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88편(존 위컴 John Adams Wickham, Jr. 미8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미 육군대장)과이 만남 기회와 군복무 시절 My Military Services Life 군사용어영어(Military Terminology English) ..
[스포츠외교현장이야기실록88편(존 위컴 John Adams Wickham, Jr. 미8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미 육군대장)과이 만남 기회와 군복무 시절 My Military Services Life 군사용어영어(Military Terminology English) 습득)]
1979년 외대 영어과 4학년 시절 쫄병으로 군복무를 하기에는 좀 늦은 감이 있어서 ‘학사장교 시험을 치르고 장교로 갈까?’ 고민 중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으로 대한민국 어학우수자에 대한 인센티브 배려의 일환으로 동시통역대학원 입학자에 대하여 어학특기자로 군복무 대신 외교부나 국방부 등지에서 대체 군복무 허용 대통령지침이 하달되었다.
(외대동시통역대학원 영불과 입학 및 수학을 거쳐 습득한 부전공불어가 이후 IOC평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2001년 프랑스 대통령궁에서 당시 Jacques Chirac대통령과의 불어대화에서 칭찬 받을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일취월장 하였다)
마침 외대 병설 동시통역대학원 설립에 따른 신입생 모집에는 모교인 외대 4학년 생도 동시통역대학원입학시험응시 자격이 부여되었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였다. 필자는 영어 전공에 불어 부전공으로 동시통역대학원 영-불과에 응시하였다. 신세계백화점 근처 회현동 Alliance Francaise 어학원에서 3학년 겨울방학동안 3개월 집중 코스를 통하여 불어에 대한 자신감도 붙어 날마다 일취월장 불어 어학 연마에 매진하다 보니 꿈속에서도 불어로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외대 학부 부전공 불어 교수 및 학우들로부터 꽤나 인정을 받던 시절이었다. 남은 기간 동안 내친 김에 날마다 몇몇 불어 전공 학우들과 일상대화도 불어로 나누며 불어회화에 대한 감을 놓지 않으며 올인한 결과 오매불망(寤寐不忘) 동시통역대학원 입학시험(영-불과)에 합격하였다.
그러던 사이 1979년 10.29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과 12.12. 군사 구데타(Coup d’Etat) 사건이 일어나자 다음해인 1980년 국회도 해산되는 바람에 국회에 대체 군복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채로 동시통역대학원 학기를 시작하여 피말리는 동시통역과목들을 공부하던 중 어느 날 대학원 행정과에서 필자를 불러 군복무를 마치지 않으면 1년 국내 교육 후 Curriculum 상 프랑스 파리 또는 벨기에 브뤼셀 대학원에 2년 위탁교육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통보를 받던 시기에 때마침 날아온 군 입대 통지서에 의거하여 즉시 육군 일반 사병으로 입대하였다.
논산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받고 자대배치 받은 곳은 강원도 최전방 전투 사단이었다. 유격훈련(Army Rangers Exercise)-야간 전진 무의탁 사격훈련-완전군장도보행군-향로봉 한-미 군사합동훈련 등 피나는 군사훈련과 더불어 대학교 교련과목 이수 덕분에 2년 3개월 동안의 군복무를 마치고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하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군대 휴가 중 USO(United Services Organization)자원봉사활동덕분에 당시 존 위컴(John Adams Wickham, Jr.) 미8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미 육군대장) 및 글라이스틴(William Gleysteen, Jr) 주한미국대사와의 만남 기회와 또한 미군과의 합동군사훈련 덕분에 군사용어 영어(Military Terminology English)를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이 수확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