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2021. 5. 3. 15:28

[윤강로 스포츠외교관 에피소드 1편(로키 윤 Rocky Yoon과 몽골 명예박사학위 취득 이야기)]

 

 

필자는 국제 스포츠에서 「로키 윤(Rocky Yoon)」으로 불린다. 자크 로게(Jacques Rogge) IOC 위원장은 필자에게 국제회의에서 발언권을 줄 때 “Rocky, please”라고 하였고 현 Thomas Bach IOC위원장도 필자를 로키’(Rocky)라고 지칭한다.

 

로키(Rocky)라는 이름은 필자가 한국 외국어대학교(HUFS) 재학시절인 1970년대 후반 대통령 컵 국제축구대회(일명 박스컵; Park's Cup) 대학생 통역으로 활동할 당시 미국 올림픽 대표 축구팀에서 붙여준 이름이다.

 

장충동 신라호텔이 생기기 전에는 앰배서더(Ambassador)호텔이 제일 좋은 특급호텔이었고, 미국 올림픽 대표팀과 숙식을 같이하다시피 하면서 통역에 임했는데, 여러 날 같이 지내다 보니까 선수들이 주로 미국 대학생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필자와는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뷔페를 함께 먹고 나서 자연스럽게 장기자랑(Talent Contest)으로 이어졌고, 필자는 당시 흥행에 성공한(good box office) 미국 영화 중 실베스타 스텔론(Sylvester Stallone)이 주연한 「Rocky」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이 몸을 단련하는 모습 중에 한 손으로 번갈아 가며 팔 굽혀 펴기(one-hand push-up)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한 손 팔 굽혀 펴기」 시범을 보여 주었다. 당연히 많은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무도 필자 흉내를 내지 못했다.

 

그 다음부터 그 친구들은 필자를 「Rocky」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외국인과 교분을 맺다 보면, 우리말 이름은 그네 들에게는 발음조차 어렵고 기억도 잘 못하기 때문에 편리하고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외국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필자는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Rok)과 윤(Yoon), Rok+Yoon=Roky=Rocky라는 등식도 성립되는지라 「로키 윤」을 필자 영어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국제 스포츠계의 인맥을 형성하면서 소개할 때, 또 명함에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필자 본명을 전 세계 스포츠인들은 로키 윤”(Rocky Yoon)으로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한동안 외국으로부터 부재중인 필자를 찾는 국제전화가 걸려왔을 때, 「그런 사람 없다(There is no such person)」라고 KOC 직원들이 끊어버려 필자에게 중요한 연락을 해 왔을 때 곤란한 경우를 맞이한 적이 여러 번 있기도 했지만, 약간의 설명이 있은 후, KOC 내에서도 로키 윤이 드디어 유명(?)하게 되었다.

 

필자는 1982년 인도 뉴델리 아시아 경기대회 참가시절부터 유독 몽골 스포츠인들과 친하게 되었다.

 

징기스칸의 후예들이면서 우리 민족들과 얼굴모습이 너무 똑같은 그들, 우리가 어려서 몽골 반점이라고 하는 푸른 반점이 우리 모두의 엉덩이에 나타났다 사라졌기 때문인지 몰라도, 항상 그들을 돕는 마음으로 만남과 모임을 갖곤 했다.

 

그 당시 20여 년간 KOC 대표로서 올림픽대회를 포함한 각종 국제대회, 올림픽선수단장 회의,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Olympic Council of Asia) 총회 등 필자는 필사적으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한국과 아시아의 권익옹호를 위해 투쟁했고, 그 결과 여러 가지 면에서 명성도 날리고 본의 아니게 때로는 이익 상충(conflict of interest)면에서 약간의 악명(?)도 떨치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국제 스포츠계에 깊은 인상을 남긴 것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약간의 언쟁이 있었다 하더라도, 즉시 오해를 풀고 나면 더 끈끈한 친구가 되는 것이 국제 스포츠계 관행 중 하나의 장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스포츠를 사랑한다.

 

한국인들은 「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가 아픈 것은 못 참는다」라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가 회자된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임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국제 스포츠계에서, IOC 위원 등 지위 높은 인사들을 만날 때 항상 읊조리고 고개 숙이고 점잔을 빼고 겸손하게 처신하는 것이 그네들이 받아들이는 적절한 문화적 예의는 아닐 성싶다.

 

필자는 상대가 IOC 위원장이라 하더라도 기본적 예의 또는 매너만 지키면서 허물없이 친근하게 인사하고 전달할 메시지(Message)는 당당하고, 옹골차고, 차분하고, 확실하게 의사전달을 하면서, 유머도 함께 구사하는 편인데, 이러한 모습을 필자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시기심이 있는 한국인이 보게 되면, 건방지고, 나서기를 좋아하고, 가볍고, 진중하지 못하고 설치는 인간으로 둔갑해서 험담과 모함과 중상모략이 생성되곤 하여, 이제 필자는 한국인이 운집한 자리에선 되도록 외국 스포츠 인사들과 허심탄회하게 본연의 모습을 가능한 자제하게 되었다. 답답하고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몽골 스포츠계 인사들은 이러한 필자의 국제 스포츠계에서 발휘하는 실력과 거침없는 추진력, 성취도에 대해 상당한 공감과 찬사를 보냈었다.

 

그 결과로 필자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사무총장으로 파견 근무 후 KOC로의 복귀가 어렵게 되었다는 소식을 2003 9월 서울에서 개최된 OCA세미나에 참석 중이던 작드 수렌(Zagdsuren) 몽골 NOC 위원장과 오토간싸간(Otogansagan) 몽골 NOC 사무총장이 알고 나서 귀국 후 필자에게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몽골 NOC 집행위원회에서 논의 후 결정하였노라고 국제전화가 걸려왔으나 필자는 처음에는 반신반의(halfly doubt) 하였다.

 

(좌로부터 Magvan 몽골 IOC위원, 필자, Otogansagaan 몽골 NOC사무총장/우측 사진은 필자 첫 출판기념회<Press Center>에 참석한 Otogansagaan)

 

11월 초에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일정과 필자 몸 치수와 머리 둘레를 문의하는 공식 문서를 팩스(Fax)로 받고 나서야 실제상황(Real Situation)임을 직감하게 되었고 2003 1128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바가반디 몽골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몽골 올림픽위원회 연례총회 개회식 직후 거행된 몽골 올림픽 아카데미 명의의 명예박사학위 제1호를 수여 받는 영광을 누렸다.

 

 

(사진 상단 좌측: 바가반디 몽골대통령 및 후임 남바린 엥흐바야르(Nambaryn Enkhbayar)몽골 대통령과 함께 2007/울란바토르/하단 좌측: Magvan 몽골 IOC위원, 필자, Zagdsuren 몽골 NOC위원장, 문동욱 현 계명대 교수)

 


작드 수렌(Zagdsuren) 몽골 NOC 위원장은 필자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 배경에 대하여 그 당시까지 지난 21년간 10차례 올림픽대회 및 각종 국제회의 시 KOC 대표로서 스포츠외교실무를 전담해 활동해 왔으며, IOC는 물론 국제 스포츠계에서 조국인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 NOC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아시아대륙 발언권 강화 및 위상을 드높인 공적을 높이 평가받아 왔으며 많은 아시아지역 국가 NOC 관계자, 특히 몽골 NOC 위원장을 포함한 마그반(Magvan) 몽골 IOC 위원 등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몽골 NOC 집행위원회 및 총회에서 만장일치로(Unanimously) 필자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 건이 승인되었노라고 인사말에서 수여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가문의 영광」(Glory and Honor to my Family)이 아닐 수 없다.

 

이후, 2004 222-27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는 세계 각국 올림픽위원회 총 연합회(ANOC) 총회에 각국 당 2명만 허용되는 몽골 NOC 대표자격으로 참가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사상 유례 없는(Unprecedented) 일로서 외국인 자격으로 몽골 자국 NOC위원으로 위촉한다는 공식통보를 받게 되었다.

 

이 사실은 뉴스임이 틀림없다. 동아일보와 Korea Times지 등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신문에 크게 보도되고, 언론에 알려지자 IOC 위원들을 포함한 많은 국제 스포츠계 인사들의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Message)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국경 없는 올림픽 운동의 전파자」(Borderless Olympic Movements Partner)라는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영어방송인 아리랑 TV에서 30분짜리 대담프로 출연요청도 왔다.

 

2010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당시, 체코 프라하 개최 IOC 총회에서 IOC 위원 전체를 매료시킨 훌륭한 영어 설명회(Presentation)를 주도했던 안정현 아리랑 TV 앵커(Anchor) 30분간 막힘 없는 프로그램을 함께 공유하기도 했다. 몽골은 필자에겐 잊을 수 없는 은혜의 나라다.

 

2021421일 몽골 NOC사무총장으로부터 Zagdsuren 전임 몽골 NOC위원장의 소천 소식을 알려왔다. 몽골 NOC와 그의 가족에게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글을 작고한 몽골 올림픽 친구인 Zagdsuren 영전에 올린다. Rest in peace!

 

*칭기즈칸의 편지[김종래 님의 「밀레니엄맨」(해냄, 1998년간) 인용]

 

한국의 젊은이들아!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만 났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탓하지 말라.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 데

동원한 몽골 병사는 적들의 100분의 1, 200분의 1에 불과했다.

나는 배운 게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있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칸이 됐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