으로 변화되는 내 모습으로 주변에 생활복음을 전하며 또 거친 세상 만경창파 환경 속일지라도 공동체 안에서 현대판 사도행전이 계속되기를 소망해 보는 금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주말 큐티가 선지자 스가랴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전능하시고 자비로써 회개하여 다시 만군의 여호와의 품 안에서 평강과 안식을 찾으라고 권면하는 역사적 간증이야기인 스가랴 (Zechariah) 편이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붉은(red) , 자주 빛(brown) 말과 백마(white)가 등장하는 것은 홍인종, 황인종, 백인종 즉 이스라엘의 지경을 넘어선 지구 땅끝까지에 이르는 만방민족으로의 주님 사랑지경 넓히심의 예고편으로 해석됩니다.


316일 큐티 본문( 2:1~13)에서 여호와께서는 세상적이고 안위적인 보호대책대신 광대무변하시고 신묘막측 하시고 무소부재 하시며 영원불멸, 영원불변 하신하나님의 방패와 반석과 신성불가침의 성채와 피난처 겸 안식처 되심을 방호벽(a wall of fire)과 먹줄/측량 줄이란 표현으로 혈기의 불, 교만의 불, 시기질투의 불, 탐욕의 불, 미움의 불, 자랑과 인정중독의 불을 차단해 주신다고 하시네요.


세상 유혹과 인본주의 적 가치판단이 가득한 북방 땅에서 도피(2:6)하라고 하십니다.

 

도처에 사단의 일가친척들이 도사리고 있으니 유일무이한 도피처가 말씀 안인데 오랜만에 적용한답시고 어젯밤 아들 불러 아내와 함께 주변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 가볍게 곁들인 저녁시간을 보내고 이사한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접 받고픈 사단의 부추김에 걸려 넘어져 실족하는 바람에 혈기의 불이 솟구쳐 아들과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사고를 친 적이 있습니다.


변한 줄 알았는데 예전 그대로 란 말이 닫고 들어간 문 뒤로 귓가에 들리는데 역시 말씀 아무리 듣고 잘난 척 해 보아도 지금까지 허사를 경영했다라는 막연한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믿음의 길이 이렇게 멀구나' 라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이 엄습했습니다.
뛰어 보았자 벼룩신세인가 봅니다.


3월 셋째 주일(15) 1부예배 드리고 시간욕심 내어 양평에 다녀오다가 자만심과 안일함으로 인해 상춘객 차량정체에 밀려 이번 달 부목자모임 땡땡이(?) 치다 보니 이런 혈기의 불을 차단할 수 있었던 만군의 주 여호와의 방호벽이 가동되지 못한 채 그만 혈기의 불에 데이고 말았습니다.


주일(315) 밤과 월요일(316) 아침 회의 끝날 때까지 내내 심통과 심술 감옥에 스스로 갇혀 있다가 3일치 큐티 본문을 벼락치기 하면서 제 믿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게 됩니다.


별 인생 별 인간이 없음을 체휼케 하시고 혈기의 뜨거운 불로써 ‘되었다 함’이 없음을 일깨워 주신 주님께 송구스럽고 제가 새 한 마리 값도 안 나가는 미천한 존재임을 알게 해 주심에 부끄럽고 한심한 생각이 들어 머리 숙여집니다.

 

317일 아침 일찍 그날부터 시작되는 평창2018동계올림픽 IOC 조정위원회회의 일정에 참석 차 강릉에 도착하였습니다.


일정상 오후 늦게 큐티 할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날 큐티 본문(3:1~10)에서 오랜 만에 등장하는 여호수아와 같이 믿음이 출중한 대제사장도 만군의 여호와 앞에 서니 세상의 더러운 때가 묻은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하니 위로가 됩니다.


날마다 말씀 보고 들으면서도 입으로, 눈으로, 짓는 죄 덩어리가 덕지덕지 엉겨 붙은 꼬질꼬질하고 그 죄 투성이의 악취가 진동하는 세상적 욕심과 유혹의 죄 패 옷을 입고 활개치며 잘난 척하고 있으니 사탄이 곁을 떠날 날이 없나 봅니다.


교만 표 인정중독 상표가 달린 혈기의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니까 주일 밤 사탄이 아들을 사주하여 대적하여 실족하게 한 것임이 이제야 비로서 깨달아집니다.


큐티 말씀 보며 내 죄를 카톡 방에 오픈하니까 마음이 다소 편해 지는 것이 만군의 주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혈기 감옥에서 꺼내 주시고 혈기로 인한 죄를 사해 주시지 않았나 생각하니 감사함이 절로 나옵니다.


오늘도 어쩔 수 없는 죄인이다 보니 사탄의 사탕발림이 여전히 달콤하고 황홀하게 다가 올지라도 말씀으로 회개하고 순종으로 낮아지는 적용을 한다면 주님께서 하늘의 색동옷, 때때옷으로 갈아 입혀 주시는 것이 이 땅에서 모든 죄악을 일거에 씻어주심이 선포되는 것임을 알게 되기를 소망하며 하루에 한 가지씩의 더러운 죄악의 옷을 벗어내어 주님의 예표로 거듭나기를 원합니다.


온종일 비 내리는 경포대 호수와 바다를 바라보며 오늘(318)도 늦은 오후 큐티 본문( 4:1~14)을 읽으면서 황금기름을 흘려 넣어주는 두 개의 황금 관 옆에 있는 올리브 감람나무 두 가지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온 세상의 주 앞에서 기름부음 받고 서 있는 자라고 쓰여 있는데 영혼구원의 보석말씀이 흘러나오는 듯한 그 황금관 옆 황금 등잔대를 통해 완전 수 일곱 개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눈으로 나의 부족함과 지질함을 포함하여 온 천지만물을 감찰하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보호하시고 공급하시고 주인 되시는 실체임을 알려주시는 것인가 하고 해석하기는 다소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어렴풋이 하나님의 천하주유 하심을 알도록 하시기 위해 세상 탐욕 감옥에 갇혀 코 골며 잠 자는 나를 깨워주시나 보다라고 생각해 보지만 난해합니다.


세상에서 깨어나 이 시대의 스룹바벨은 누구이며 그의 손에 놓인 깨달음과 공의의 다림줄을 보고 한 없이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회의내용을 메모하고 분석하면서 인정받고자 세상적인 출세의 기초를 놓고자 노심초사 하느라 피로에 찌든 내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에 젖어 듭니다.


덧없는 인생에서 허사를 경영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눈을 번뜩이며 체면과 명예욕의 기름 관에 목을 메고 있는 현실을 주님께 고백하고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만 깨어날 수 있음을 아뢰며 주님만을 찬송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게 되기를 소망해보는 경포대 초봄 바다에서 맞이하는 수요일(318) 늦은 오후입니다.


오늘 큐티 본문(319)에서는 눈을 들어 보니 날아가는 아주 넓고 기다란 두루마리 족자 양편에 쓰인 내용을 보면 천지만물이 모두 창조주이시고 공급자이시며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들인 세상 만물, 재물, , 재능, 자리, 지식 등 모든 것이 다 내가 차지한 내 소유라고 착각하여 늘 감추고 인색하고 베풀기를 꺼려하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가족 친지 이웃 동료 지체들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는 나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그것은 모두 하나님 것을 도적질하여 사리사욕에 눈 먼 도둑이라고 하십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떠들며 믿음이 수준 급 인척 잘난 척하며 나도 남도 속이며 거짓 입술과 궤사한 혀로 거짓 맹세하는 자가 그 누구냐 하시며 두루마리에 쓰여진 바 모두 저주가 임할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결국 세상 유혹이 만들어 놓은 에바(a measuring basket) 속에 갇혀 말씀과 멀어
지게 되면 멸망집합소로 옮겨지게 된다고 하십니다.


예루살렘 교회공동체가 아닌 바다 바람을 끼고 날아온 강릉에서 세상 경쟁 이야기 바다에 풍덩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319) 모든 일정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갑니다.
말씀공동체 근처로 다가가 주님 품 안에 거하길 원하면서 목장 예배에 참석하지 못함에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오늘(320) 큐티 말씀을 보면서 제목이 '왕 같은 제사장'임이 눈에 띕니다.
을지로 제 사무실에서 눈을 들어 창 밖을 보니 희뿌연 스모그인지 황사인자 사이로 남산이 눈에 들어 옵니다.


희뿌연 황사 같은 세상 욕심이 눈 앞에 어른 거리니 말씀과 계시가 흐릿하기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훅 부시면 일시에 다 날아갈 재물과 명예와 자리인데 아집과 미련이 남아 여호와의 영광과 말씀의 성전건축을 위한 말씀의 십일조에 인색하다 보니 어젯밤 세상 바벨론의 잡다한 일에 며칠 사로잡혀있다가 돌아와 피곤하다며 아내집사에게 진정 성 있는 은과 금 같은 다정한 면류관 재료의 사랑스런 말 씀씀이가 아니라 대접 받고 싶고 알아달라는 치졸한 마음의 발상으로 인해 헛다리를 집는 바람에 이기적인 속내를 들켰나 봅니다.


인정에 목말라 큐티는 지극정성으로 하면서 정작 가정중수의 핵심인 아내에게는 따뜻한 카톡 메시지는커녕 성의 있는 전화 통화 배려가 소홀하다는 섭섭함 토로에 '아차' '아뿔싸'가 나와 이내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가갔지만 찰나의 위기모면 용 제스처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내 내 죄를 보고 회개하는 맘이 생긴 것은 들어 둔 말씀 덕분이 아닌가 스스로 위로해 보기도 합니다.


가정대신 목장 카톡 방에 큐티 나눔에 매달렸던 여파로 아내가 카톡 방에서 나가버렸는데 이 모두가 제 불찰임을 인정하며 고백합니다.


가족은 대충대충 대면대면하고 사회적인 사교와 명예와 체면치레에는 사울처럼 병적으로 열심이었던 과거의 내 죄가 뚜렷이 보이니 아들과 아내의 정신적 트라우마(trauma)가 바로 내 삶의 이기적 습관과 흔적이 가져다 준 결론임이 깨달아집니다.


큐티 나눔을 통해 내 죄를 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고 북쪽으로 나간 검은 말들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쉬게 되신 것처럼 내 죄보고 내가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세상적 욕심덩어리를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내려 놓음으로 하나님께서 평강하시도록 한걸음씩 적용하기를 소망해 보는 금요일(320) 오전입니다.


주말(321~22) 큐티 말씀에서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진노가 임한 이유는 의례적으로 울며 근신하고 금식하며 예배에 열심인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과 내 영역에 속한 사람들의 일신의 편안과 안녕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보니 말씀을 마음이 강퍅한 가운데 아전인수 격으로 제멋대로 행하는 것 결국 불순종 때문이라고 공의에 입각하시어 질책하십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고 은혜만 받아 챙기고 정작 내 주위의 과부나 고아나 나그네나 궁핍한 지체들은 나 몰라라 방치하는 것이 바로 불순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불순종은 황폐와 피폐와 풍비박산을 잉태하는 것이라고 애통해 하시며 그럴 수 밖에 없으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면 원망이 아니라 깨우쳐 돌이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시는 보석말씀을 주시고자 사랑의 매를 드신 것임을 알기를 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올곧게 듣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내 속에 진리의 성읍과 말씀의 성산과 순종의 성전을 쌓음으로 상급으로 주시는 평강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 안식의 열매를 보장해 주신다고 하시니 잘 되라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속정 깊으신 참뜻을 받들기를 원합니다.


지금껏 세상우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바람에 저주가 되었었지만 하나님의 구원하시려는 인애와 긍휼하심으로 '고생 끝 행복/거룩 시작’이라고 선포하시는 것 같아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시작된다고 오늘(323) 큐티 본문( 8:14~23)을 주시니 할렐루야입니다.


가정에서 제가 할 일은 이제 혈기 금식과 입술의 할례임을 적용하고자 기도 드려야 할 차례인 것을 주님께 고하고 내 함으로는 불가하니 도와주십사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는 감사의 월요일(323)입니다.

 

오늘(325) 큐티 제목은 '구원의 왕'입니다.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시어 에쿠스나 벤츠대신 모닝이나 티코나 포니를 타시지만 BMW 와아우디를 제압하시고 추월하시면서 주유천하 하시며 호령하시니 산천초목도 벌벌 떨지만 말씀에 순종하고 회개하는 성도들은 십자가 보혈을 통과하는 적용을 하니 힘들고 괴로웠던 사망의 스올에서 맘 놓고 주님의 안식처로 돌아오라고 천국잔치에 초대하십니다.


썩어서 바람에 날아가버릴 세상의 향기와 유혹의 물매 돌을 짓밟고 날마다 공급해 주시는 말씀의 큐티 만나와 적용의 메추라기와 성령 충만한생수로 구원의 보석이 아로새겨진 면류관을 쓰고 긍휼하심이 녹아 있는 포도주로써 만사형통과 강건함을 증거해 주시니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이 그 얼마나 보배로우신지요.


날마다 감사할 것 밖에 없는 마음주심이 최고의 상급인데 오늘도 큐티 말씀으로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져 있는 할 말 없는 저희들의 더러운 죄 씻어주시고 용기 주시고 위로충만 주시니 오직 하나님만 찬양 찬송 경배 드리고픈 감사 충만한 수요일 오후입니다.


오늘도 외국 손님과의 저녁식사를 핑계로 수요예배를 또 빼먹지만 큐티말씀을 통해 세상 감옥에 갇힌 자이지만 소망을 품고 구원의 요새를 사모하면서 위로 받으며 '구원의 왕'이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영광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립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고 쓰임 받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325)이 우리 잠실목장에서의 고별 큐티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공교롭게도 큐티 제목이 '회복의 약속'인데 문자적으로 보고 거저 먹으려 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가뭄이 극심하여 TV 뉴스 화면 상에 이곳 저곳 강바닥이 말라 쩍쩍 갈라져 벌집처럼 보이는 것이 마치 풍요로웠던 사치와 오만불손함으로 거드름 피우며 영원할 것 같아 의지했던 세상의 부귀영화도 창일한 나일강이 말라붙는 것 같이 덧없이 사라지는 것임을 시사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내 맘에 봄비, 소낙비가 내리지 않고 말씀의 생수가 메말라 깨달음의 갈증으로 애태우는 세상광야에서 이제 우리 목장을 떠나 다시 낯 설은 광야로 이동해야 하는 타이밍이지만 공동체에 잘 묶여 가면 주님이 구속의 휘파람을 불어주시리라 간구해 봅니다.


세상살이가 고난의 바다이다 보니 날마다 눈뜨고 쳐다보면 해결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기다리고 있는데 무명용사처럼 살아가려니 생색도 안 나고 이런저런 이유로 어렵고 또 어려운 일들의 연속입니다.


그나마 우리들교회에 등록하고 각종 양육 받으며 꿀송이 같은 목사님의 주일 및 수요말씀 그리고 날마다 습관이 된 아침 큐티와 주님과 대화하며 하소연하는 기도시간마저 없었다면 사단의 밥이 되고도 남았을 인생임을 생각하며 앉으나 서나 주님께 감사드릴 것 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읊조려보는 목요일입니다.


본문에서 '에브라임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과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10:7)이라시는 위로와 희망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목장식구들에게 이제 목장 큐티 방을 하직하는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웠습니다.
 

팔복의 평강이 임하길 기도 드립니다. 샬롬^^ 

 

327() 큐티 제목은 ‘선한 목자로 오실 예수님’인데 주님은 ‘은총의 막대기’(a staff called Favor)로 내 안의 사악함을 쫓아 주시고 ‘연합의 막대기’(a staff called Union)로는 세상유혹에 빼앗겨 흩어졌던 마음과 영혼을 하나되게 하시나니 1 4절에서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고 만군의 여호와(the LORD Almighty)께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인 긍휼로써 말씀 하셨으나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사망에서 부활하도록 주님께서 은총의 막대기로 건져 주셨음에 감사함이 새롭게 흘러 나옵니다.

 

328() 큐티 제목은 ‘구원의 날’인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이면 ‘불 기둥’으로 흑암 절망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구원으로 무장된 주님 공동체로 우리를 불러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께서 용광로와 같은 화로(a firepot)와 횃불(a flaming torch)로써 세상적으로 치명적 유혹의 실체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질을 불사르게 함으로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시니 날마다 회개하는 삶으로 내 생명을 드려도 아깝지 않다는 찬송이 절로 나오도록 믿음의 지경을 넓혀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329(주일) 큐티 제목은 ‘여호와는 내 하나님’입니다. 내 죄를 오픈하는 회개 역사가 일어나도록 켭켭이 쌓인 죄와 더러움을 씻겨 주시는(cleansing us from sin and impurity) 예수님의 보혈의 샘을 열어주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census)의 죄를 묻기 위해 3일간의 전염병을 주시어 7만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죽어 나갔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진노하시어 치신 형벌도 회개가 있은 후에 축복임을 알게 된다고 하시는 주일 설교 말씀이 영혼구원의 생수(living water)임이 깨달아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330() 큐티 제목은 ‘여호와, 천하의 왕이 되시다’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재물이나 세상명예나 성공이 모두 약탈되어 나누이리라(14;1)고 하십니다.

 

아침 안개와 같이 허무한 세상 성공보다 회개를 통해 주어지는 감람산의 생수(living water)를 사모하는 인생으로 감람산(the Mount of Olives) 승리의 골짜기 내 생애 ‘나의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서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좌충우돌하지 않으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 고난의 용광로에서 단련된 은이 정금처럼 제련되고 단련되어 “내 평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로 더 나가길 원합니다”의 승리의 찬송을 부르길 원합니다.

 

331() 오늘 큐티 제목은 ‘성결이라 기록 될 것이라’이고 드디어 스가랴 (Zechariah) 종결 편입니다.

 

여호와의 재앙이 가져다 주는 결과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가릴 것 없이 살과 눈동자와 혀가 다 썩어 문드러지게 되는 좀비 같은 산 송장 신세요, 공포에 벌벌 떨며 피아 구별 없이 서로를 해코지 하게 되며 세상 보물이 다 무용지물이 되나니 한마디로 불순종은 궤멸의 선봉이요 멸망의 필요충분조건임을 각인 시켜 경고 하십니다.

 

초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주일에 여호와께 경배(예배)를 거르는 자에게는 말씀의 단비(축복의 은혜)가 없으며(They will have no rain. /24:18) 재앙(썩어 문드러짐: 영적 피폐함)이 임한다고 하시는데 주일에 예배말씀으로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 보혈을 통해 거룩해 지도록 깨달음을 주시나니 내 영육이 거듭나서 모두 성결(거룩)해 지는 구원의 기적을 베푸신다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요즘 온 나라에 가뭄이 극심한 것이 말씀과 회개가 희귀하고 불순종하며 사랑이 메말라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샬롬~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과 및 관절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