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어야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는다:
현대의 우리는 늘 시간에 쫓겨 살아 갑니다.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선 같은 것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특히 공동생활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시간은 성질이 다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심리적인 시간에 의해서 부추김을 당합니다.
물리적인 시간과는 상관없이 혼자 가만히 있는데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심리적인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심리적인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타의적이고 외부적인 것입니다.
심리적인 시간은 자주적입니다.
흔히 '인간성이 소멸되어 간다. 인간의 감성이 사라져 간다.'라고 말하는데,
자연과의 교감이 단절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감성이 녹슬고, 인간성이 메말라 갑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미라가 됩니다.
이 이야기는 초기 아프리카를 탐험한 유럽인들이 겪은 경험담입니다.
회교 신비주의 수도자들인 수피의 우화에도 실려 있습니다.
한 탐험가가 밀림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는 짐을 운반해 줄 세 사람의 원주민을 고용했습니다.
많은 짐을 가지고 가야 하고 길 안내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흘 동안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서들러서 밀림을 뚫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합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짐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서 더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잘 가다가 갑자기 짐꾼들이 움직이려고 하지 않자 탐험가는 매우 화를 냅니다.
서양 사람들이 미개인들한테 곧잘 그러듯이 화를 냅니다.
실제로는 미개인이 아니라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원주민입니다.
탐험가는 화를 내면서 예정된 날짜와 시간까지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어서가지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짐꾼들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윽박지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그들은 전혀 요지부동입니다.
그래서 탐험가는 그들 중 한 사람은 붙들고 잘 가다가 주저앉아서 가지 않는 이유를 말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원주민이 대답합니다.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너무 빨리 왔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만 합니다."
사흘 동안 쫓기듯 쉼 없이 왔기 때문에 몸과 영혼이 분리된 것입니다.
영혼이 자신들을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탐험가가 이끄는 대로 허둥대며 쫓기듯 길을 헤쳐 오느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신 없이 쫓겨 왔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성만 내세우다 영혼을 상실한 현대안들의 모습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거나 몹시 서두룰 때 또는 재촉을 당할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급하게 움직일 때 우리는 안정을 잃고 정서가 불안정해집니다.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제한속도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야 할 구간을 140킬로나 150킬로로 달리면 연료만 많이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가 불안해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서 들뜨게 되고 피로가 가중됩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사고를일으키지 않습니까?
속도란 그런 것입니다.
속도의 효율성은 매우 냉혹하고 비인간적입니다.
어떤 직장이든 마감 시간이 있습니다.
이 마감 시간이라는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고 감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하면서 행동할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한데 계속 쫓기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뻗어 나갑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표현대로 모든 일에 영혼이 따르지 않으면 불행해집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 갑니다.
불행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 같이 바라는 행복은 온갖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데서 움이 틉니다.
복잡한 생각, 미운 생각, 고운 생각 다 부려 놓고 그저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서 행복의 싹이 틉니다.
진정한 행복은 이다음에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법정 스님 법문집 2 /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중에서)
현대의 우리는 늘 시간에 쫓겨 살아 갑니다.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선 같은 것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특히 공동생활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시간은 성질이 다릅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심리적인 시간에 의해서 부추김을 당합니다.
물리적인 시간과는 상관없이 혼자 가만히 있는데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1924년 제1회 샤모니-몽블랑 동계올림픽 포스터)
이것은 심리적인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심리적인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타의적이고 외부적인 것입니다.
심리적인 시간은 자주적입니다.
흔히 '인간성이 소멸되어 간다. 인간의 감성이 사라져 간다.'라고 말하는데,
자연과의 교감이 단절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감성이 녹슬고, 인간성이 메말라 갑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미라가 됩니다.
이 이야기는 초기 아프리카를 탐험한 유럽인들이 겪은 경험담입니다.
회교 신비주의 수도자들인 수피의 우화에도 실려 있습니다.
한 탐험가가 밀림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는 짐을 운반해 줄 세 사람의 원주민을 고용했습니다.
많은 짐을 가지고 가야 하고 길 안내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흘 동안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서들러서 밀림을 뚫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만 합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짐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서 더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잘 가다가 갑자기 짐꾼들이 움직이려고 하지 않자 탐험가는 매우 화를 냅니다.
서양 사람들이 미개인들한테 곧잘 그러듯이 화를 냅니다.
실제로는 미개인이 아니라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원주민입니다.
탐험가는 화를 내면서 예정된 날짜와 시간까지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어서가지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짐꾼들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윽박지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그들은 전혀 요지부동입니다.
그래서 탐험가는 그들 중 한 사람은 붙들고 잘 가다가 주저앉아서 가지 않는 이유를 말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원주민이 대답합니다.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도 않고 너무 빨리 왔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만 합니다."
사흘 동안 쫓기듯 쉼 없이 왔기 때문에 몸과 영혼이 분리된 것입니다.
영혼이 자신들을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탐험가가 이끄는 대로 허둥대며 쫓기듯 길을 헤쳐 오느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신 없이 쫓겨 왔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성만 내세우다 영혼을 상실한 현대안들의 모습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거나 몹시 서두룰 때 또는 재촉을 당할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급하게 움직일 때 우리는 안정을 잃고 정서가 불안정해집니다.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제한속도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야 할 구간을 140킬로나 150킬로로 달리면 연료만 많이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가 불안해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서 들뜨게 되고 피로가 가중됩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사고를일으키지 않습니까?
속도란 그런 것입니다.
속도의 효율성은 매우 냉혹하고 비인간적입니다.
어떤 직장이든 마감 시간이 있습니다.
이 마감 시간이라는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고 감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하면서 행동할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한데 계속 쫓기다 보면 엉뚱한 곳으로 뻗어 나갑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표현대로 모든 일에 영혼이 따르지 않으면 불행해집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 갑니다.
불행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 같이 바라는 행복은 온갖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데서 움이 틉니다.
복잡한 생각, 미운 생각, 고운 생각 다 부려 놓고 그저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서 행복의 싹이 틉니다.
진정한 행복은 이다음에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법정 스님 법문집 2 / "한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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