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

우리들교회 2021년 10월24일 주일예배말씀요약(사도행전 19: 32~ 41/ 성령의 진정)

윤강로 2021. 10. 28. 09:33

[우리들교회 20211024일 주일예배말씀요약(사도행전 19: 32~ 41/ 성령의 진정)]

 

 

<사도행전 19:32~41>

 

32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The assembly was in confusion: Some were shouting one thing, some another. Most of the people did not even know why they were there)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The Jews pushed Alexander to the front, and some of the crowd shouted instructions to him. He motioned for silence in order to make a defense before the people)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But when they realized he was a Jew, they all shouted in unison for about two hours: "Great is Artemis of the Ephesians!)
35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The city clerk quieted the crowd and said: "Men of Ephesus, doesn't all the world know that the city of Ephesus is the guardian of the temple of the great Artemis and of her image, which fell from heaven?)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Therefore, since these facts are undeniable, you ought to be quiet and not do anything rash)
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You have brought these men here, though they have neither robbed temples nor blasphemed our goddess)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If, then, Demetrius and his fellow craftsmen have a grievance against anybody, the courts are open and there are proconsuls. They can press charges)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If there is anything further you want to bring up, it must be settled in a legal assembly)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As it is, we are in danger of being charged with rioting because of today's events. In that case we would not be able to account for this commotion, since there is no reason for it)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After he had said this, he dismissed the assembly)

 

<Prologue>

 

소동이 정말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소동을 나눈 것 자체가 우리 수준에 맞게 성령께서 소동을 진정시켜 주셔서 진정이 되지 않으셨나요? 나누는 걸로 진정이 되셨죠? 오늘 성령의 진정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말씀 요약>

 

1.   무리의 분란 때문에 필요합니다. (32)

 

당시 에베소(Ephesus)의 야외 연극장은 24,000~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장 큰 극장이었어요.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이 대소사를 결정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로 쓰였습니다. 데메드리오(Demetrius)의 선동을 듣고 바울을 따르는 세력에게 에베소의 우상 아데미(Artems)i가 무시당했다고 여긴 시민들이 분노하여 바울의 동료 가이오와 아르시다고를 붙잡아 처벌하고자 연극장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성경이 참 이상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데메드리오의 연설로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하며 모인 이유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극장에 모인 무리를 원어를 보면 에클레시아라고 불러요. 원래 이 단어는 특정 목적으로 모인 군중을 가리킵니다. 특히 나랏일을 시민들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모인 민회를 가리켰어요. 그런데 신약에서 교회를 표현할 때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예외로 에클레시아의 원래 뜻이 시민의 무리, 군중으로 쓰였습니다.

 

근데 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화합과 일치가 교회의 중요한 특징인데 이 화려한 에베소 극장에 모인 사람에게는 화합과 일치가 없습니다. ‘에클레시아인 교회같이 모였지만 군중은 하나가 되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당시 연극 장은 연극 공연뿐만 아니라 연설이나 강연회도 열렸죠. 그런데 오늘 31절에 연극 장에 모였다고 그랬어요. 참 인생은 연극 같지 않습니까? 맡겨진 역할을 하면서 살겠죠? 누구는 생업을 위해 시간을 쓰다가 가겠죠? 모두 남의 인생을 살다가 막이 내리면 허무하게 끝이 나는 것이죠.

 

지난 주에 쇼팽 국제 콩쿠르가 있었어요. 전 세계에서 500명이 지원하고 한국참가자가 결선에 올라간 12명 중에 들어갔어요. 근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연주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인생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붙어도 떨어져도 허무할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이 끝날 때까지도 가짜를 살았다면 결론도 없이 막이 내릴 것입니다.

 

믿음 없이 공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건 연극 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최고가 되면 공인인 거예요. 최고가 될 이유가 결국은 거기 끝에도 돈이 있지 않겠어요? 결국 누려야하겠다는 생각이 왜 안들겠어요? 잠깐인 인생의 연극 무대에서 있으면 있어서 없으면 없어서 죽어라 하고 자기 필요를 외칩니다.

 

그래서 에베소 군중의 특징은 한마디로 분란입니다. 서로 다른 여러 소리가 마구 섞여서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없는 어지러운 소동을 말합니다. 바벨탑의 혼란과 분란이죠. 아무리 좋은 장소에 품격 있는 이름으로 모여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으면 분란만 일어납니다. 결국 자기가 왜 모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성경적인 가치관이 없으면 또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자기 소견이라는 것이 100% 죄인인 인간이 어찌 선한 것이 있겠어요? 죄의 바로미터가 바로 자기 소견인 거예요 그러니 어디나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 이예요.

 

바울은 청년 시절에 자기 옳은 소견대로 그리스도인들을 진멸했어요. 그게 자기 소견 이잖아요.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안 뒤에는 모든 것이 배설물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만난 바울과 에베소 성도들은 달라졌죠. 에베소에서 하나님 나라의 증인 된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죠? 연극배우가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고난을 당해도 내가 왜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하여 걸어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증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모르면 연극무대를 떠들며 외치다가 그렇게 속절없이 이 땅에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하며 막이 내릴 것입니다. 바울은 군중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하니 한 사람, 두 사람이 하나님 나라로 입성합니다. 이 많은 가운데 이 소수의 사람이 바울을 돕고 일꾼이 되어 결국 2,000년 동안 이렇게 인류를 변화시킵니다. 내가 한 사람 오늘 전하는 그 사람이 인류를 변화시킬 사람 이예요.

 

 

(적용#1)

 

– 여러분은 연극무대에서 막이 내려도 갈 곳이 없는 가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갈 곳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까? 어떻게 막이 내리나요?  

 

 

2.   군중 심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33~34)

 

그렇게 떠들고 있는데 무리 중에 ‘아데미를 모욕하는 사람들이 유대인이다.’ 지적하는 소리가 있었어요. 그러니 위협을 느꼈겠죠? 몇 해 전 로마에서 쫓겨난 일이 반복될까 봐 두려웠을 것 이예요. 에베소인들은 유대교나 기독교나 똑같이 봐요. 유대교 분파로 나온 마이너 종교로 보는 거 예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유대인과 기독교인들과 다르다고 알리려 했어요. 그래서 자기 중에 말 잘하는 대표 알렉산더를 앞에 세워 변명을 하려 합니다.

 

그런데 아데미 여신과 우상에 대하여는 유대교도 같은 의견을 가져야 하는데 자기네 믿는 종교가 여호와 유일신인데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바울과 일행을 다른 부류로 취급하려는 태도는 비겁하고 기회주의 아닙니까? 그런데 에베소 군중은 알렉산더의 말을 들으려고도 안했어요. 오히려 알렉산더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자 마자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외칩니다. 무려 2시간이나 외칩니다.

 

그러니까 에베소 군중이나 그 안에서 유대인 군중이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니까 똑같이 미움과 두려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해요. 유대인 군중은 동족인 바울을 미워하고, 에베소 시민은 두려워합니다. 에베소 군중은 유대인을 미워하고 아데미는 두려워합니다.

 

거기 모인 개인들은 생각, 태도, 이권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소리를 내는데, 군중으로 모여 하나가 되니까 각자 고유한 판단이 마비되고 알 수 없는 군중의 기운에 휩쓸려 누구를 죽이려 하고 누구를 무조건 위하는 맹목적인 호흡으로만 표출합니다. 그래서 이유없이 미워하고 이유없이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입니다.

 

군중의 태도나 감정, 판단이 잘못되기가 너무 쉽습니다. 개인보다 군중이 훨씬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죠. 잘못된 일이라도 잘했다고 우기고,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하면 대중은 결국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이 오래가질 않아요. 잠깐 지나서 새로운 자극이 생기면 금새 옮겨갑니다.

 

사람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 사람의 모임인 군중은 그보다 훨씬 더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떤 무리 든 요란과 분란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딪힙니다. 하나님 없이 죄인들만 모이니 분란으로 끝납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늘 네 편 내편 갈라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이 군중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진정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진정시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개인이든 무리 든 이 분란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나는 또 우리 군중은 분란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내 인생이 분란으로 끝날 뻔한 인생 임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여친, 남친의 말을 듣고 결혼했다가 분란이 생기면 다 죽으려고 해요. 한마디에 다 이혼을 하고, 그래서 믿음의 결혼을 해야 하는 것 이예요

 

우리는 서로 믿고 한 것이 아니라 찌질한 것 다 드러내고 하나님을 믿고 결혼했기에 사람이 아니라 벌레라는 다윗의 고백이 믿어지죠. 그래서 결혼 이후에 어떤 상황에도 놀라지 않고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혼을 할 수 없는 것 이예요. 이게 주 안에서 내가 벌레라는 것을 아니까.

 

지금 여러분 인생에 분란이 생겼다면 이것은 성령께서 ‘내가 여기 있다. 나를 찾아라. 의지해라!’ 여러분을 부르시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해요. 분란은 성령의 진정이 있다는 사인 이예요. 주님 없이는 영원한 분란 중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내 실체를 인정하고 늘 성령의 진정을 바라고 기대해야 합니다.

 

이 시대를 가리켜 민주주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이 시대에 절대적인 원칙이나 진리는 다수의 여론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결정하는 것이 보통 이예요 그러나 다수결이 항상 맞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공산주의, 민주주의, 하나님 없으면 다 똑같아요. 그래서 경계해야 합니다.

 

(적용#2)

 

– 지금 내가 외치는 소리가 군중 심리에 현혹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군중 심리에 현혹되어 지금 외치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예를 들면 지역 감정, 진영 논리, 주식, 입시, 경제 등 한 마디만 하면 못 들어주는 말이 있나요?

 

 

3.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35~41)

 

2시간이 넘게 지속되자 민회를 책임지는 서기장이 나서서 모인 무리를 진정 시킵니다. ‘진정 시키다’의 헬라어 단어는 제자리를 떠나 무질서하게 마구 튀어 오르는 것을 잡아서 다시 잘 넣어둔다는 뜻인데요. 잃어버린 질서를 회복시킨다는 뜻이 담겨 있어요.

 

36절에 가만히 있어서도진정이 되어서라는 말 이예요. 그러니까 진정은 질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금 얘기하는 것 이예요. 우리가 역할, 질서, 이게 소동을 막는 제일 큰 비결인 것 이예요. 당시 로마 민회 같은 지방 민주주의 요소를 줄이고 황제 권한을 강화하는 정책을 썼기에 이 민회가 일으키는 소란을 가만 놔둘 리 없죠. 따라서 시 정부와 로마 정부 사이를 오가는 서기장은 자기 모든 것을 걸고 연극 장에 모인 무리를 진정시켜야만 했습니다. 연극 장을 혼란으로 빠뜨렸던 무리의 외침이 서기장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수그러들었어요.

 

서기장이 시민들에게 한 연설 내용은 크게 둘인데요. 첫째는 에베소 시민들이 아데미(Artemis)의 신전지기(guardian of the temple)라는 것을 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예요. 너희들이 말하지 않아도 이거는 함경북도 ~ 제주도까지 다 안다, 그러니까 지금 아데미를 높이는 것 이예요. 그러니까 좀 진정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

 

둘째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대표하는 사람들 즉, 두란노 서원에 날마다 모이는 사람들을 향해 시민들이 흥분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데, 이 팩트 체크에 들어가니까 신전이나 아데미 여신에 대해서 그들이 직접적으로 저지른 잘못이 없다는 것 이예요. 거기는 아데미한테 바치는 보물이 많아서 도둑들이 말도 못하게 많았어요. 워낙 들어오는 것이 많으니까, 그런데 그들이 도둑질도 안 했고 그들 때문에 온 도시가 분란을 일으킬 게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고린도에서 갈리오 총독이 바울을 잡아넣었을 때, 바울에게 부정한 일, 불량한 행동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이렇게 거짓말 하고, 도적질을 하면 안되는 거예요. 복음을 전한다는 이런 미명의 그런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어요.

 

근데 바울과 일행은 그런 일을 행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갈리오도 바울에게 무죄판결을 줬는데 데메드리오(Demetrius)가 대표하는 직공 조합이 피해 보상을 청구하려면 정식으로 민회의 고발 절차를 밟으라는 권고 이고요. 무리의 민회가 행정적인 시의회의 안건으로 등록하라는 것 이예요

 

당시 로마 제국은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시의회를 소집할 권리와 자유를 주었어요. 근데 이러한 배려에도 불법적인 집회를 가질 경우 처벌이 아주 엄격했어요. 그런데 서기장은 이 모임을 소요 사건이자 불법 집회라고 규정 했잖아요. 그리고 이 모임은 흩어져야 할 모임이라고 정의 내렸어요. 교회도 이 불법적으로 하지 말고 소동이 나도 성령의 소동이 되며 성령의 진정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해야하는데 우리가 이제 말씀이 왕 노릇을 못하면 교회도 자기 소견이 옳으니까 불법적으로 행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써서 암시했다고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진정한 에클레이시아는 화합과 일치가 있어야 하는데, 옳다고 하니까. 인권이 왕 노릇하면 다 맞는 얘기 잖아요? 그러니까 구속, 구원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날마다 싸울 일 밖에 없어요. 구원의 관점이 아니면 자기 의견이 옳잖아요? 내가 너무 의롭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화합과 일치인데요. 우리는 서기장이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점은 그가 연극 장에서 일어난 분란을 진정시켰다는 거예요.

 

잠언 16 4절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그냥 쓰임 받았어요. 바벨론 포로를 풀어준 바사의 고레스 왕처럼. 그러니까 이 세팅은 여호와께서 이걸 지으셨다고 그랬으니까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하나님의 섭리인 거죠.

 

선동 당한 군중 심리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우리도 사회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고, 현재 진행형 이잖아요. 정말 선동 당한 군중을 막는 일은 불가능해요. 그런데 보세요. 데메드리오는 선동만 해놓고 사라졌어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습니다. 이게 선동 꾼의 실체 예요. 교묘한 말로 무리를 선동해서 큰 분란만 일으켜 놓고 책임 소재가 생긴다 싶으면 자취를 감춥니다.

 

선동 꾼은 절대 자기 말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으면 안돼요. 남은 것은 선동된 무리인데 이들은 잠시 뒤의 일을 모르고 지금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아요. 알렉산더가 나서려고 했는데 알렉산더 정도로 절대 제압할 수 없어요. 그런데 민회의 책임자의 서기장의 말은 아무리 성난 군중이라도 끝까지 무시할 수 없어요. 서기장은 로마 정부의 권세를 대표 하잖아요. 그러니까 소동하는 것 같아도 뒤에는 다 이해타산이 있어요.

 

데메드리오도 완전히 노동자를 대표해서 은세공업자로 얘기를 하니까 이 사람들이 이해타산 때문에 다 부화뇌동 했는데 그 다음에는 막을 사람이 로마 대표, 그 사람은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하냐구요? 두 사람도 필요 없어요. 두려움 때문이지만 무리가 서기장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소동이 진정되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자기 목소리만 외치는 것이 소동이라면 외침을 멈추고 다른 사람 말을 듣는 것이 진정입니다. 소동을 하는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아요. 일단은 들으려고 하는 우리가 목장에서 듣는 훈련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듣는 거예요.

 

세상의 권세가 두려워 세상의 말을 들으면 세상의 진정으로 끝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성령의 진정이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큐티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우리가 매일 소동할 사건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건이 없어도 우리 마음 자체가 늘 죄의 파동으로 소동을 일으키기에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습니다. 이 소동을 가라앉히기 위해 사람, , 담배, , 권력을 찾고 무엇이든 진정 시켜줄 것 같은 것을 찾아 늘 헤매고 방황하는 것이 하나님 떠난 인생의 모습 이예요.

 

그런데 그것을 찾는 과정이 얼마나 소동을 일으킵니까? 성령의 진정을 위해서 찾아가는 과정이 또 소동 이예요. 여러분들이 뭔가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움켜쥐었을 때, 그것들이 일으키는 소동은 또 얼마나 큽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내 실체가 보이고 내 죄가 드러나고 회개가 되고 그렇게 주님을 만납니다. 해석 없이 해결만 찾아 소동하던 마음이 드디어 말씀으로 해석되어 진정됩니다. 문제가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진정한 성령의 진정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인본적인 고정관념으로는 소동이 너무 싫고 진정이 너무 좋아요. 그러나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고요. 소동이 있어야 내 실체를 감추고 있던 포장이 벗겨져서 나를 볼 수 있게 돼요. 회개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진정이 되었다고 마냥 좋아서 안주해서는 안되고요. 다시 생기는 소동을 있어야 할 일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성령의 진정인 것 이예요.

 

바울을 보면 소동은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있어야 정상 이예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소동이 없다는 건은 내가 죽었다는 뜻 이예요.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고 소동도 진정도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과 거룩을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동을 소동으로 여겨야 하는데 소동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됐어, 뭐 다 되겠지 뭐’ 소동을 소동으로 여겨야 해요. 그러면 진정도 성령의 진정이 되지 않아요. 소동이 진정되지 않는 것은 듣고 싶은 얘기만 듣기 때문 이예요. 이러니 대단한 소동이 왔는데도 이걸로 주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하는 거예요. 진짜 목장에서 이런 얘기를 잘 들으셔야 해요. 듣고 싶은 얘기만 들으시면 안되요.

 

서기관은 해산 시키는 것 그것까지 한계 예요. 하지만 성령의 진정은 소동을 잠재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낳는 것이 목적인 것 이예요.

 

(적용#3)

 

– 소동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원칙을 지키라는 말이 얼마나 이해되십니까?

-여러분은 원칙을 지키십니까? 지금 흩어져야 할 모임에 있는 모임은 무엇입니까?

 

 

우리 수준에 맞게 소동이 일어나고 진정시켜 주신다.



 

<Epilogue>

 

1)  믿음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연극이다

2)  믿음 없이 살아가면 속절없이 슬픈 유언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3)  예베소 군중의 특징은 분란이다

4)  아무리 화려한 인생이라도 중심에 하나님이 없으면 분란이 일어난다

5)  죄의 바로미터가 자기 소견이니까 분란이 그칠 날이 없는 것이다

6)  하나님 없이 죄인들만 모이니 불란만 일어나는 것이다

7)  죄의 파동으로 소동이 일어난다

8)  말씀이 들리면 죄의 실체가 드러나고 분란이 진정된다

9)  말씀이 해석이 되어야 소동이 해결된다

10) 화합과 일치가 교회의 중요한 특징이다 

11) 모두 남의 인생을 살다가 막이 내리면 허무하게 끝이 나는 것이다

1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연주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인생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붙어도 떨어져도 허무할 것이다.

13) 이처럼 인생이 끝날 때까지도 가짜를 살았다면 결론도 없이 막이 내릴 것이다.

14) 믿음 없이 공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연극이다

15) 잠깐인 인생의 연극 무대에서 있으면 있어서, 없으면 없어서 죽어라 하고 자기 필요를 외치게 된다.

16) 아무리 좋은 장소에 품격 있는 이름으로 모여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으면 분란만 일어난다.

17) 교회를 다녀도 성경적인 가치관이 없으면 또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

18) 자기 소견이라는 것이 100% 죄인인 인간이 어찌 선한 것이 있겠나?

19) 죄의 바로미터가 바로 자기 소견인 것이므로 어디서나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20) 그리스도를 안 뒤에는 모든 것이 배설물이라고 한다

21) 하나님 나라를 모르면 연극무대를 떠들며 외치다가 그렇게 속절없이 이 땅에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하며 막이 내릴 것이다.

22)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니까 똑같이 미움과 두려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23) 군중으로 모여 하나가 되니까 각자 고유한 판단이 마비되고 알 수 없는 군중의 기운에 휩쓸려 누구를 죽이려 하고 누구를 무조건 위하는 맹목적인 호흡으로만 표출하게 된다

24) 그래서 이유없이 미워하고 이유없이 두려워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다.

25) 군중의 태도나 감정, 판단이 잘못되기가 너무 쉬워서 개인보다 군중이 훨씬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

26) 잘못된 일이라도 잘했다고 우기고,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하면 대중은 결국 믿게 된다는 것이다

27) 하지만 이 믿음이 오래가질 않는다. 잠깐 지나서 새로운 자극이 생기면 금새 옮겨가는 것이다.

28) 사람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 사람의 모임인 군중은 그보다 훨씬 더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29) 어떤 무리 든 요란과 분란이 있으며 끊임없이 흔들리고 부딪히게 된다.

30) 하나님 없이 죄인들만 모이니 분란으로 끝나는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늘 네 편 내편 갈라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이 군중이다.

31) 성령께서 진정시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개인이든 무리 든 이 분란을 피할 길이 없다.

32) 이것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이며 군중은 분란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33) 하나님을 믿어야 내 인생이 분란으로 끝날 뻔한 인생 임을 인정할 수 있다.

34) 여친, 남친의 말을 듣고 결혼했다가 분란이 생기면 다 죽으려고 하고 말 한마디에 다 이혼을 하는 것이라서 믿음의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다

35) 우리는 서로 믿고 한 것이 아니라 찌질한 것 다 드러내고 하나님을 믿고 결혼했기에 사람이 아니라 벌레라는 다윗의 고백이 믿어지게 되니까 결혼 이후에 어떤 상황에도 놀라지 않고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는 것이고 그래서 이혼을 할 수 없는 것은 주 안에서 내가 벌레라는 것을 아니까 그렇다

36) 여러분 인생에 분란이 생겼다면 이것은 성령께서 ‘내가 여기 있다. 나를 찾아라. 의지해라!’ 여러분을 부르시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37) 분란은 성령의 진정이 있다는 사인이며 주님 없이는 영원한 분란 중에 죽을 수 밖에 없는 내 실체를 인정하고 늘 성령의 진정을 바라고 기대해야 한다.

38) 역할,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소동을 막는 제일 큰 비결인 것이다 

39) 구속, 구원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날마다 싸울 일 밖에 없다

40) 구원의 관점이 아니면 자기 의견이 옳고 너무 의롭다 

41) 세상의 권세가 두려워 세상의 말을 들으면 세상의 진정으로 끝날 뿐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성령의 진정이 되는 것이다.

42) 사건이 없어도 우리 마음 자체가 늘 죄의 파동으로 소동을 일으키기에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다

43) 이 소동을 가라앉히기 위해 사람, , 담배, , 권력을 찾고 무엇이든 진정 시켜줄 것 같은 것을 찾아 늘 헤매고 방황하는 것이 하나님 떠난 인생의 모습인 것이다

44)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내 실체가 보이고 내 죄가 드러나고 회개가 되고 그렇게 주님을 만나게 된다.

45) 해석 없이 해결만 찾아 소동하던 마음이 드디어 말씀으로 해석되어 진정되는 것인데 문제가 말씀으로 해석되어야 진정한 성령의 진정이 일어난다

46) 다시 생기는 소동을 있어야 할 일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성령의 진정인 것이다

47) 우리 수준에 맞게 소동이 일어나고 진정시켜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