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
우리들교회 2021년 10월10일 주일예배말씀요약(에스겔32: 1~ 12/ 그에게 이르라/ 최대규목사)
윤강로
2021. 10. 11. 10:36
[우리들교회 2021년 10월10일 주일예배말씀요약(에스겔32: 1~ 12/ 그에게 이르라/ 최대규목사)]
<에스겔/Ezekiel 3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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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 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에 채우리로다(I will drench the land with your flowing blood all the way to the mountains, and the ravines will be filled with your flesh) 7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워 별로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우며 달로 빛을 발하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When I snuff you out, I will cover the heavens and darken their stars; I will cover the sun with a cloud, and the moon will not give its light) 8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두움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All the shining lights in the heavens I will darken over you; I will bring darkness over your land, declares the Sovereign LORD) 9 내가 네 패망의 소문으로 열국 곧 너의 알지 못하는 열방에 이르게 할 때에 많은 백성의 마음을 번뇌케 할 것임이여(I will trouble the hearts of many peoples when I bring about your destruction among the nations, among lands you have not known) 10 내가 그 많은 백성으로 너를 인하여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내 칼로 그들의 왕 앞에서 춤추게 할 때에 그 왕이 너를 인하여 심히 두려워할 것이며 네가 엎드러지는 날에 그들이 각각 자기 생명을 위하여 무시로 떨리로다(I will cause many peoples to be appalled at you, and their kings will shudder with horror because of you when I brandish my sword before them. On the day of your downfall each of them will tremble every moment for his life) |
11 나 주 여호와가 말함이여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임하리로다(" 'For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 'The sword of the king of Babylon will come against you) 12 내가 네 무리로 용사 곧 열국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I will cause your hordes to fall by the swords of mighty men-- the most ruthless of all nations. They will shatter the pride of Egypt, and all her hordes will be overthrown) |
<Prologue>
에스겔 1장-3장 에스겔 소명 /4장-24 남유다멸망/25-32장 남유다의 열국들이 망합니다. 애굽의 멸망은 4장에 걸쳐 말씀하십니다. 29장-32절까지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애굽의 죄가 컸고 애굽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죄가 컸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멸망에 회복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회복이 있으려면 멸망해야 합니다. 33절이후에는 심판에서 회복의 메시지인데 애굽의 멸망이 있습니다. 반드시 필요합니다.
<말씀 요약>
1. 말씀하신 애가를 이르라고 하십니다.
1 열두째 해 열두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에스겔에게 임한 말씀이 구체적인 날짜가 나옵니다. 여호야긴 왕과 백성이 포로 된 날짜부터 적은 것입니다. 날짜가 나온 것은 반드시 이루실 일이기에 정확히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은 포로 상황 가운데에서도 언제 어떻게 말씀 하실지 모르기에 말씀을 날마다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건이 올 때만 어떤 사람은 사건이 없을 때만 큐티를 한다고 합니다. 말씀을 보지 않아도 망하는 사건은 온다고 하십니다. 애굽이 망해도 에스겔에게 말씀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예수 믿는 나에게 임합니다. 택자이기에 말씀이 임합니다. 전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믿는 사람에게 해석을 주십니다. 무시되는 사람이라도 말씀이 임할 수 있습니다. 처가 댁에서 에스겔처럼 기도만 해주셔서 무시했는데 그것이 정말 큰 것이었습니다. 7번에 걸친 심판, 애굽의 왕 바로를 위해 애가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바로가 겪어야 될 심판이라고 하십니다. 바로는 큰 집이라는 뜻입니다. 큰 집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동생과 부모님이 돌아올 텐데 오히려 큰 집이 막고 서있을 경우가 있습니다. 큰집도 생각해보면 저희 아버지가 막내이신데 큰집을 보며 ‘너나 잘 믿어’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애가는 장례식 때 부르는 장송곡입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죽었다’라는 뜻으로 망할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건재한 애굽인데 왜 애가를 부르라고 했을까요? 바로가 자신이 신이라고 하며 다닐지라도 하나님한테는 이미 망한 나라일 뿐입니다. 꽃다발을 받을 때 그 예쁜 꽃도 이미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지 않은 그 누구라도 멋있어 보이고 잘나 보여도 죽은 자와 같은 것입니다. 애굽이 부러워서 자기 연민(self-pity)의 한탄의 기도가 나옵니다. 기복적인 가치관이 깨어지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동경이 되기때문에 망한다는 말을 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괴롭고 연민의 애가를 부르고 싶어합니다. 바로에게는 완악함 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완악함은 항상 그가 듣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만큼 기회를 주신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떤 성경 인물보다 하나님의 표정을 많이 본 자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바로는 완악 했습니다. 듣는 귀를 닫는 자였습니다. 완악한 것은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입니다. 늘 나에게 유익이 되는가를 머리 굴리는 것입니다. 그 완악함 때문에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얘기해도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도 애가를 불러야 합니다. 300년 후에 들릴 수 있기에 일러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내가 애굽의 삼킴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큐티하면 잘 꽂히는 말씀이나 언어가 있습니다. 왜 노래를 부르게 했을까? 꽂혔습니다. 왜 슬픈 노래? 혹시 이런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 노래를 부르면 음악을 들으면 기억과 상관관계가 있어서 그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일이 있죠. 음악이라는 게 무의식의 기억을 담게 하십니다. 노래를 부르면 기억납니다. ‘불신 결혼은 안돼요~’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서 기억나겠죠. 담임목사님 얼굴이 떠오르면서 ‘불신 결혼은 안돼요.’ 이것이 굉장히 축복이 됩니다. 그발 강가에서 포로들이 노역하고 있을 때 애가를 부르며 위로를 얻습니다. 애굽을 바라보지만 애굽은 아니라는 말씀에 애굽을 따르지 않은 것에 감사함으로 힘이 되게 됩니다. 이것이 헛된 일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 노래가 바로 에게까지 이르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 지금 바로 왕 옆에 애굽을 끊지 못하는 남 유다 에게까지 전해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 멸망한 후 남은 자들을 위해 ‘그달랴’를 세웁니다. 이스마엘이 암살해버립니다. 바벨론이 세운 사람을 죽였으니 백성들의 마음을 동요시킵니다. ‘우리는 다 죽을 거야’ 하며 하난이라는 사람이 다 데리고 갑니다.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막아 섰습니다. 그들이 그 땅에 남아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애굽으로 도망치고 한번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대가 어수선합니다. 그럴수록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한 사람을 잘 따라야 합니다. 남유다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 듣고 큐티하는 것을 통해 교회를 떠난 분들을 위한 애가를 불러야 합니다.
목장을 떠난 분들도 공동체에 돌아오시길 기도합니다. 애굽을 따른 그 사람들도 망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에게도 수년간 경고의 말씀을 하신 분이 어머니입니다. ‘살 안 빼면 죽는다. 성인병 온다. 고혈압 온다. 가장이 건강해야 처자식 먹여 살리지. 살 빼야 한다’ 그런데 저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처럼 완악한 사람입니다. 어린시절에 심방 가는 걸 좋아했어요. 심방이 끝나면 음식을 먹으니까요. 식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한 부목사가 살찌니까 좋아 보인다’라고 말씀하셔서 저도 ‘좋아 보이죠?’했는데. ‘최목사는 살이 찌니까 믿음 없어 보여’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와서 이 한마디에 살을 빼고 있습니다. ‘적용을 해도 티가 안 나죠? 저도 7키로를 뺐는데 티가 안나요’ 먹는 것으로 만족감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사실 어린시절 아토피를 앓아서 먹는 것을 잘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핍이 식탐으로 해결하려고 했고, 저를 우상 삼는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편한 것, 기쁘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우상 삼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나를 주변 사람들도 우상 삼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나 밖에 관심이 없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를 힘들게 하는 너가 문제다’ 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적용#1)
-여러분이 동경하는 애굽은 어디이고 누구입니까? 그 곳이 멸망한다는 것이 속이 쓰리나요? 좋습니까?
-거절을 당해도 10번이고 100번이고 찾아가야 할 애가를 불러줘야 할 바로는 누구인가?
-여러분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그 경고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더 나아가서 에스겔에게 부르라고 하신 애굽의 애가는 무엇일까요?
2. 자기 생각과 자기 실상이 다르다는 책망을 들어야합니다.
2.~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
3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많은 백성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 그물을 네 위에 치고 그 그물로 너를 끌어오리로다
바로는 자신이 사자(Lion)라 여겼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는 흙탕물에 던져진 악어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과 사람의 얼굴로 되어있습니다. 바로를 상징합니다. 사자와 악어. 사자는 의인이라고 묘사되기도 하고 젊고 용맹하다고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착각에 빠져 삽니다. 착각도 좋은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왕따를 당했고 ‘가스라이팅’(정신적 학대-심리적 지배) 당했는데. 그때는 당했다고 생각 못했다고 했습니다. 착각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을 수 있죠.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에 우리의 불행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지 못하기에 자기 죄를 보지 못합니다. 성경은 인간론이다. 큐티를 하면 볼 수 있습니다. 미취학, 취학, 청소년은 모든 부서가 동일한 본문으로 설교를 듣습니다. 제 딸이 5학년때 어느 날 설교가 좋다고 하기에 그래서 딸의 반응 무시한 채 30분동안 설교를 하고 ‘누구 설교가 더 좋냐?’고 하니까 딸이 ‘아빠 인정 중독이냐?’고 묻습니다. 큐티를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지혜와 분별이 생깁니다. 말씀을 볼수록 죄와 중독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집에서는 부모의 권세로 악어처럼 두려움과 차별의 흙탕물을 일으킵니다. 교회에서는 기복의 흙탕물, 연애하면서도 우위에 있는 사람이 흙탕물을 일으키게 되는데 돌이켜 회개할 것이 많습니다. 어제 가족 심방을 가게 됐습니다. 오늘 설교이지만. 두 마리의 악어가 싸우 듯 치열했습니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자주 싸우시는 지? 매일 싸운다고 했고, 혹시 각인이 되어서 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 있냐? 고민하더니 싸움이 점점 쎄지더니 싸움이 업그레이드 되면서 저의 기억도 업그레이드 되지만 저한테 피해만 오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합니다. 이제는 지쳐서 회피를 해버리는 거죠. ‘그러면 너는 화목한 가정을 기대하지는 않니?’하니까 중학교 남자아이인데 눈물을 흘립니다. 눌러 놨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부모님도 싸움을 멈추고 얘기하시면서 어머니가 이런 기도를 하시더라구요.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아서 망하게 되는데 제가 회개를 하지 않아서 아이가 망하게 되지 않게 해달라고. 엄마는 회개할 생각 안하고 청소년부 목장에 맡기기만 하면 공동체에만 넘겨 놓고 상관치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회개를 하면서 맑은 물이 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그것이 애굽을 우상 삼았던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청소년부는 혼전순결서약예배를 드립니다. 성과 결혼에 대해서 흙탕물 같은 가치관으로 흐려지지 않도록 서약 예배를 드립니다. 말씀의 가치관이 흐르도록 애가를 부를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가치관의 결혼을 따르지 말라고 설교합니다. 악어는 물에 있을 때는 두렵지만 뭍에 드러날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바로는 자기의 업적을 자랑했겠지만,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풍족한 것을 누렸지만 애굽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악어의 단어는 용, 뱀, 바다 괴물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인데 대적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높이는 환경, 낮추는 환경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 대적하는 것입니다. 점점 바로의 힘이 빠집니다.
6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 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을 채우리로다
7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출애굽 때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일강을 피로 물드는 재앙과 같은 것, ‘애굽의 빛을 꺼버리겠다’ 하는 것도 해와 달과 모든 빛을 끄면서 암흑을 주신 것으로 흑암의 재앙과 같습니다. 스스로 빛이라고 생각했던 바로에게 주시는 메시지인데 어둠과 출애굽 흑암과 똑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모세의 명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으니까 바로에게 심판을 주시는 것도 있지만 애굽을 우상 삼는 이스라엘백성을 훈련하기 위함이다. ‘출애굽 했을 때 10가지 재앙으로 광야생활 40년을 애굽의 도움없이 조상들이 ‘만나’로 살았잖아. 그걸 기억 못하겠니?’ 지금 애굽의 멸망을 말씀하시면서 나를 의지하는 것이 너희가 살길이라는 것을 애가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조상을 살려왔는데 지금이라고 너희를 살리지 못하겠니. 하며 애가를 부르게 하십니다. 바로를 우상 삼는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애가입니다. 예전과 그때와 지금도 그 메시지입니다. ‘광야 때, 포로생활 때, 애굽의 도움 없이도 살았던 것을 알지 못하겠니?’ 남편이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먹여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9 내가 네 패망의 소문이 여러 나라 곧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들에 이르게 할 때에 많은 백성의 마음을 번뇌하게 할 것임이여
10 내가 그 많은 백성을 너로 말미암아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내 칼이 그들의 왕 앞에서 춤추게 할 때에 그 왕이 너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할 것이며 네가 엎드러지는 날에 그들이 각각 자기 생명을 위하여 무시로 떨리로다
하나님안에서 언약 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자기의 유익때문에 맺은 언약이기에 언제든 깨질 관계입니다. 내가 남편을 의지하는지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남편을 흔드시면 내가 누구를 의지하는지 알게 하십니다. 평안할 때는 모릅니다. 하지만 알아도 끊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이런 존재입니다. 버림받고 수치를 당해야하지만 끊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적용#2)
-여러분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사건은 무엇인가요? 라떼는 말이야 하며 옛날 영광과 아픔에 갇혀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름대로 합리화하며 은밀하게 동맹을 맺고 있는 그 대상은 누구일까요?
-자기 삶의 패망의 소식을 못 들은 애굽과 이스라엘의 결론이 무엇일까요?
3. 교만하여 칼에 베임을 당합니다.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바벨론 왕의 칼이 네게 오리로다
12 나는 네 무리가 용사 곧 모든 나라의 무서운 자들의 칼에 엎드러지게 할 것임이여 그들이 애굽의 교만을 폐하며 그 모든 무리를 멸하리로다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애굽에게 이르게 되는데 바벨론이 예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가 애굽을 의지하기때문에 애굽을 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내가 능력 있는 사람을 의지하면 나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큐티를 펼치면서 겸손 하려는 것이 있으면 은혜가 있는데 펼치지 않고 내 힘으로 하려는 교만이 있습니다. 애굽을 멸망하려는 이유는 미워서가 아니라 애굽의 교만을 잘라내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교만은 ‘깨온’이라는 단어인데 주어를 하나님으로 쓰면. 하나님의 위엄으로 단어가 번역이 됩니다. 주어로 사람을 붙이면 교만으로 번역이 된다고 합니다. 모든 환경들, 돈, 위치, 직위, 얼굴, 외모 등 주어로 나를 붙이면 다 교만이 됩니다. 그 모든 것들의 주어로 하나님을 붙이면 하나님의 위엄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도구가 됩니다. 교만하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회개하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나를 높여 주시는 경험도 하게 됩니다. 이태근목사님 자제분인 민산집사님 재판할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기다리며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불현듯 민산집사를 보니까 몇 년 뒤에 내 아들이 여기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개도 되고 ‘그래도 내 아들은 괜찮아’ 하며 여러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곁의 지체에게 심판의 사건이 오면 내게 주시는 심판을 봐야 하는데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교만함때문에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칼이 임하는 사건이 왔습니다. 작년에 사춘기 때를 지나고 있던 딸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 일어나는 일이다 생각했는데. 작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려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평소 전화를 잘 안하는데 흐느끼면서 ‘내가 너무 잘못 산 것같아’ 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사진을 보내줬습니다. 6학년인 딸의 손목에 칼자국이 나있는 사진을 본 것입니다. 그 사진을 보는데 마음이 확 내려앉았어요. 상처를 보니까 20개 가까이 되는 오래된 것도 있고 최근에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청소년부 사역하면서 그런 사진을 얼마나 많이 봤겠어요?’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고 하시는데 저는 ‘이런 일은 우리 집에 일어나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했던 일이 딸에게 일어나니까 그때 본문은 그게 아니었는데 웃사의 이야기를 잠깐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웃사가 죽는 사건이 왔네요’ 했습니다.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뒤에 보니까 저희 딸이 애정 욕구가 큰 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저희 부부는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 많은 시간을 지나오면서 저를 많이 돌아보게 됐습니다. 딸 아이의 탱크가 채워져도 모자란데 구멍이 있었던 것이죠. 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25살에 6살연상과 결혼했습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자신만 생각하는 탐심만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편하게 해줄 수 있겠다 생각하며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저를 다 맞춰줬었습니다. 26살에 첫 딸을 임신했습니다. 그럼 보통 함께 기뻐하는데 저는 ‘자기한테 참 잘됐다. 축하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나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는 애정결핍으로 제가 조금만 사랑을 줘도 저한테 다 맞춰주고 저는 저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는 신기하고 예뻤는데 그 다음부터는 제 주제가가 ‘빨리 커라’가 주제가가 되었습니다. 딸 아이의 성장과정이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지금은 성장하고 보니까 딸이 많이 아팠더라구요. 나를 우상 삼는 것이 있으니까 딸 아이를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이 주신 딸도 선물이라고 생각 못하고 사는데 성도들을 보면서도 어떻게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목회를 했겠습니까? 내가 우상인 사람인데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을까? 저를 목회자로 쓰지 않으시면 안될까요? 하며 바로 같은 사람인 것이 인정이 되고. 목장 처방으로 저와 아내가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내려놓고 가고 있습니다. 딸의 눈으로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좋은 부부라고 믿음까지 주고 있다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딸의 사건이 아니었으면 잘라내야 할 교만을 보지도 못했을 존재입니다
(적용#3)
-칼로 베임 당한 것 같은 아픔의 사건은 무엇인가요? 그 사건으로 잘려나간 교만과 쓴 뿌리와 불신, 중독과 죄악은 무엇인가요?
-‘자녀가 인성 좋아졌네’라고 말하고 있나요?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