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9. 10. 1. 11:53

[우리들교회 2019 929일 주일말씀요약(사도행전 3:1~10/ 성령의 기적)]

 



<Prologue>


성령 충만하여 방언이 터지니 성령의 설교가 이어지고 유대인이 반응해서 성령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니 오늘 기적이 나타난다.

성령공동체에서는 방언의 역사와 신유의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들교회가 말씀만 보고 있어도 암도 회복되고 가정도 회복되며 살아나는 역사, 살리는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목장에서 하는 일은 교제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살려야 하고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사람들이 살아나니까 말씀대로 살고 싶어 지는 것이다.

육신의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은 내 마음이 변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변하는 기적을 주면서 말씀 공부를 시켜가는 것이 성령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병만 고치면 뭐 하겠나? 잠시 후에 죽을 인생 아닌가?

변화된 이후에 주일, 수요, 목장 오면서 말씀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수요 오전예배에 이 본당을 꽉 채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기적의 역사는 늘 일어난다.

오늘은 문자 그대로 못 걷는 자가 걷게 되었다.

그래서 성령의 기적에 대해 좀 더 살펴 보겠다.

 

<말씀 요약>


*
성령의 기적은,


1.
여전한 방식의 기도다. (1)


날마다 구원 받은 사람을 더하게 하시고, 온 백상에게 칭송을 받을 때 베드로가 성전에 기도하러 갔다.

이렇게 칭찬 받을 때와 구원 받은 사람을 더하게 하실 때가 위기이고 기도가 필요한 때이다.

사도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공동체에는 기도로 연결이 되고 있다.

베드로가 그렇게도 피곤해서 졸더니 이제 기도의 의미를 깨달았다.

9시는 오후 3시이다.

유대인의 관습으로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데 오전 6시 저녁 6시에는 기도를 해도 오후 3시까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것은 힘든 시간이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니 충만해져서 설렘이 가득해지니 기도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기도라는 말이 32번이나 나오는데 그래서 기도행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진실한 기도를 하니까 기적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2장에서 방언이 나오고 방언이 기사와 베드로의 설교가 이어지고 초대교회에 3천명이 더해져 세례 받는 부흥으로 이어졌다면 3장도 이 기적과 베드로의 설교와 부흥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패턴으로 가고 있다.

기적은 중요하다기 보다 주목시켜서 복음을 전하게 하고자 하는 도구게 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삶과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주요 세 제자들 중의 두 사람이었다.

부름 받기 전에도 직업이 같은 동업자였다.

그리고 성전에 올라갈 새는 한 번 올라갔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올라갔다는 헬라어에서 미완료 과거라고 한다

미완료 과거는 계속되었다는 뜻이고 부정과거는 단회적(單會的)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알아두는 것이 좋겠다

초대교인들은 아마도 유대교 예배와 자신들의 예배 등 두 번의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유대인의 관습을 좇아서 기도시간을 지켰다는 것이 적용이기도 했을 것이다.

9
시 기도시간은 후에 바울 시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유대교와 기독교는 지금까지 안 통하고 있다.

기독교 중에서도 천주교와 개신교. 개신교 중에서도 수없이 교파가 갈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날도 여전하게 올라가다가 기적을 일으키게 하셨다.

저도 남편이 하루아침에 간 그날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기도하게 하시니 그 자체가 기적이 되게 하셨다.

담대하게 풀어가게 하셨다.


[
적용]

-
여러분의 기도시간은 어떠신가? 무시로 하나? 정해놓고 하나?

-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내 목소리 톤이 내 감정에 좌우되지 않도록 기도하나?


(2-3
)

나면서 목 걷게 된’ (
crippled from birth)이란 것은 일생 걸어본 적이 없다는 표현인데 40년간 굳어진 그의 뼈가 도저히 펴질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메고 오니 운반 당하는 인생이다.

성전 문에 두고 구걸하는 일이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행해지던 일이었다. 한마디로 구걸이 직업이었다.

미문(gate called Beautiful) - 아름다운 문이라는 뜻으로 헤롯이 다시 성전을 지으며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문을 매우 크고 아름답게 지었다. 그때부터 미문이라 했다.

성소도 보면 여인의 뜰은 가장 바깥 쪽에 있다.

영적으로 생각해보면 거룩한 성전 앞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급급한 체로 얼마간 물질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성전은 구걸을 하려니 성전을 등 뒤로 하고 앉았을 것이다.

성전을 뒤로 둔 채 세상을 향해서 사람들을 쳐다보며 시선을 다 뺏기고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 앉아있다.

겉으로는 교회에 오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끊임없이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구걸하는 모습이다.

쨍그랑 소리를 들으며 몇 푼 쥐어주어서 인생이 구걸의 인생으로 끝나게 하는 그런 삶이다.

나는 못해!’ 하면서 손발이 다 묶여져 있다.

곳곳에서 도움이 오면 좋아하고 도움이 안 오면 상처 받고 한다.

상처 받는 환경이 다 갖추어져 있다. 니들이 그럴 수가 있냐고 하면서

교회에는 몸만 오니 영적으로는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고 화려한 교회에 기생하면서 사탄에게 구걸하는 사람이다.

날마다로 표현되면서 구걸이 습관화 되어서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이 마비된 상태이다.

날마다 교회에 오지만 장사하려 오든지 교제하려 오든지 하는 것이다

느그들이 내 상처를 알아?’가 주제가이다.

그때마다 짤랑짤랑 돈을 던져주는 것이다.

세상에 요구하는 것도 구걸이고 세상을 끊지 못하는 것도 구걸이다.

모든 중독도 세상에 대해 구걸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영적 앉은뱅이의 모습이다.

부부니깐, 부모니깐, 자식이니깐 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주어야 한다며 달라고 하는 모든 것이 구걸이다.

나면서 앉은뱅이가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하면 그 분 또한 심각한 영적 앉은뱅이이다. 이런 것을 THINK를 해봐야 한다. 나에게 주는 음성이 무엇일까를...

목자 한 분이 청소를 하시는데 가장 힘든 것이 '최씨'라고 불리는 것이다. 잘 참다가 화가 나서 속으로 병신같은 xx라 했다. 목장에서 최씨라고

목장과 목사님의 죽어지내라는 처방에 힘이 되었다고 한다.

세상을 완전히 끊어내기가 힘들지만 목장이 있어서 이런 처방을 듣는 것이 기적이다.


[
적용]

-
내 자신이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
교회는 가는데 교회는 뒤로하고 날마다 세상에 구걸하는 것은 무엇인지?

-
내가 교회에 와준다고 으스대지는 않나?



2.
급한 일보다 중요한 구원의 일이다.


(4-5
)

이런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가다가 봤다. 주목했다.

베드로와 요한의 깊은 애정과 관심은 사람들의 무관심에 젖어온 이 앉은뱅이에게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관심이 먼저이다.

앉은뱅이의 노예근성은 늘 육적으로 무엇을 얻을까?’하며 돈만 쳐다보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도 비트코인이나 주식시세만 쳐다 본다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구걸만 하는데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고 그러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 주일 성수하면서 돈이 잘 벌릴까?’ 하는 생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교회를 다니면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나.

40년을 다녀도 성경은 하나도 모르고 무엇을 얻을까?’만 생각하는 것이 앉은뱅이와 같은 우리의 모습이다.

얻을까?’만 생각하니 설교가 안 들린다.

교회에 와도 유치부만 왔다가 설교를 안 듣고 가는 부모도 있다.

미문 앞에 앉아서 계속 성전 오고 가는 사람만 보고 있다. 예배에는 통 관심이 없다

이타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40년이라도 교회에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베드로를 만났다.

자기가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그 모습 그대로 베드로가 와서 만나주었다.

묘한 성령의 기운이 있는 곳이 교회다

우리도 식구들을 오기만 하라고 하세요.


[
적용]

-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인가?  타인인가?

 
오늘 베드로를 보면 9시 기도시간에 가다가 도와야 할 일이 생겼다.

 

(적용) 기도하고 돕는 일 중에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까?


어떤 날은 기도를 해야 하고 어떤 날은 도와야 하고 때마다 다르다.

구원을 위해 중요한 일이 있다.

적용이 참 어렵다. 자기의 믿음의 분량대로 할 수 밖에 없다.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

기도시간에 임박해서 가는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보고 멈추어 섰다. 성령님이 역사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네들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아니고 기도는 다른 사람들도 하는 것이고, 유대인의 강박관념은 9시 기도시간은 지켜야만 한다. 복을 받아야 하니까.

강박관념은 기복에서 나오는 것이다

율법이 이 세상 복으로 오는 것에 강박이 있어서 율법을 안 지키는 예수님을 정죄했다.

(
적용)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나에게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영혼 구원 때문에 걸어가는 인생이기에 영혼 구원이 가장 중요하며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때는 도와주는 것을 먼저 선택했다.

베드로와 요한의 태도는 나는 무엇을 어떻게 섬길까? 내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일까? 인데 섬기기로 작정하면 쉽다.

시간과 공간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
적용]

-
여러분은 기도하겠나? 구걸하는 자를 돕겠나?

-
구원의 시각으로 급한 일을 하겠나? 중요한 일을 하겠나?



3.
내게 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6-7
)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적선을 베풀 생각은 안하고 불구의 몸인 그를 향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한다.

무엇을 하고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베드로는 은 금이 없어도 끊임없이 줄 것만 있는 것(
"Silver or gold I do not have, but what I have I give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alk.")을 보여준다.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실제로 졸면서 오다 보니 성령이 임해서 어느 날 말씀이 꽂힌다.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일어났다.

유대교의 은 금이라는 표현처럼 사치스러운 미문처럼 껍데기만 남아서 능력을 상실하여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태임을 유대교는 보여준다.

은 금이 없다고 하면서 베드로가 자기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이 형제 지체에게 은금을 준 것이 아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선포하자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이 힘을 얻었다.

나사렛이라고 지명을 붙인 것은 나사렛이 사람들에게 천시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 곳이 영광된 이름이 되었다.

그 예수님의 간증부터 나사렛 동네에서 살면서 목수의 아들로 간증이다.

갈릴리 출신 어부인 베드로도 자신의 간증까지 하게 하신다.

우리 인생이 모두 나사렛 출신이다. 예수님 앞에서 명함을 내밀 수 없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간증이 다 포함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죽음 가운데에서 살리시는 이름이다

걸으라고 말만하지 않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며 발과 발목이 힘을 얻도록 같이 있어주며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그에게 몇 푼을 돈을 주는 대신 그의 다리를 완전히 치유해서 걷게 하심으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영육간에 자립을 허락하셨다.

복음으로 힘을 얻도록 일어나도록 잡아주고 돈으로 며칠 연명하게 하는 것 대신 걷게

함으로 일어나서 자립하도록 하는 것이 자립신앙이다.

복음은 이런 위력을 갖는다.

어떤 비천한 환경에 처해 있어도일어나 걸으라!’ 고 하신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오해도 받아야 하고 기다려야 할 일이 있다.

모든 치료도 마찬가지이다.

나사렛 예수 이름을 주는 것이 40년 앉은뱅이를 살리는 방법이다.

40년 앉은뱅이로 살아야 이 사람은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40년 앉은뱅이의 대단한 고통에서 주어지는 고난이 약재료로 쓰인다

40
년이 길어 보여도 생각컨대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잠깐이고 장차 이루어질 영광은 비교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냉정하게 생각되는 세월이지만 40년은 잠깐이다.

육적 앉은뱅이는 40년 만에 예수님을 만나지만 영적 앉은뱅이는 50년이 지나도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자녀의 자립심을 위해 기다려야 할 일이 많이 있다. 돈도 끊어야 하고 냉정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영적인 앉은뱅이는 정말 일어나기가 어렵다.

데려오다 보면 주님이 먼저 찾아주시고 베드로가 만나준다.

믿음이 있어서기 보다 어느 날 나사렛 예수의 이름과 오른 손 잡아 일으켜 주니 일어나는 날이 온다.

발과 발목이 힘을 얻으니 스프링처럼 뛰어서 걷게 되었다.

발과 발목 때문에 온몸이 병들 수가 있는 것이다.

그곳을 치료해야 하는데 40년간 어디를 치료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육적 소경보다 영적 소경이 무섭다.


[
적용]

-
여러분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시겠나? 은과 금의 힘으로 걸으시겠나?


4.
찬송의 기적이다.


(8-10
)

이 사람이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하나님을 찬송했다(praising God)는 것이다.

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찬송했다.

성령의 기적 중에 하나님 찬송이 가장 큰 기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가 큰 상급이기 때문이다.

참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까지 전인격적인 모든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직 이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 그러니 낫는 것부터 감사하면 안 된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가 일어난 것만 감사하면 하나님이 그 다음 진도를 안 빼신다.

하나님이 다 해주셔서 가정이 합쳐지고 문제가 해결이 되어도 교회에 안 나오면 말짱 도루묵이다

하나님을 찬송해야 제대로 된 감사가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보니 내가 앉은뱅이였기 때문에 주님을 만났구나하면서 앉은뱅이였던 것에 감사하고 날 성전 미문에 운반해준 사람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또한 믿게 되도록 도와준 사건과 사람들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찬송 안 되면 육적인 것에 머물러 불평을 한다.


낫는 것만 감사하면 근원적인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진정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에 대한 찬송과 모든 일상생활에 대한 감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드디어 성전에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갔다.

앉은뱅이가 하나님을 먼저 찬송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돈 받으면서 상처 받던 앉은뱅이가 걷고 뛰는 것보다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주동사이다

걷고 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부부가 서로 합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부가 성전에 함께 들어가는 것, 즉 예배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성전에 부부가 함께 들어가 예배 보는 것이 기적이다

교회는 세상에 은 금을 공급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구제 동아리가 아니다

예배대신 구제가 중심이 되면 내 의가 하늘을 찌르게 된다

교회는 참된 예배(worship)를 드리는 예배와 생명공동체이다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 교회의 최종적 목적이다

힘들면 교회 오는 것이 설레고 편해지면 습관적으로 나오는 것이 매너리즘이다

복음 선포가 와야 내 현재 이유를 알게 된다.

내 현재의 이유를 모르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다.

이 사람이 나면서 앉은뱅이라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못하는데 일어나서 걸으니 구걸을 못하게 되었다.

구걸이라는 직업이 없어졌다.

일어나서 감당해야 할 엄청난 훈련이 남아 있는 것이다.

좀 노력하다가 툭 떨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나 구걸할래'가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했어도 모든 것을 오픈하고 12번째 사도로 마티아/맛디아(Matthias)를 뽑으니 엄청난 기적이 일어났다.

여러분이 앉은뱅이라면 일어나기를 바라고, 베드로라면 앉은뱅이를 살리시기를 바란다.

의사도 힘들어하는 분들을 목자가 살려내고 있다.


<Epilogue>

성령의 기적은 여전한 방식의 기도이다.

급한 일보다 중요한 구원의 일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찬송의 기적이다.

하나님만 믿고 모든 것을 시작하고 하나님만 찬송하고 가면 앉은뱅이 살리는 능력이 생긴다

성령기적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목장처방은 성령님이 도와 주시는 가운데 내려지는 것이다

공동체기도를 통해 자기의 약재료를 내 놓으니까 금과 은이 없어도 얘기 나눔으로 기적이 창출되는 것이다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