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외교'에 해당되는 글 2113건

  1. 2024.04.18 Macron프랑스대통령, Paris2024 올림픽에 이스라엘참가허용과 러시아참가배제에 대한 정당성 항변 8
  2. 2024.04.10 Thomas Bach 제9대 IOC위원장의 진면목(14년前 2010년) 김운용 前 IOC부위원장이 이야기하다 31
  3. 2024.04.02 Paris 2024성공기원 영어5행시와 Paris공식방문 추억담과 당시 프랑스대통령 앞에서 당당하게 구사했던 불어 어휘 에피소드 그리고 IOC 쿠베르탱 메달 이야기 37
  4. 2024.03.29 여성지도자의 전성시대 그리고 한국 체육계의 여성지도자들의 위상 40
  5. 2024.03.27 Bach IOC위원장의 탁월한 인성과 지도력을 알아본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쓴 회고의 글(2010년 10월18일) 37
  6. 2024.03.22 IOC윤리위원회, Bach IOC위원장에게 3선 출마 촉구에 대한 수락여부결정을 Paris 2024대회 종료 시까지 자제하도록 요청하다 32
  7. 2024.03.21 스포츠외교정책은 확증(確證 Evidence)과 실리(實利Benefit)를 바탕으로 세워져야(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의 산고곡심山高谷深 칼럼 중에서 2012년 12월27일) 34
  8. 2024.03.20 역대 최고의 스포츠지도자 겸 스포츠외교관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의 회고록(체육은 체육인 손으로 2013년 1월14일 산고곡심山高谷深 칼럼 중에서) 29
  9. 2024.03.19 세계스포츠계 지배 구도 중 추억의 라틴 마피아 4인방의 면모와 실상(김운용 前 IOC 수석부위원장이 전해준 이야기 중에서) 33
  10. 2024.03.16 대한민국 최초로 IOC위원장이 직접 전수한 올림픽 노벨상 IOC 쿠베르탱메달 수여식과 IOC족보에만 3차례 등재영예 및 관련 동영상 공유 33
스포츠 외교2024. 4. 18. 09:48

[Macron프랑스대통령, Paris2024 올림픽에 이스라엘참가허용과 러시아참가배제에 대한 정당성 항변]

 

 

415일 외신 보도 내용입니다.

 

Emmanuel Macron 프랑스대통령은 415() Paris 2024 올림픽에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일으키기로 작정한 러시아이기에 배제된 러시아와 침공이 아니기에국가로서 참가가 허용된 이스라엘에 대한 처우 관련 차이점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하였다(justified the difference in treatment at the Olympic Games between Russia, which has been excluded as a nation because it decided to wage a "war of aggression" in Ukraine, and Israel, whose flag will be present because it has not been an "aggressor")고 합니다.

 

 

(Bach IOC위원장과 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

 

 

2월하순 IOC에 대하여 차기 올림픽(Paris 2024)에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적용한 동일한 제재조치를 요구하였으나 허사로 끝난 바 있는(asked the IOC in vain "to apply to Israel, during the next Olympic Games, the same sanctions as those applied to Russia and Belarus) LFI프랑스 국회의원들(deputies)과 환경보호론자들(ecologists)에게 답변형식으로 러시아와 이스라엘사이에는 매우 다른 상황”(a very different situation)이 존재한다고 Macron 프랑스대통령은 BFMTV-RMC와의 방송기자회견에서 응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은 테러리스트 공격의 희생자 국가임. 우리는 이스라엘의 대응과 우리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에 대하여 견해를 달리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이 공격 자라고 이야기 할 수 없으므로 그 차이는 분명한 것임”(Israel was the victim of a terrorist attack (...) We can disagree with Israel on how to react and protect ourselves, but we cannot say that Israel is an attacker, so the distinction is very clear)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국가가 Paris 2024올림픽에 게양될 것이라는 이유임. 이스라엘선수들이 그곳이 참석할 것이며 본인은 그들이 그 지역에서 많은 행동주의자들과 경쟁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평화의 궤도가 될 것을 희망하는 바임”(That is why the Israeli flag will be there. The athletes will be there and I also hope that they will be vectors of peace because they will have to compete with many actors in the region)이라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IOC는 오슬로 평화협상 과정의 유산으로 1995년이래로 이스라엘NOC와 팔레스타인 NOC가 함께 공존해 왔으므로(as the Israeli and Palestinian National Olympic Committees (NOCs) have coexisted since 1995, a legacy of the Oslo peace process) “두 국가 해결방안이라는 자체적용방침에 의거하여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가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The IOC is doing its utmost to stay out of the Gaza war between Israel and Hamas, hiding behind its own application of the "two-state solution")고 합니다.

 

게다가, 러시아를 국가로서는 금지하지만 러시아선수들이 중립국기아래 참가는 허용한다는 결정(the IOC's decision to ban Russia as a state but allow Russian athletes to take part under a neutral flag)2년이상이나 지속되고 있는 침략전쟁을 모스크바가 선택했음으로”(because Moscow had “chosen a war of aggression that has been going on for more than two years”) “균형 잡히고 공정”(proportionate and fair)하다고 Macron 프랑스대통령이 덧붙였다고 합니다

 

Macron대통령은 지난 주 토요일(413)밤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에 대하여 처음 코멘트하였는데9 commented on Iran's "unprecedented" attack on Israel on Saturday night) 그는 전쟁이 확산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였다(He called for "everything possible to avoid an escalation")고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스라엘을 설득하여” “이란을 고립시키는반면 현 상황을 확대하지 말기를 희망하고 있다(he hopes to "convice Israel" not to escalate the situation, while "isolating" Iran)고 합니다.

 

 

*References:

-Insidethegames

-IOC website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4. 10. 09:57

[Thomas Bach 9IOC위원장의 진면목(14년前 2010) 김운용 前 IOC부위원장이 이야기하다]

 

대한민국 스포츠외교사에 큰 획을 그은 전대미문, 불세출의 스포츠외교관 김운용 前 IOC부위원장(2017년 작고)의 국제스포츠계 세계관과 인물에 대한 평가와 혜안은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수준급 정보통을 훨씬 뛰어 넘는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국제스포츠계에서 그분의 일거수일투족을 대부분 지켜 보았으며 그러는 동안 그분의 내공의 상당부분을 부지불식간에 전수 받았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그분의 영전에 감사를 바칩니다.

 

 

(1999년 제109IOC서울총회준비상황을 IOC집행위원회에 보고하고 있는 김운용 IOC부위원장<사진 우측>과 실무조직총괄 책임자였던 필자)

 

 

최근 들어 그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현재 한국스포츠외교의 위상이 너무 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분이 지켜본 Thomas Bach 9대 현 IOC위원장(2013~2025)에 대한 글 내용을 공유합니다.

 

 

[토마스 바흐 (2010. 10.18)]

 

 (20184월 강릉명예시민증 수여식 참석차 강릉 시청을 찾은 Bach IOC위원장과 필자)

 

 

독일의 초대 통합올림픽위원회·체육회 수장이자, IOC 부위원장을 처음으로 연임한 토마스 바흐는 지금도 올림픽운동을 주도하는 지도자이지만 모두들 앞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구촌 스포츠 지도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보고 있다. 물론 세상일은 길게 보아야 하고 선거는 뚜껑을 열어 보아야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IOC 관련 이런저런 대소사를 앞두고 있는 KOC에게는 제일 신경이 쓰이는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토마스 바흐는 서독 뷔르츠부르크에서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태어났다. 그는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법과 정치학을 공부했고 법학박사를 받았다. 이후 다방면으로 활동을 했고 기업체 회장과 여러 회사의 이사직을 수행했고 아랍, 독일 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냈다.

일찍부터 펜싱 테니스 럭비 등 활발한 운동을 즐긴 바흐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펜싱(플뢰레)단체에서 금메달을 땄고 1976·1977년에 유럽 펜싱선수권 우승 등 많은 경기에서 입상한 펜싱맨이다.

2000
년 시드니올림픽 때 필자는 IOC집행위원으로서 올림픽 경기 전반 관리, 최초로 올림픽 종목이 된 태권도 경기의 운영 및 감독,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올림픽위원회 수장으로서 한국의 메달 획득을 책임지는 역할 등 유례가 없는 세 가지 소임을 동시에 맡고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으로서 북한의 부산아시안게임 참가를 교섭해야 할 입장이었고, 자연히 북한올림픽위원회와의 남북동시입장 교섭이 덤으로 진행됐다. 원래 국제경기나 회의 때는 많은 사람이 장시간 모여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하기 좋다.

어쨌든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드니올림픽 기간 중 필자는 갑자기 기대를 안 했던 펜싱에서 한국의 김영호가 독일 선수와 결승에 맞붙는다는 연락을 받고 뛰어갔더니 독일의 바흐 집행위원이 와 있었다. 바흐가 메달 시상자로 예정돼 있었다. 독일이 우승할 줄 알고 시상자 신청을 한 것 같았다. 필자도 미리 한국이 우승할 만한(가끔 빗나가기도 하지만) 종목인 양궁 배드민턴 태권도(총재로서 당연히)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의 시상 신청을 해왔다. 개인적으로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아이스하키 금, , 60명 시상을 룩셈부르크 대공, 호주의 고스퍼(Gosper) IOC 부위원장과 셋이서 치른 적도 있다.

시상자는 일단 결정되면 함부로 현장에서 바꿀 수 없다. 그런데 바흐가 독일 선수가 이기면 예정대로 자기가 시상하고 만약 김영호가 우승하면 나에게 시상을 양보하겠다고 제안해 왔다.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며 정중히 사양하는데도 바흐는 괜찮다고 말했다. 참고로 애틀랜타올림픽 때 이건희 회장이 갓 IOC 위원이 됐는데 마땅히 시상할 종목이 없자 IOC 위원장 비서실에 부탁을 넣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남자 양궁 시상자가 노르웨이의 스타우보(Staubo) 위원에서 계획에 없던 이건희 위원으로 무리하게 바뀌었다. 이 일로 양궁 회장이던 제임스 이스턴(James Easton) IOC 위원(미국)이 필자를 엄청나게 오해했고, 현장까지 와서 시상을 못하게 된 스타우보 위원은 IOC 위원장에게 항의편지까지 썼다. 이때 불행히도 한국은 금을 따지 못해서 시상효과가 반감되고 말았다.

 

시드니에서는 예상 밖으로 김영호가 선전하여 금메달을 따게 됐고 그 덕에 필자가 시상을 했다. 남을 배려하는 토마스 바흐의 인간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였다.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면 바흐가 1981년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선수 출신 대표로 두각을 나타냈고,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아디다스(Adidas) 관계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집무실로 필자를 찾아온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유럽스포츠계는 아디다스 출신이 많다.

곧이어 바흐는 1991년 버밍엄 총회에서 자크 로게(Rogge) IOC 위원장과 함께 IOC위원으로 선출되었다. 93~94년쯤에는 IOC총회에서도 소장파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그는 96년 애틀랜타에서 이미 집행위원이 되었다. 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집행위원이 된 로게보다 2년이 빠른 셈이다. 필자는 로게가 그때 준 300달러짜리 몽블랑 만년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바흐는 곧 IOC의 여러 가지 업무를 맡게 됐고 동계올림픽평가위원장, 선수분과위원, 신문분과위원, 사업분과위원, TV교섭위원, 법률분과위원장을 역임했다. 변호사이므로 법률 쪽에 주로 관여했다. 최근 유럽 지역 TV방영권 교섭도 바흐의 책임 하에 진행됐다. 또 메르세데츠 벤츠, 루프트한자 등이 IOC의 스폰서가 되는 데 교량 역할을 했고, 북한올림픽위원회에 트럭과 버스를 기증하고 다리도 놓았다. 바흐는 사마란치 지시로 직접 북한에 가기도 했지만 사실 별 성과는 없었다.

바흐는 가끔 독일 외무장관이 외국에 갈 때 동행하곤 했다. 2001 APEC 회의 때도 독일 총리를 수행했다. 93년 필자와 차녀인 피아니스트 김혜정이 독일 쾰른 국제콩쿠르에 1등으로 입상하여 부상(副賞)으로 베를린, 쾰른, 졸링엔 등에서 연주회를 갖게 돼 필자 내외도 독일로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바흐 부부는 200㎞씩 떨어진 곳에서 달려왔다. 선물은 꼭 독일 작곡가 베토벤이나 바흐 등의 곡이 담긴 CD였다. 외교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바흐가 IOC의 최고 유망주니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얼마 전 한번은 문체부의 김대기 차관이 독일에 가는데 바흐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이 비서를 통해 있었다. 이에 앞서 필자는 유인촌 장관이 러시아 갈 때 소치에 가있던 스미르노프(Smirnov) 위원을 모스크바로 올라오게 했고, 신재민 차관(당시)이 광주U대회 유치를 위해 하얼빈의 FISU회의에 갔을 때 킬리안(Killian)을 만날 수 있도록 국제전화를 통해 주선해 준 바 있다. 하지만 김 차관과 바흐의 면담은 뮌헨과 평창이 경합하는 상황에서 필자가 주선하는 것이 서로 부담이 될 것 같아 직접 재외공관을 통해 만나도록 권고했다. 그 후 만났다는 말은 못 들었다. 이럴 때마다 비서들이 연락을 하기에 정말 장·차관 부탁이냐 물어보았더니 그렇다 했다. 그러나 바흐와의 면담주선을 안 해준 후에는 문광부의 부탁은 끊어졌다.

2001
년 모스크바 IOC총회에서 IOC 위원장 선거 때 필자는 바흐를 지지자로 알고 있었는데 막판에 인상을 쓰고 달려와 이러한 식으로 선거가 혼탁하면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사마란치와 사마란치 주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자기 나름대로 필자에게 알려준 것 같다.

바흐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부위원장을 지냈고, 2006년에 다시 부위원장에 당선되었고, 2010년에 연속해서 부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얼마 전 뮌헨에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때는 IOC위원 30~40명이 몰려갔는데 로게도 거기에 가서 바흐가 2013 IOC 위원장 선거에서 1순위라고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2011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과 2013 IOC 위원장 선거는 별개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한 나라에 두 개는 안 준다’ ‘대륙순환원칙이 어떻다’ ‘삼수는 어떻다등 자가발전식의 말이 많이 나오는데 정말 그런지 잘 살펴볼 대목이다. IOC는 고차원적인 외교적 발언이 난무하는 사회다.

2003
년 필자가 IOC부위원장이 되기 위해 평창을 방해했다는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고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미국의 ITF계 태권도매체가 바흐에게 질문서를 보냈다. 사실 여부를 질의한 것이었다. 당시 바흐의 답신을 읽어보면그런 사실도 없고 부위원장 선거와 개최도시는 별개의 문제며, 파운드(Pound)의 위원장 출마와 토론토의 올림픽 유치가 동시에 있었고 더구나 프라하에서의 부위원장 선거는 평창이 떨어진 후에 있었다고 돼 있다. IOC의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던 독일 법률가의 답신인 것이다. ITF 총재를 맡고 있는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은 지금도 그런 질의서를 보낸 사람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고개를 흔든다.

2008
년 광주가 201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유치할 때 바흐와 트로거(Troger)에게 독일 교수(FISU 집행위원)에게 우리를 지지하도록 부탁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우리는 너무 늦게 나와 불리했고 킬리안 FISU 위원장의 호의로 다음 대회인 2015년 대회까지 염두에 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바흐에게 독일의 함부르크도 2015년 대회를 유치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더니 “2000만 유로 이상 예탁금을 내고 유치하는 것은 내가 허가 안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 말대로 광주가 2015년에 재도전할 때 함부르크는 나오지 않았다. 약속도 지키고 실리도 고려한 것이다. 광주는 작년에 쉽게 2015년 유니버시아드 개최권을 따냈다. 킬리안 FISU 위원장도 고마운 사람이다. 광주가 유니버시아드대회를 계기로 국제화되기를 빈다.

 

바흐는 2006년 독일 월드컵축구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2011 FIFA 여자월드컵축구 조직위원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독일은 예산을 가지고 있는 슈포르츠 분트(Sports Bund·체육회)와 올림픽에 선수를 보내는 독일올림픽위원회가 오랫동안 옥신각신하는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독일 체육회와 올림픽위원회가 독일올림픽체육회(GOSB)로 통합되면서 바흐가 창설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통일 독일의 체육을 발전시키고 올림픽에서의 좋은 성적을 내는 것, 2011년에 뮌헨-가미쉬(Munchen Garmish)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하는 것(그렇게 되면 같은 도시가 하계·동계올림픽을 다 치르는 도시가 된다), 2013년 차기 IOC 위원장 선거에서 승리해 21세기 올림픽 운동을 이끄는 것 등이 있다.

바흐를 보면 우리와 참 다른 것은 3수가 어떻고, 한 나라에 두 개는 안 준다, 대륙순회가 어떻다 등의 근거 없는 상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타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내실을 기하면서 확실한 계산과 판단과 확증에 의해 능률적으로 움직인다. 독일 사람들은 딱딱해 보여도 따뜻하고 지킬 것은 지킨다. 허튼 수작을 한다든가 쓸데없는 짓은 안 하고 아주 확실하다. 향후 한국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런 바흐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우리 일간지 기자가 필리핀의 엘리잘데(Elizalde) IOC 위원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같은 이야기였다. 대륙별 순회에 대해서는개최 준비 여건이 중요하다”, “일본은 두 번이나 동계올림픽을 하지 않았느냐는 답이 나왔다. 또 평창은 어떠냐는 질문에는준비나 잘하라. 인천에서 철도를 개설한다는 말은 들었다하며 내실을 강조했다. 귀담아 들을 일이다.

IOC 수석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4. 2. 19:00

[Paris 2024성공기원 영어5행시와 Paris공식방문 추억담과 당시 프랑스대통령 앞에서 당당하게 구사했던 불어 어휘 에피소드 그리고 IOC 쿠베르탱 메달 이야기]

 

 

 

이틀 전(331) IOC에서 IOC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들에게Paris올림픽 관련 스토리가 있으면 419일까지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받았습니다.

 

마침 제가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2개 유치신청도시(Applicants Cities)들 중 최종 결선에 선정되었던(Short-Listed) 5개 후보 도시들(Candidate Cities)2개월에 걸쳐 일일이 방문하면서 현장답사와 더불어 기술적인 측면에서부터 대회 조직 운영에 관한 세부사항을 점검한 바 있었습니다.

 

Beijing-Osaka-Toronto-Istanbul에 이어 마지막 방문 도시였던 Paris에서의 경험한 생생한 에피소드 중 프랑스대통령궁(Palais dElysee)에서 당시 Jacques Chirac 프랑스대통령과 만나 면담 자리에서 미리 준비하여 제가 구사한 현란한(?) 64가지 불어 어휘 이야기를 포함하여 성공기원 PARIS 5행시까지 작시하여 작성한 후 IOC에 오늘 오전에 발송하였습니다.

 

Paris 2024올림픽 및 패럴림픽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다음은 Paris2008년올림픽 유치후보도시 당시 IOC평가위원으로 공식 방문 시 당시 Jacques Chirac대통령과의 공식 면담에서 필자의 불어 발언 그리고 Paris2024올림픽을 향한 PARIS 5행시 등을 공유합니다:

 

[Reminiscences of Paris and Tribute to the Former French President Jacques Chirac who loved most the Olympic Games in Paris]

 

 

When it comes to Paris, it reminds me that Paris, France was the birth place of the IOC, and birth country of Baron Pierre de Coubertin who was the Founding Father of the IOC in 1894 and the Renovator of the modern Olympic Games in 1896 and the 2nd IOC President over 30 years (1896~1925).

 

 

 

 (Baron Pierre de Coubertin seems to welcome me to the Olympic House, and together with IOC Member Mr. Sergey Bubka, one of my colleague-members of the IOC Evaluation Commission for 2008 Olympics/ photos taken on 22 October 2022)

 

 

 

Having been awarded the IOC Pierre de Coubertin Medal at first hand from IOC President Thomas Bach on 21 October 2022 at the time of the 2022 ANOC General Assembly in Seoul, and having served the Olympic Movement during the last 40 years, it was indeed my greatest personal honor during my lifetime Olympic career. God bless the Olympic Movement!

 

 

 (IOC Pierre de Coubertin Medalist Prof. Rocky Kang-Ro YOON and IOC President Thomas Bach/21 October 2022)

 

Therefore, I would like to take this opportunity to reiterate my special gratitude and appreciation from the bottom of my heart to IOC President Thomas Bach who generously presented it to me on behalf of Korea.

 

Paris already played host to the Olympic Games in 1900 and 1924, and is about to host its 3rd Games, the 33rd edition in 2024.

 

I still vividly remember Paris like I smell the fresh paint!

 

When I served as a member of the IOC Evaluation Commission for the 2008 Olympics under the chairmanship of the late Hein Verbruggen(then-UCI President and IOC member in Netherlands), the Commission members paid a visit to 5 short-listed finalist candidates cities out of 12 applicant cities in the initial bidding process in 2000~2001.

 

 

At that time, Paris was the last (but not the least) candidate city after Beijing, Osaka, Toronto, and Istanbul all bidding for the 2008 Olympics in 2001 that the IOC Evaluation Commission Delegation officially visited for on-site inspections and technical assessments.

 

 

(IOC Evaluation Visit to Paris 2008 and its metro with the Chairman Hein Verbruggen<left-below>)

 

 

Welcoming Red Carpet was rolled out upon our arrival at Charles De Galle International Airport. When all of the IOC Commission members were cordially invited by then-President Jacques CHIRAC to the Palais d'Eysée, Mr. Hein VERBRUGGEN as our Chairman talked with Mr. President in French.

 

As the conversation continued only between Hein and Mr. President Chirac, President Chirac, looking around the Commission Members, asked if there were any Member to join the conversation, and then Mr. Guy DRUT and Mr. Jean Claude KILLY, IOC Members, for France invited me to speak to President Chirac, saying “Rocky, vous avez posé beaucoup de questions en francais dans la réunion (Rocky you asked many questions in French in the meeting)

 

As nobody else spoke, I commented in French with the permission of our Chairman (Hein Verbruggen).

 

 

(Shaking Hands with French President Jacques Chirac at Palais d’Elysee, and French Prime Minister 2001)

 

”Je suis sûr, certain, convincu, et persuadé que(I am sure, certain, convinced and persuaded that) le programme de la manifestation culturelle de la céré monie d'ouverture des Jeux olympique en France sous le ciel de Paris(the cultural program of the opening ceremony of the Olympic Games in France under the sky of Paris) sera excellent, passionant, impressionant, intéressant, ravissant, charmant, élégant, flamboyant, romantique, dynamique, chic, magique, fantastique, magnifique, symblique, historique, unique, merveilleux, mystérieux, superbe, splendide, mémorable, inoubliable, adorable, admirable, remarquable, notable, incomparable, inégalable, incroyable, impeccable, irré sistible et spectaculaire (excellent, passionate, impressive, interesting, delightful, charming, elegant, flamboyant, romantic, dynamic, stylish, magical, fantastic, magnificent, symbolic, historic, unique, wonderful, mysterious, superb, splendid, memorable, unforgettable, adorable, admirable, remarkable, notable, incomparable, matchless, incredible, impeccable, irresistible, and spectacular)”

 

As a result of my ample source of French vocabulary, President Chirac smiled and spoke highly of my French saying that I was the best French Speaking Foreigner. But I must confess that I had prepared some French vocabulary the night before just in case. Hein Verbruggen, Els Van Breda Vriesman, Gilbert Felli, Patrick Baumann (Secretary General of International Basketball Federation), Carlos Nuzman spoke better French than I.

 

Good old memories about Paris 23 years ago.

 

I wish Paris 2024 and the Olympic Movement another resounding success!!!

 

With this aspiration in mind, I dedicate the following 5- line Poem to Paris 2024.

 

P: Peace-loving

A: Arts-loving

R: Rejuvenating

I: Invigorating and Inspiring

S: Smiles to the World

 

I admire the Olympic Games, Olympic Spirit, Olympic Values, Olympism, Olympic Ideals, and the Olympic Motto of “Faster, Higher, Stronger-Together”

 

Dedicated and Written by Prof. Rocky Kang-Ro YOON

Member of IOC Culture and Olympic Heritage and

IOC Pierre de Coubertin Medalist 2022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3. 29. 11:01

[여성지도자의 전성시대 그리고 한국 체육계의 여성지도자들의 위상]

 

 

한국에는 아직까지 대한체육회장에 선출된 여성지도자는 없습니다.

 

IOC위원이나 국제스포츠계 수장에도 한국의 여성지도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성 최초의 태릉국가대표선수촌장으로 용인대 교수를 역임한 현 국제체육정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이에리사 前 국회의원 겸 사라예보 세계여자탁구 선수권대회 우승자가 첫 테이프를 끊었으며 최윤희 여자 수영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선수 출신의 첫 문체부 제2차관과 이어 장미란 여자역도 올림픽금메달라시트 겸 용인대교수출신이 그 뒤를 이어 현 문체부 제2차관직을 수행해 오고 있습니다.

 

 

 (앞줄 가운데가 태릉선수촌장시절 이에리사 현 국가체육정책위원회 공동위원장)

 

 

IOC위원에도 아직 여성선수출신이 배출되고 있지 않는 가운데 여자 골프 Tokyo2020 올림픽금메달리스트 출신인 박인비선수가 Paris2024올림픽에서 한국대표 선수 IOC위원후보명단에 그 이름이 등재되어 있지만 선출 여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긴 하지만 전망이 밝아 보입니다. 박인비 선수가 한국 최초의 여성 선수 출신 IOC위원이 되기를 바라며 응원합니다.

 

2024116일에는 대한수영연맹 부회장을 역임하고 2022년 윤곡 김은용 여성체욱대상 공로상 수상자 겸 여성스포츠회 부회장인 박지영 아티스틱스위밍(Artistic Swimming/以前에는 Synchronized Swimming) 국가대표상비군 선수 출신이 2020년 설립된 스포츠윤리센터(스포츠 계 비리를 조사하고 징계를 권고하는 직무 수행) 신임이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좌로부터: 류제훈 아시아스키연맹 사무총장, 필자, 반기문 제8UN사무총장, 박지영 현 스포츠윤리센터 이사장/IOC쿠베르탱 메달리스트인 필자, Thomas Bach IOC위원장, 박지영 당시 여성스포츠최 부회장)

 

故 김운용 前 IOC부위원장 겸 KOC위원장은 생전에 자신의 아호를 딴 윤곡 김운용 여성체육대상을 제정하여 매년 한국 체육계 여성지도자들을 발굴하여 공로를 인정해 주어 2024년이 벌써 34회 째입니다.

 

윤곡 김운용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은 고() 김운용 IOC 부위원장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한국 여성체육발전을 위해 1989년 제정한 한국 최초의 여성 스포츠 시상으로 자리매김하여 그분의 사후(2017)에도 지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202421일에 거행된 시상식에서는 한국 여자 탁구 간판 신유빈선수가34회 윤곡 김운용 여성체육대상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신유빈 선수/출처: IOC website)

 

 

故 김운용 前 IOC부위원장의 세계관과 여성지도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분 생전의 글을 소개합니다.

 

(서울1988올림픽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Samaranch IOC위원장<사진 가운데>와 김운용 KOC위원장<사진 좌측>과 필자<우측>)

 

 

[김운용의 산고곡심(49)] 여성 지도자의 전성시대 2012.12.3(뉴시스 게재 글)

 

최근 들어 일류국가라고 하는 우리나라에 여성을 비하하는 말들이 정치권에서 튀어나와 귀를 의심하게 하는 일이 잦다.

아무리 윤리, 도덕, 법치가 어지러워졌고 믿거나 말거나 막말과 막가파 세상이라고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상대방 인신공격 자료가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이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현대국가 중에서 일류를 향해 달리는 선진국이고, 아직 유교 사상도 남아있는 나라다. 얼마 전에는 모 야당 의원이 여당 대선 후보를 '' 운운해 물의를 일으키고 또 다른 이는 믿거나 말거나 사생활 자격을 논하더니 이번에는 연세대의 황 모 교수가 생식기만 여자 운운하는 발언을 하고 같은 대학 출신 김성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 위원장이 모교까지 가서 황 교수의 처벌을 요구하는 일이 생겼다. 내가 만난 사람 모두가 그같은 발언은 상식 이하라고 한다.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18세기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을 가진 정치꾼이 있는 것인가? 6·25전쟁때 나라를 지켜낸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역적이라고 발언한 국회의원도 있다. 그는 6·25전쟁 때 나라를 지키는 일에 참여하고서 그같은 말을 하는지? 참전용사들이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면 아마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대선을 위한 '포퓰리즘(Populism· 대중인기영합주의)이었다면 잘못된 것이다. 국민은 국민복지와 경제성장, 국가보존을 위한 실천 가능한 정책 대결을 보고 싶지 실제로 매일같이 보게 되는 네거티브(Negative·부정적인) 운동은 국민을 역겹게 할 따름임을 깨달아야할 것이다.

올 봄에 영국의 재상 마가렛 대처에 관한 '철의 여인(The Iron Lady, 주연 메릴 스트립)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일본의 산케이신문에 앙겔라 D. 메르켈 독일 총리, 줄리아 E. 길라드 호주 총리, 크리스틴 라가라드 IMF 총재,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와 함께 박근혜 새누리당 바상대책위원장(당시)의 사진이 실려있는 것을 보고 여성 지도자의 출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마 가렛 대처는 영국의 고질병인 노조 문제를 정리하고 경제 재건을 하고 1982 4월 포클랜드섬 문제로 아르헨티나와 영토 분쟁이 터졌을 때, 항공모함을 보내 승전으로 이끌었다. 그 아르헨티나에서도 여성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대통령이 되었다.

올 런던올림픽에서는 선수 1만 명 중 44.4%가 여자선수였고 204개 참가국 가운데 34개국이 여자선수를 더 많이 파견했다. 미국의 금메달 46개 중 29개가 여자선수가 딴 것이었고 26개 종목 모두 남녀 종목이 있었다. 자크 로게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100% 여성 포함을 자랑했다. 한국도 원래 여자선수들이 더 활약하는 나라로 알려졌고 지금도 여자선수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IOC 1981년부터 당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이 여성 IOC 위원을 선출하기 시작했고 부위원장, 위원장 후보까지 나왔다.

필자가 KOC(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때 IOC 주최로 1996 IOC생활체육총회(Sports for all Congress)가 서울에서 열렸다. 갑자기 사마란치 위원장이 집으로 국제전화를 걸어와 병원에서는 아무 탈이 없다는데 등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올 수가 없다는 난감한 소식을 전했다. 한국에 와서 한방치료를 받으라고 참석을 간청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내 내자(內子)의 말소리가 들렸는지 전화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여자의 직관이 남자보다 낫다고 하면서 결국 나의 내자의 권고로 사마란치 위원장은 결심을 바꾸고 서울총회에 참석하고 국내 병원에서 양한방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행사를 마치고 귀국한 일이 있다.

지금 유럽의 금융위기 대응을 주도하는 두 명은 메르켈 총리와 IMF(국제통화기금)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다. 아시아에도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 태국의 잉락 친나왓 총리, 호주의 길라드 총리, 뉴질랜드의 헬렌 엘리자베스 총리, 그리고 브라질의 딜마 라나 로제프 대통령, 코스타리카의 로라 친칠라 대통령, 인도의 프라티바 D. 파틸 대통령, 필리핀의 마리아 아로요 전 대통령과 마리아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덴마크의 헬렌 T. 슈미트 총리, 리투아니아의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트 대통령, 라이베리아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 말라위의 조이스 힐다 반다 대통령, 아일랜드의 매리 로빈슨 전 대통령,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 등 여성 국가 수반이나 내각 총리가 현저히 늘고 있다.

대선에 실패는 했지만 대만의 채영문(蔡英文) 총통 후보도 여자고 미국에서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히며 그의 리더쉽에 대한 기대가 크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미국에 여성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한다. 물론 미국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콘돌리자 라이스, 힐러리 클린턴까지 세계 문제를 다루는 국무장관이 세 명이나 여자였다. 이번에도 수잔 라이스 UN 대사가 국무장관 물망에 오른다. 대처 수상이 등장했을 때 이제 여성이 리더가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정치 지도자뿐 아니라 경제, 사회 분야에서도 CEO들이 줄을 잇는다. 그중 힐러리 클린턴은 재임 중 세계 112개국을 방문한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강력한 국무장관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가자 지구의 하마스와 이스라엘간의 정전을 성사시키기 위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요청이 있자 텔아비브로 날아가 베냐민 나타냐후 수상을 만나 휴전 조건을 만들고 다음날 이집트의 모하메드 무르시 대통령을 만나 설득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성공적인 국무장관직 수행은 첫 미국 여성 대통령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보다 여자 CEO가 적다. 미국은 인상적이다. 식품업체 크래프트의 CEO 아이린 로젠필드, 뉴욕타임스의 편집인 질 에이브람슨, 최고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국토안보부 장관 자넷 나폴리타노, 미국식품의약국(FDA) 장관 마가렛 A. 햄버그,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의 메리 샤피로 의장, 디즈니ABC(Disney ABC)의 앤 스위니, 듀폰의 CEO 엘렌 쿨먼, NBC 유니버셜(NBC Universal)의 보니 하머 회장, BOA(Bank of America)의 마가렛 렌 사장, 록펠러재단의 주디스 로딘 사장, 캠벨의 CEO 데니스 모리슨, 하버드대의 드루 길핀 파우스트 총장 등이 있다. 그 외 국가에도 영국 버버리의 CEO 안젤라 아렌츠, 세계무역기구 마가렛 창 사무총장 등, 셀 수가 없다.

국가가 어려울 때 영웅이 나온다고 한다. 그것도 평범한 사회 속의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아프리카의 평범한 소년이었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 승리 연설에서 '미국은 위대한 나라다. 3억 인구가 사니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결국 하나의 미국이고, 거기에는 여당과 야당도 없고 남자·여자, 백인·흑인·히스패닉·아시안계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는 나라이며 그래서 위대하다'고 갈파했다.

이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나라가 태반이다. 왜 여성이 지도자로 요구되는지 모 식자에게 물어보았는데 여성은 남성과 달리 덮어놓고 위에서 밑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계급의식이 적어 강한 사람에게 덜 위협을 받으며 순수성과 감수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가짐을 보고 상대의 경계성을 풀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한다. 또 청렴성과 도덕성을 갖고 있으며 공공성도 배려한다.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즉, 의사소통이다. 그리고 원칙과 소신으로 행동한다. 사무실에 여성 직원이 한 사람 있는 것만으로도 사무실이 밝아지고 한다. 그러한 것이 여성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경제가 혼돈한 지금 여성의 힘을 활용하는 것이 국익을 위한 돌파구이며, 국민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능력 발휘가 있는 나라가 더 부강의 길로 간다는 것이다. 일본도 여성의 힘이 더 발휘되어야 한다고 주요 신문의 사설에 나온다. 며칠 전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TV토론회를 보았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국가위기때 단호히 대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육영수 여사 서거 직후 외국유학에서 귀국하자마자 "휴전선은 이상 없습니까?"라고 했던 일과 독도나 국토방위, NLL(북방한계선) 지키기 등에는 양보가 없고 대처 수상의 포클랜드 승전과 메르켈 총리의 유럽 금융위기 구제 주도를 예로 들면서 연평도공격이나 천안함폭침 같은 도발에는 즉각 강력 대응 의지를 보인 것은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여성 지도자의 리더십과 자질을 보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국민도 그 정도 민도가 높아졌는지 기대해 본다.

[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3. 27. 21:15

[Bach IOC위원장의 탁월한 인성과 지도력을 알아본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쓴 회고의 글(20101018)]

 

한국에서 Thomas Bach IOC위원장과 본인이 가장 친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필자는 Bach IOC위원장과 2018년 이래 벌써 20여차례가 넘는 올림픽운동발전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제안내용을 담은 서한 교신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친숙하게 교류해 왔습니다.

 

 

 

 

Bach IOC위원장은 역대 IOC위원장들 중 한국 방문 동안 공식시상식을 통해 IOC쿠베르탱 메달을 한국인 수상자 최초로 직접 전수 받는 영예를 누리도록 해주었으며(20221021), 2024년 강원 청소년 동계올림픽 폐회식 하루 전인 2024131일 강릉올림픽박물관 방문 시 필자에게 한국 최초로 IOC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회(IOC Culture and Olympic Heritage Commission)위원 임명장을 직접 수여해 준 IOC 및 올림픽 운동사에서 필자를 높게 평가해 주는 멘토들 중 한 분입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그분께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Bach IOC위원장은 필자의 저서(스포츠외교론/한국 스포츠외교실록)에 추천장을 써서 보내 주었으며 필자가 2027FISU 충청권 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전국 공모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축하 사한을 보내 주기도 한 고마운 분입니다.

 

 

 

 

다음은 故 김운용 IOC뷔원장이 본 Bach IOC위원장 스토리입니다:

 

 

 

 

독일의 초대 통합올림픽위원회·체육회 수장이자, IOC 부위원장을 처음으로 연임한 토마스 바흐는 지금도 올림픽운동을 주도하는 지도자이지만 모두들 앞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구촌 스포츠 지도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로 보고 있다. 물론 세상일은 길게 보아야 하고 선거는 뚜껑을 열어 보아야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IOC 관련 이런저런 대소사를 앞두고 있는 KOC에게는 제일 신경이 쓰이는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토마스 바흐는 서독 뷔르츠부르크에서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에 태어났다. 그는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법과 정치학을 공부했고 법학박사를 받았다. 이후 다방면으로 활동을 했고 기업체 회장과 여러 회사의 이사직을 수행했고 아랍, 독일 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냈다.

일찍부터 펜싱 테니스 럭비 등 활발한 운동을 즐긴 바흐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펜싱(플뢰레)단체에서 금메달을 땄고 1976·1977년에 유럽 펜싱선수권 우승 등 많은 경기에서 입상한 펜싱맨이다.

2000
년 시드니올림픽 때 필자는 IOC 집행위원으로서 올림픽 경기 전반 관리, 최초로 올림픽 종목이 된 태권도 경기의 운영 및 감독,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올림픽위원회 수장으로서 한국의 메달 획득을 책임지는 역할 등 유례가 없는 세 가지 소임을 동시에 맡고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으로서 북한의 부산아시안게임 참가를 교섭해야 할 입장이었고, 자연히 북한올림픽위원회와의 남북동시입장 교섭이 덤으로 진행됐다. 원래 국제경기나 회의 때는 많은 사람이 장시간 모여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하기 좋다.

어쨌든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드니올림픽 기간 중 필자는 갑자기 기대를 안 했던 펜싱에서 한국의 김영호가 독일 선수와 결승에 맞붙는다는 연락을 받고 뛰어갔더니 독일의 바흐 집행위원이 와 있었다. 바흐가 메달 시상자로 예정돼 있었다. 독일이 우승할 줄 알고 시상자 신청을 한 것 같았다. 필자도 미리 한국이 우승할 만한(가끔 빗나가기도 하지만) 종목인 양궁 배드민턴 태권도(총재로서 당연히)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의 시상 신청을 해왔다. 개인적으로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아이스하키 금, , 60명 시상을 룩셈부르크 대공, 호주의 고스퍼(Gosper) IOC 부위원장과 셋이서 치른 적도 있다.

시상자는 일단 결정되면 함부로 현장에서 바꿀 수 없다. 그런데 바흐가 독일 선수가 이기면 예정대로 자기가 시상하고 만약 김영호가 우승하면 나에게 시상을 양보하겠다고 제안해 왔다.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며 정중히 사양하는데도 바흐는 괜찮다고 말했다. 참고로 애틀랜타올림픽 때 이건희 회장이 갓 IOC 위원이 됐는데 마땅히 시상할 종목이 없자 IOC 위원장 비서실에 부탁을 넣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남자 양궁 시상자가 노르웨이의 스타우보(Staubo) 위원에서 계획에 없던 이건희 위원으로 무리하게 바뀌었다. 이 일로 양궁 회장이던 제임스 이스턴(James Easton) IOC 위원(미국)이 필자를 엄청나게 오해했고, 현장까지 와서 시상을 못하게 된 스타우보 위원은 IOC 위원장에게 항의편지까지 썼다. 이때 불행히도 한국은 금을 따지 못해서 시상효과가 반감되고 말았다.

 

시드니에서는 예상 밖으로 김영호가 선전하여 금메달을 따게 됐고 그 덕에 필자가 시상을 했다. 남을 배려하는 토마스 바흐의 인간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였다.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면 바흐가 1981년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선수 출신 대표로 두각을 나타냈고,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아디다스(Adidas) 관계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집무실로 필자를 찾아온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유럽 스포츠계는 아디다스 출신이 많다.

곧이어 바흐는 1991년 버밍엄 총회에서 자크 로게(Rogge) IOC 위원장과 함께 IOC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93~94년쯤에는 IOC총회에서도 소장파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그는 96년 애틀랜타에서 이미 집행위원이 되었다. 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집행위원이 된 로게보다 2년이 빠른 셈이다. 필자는 로게가 그때 준 300달러짜리 몽블랑 만년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바흐는 곧 IOC의 여러 가지 업무를 맡게 됐고 동계올림픽 평가위원장, 선수분과위원, 신문분과위원, 사업분과위원, TV교섭위원, 법률분과위원장을 역임했다. 변호사이므로 법률 쪽에 주로 관여했다. 최근 유럽 지역 TV방영권 교섭도 바흐의 책임 하에 진행됐다. 또 메르세데츠 벤츠, 루프트한자 등이 IOC의 스폰서가 되는 데 교량 역할을 했고, 북한올림픽위원회에 트럭과 버스를 기증하고 다리도 놓았다. 바흐는 사마란치 지시로 직접 북한에 가기도 했지만 사실 별 성과는 없었다.

바흐는 가끔 독일 외무장관이 외국에 갈 때 동행하곤 했다. 2001 APEC 회의 때도 독일 총리를 수행했다. 93년 필자와 차녀인 피아니스트 김혜정이 독일 쾰른 국제콩쿠르에 1등으로 입상하여 부상(副賞)으로 베를린, 쾰른, 졸링엔 등에서 연주회를 갖게 돼 필자 내외도 독일로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바흐 부부는 200㎞씩 떨어진 곳에서 달려왔다. 선물은 꼭 독일 작곡가 베토벤이나 바흐 등의 곡이 담긴 CD였다. 외교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바흐가 IOC의 최고 유망주니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얼마 전 한번은 문체부의 김대기 차관이 독일에 가는데 바흐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이 비서를 통해 있었다. 이에 앞서 필자는 유인촌 장관이 러시아 갈 때 소치에 가있던 스미르노프(Smirnov) 위원을 모스크바로 올라오게 했고, 신재민 차관(당시)이 광주U대회 유치를 위해 하얼빈의 FISU회의에 갔을 때 킬리안(Killian)을 만날 수 있도록 국제전화를 통해 주선해 준 바 있다. 하지만 김 차관과 바흐의 면담은 뮌헨과 평창이 경합하는 상황에서 필자가 주선하는 것이 서로 부담이 될 것 같아 직접 재외공관을 통해 만나도록 권고했다. 그 후 만났다는 말은 못 들었다. 이럴 때마다 비서들이 연락을 하기에 정말 장·차관 부탁이냐 물어보았더니 그렇다 했다. 그러나 바흐와의 면담주선을 안 해준 후에는 문광부의 부탁은 끊어졌다.

2001
년 모스크바 IOC총회에서 IOC 위원장 선거 때 필자는 바흐를 지지자로 알고 있었는데 막판에 인상을 쓰고 달려와 이러한 식으로 선거가 혼탁하면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사마란치와 사마란치 주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자기 나름대로 필자에게 알려준 것 같다.

바흐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부위원장을 지냈고, 2006년에 다시 부위원장에 당선되었고, 2010년에 연속해서 부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얼마 전 뮌헨에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때는 IOC 위원 30~40명이 몰려갔는데 로게도 거기에 가서 바흐가 2013 IOC 위원장 선거에서 1순위라고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2011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과 2013 IOC 위원장 선거는 별개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한 나라에 두 개는 안 준다’ ‘대륙순환원칙이 어떻다’ ‘삼수는 어떻다등 자가발전식의 말이 많이 나오는데 정말 그런지 잘 살펴볼 대목이다. IOC는 고차원적인 외교적 발언이 난무하는 사회다.

 

(좌로부터: Jacques Rogge 8IOC위원장, 김운용 IOC부위원장, Thomas Bach 9IOC위원장)

 


2003
년 필자가 IOC 부위원장이 되기 위해 평창을 방해했다는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고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미국의 ITF계 태권도매체가 바흐에게 질문서를 보냈다. 사실 여부를 질의한 것이었다. 당시 바흐의 답신을 읽어보면그런 사실도 없고 부위원장 선거와 개최도시는 별개의 문제며, 파운드(Pound)의 위원장 출마와 토론토의 올림픽 유치가 동시에 있었고 더구나 프라하에서의 부위원장 선거는 평창이 떨어진 후에 있었다고 돼 있다. IOC의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던 독일 법률가의 답신인 것이다. ITF 총재를 맡고 있는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은 지금도 그런 질의서를 보낸 사람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고개를 흔든다.

2008
년 광주가 201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유치할 때 바흐와 트로거(Troger)에게 독일 교수(FISU 집행위원)에게 우리를 지지하도록 부탁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우리는 너무 늦게 나와 불리했고 킬리안 FISU 위원장의 호의로 다음 대회인 2015년 대회까지 염두에 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바흐에게 독일의 함부르크도 2015년 대회를 유치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더니 “2000만 유로 이상 예탁금을 내고 유치하는 것은 내가 허가 안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 말대로 광주가 2015년에 재도전할 때 함부르크는 나오지 않았다. 약속도 지키고 실리도 고려한 것이다. 광주는 작년에 쉽게 2015년 유니버시아드 개최권을 따냈다. 킬리안 FISU 위원장도 고마운 사람이다. 광주가 유니버시아드대회를 계기로 국제화되기를 빈다.

 

바흐는 2006년 독일 월드컵축구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2011 FIFA 여자월드컵축구 조직위원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독일은 예산을 가지고 있는 슈포르츠 분트(Sports Bund·체육회)와 올림픽에 선수를 보내는 독일올림픽위원회가 오랫동안 옥신각신하는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독일 체육회와 올림픽위원회가 독일올림픽체육회(GOSB)로 통합되면서 바흐가 창설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통일 독일의 체육을 발전시키고 올림픽에서의 좋은 성적을 내는 것, 2011년에 뮌헨-가미쉬(Munchen Garmish)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하는 것(그렇게 되면 같은 도시가 하계·동계올림픽을 다 치르는 도시가 된다), 2013년 차기 IOC 위원장 선거에서 승리해 21세기 올림픽 운동을 이끄는 것 등이 있다.

바흐를 보면 우리와 참 다른 것은 3수가 어떻고, 한 나라에 두 개는 안 준다, 대륙순회가 어떻다 등의 근거 없는 상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타내지 않으면서 조용히 내실을 기하면서 확실한 계산과 판단과 확증에 의해 능률적으로 움직인다. 독일 사람들은 딱딱해 보여도 따뜻하고 지킬 것은 지킨다. 허튼 수작을 한다든가 쓸데없는 짓은 안 하고 아주 확실하다. 향후 한국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런 바흐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우리 일간지 기자가 필리핀의 엘리잘데(Elizalde) IOC 위원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같은 이야기였다. 대륙별 순회에 대해서는개최 준비 여건이 중요하다”, “일본은 두 번이나 동계올림픽을 하지 않았느냐는 답이 나왔다. 또 평창은 어떠냐는 질문에는준비나 잘하라. 인천에서 철도를 개설한다는 말은 들었다하며 내실을 강조했다. 귀담아 들을 일이다.

IOC 수석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3. 22. 11:08

[IOC윤리위원회, Bach IOC위원장에게 3선 출마 촉구에 대한 수락여부결정을 Paris 2024대회 종료 시까지 자제하도록 요청하다]

 

320일자 외신 보도 내용 중 하나 입니다.

 

IOC윤리위원회는 Bach IOC위원장에게 올림픽 헌장규정개정이 요구되는 3선 출마 촉구에 대한 수락여부 결정 자체가 이슈의 초점으로 맞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in order to keep the focus away from the issue) Paris 2024올림픽 종료 시까지 공개하지 않아 줄 것(not to reveal his decision on whether to accept calls for a third term)을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반기문 IOC윤리위원장 겸 제8UN사무총장 및 Thomas Bach IOC위원장과 함께)

 

 

202310월 인도 Mumbai개최 IOC총회에서 알제리 IOC위원인 Mustapha Berraf16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IOC위원들을 대신하여 Thomas Bach IOC위원장이 올림픽운동을 둘러싼 복수의 위기이슈등을 감안하여 2025IOC위원장 직에서 물러나자 말고 재임, 사실 상 3선하도록 요청함(asking on behalf of the 16 African members that President Thomas Bach (GER) stay on in view of the multiple crises surrounding the Olympic Movement)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caused a sensation) 바 있습니다.

 

다음은 Berraf위원의 발언 내용 요약입니다:

 

“Bach IOC위원장은 고난의 기간을 이겨내며 자신의 결단력을 증명한 바 향후 성취를 이룩하도록 추가적으로 임기를 연장하도록 허용되어야 하며 그리 함으로 IOC가 아주 차분하게 인수인계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함” (President Thomas Bach should be allowed to carry out an additional term of office, which would allow the IOC to go through this period of torment with a President who has proved his mettle, and which will allow the IOC to prepare a transition in a very much more serene manner.)

 

Berraf 알제리 IOC위원의 이 같은 제안은 3명의 다른 IOC위원들로부터 재청과 3청을 받은 바(endorsed by three other members) 있지만 2013년에 8년 첫 임기 후 2021년에 두번째 임기 4년 재임을 완수한 후 3번째 임기를 허용 받기 위해서는 올림픽헌장규정이 개정될 필요성(the Olympic Charter would need to be amended)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319() IOC윤리위원회는 차기 IOC위원장 선거를 위한 지침(directives)과 관련하여 IOC집행위원회에 메시지를 발송하였는데 그 내용을 Mark Adams IOC대변인이 IOC 집행위원회 후 기자회견에서(at the post-meeting news conference) 낭독하였다고 합니다:

 

(1) 지침서 내용은 Mumbai개최 IOC총회에서 언급된 바대로 현재 검토 중임. 2번의 이전 IOC위원장선거에서 적용되었던 원칙이 유지될 것임” (The directives are currently being reviewed, as mentioned during the IOC Session in Mumbai. The principles which apply during the two previously election processes will remain in place.)

 

(2) 신종 미디어, 소셜 미디어 및 디지털환경을 고려하여 텍스트는 그와 걸맞게 조정될 것임. 2024년 버전은 IOC윤리위원회가 하계올림픽이전에 제도화된 차기 회의기간 동안 최종 마무리될 것임”(Considering the new media, social media and digital landscape, the text will be updated accordingly. The 2024 version will be finalized by the IOC Ethics Commission during its next institutional meeting before the Olympic summer.)

 

(3) 이러한 지침서의 관점은 중요한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2025년에는 선거가 예정되어 있으며 이러한 규칙들은 향후 모든 선거과정에서 적용 되어야할 것들임”(The view of these directives is important, since there will be an election – as we all know – in 2025, and these rules will have to apply during all future election processes.)

 

(4) 선거와 관련된 IOC위원장의 결정과 연관하여, 그러한 결정의 타이밍이 (차기 IOC위원장)선거 캠페인 자체뿐만 아니라 (Paris2024)올림픽개최 전반에 걸쳐 대회자체에도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고도의 위험요소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지도 모름”(In relation to the IOC President’s decision regarding the election, it is clear that the timing of such a decision, may create a high risk of overshadowing the course of the Olympic Games, as well as the election campaign itself.)

 

(5) 따라서 이러한 선거과정을 보호하기 위하여, IOC위원장은 그러한 결정을 올림픽 종료 시까지 연기할 것을 권고하는 바임” (Therefore, in order to protect this election process, it is recommended to the IOC President to postpone any such a decision until the end of the Olympic Games.)

 

(6) 올림픽헌장규정개정이 필요하다고 사료될 경우, 이러한 것은 (추후) 언제라도 IOC위원들에 의한 우편 투표로 실행될 수 있음”(In the event that the Olympic Charter may need to be amended, this can be organized at any time by a postal vote by the IOC members.)

 

Bach IOC위원장은 아직까지 공개적으로 추가 임기를 위한 위원장선거돌입여부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has not said publicly whether he would agree to run for an additional term)이러한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사적으로 논의할 요량이라고(he would discuss it privately with those who are supporting the idea)언급하였다고 합니다.

 

Bach 자신이 1999년 올림픽헌장규정개정에서 위원장선거규정을 다시쓰기과정에서 현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는데 일조하였기 때문에 Bach IOC위원장으로는 특히 어려운 문제일 것(an especially difficult question for Bach, since he helped to form the current guidelines in the re-write of the election regulations in the revision of the Charter in 1999.)으로 사료됩니다.

 

IOC집행위원회는 권고사항을 채택하였음으로 Paris2024올림픽이 종료되는 8월까지는 향방에 대해 알 수 없을 것으로 예상( expect to hear nothing one way or the other from Bach until August) 되지만 갑론을박은 향후에도 누그러지지 않고 계속될 것(the chatter will continue unabated)으로 보입니다

 

 

 

*References:

-The Sports Examiner

-IOC website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3. 21. 10:52

[스포츠외교정책은 확증(確證 Evidence)과 실리(實利Benefit)를 바탕으로 세워져야(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의 산고곡심山高谷深 칼럼 중에서 20121227)]

 

 

세계스포츠지도자로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셨던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의 스포츠외교정책에 대한 가치관을 담은 글이 여전히 인상적입니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KOC위원장과 Vitaly Smirnov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겸 IOC부위원장이 양국 NOC가 역사적인 스포츠교류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다음은 작고하시기 전인 20121227Newis에 기고한 칼럼 내용입니다.

 

얼마 전 문재인 후보가 휴전선 DMZ(비무장지대)에 남북공동으로 평창올림픽 경기장일부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는 언론보도가 나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내건 한반도 평화통일을 2007년 과테말라 IOC(국제올림픽위원회)총회 때 하도 많이 얘기했더니 IOC위원들이 올림픽은 스포츠행사인데 너무 많은 정치 슬로건을 내거는 것은 식상하니 그만하라고 권고했고 그때는 대통령이 앞장섰지만 유치에 실패했다. 2011년 남아공 더반 IOC총회 때는 내용을 수정해 올림픽 개최 이념, 유산, 경기장 시설, 운영계획, 문화행사, 청소년 육성 등을 내세워 독일 뮌헨을 누르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세 번에 걸친 유치 운동에 퍼부은 돈은 얼마인가? 그때 내세운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도 하루에 이자만 1억씩 까먹는 애물단지가 되었고 몇 개월 안가서 파산한다고 올림픽 관련 소식지 '스포르트 인테른(Sport Intern)'도 이를 기사화하기도 했다.

최근에 대선 후보들이 앞으로 있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방문할 때마다 재정지원과 건설지원을 약속한다. 물론 유치해 놓은 대회는 성공을 시켜야 하겠지만 안 그래도 수입은 없는데 지금까지 유치했던 대회도 재정투자(국민세금)만 들어가고 사후관리와 유지비가 적잖게 소요돼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월드컵 축구장도 문 닫는 곳도 두 개나 된다. 그런 돈은 국민복지와 국방에 투입함이 더 타당한 것 같다.

선거 때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 난무한다고 하지만 특히 DMZ 내에 남북공동으로 경기장을 건설한다는 일방적인 주장은 IOC의 웃음거리가 되고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또 북한도 놀랄 일이다. IOC는 영토와 국민은 없어도 IOC헌장만 갖고 100년 이상 살아남으면서 미국, 소련의 두 번에 걸친 보이콧도 물리친 올림픽운동의 통합기구다. 88서울올림픽 때는 북한이 소련, 동독 등을 통해 서울올림픽 공동개최를 요청했지만 IOC헌장에 공동개최는 언급돼 있지 않아 몇 종목 분산 가능성을 놓고 4차에 걸쳐 남북체육회담을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했지만 실효성이 없어 무산됐고 그 결과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이 참가하게 됐다. 이때 북한에서의 분산개최는 경기장뿐만 아니라 선수, 임원, 방송통신 요원, 내빈의 출입국, 안전, 경비, 방송, 통신, 수송, 경기운영 등의 문제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공동개최가 소련·동독 등 공산권 국가들에 서울올림픽 참가 명분을 준 감은 있다.

2000
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6·25 전쟁 발발 50년 만에 '코리아(KOREA)'라는 국호와 한반도기를 내걸고 같은 유니폼을 입고 남북 선수 180( 90)이 개회식에 하나가 돼 동시 입장해 세계의 갈채를 받았다. 이때도 IOC위원과 남북 IOC위원이 어려운 협상을 벌여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의 도움으로 겨우 성사시켰다. 이때 한국 선수단은 300명였지만 경기 스케줄에 따라 선발대 110명만 와있었고 나머지 후발대는 1주일 후에 오게 돼 있었다. 특히 행진인원을 동수로 맞추어야 하는데 북한의 경우 출전 임원선수가 65명밖에 안돼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항공료와 숙소, 비자문제를 해결해주기로 하고 IOC의 특별초청으로 25명을 평양에서 급히 불러오고 유니폼 대금 4만 달러도 IOC가 마련해 모양 좋게 90명씩 총 180명이 동시입장을 했는데 이 같은 사정을 모르는 모 정당대표가 서울에서 간 선수가 300명인데 90명만 행진하면 나머지 200명은 희생하라는 말이냐며 KOC(대한올림픽위원회)를 비난하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 와 있는 110명도 그 다음날 경기에 나갈 선수들이 많아 90명을 채우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KOC에 물어 보았으면 그같은 발언은 안했을 것이다. 정말로 선수를 아끼고 생각하는지 가치 없는 포퓰리즘이 작용했다.

과테말라 IOC총회를 전후해 남북공동 개최를 강원도가 말끝마다 내걸었는데 북한 IOC위원이 북한에는 함경남도 삼방(三防)에 썰매장 정도밖에 없는데 무엇으로 공동개최를 하느냐며 불가능하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올림픽경기장은 막대한 건설비용 이외에도 임원, 선수, 내빈, 자원봉사자, 방송통신 요원의 출입, 통관, 안전경비, 전자장비, 숙소, 방송센터, MPC, 수송, 접근로, 사후관리 등 수 없는 과제를 갖고 있다. 또 올림픽 경기가 UN 사무총장 소관도 아니고 IOC위원장인 자크 로게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제적 타당성을 고려해 사후관리가 안 되는 대회 유치를 제한하는 일과 이왕 지금까지 유치한 2014인천아시안게임, 2015광주유니버시아드,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경제적으로 성공시키고 국민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요즘 지방자치단체가 2024년 부산올림픽,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남이 개최하는 자동차 경기인 F1 2013년에 얼마나 손해를 볼까. 한국이 세계의 봉이 된 지 오래다. IOC의 웃음거리가 되고 실효성 없는 구호는 스포츠에는 금물이다.

12
일 아침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보도됐다. 유엔(UN)과 미국, 중국, 일본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UN안전보장이사회도 소집된다. 과연 북한을 믿고 상호협력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야당 대선후보의 장밋빛 대북정책도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어야만 국민이 안심을 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국토 보존이다. 외교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Ideology)' '상상(Imagination)' 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확증(Evidence)'과 실리로 하는 것이라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말이 생각난다.

[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3. 20. 10:20

[역대 최고의 스포츠지도자 겸 스포츠외교관 故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의 회고록(체육은 체육인 손으로 2013114일 산고곡심山高谷深 칼럼 중에서)]

 

역대 최고의 스포츠외교관 겸 최고의 지도자로 불리워도 손색이 없는 고 김운용 IOC부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의 국내외 스포츠 미래와 현실을 직시하는 탁월한 통찰력과 역사적 관점에서의 식견은 고인이 되셨지만 현 시점에도 눈 여겨 보고 벤치마킹해야 할 대목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1985년 동 베를린 개최 IOC총회에 당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부위원장자격으로 참석한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총재<좌측> 당시 노태우 SLOOC위원장 그리고 이영호 체육부장관 겸 SLOOC집행위원장 보좌관 자격으로 수행한 필자와 함께)

 

 

이래 내용은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2013년 뉴시스(Newsis)에 게재했던 칼럼 내용 중 일부입니다:

 

원래 체육은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하던 것이 경제 발전과 함께 20세기 말에 극적인 대중화를 이룩하면서 모든 사람이 즐기게 됐고 이야기하게 됐다. 소비자로만 생각하던 경제도 스포츠의 마케팅 가능성과 부가가치성을 보고 참여했고, 메시지와 감동, 동원력이 큰 것을 본 정치도 관여하게 됐다. 이제 스포츠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관광, 교육, 환경, 마케팅, 마약, 베팅(Betting), 법률, 학술, 의학 등 모든 분야를 총망라해 발전하게 됐다.

올림픽 경기는 평화時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서 프로화·상업화 했고, 이제 정부의 막대한 투자 없이는 올림픽경기 유치와 메달 획득이 어렵게 됐다.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독일, 일본, 호주 등 상위 10위권(한국 포함) 국가들은 메달 획득을 위한 '무기 경쟁(arms race)'을 벌인다. 경기력 강화에 중국은 1년에 45000만 달러를 투자한다.

그러면서도 올림픽은 긍정적인 사회운동으로서 세계평화와 청소년 교육이라는 올림픽 이념을 내걸고 나름대로 노력한다. 원래 한국의 스포츠는 메달보다 참여에 만족하던 변방 스포츠였으나 1981년 바덴바덴에서 기적적으로 88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막대한 정부 투자를 통해 스포츠 시설을 건설하고 경기력을 향상시켜 세계스포츠강국과 자웅을 겨루게 됐다.

'
체력은 국력' '체육 입국'을 내걸었던 박정희 대통령 때 체육고등학교와 체육대학도 설립하고 태릉선수촌도 건립됐다. 소년 체전도 창설했지만 1970년대 대한체육회 예산은 연간 1억원(문교부 보조)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각 경기 단체에 국가 보조도 없었고 단지 경기단체 회장의 능력과 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재정동원수완에 의존했다.

사격 박종규, 축구 장덕진, 야구 김종낙, 농구 이병희, 스케이트 김재규, 레슬링 김영관, 럭비 주창균, 배구 이낙선, 태권도 김운용, 복싱 김택수, 체육회장 민관식·김택수가 기억나고 각자 헌신적으로 자기 스포츠 발전에 기여했다. 1974년에 처음으로 세계사격선수권대회(1978년 개최)가 유치됐고, 1972년에는 국기원 건립, 1973년에는 세계태권도연맹이 창설됐다.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한 국민체육심의회의(최규하·남덕우 총리, 박찬현 문교, 정상천 서울시장, 박종규 KOC(위원장), 김택수 IOC(위원), 김운용 WTF/총재)가 국무총리 주재로 1979년에 두 번 개최됐다. 오늘날의 스포츠 강국으로의 기초가 다져진 것이다.

다음 단계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유치 후 일이다.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스포츠 면에서나 세계의 변방이었던 한국이 1988서울올림픽 개최 준비를 하고 국민을 기쁘게 할 메달 경쟁을 시키기 위해 정부는 막대한 재정 투자를 올림픽 마케팅과 함께 했으며 일부경기단체를 대기업 회장에 위임하는 형식을 취했다. 육상은 한전, 수영과 양궁은 현대, 배구는 효성, 야구는 태평양, 조정·근대5(대한주택공사) LG, 축구·요트는 대우, 테니스는 대한항공, 농구와 마라톤은 코오롱, 레슬링은 삼성, 탁구는 동아건설, 복싱은 김승연, 핸드볼은 김종하 등이다. 서울올림픽 성공을 위해 거국적인 노력을 했고 재벌들의 공헌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후 백년대계를 위해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창설되고 올림픽 잉여금 3000억원과 대한체육회진흥재단 기금 500억원을 바탕으로 모든 스포츠 (마케팅)휘장권까지 부여 받아 스포츠 지원금의 큰 몫을 차지한다.

메달리스트 지원금과는 별도로 대한체육회의 연간 예산 1350억원은 국민 세금과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배정한다. 이 예산으로 세계에 자랑하는 태릉선수촌은 각 종목 대표선수, 후보 선수들을 1년 내내 훈련시킨다. 국제 규격의 실내스케이트장도 2000년 필자가 대한체육회장 때 국비 250억원으로 건립한 것이다. 국가지원 덕에 각 경기 단체도 수십 억씩 기금 적립도 하게 됐다. 이제 재벌에 의한 약간의 홍보성 지원 갖고는 국가의 방대한 투자를 통한 올림픽 경기 유치나 메달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경기장 시설 건립과 유지도 마찬가지다.

곧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한 각 종목경기단체장 선거가 돌아온다. 체육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체육도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탈세, 수뢰, 배임 등으로 경제 민주화의 대상이 되고 사업에 열중해야 할 사람 또는 매명(買名)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인이 체육 단체를 독점하는 시대는 끝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체육회가 공정선거위원회를 형식상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선거이든 보이지 않는 손이 미리 작업을 하는 예가 태반이었 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도 향기롭지 못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대한체육회장은 물론 아마추어·프로를 모두 차지하겠다는 종목, 될 가능성도 안 보이는 IOC위원 운동을 하는 등 가관이다. 오늘날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호주 어느 곳도 그같은 나라는 없다. 자신의 스포츠에 열정을 갖고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그만두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평생 스포츠에 헌신하는 체육인들은 체육 발전을 위해 영원히 정열을 바쳐야 할 사람들이다. 경제 민주화처럼 체육계도 체질 개선을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독일 대통령(요하임 가우크)은 얼마 전 "스포츠는 스포츠인이 주역이고 정부는 어디까지나 지원한다"고 말했다. 스포츠인이 주역이 되고 정부나 재계가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체육인이 헌신적으로 지도하고 대기업이 후원하는 체제가 이루어져야 할 때가 왔다. 재벌도 스포츠단체를 지원해주면서 프로스포츠를 육성한다든가, 고령화 시대 지역사회 건전화를 위한 사업에 힘을 보태주는 것이 시대에도 맞고 바람직하다. 대한체육회 이사진도 체육인들은 배제되고 오로지 재벌 인사로 채워져 있는 것도 국민통합이라는 시대 정서에 안 맞는다.

체육인들은 21세기에 세계와 경쟁하고 엘리트 체육, 학교체육, 생활체육을 균형 있게 지원 발전시키고 체육인들의 복지를 지원 조정하고 청소년 교육을 지도하는 체육청소년부의 문화관광부로부터의 독립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청소년의 인성교육과 학교폭력 근절 그리고 사회 참여에도 스포츠의 역할이 요망될 때다.

[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3. 19. 11:22

[세계스포츠계 지배 구도 중 추억의 라틴 마피아 4인방의 면모와 실상(김운용 前 IOC 수석부위원장이 전해준 이야기 중에서)]

 

향년 86세로 2017103일 작고하신 故 김운용 IOC수석부위원장(1931 319일생)은 한국 스포츠외교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불세출의 최고 스포츠 외교관입니다.

그분은 저의 멘토였으며 대한체육회장/대한올림픽위원회(KOC)위원장 재직 9년 간 특히 국제적으로 그분을 보필하며 그분의 스포츠외교족적과 업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직간접적으로 그분의 내공을 벤치마킹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세계스포츠계 3대축인 (1)IOC-(2)IFs(국제연맹)-(3)NOC(국가올림픽위원회)를 모두 석권하신 세계스포츠지도자들 중에서도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신 분이었습니다.

태권도를 정립하면서 (1)세계태권도연맹(WTF/1973)창설총재로서 (2)월드 게임(The World Games/미국 Santa Clara 1회대회)창설 국제월드게임협회(IWGA)회장과 (3)IOC인정종목 연합회(ARISF: Association of IOC Recognized 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s)회장 (4)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회장 (5)IOC위원-집행위원-부위원장 (6)IOC TV위원회 위원장 (7)Olympafica 재단 집행위원장(8)대한태권도협회장 (9)국기원장 (10)대한체육회장/대한올림픽위원회(KOC)위원장 (11)1999년 강원동계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12)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초대 위원장 등을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OlympAfirca재단 집행위원장 재직 시절 세네갈 Dakar 방문 시 당시 세네갈 대통령<우측>과 함께한 김운용 IOC부위원장)

 

김운용 IOC수석부위원장께서는 2000년 초 열린 IOC집행위원회에서 필자(Rocky YOON)를 당시 사마란치 IOC위원장에게 직접 천거하여 아시아 최초로 IOC평가위원회 위원(2008년 올림픽)으로 임명되어 IOC에 정식으로 등재되어 활동하도록 국제스포츠외교관으로 처음 인정받도록 길을 열어 주신 분이었습니다.

 

 

(2008년 올림픽 IOC평가위원회 5개국 결선진출도시 방문을 마치고 IOC집행위원회 회의실에서 최종보고서 작성 후 당시 Samaranch IOC위원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는 필자와 짐바브웨 IOC위원 겸 IOC평가위원인 Tommy Sithole/20013)

 

1999년에는 당시 필자는 대한체육회/KOC국제사무차장으로 서울 개최 제109IOC총회 조직운영을 총괄하는 총회조직위원회 CEO역할을 맡기시어 국제스포츠행사 모든 부분을 직접 기획-운영-관리-총괄하는 중책 수행을 통해 종합 역량을 강화하게 하시고 당시 IOC사무총장(Mme. Francoise Zweifel)과 매일 직접 소통을 함으로 IOC행정과 IOC총회조직운영을 단기간에 리드해 갈 수 있는 개인적 위상과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생전에 집필하셨던 김운용의 산고곡심(山高谷深)”이란 칼럼에서 쓰신 라틴 마피아 4인방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해 드립니다.

 

사마란치 시대 때 소위 라틴마피아 4인방이라고 불린 사람은 사마란치를 포함해서 아벨란제 FIFA 회장(브라질), 네비올로 육상회장(이탈리아), 그리고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 ANOC 회장(멕시코) 4명이다. 모두 은퇴했거나 사망했고, 아직 남아있는 사람은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 한 명뿐이다. 아직도 IOC 위원에 IOC Solidarity 위원장, ANOC 회장, 팬암스포츠기구(PASO) 회장 자리를 차지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교육 수준은 별로이고, 연설문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길기만 길다고 한다. 대통령 경호직을 하면서 재산관리를 해서 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또 멕시코의 유명한 언론재벌로 알려져 있다. 한때 미국의 UPI통신사도 인수한 바 있다.

 

 

(Mario Vazquez Rana ANOC회장 겸 IOC집행위원과 함께)

실제로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의 대저택은 풀(pool) 등 호화시설에 경호원과 종업원이 40명에 달하고, 헬리콥터로 사무실에 출근한다고 한다. 식사는 밖에 나가 먹지 않고 사무실내 식당에서 먹는다. 실제보다는 조금 더 과장해서, 마치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들에게 비치는 것을 좋아하는, 소위 목에 힘을 주는 타입이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여기에 넘어간다. 사마란치가 생전에만약에 마리오가 IOC 위원장이 된다면 그날이 IOC가 망하는 날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의 등살에 못 이겨 사마란치는 네비올로에 이어 마리오도 IOC 위원을 시키려고 ASOIF 회장과 ANOC 회장만은 올림픽가족(Olympic Family)의 단결을 위해 예외적으로 당연직 IOC 위원으로 하자고 몇 년을 두고 IOC 위원들에게 간청을 했다. 결국 사마란치는 1991년 버밍엄(Birmingham) 총회에서, 마리오를 위해 측근들을 통해 사전작업을 해놓고도 표가 안 나올까봐 반대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공개거수투표를 시키는 등 무리수를 두어 마리오를 IOC 위원으로 만들었다. 그런 막무가내식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마란치는 거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솔트레이크(SALT LAKE) 사건을 일으켜 미상하원 청문회에도 불려나가 망신을 당하는 등 고생을 한 것이다.

이때 멕시코에는 이미 2명의 IOC 위원이 있었고 IOC헌장을 적용할 경우 그 이상은 불가능할 때였다. 마리오 문제는 앤 공주(영국), 윌슨 위원(뉴질랜드) 등 영미계통이 앞서서 반대했지만 사마란치의 독단적인 안건처리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를 처음 만난 것은 1974 10월 필자가 대한체육회 부회장, KOC 부위원장 겸 명예총무로 있을 때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유치하러 스위스 수도 베른(Bern)에 갔을 때다.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라 해도 이제 겨우 창설해서 아직 공인을 받지 못한 임의단체로 아무도 국제연맹 취급을 안 해줄 때였다. 사격연맹 회장 박종규가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으로 경호실장을 사임하고 근신하고 있어 필자에게 대신 가달라고 사정을 해왔다. 별로 내키지 않아 사양했지만 간청에 못 이겨이길 자신은 없다고 전제하고 서재관 사격연맹부회장, 정진우 영화감독, 박갑철 기자(조선일보), 신용석 조선일보 파리특파원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이끌고 갔다. 박종규 지시로 신용석은 사전에 로비를 위해 20여개국을 돌았었다. 이때 한국은 경제가 아주 나빴고 학생 소요도 많을 때였다. 마리오는 이때 멕시코 올림픽 위원장이며 사격연맹 회장이었고 부럽게도 부부동반으로 와서 세계사격연맹 간부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등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이때만 해도 멕시코는 1968년에 이미 올림픽을 치른 스포츠 선진국이었다.

베른(Bern) IPU , 국제우편연합 건물(국제법 시간에나 들은 이름)에서 총회가 있었고, 제안 설명은 마리오가 멕시코를 대표해서 먼저 스페인어로 했다. 아주 고답적으로멕시코는 팬암게임, 올림픽게임을 치렀고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멕시코의 환대는 알 것 아니냐고 하면서 선수 숙식비도 일당 10달러로 한다고 물량 공세로 나왔다. 필자는 한 8~9달러 정도 부르려다가 그것으로는 도저히 못 이길 것 같아 1~2억 원 더 쓰더라도 이기는 것이 득이 될 것으로 판단하여 독단적으로우리는 하루 숙식(Room & Board) 5달러에 한다고 제안했다. 질문에 어느 나라 돈이냐 하기에 마리오도 미화 10달러, 나도 미화 5달러라고 다시 강조했다. 결국 오찬 후에 열린 표결에서 기적적으로 한국이 62 40으로 이겨 1978 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서울로 가져오게 됐다. 이때 마리오 등 멕시코 대표단은 인근 호수(Thun See)의 선상 파티에서 술만 잔뜩 퍼마시는 것을 보았고, 그 후 멕시코는 사격대회 유치를 다시 신청하지 않았다. 이 세계사격대회의 서울 유치를 영국의 데이비드 밀러(David Miller) 대기자는 그의 저서 <올림픽 혁명>과 에서 동북아 정치 지정학적 지각변동의 시작이라고 불렀다.

 

 

(2008Beijing ANOC총회개회식에서 필자에게 ANOC공로훈장을 전수한 Mario Vazquez Rana와 그의 삼녀 Miriam Vazquez Rana와 함께)

 

마리오를 다시 만난 것은 1977년 멕시코에서 창설한 제1회 팬암태권도대회 개회식에서 였다. 마리오는 필자와 함께 개회사를 했다. 필자는 GAISF 가입에 이어 각국 협회 설립과 각 대륙 연맹을 조직하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다. 다른 많은 나라가 그랬듯이 멕시코 태권도협회가 가라테(Karate)연맹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팬암(Pan Am)태권도대회도 멕시코 가라테연맹이 주관했고 마리오가 그 후원자였기 때문에 참석한 것이다. 마리오는 1975년부터 팬암게임 연맹회장이 돼 있었고, 1979년에는 IOC 3대기구의 하나인 ANOC 회장을 맡아 1981년 바덴바덴 IOC 총회 때는 이미 세계스포츠계의 거물이 돼 있었다.

마리오는 바덴바덴에서 아디다스(Adidas)사의 다슬러(Dassler) 회장 등과 함께 막판에친한(親韓)’으로 기울었고(투표권은 없었다), 서울올림픽준비 기간 중 노태우 위원장과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IOC에 눌려 특별한 역할은 별로 없었다. 다만 1986년 롯데호텔에서 ANOC총회를 열 때 각국 NOC 수장이 대거 방한해 서울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이때 한국은 참가인원 전원에 숙박비와 항공료를 지급했다. 그런데 마리오는 항공비는 멕시코에서 낼 테니 65만 달러(항공료 지원비)를 미국의 자기 계좌로 보내달라고 해서 그렇게 지시한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당시 한국은 어떤 요구이든지 OK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약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UN방문에 이어 멕시코를 국빈 방문했을 때는 특별히 자택에서 노태우 대통령 일행을 초청했고 필자도 참석했다. 그 자리에는 멕시코의 전직 대통령이 두 명이나 참석했다.

마리오는 여러 개 신문을 가지고 있어 세계 각국의 원수들을 인터뷰해서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또 늘 사진사가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을 만들어 주는 일은 없었다. 노태우 대통령 방문 전에 멕시코 전역에 신문으로 PR도 해주었다.

서울올림픽 준비기간 중 한 번은 사마란치가 마리오 전용기에 함께 동승해 방한하러 온다는 전갈이 왔다. 이에 사마란치가 있는 스위스 로잔에 확인을 해보니취침 중이라는 답이 나왔다. 그런데도 마리오의 전용기에서 사마란치가 타고 있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다. 할 수 없이 서울올림픽조직위의 최고위층 전부가 공항에 나갔다. 전용기에서는 마리오와 동생 올레가리오(Olegario) 사격 회장이 내렸고 사마란치는 결국 오지 않았다. 안 나올 사람들이 모두 비행장에 마중 나오게 하는 마리오의 전문적 술책이었다.

서울올림픽은 IOC주관이었기에 마리오는 별로 역할도 없이 NOC 차원에서 움직였고, 1991년 무리수이기는 했지만 IOC 위원으로 입성한 후 점차 ANOC를 기반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또 네비올로는 사마란치에게 대들지만, 마리오는 아양을 떨면서 따라만 다녔다. 사마란치를 더없이 편하게 해준 것이다.

마리오와 다시 대면한 것은 1983년 팬암(Pan Am)게임 총회가 베네수엘라(Venezuela)의 수도 카라카스(Caracas)에서 있을 때였다. 이때 필자는 각국에 사범 위주로 산재되어 있는 태권도를 NOC가 인정하는 공인협회로 승격시키고 올림픽을 향한 하나의 중요한 과정으로 대륙 경기에 넣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마침 서울올림픽 준비기간이라 서울에 오는 각국 지도자들을 국기원에 초청했다. 이때 코스타리카(Costa Rica),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아르헨티나(Argentina) 위원장들 특히, 미국 위원장단들을 통해 태권도의 팬암게임 정식종목 신청을 내게 했다. 그때는 예산도 없어 자비로 현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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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도 옵저버 자격인 까닭에 간신히 참석해 뒤에서 공작할 때였다. 회의 막판에 태권도 문제가 상정되었는데 의장인 마리오가 태권도가 좋은 스포츠지만 팬암게임 종목이 너무 많아서 곤란하니 2년 후 쿠바총회에서 다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안 넣겠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대해 코스타리카 등이 자국에 보급되어 있다고 발언하고 미국의 에비 데니스(Evie Dennis) 부위원장이그렇게 좋은 스포츠라면서 왜 2년을 연기하느냐? 지금 표결에 붙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제창, 3창을 거쳐 투표를 한 결과 찬성 22, 반대 2, 기권 2표로 태권도가 팬암게임의 정식종목이 됐다. 이때 마리오는 필자 보고 한 마디 하라고 해서 기분 나빠서 사양하다가앞으로 중남미 태권도 보급과 팬암게임 태권도 경기운영은 잘되도록 지원하겠다고 역설했다. 이후 태권도는 1987년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 팬암대회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였고 필자도 참석했다. 그때 필자는 이미 IOC 위원이 되어 있었고, 미국태권도협회도 미국올림픽위원회 A급 회원이 된 까닭에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잉여금에서 100만 달러도 탄 바 있다.

마리오는 나에게 크게 두 번이나 패배를 맞보았지만 그것으로 원수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냥 넘어 가는 것이 스포츠계의 미덕이었고, 그 후 마리오와는 소위 사마란치 캠프의 일원으로서 우정을 쌓아 나갔다. 사마란치가 한 번은 마리오를 만나러 멕시코로 가라고 했다. 월드컵 축구 문제도 있고 하여 멕시코에 가서 이틀간 같이 세계 스포츠에 관한 여러 문제를 논의했다. 필자는 GAISF 회장이고 마리오는 ANOC 회장이었으니 올림픽 3대 지주 중 두 지주의 수장이 만난 것이다.

로게가 IOC 위원장이 된 후 마리오는 늘 꿈꾸어 오던 솔리다리티 위원장이 되었고 ANOC를 바탕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마리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사마란치와 함께 한국의 날 행사에서 반갑게 만나 회포를 푼 바 있다. 마리오는 20세기 사마란치가 구축한 스포츠의 황금시대에 네비올로와는 대조적으로 각국 올림픽위원회 즉 ANOC를 통하는 측을 담당하며 지탱했다. 사마란치, 네비올로가 가고, 아벨란제(Havelange)가 은퇴한 이 마당에 이제는 유일한 라틴계의 강자로서 마리오만이 남아 있다.

<
IOC 수석부위원장
김운용의 산고곡심(山高谷深) 중에서>

 

 

 

Posted by 윤강로
스포츠 외교2024. 3. 16. 16:06

 

[대한민국 최초로 IOC위원장이 직접 전수한 올림픽 노벨상 IOC 쿠베르탱메달 수여식과 IOC족보에만 3차례 등재 영예 및 관련 동영상 공유]

 

2022 1021 3번째 개최된 전세계 각국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OC)총회에 참석하고 대미를 장식 방하는 듯 방한 중인 Thomas Bach IOC위원장은 집무실이 있는 강남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제한된 인원 20여명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한민국 최초로 IOC위원장이 올림픽 노벨상으로 일컫는 IOC쿠베르탱 메달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로 거행된 동 수여식을 통해 필자는,

 

 1)IOC평가위원(2008년 올림픽)

2) 2008 ANOC공로훈장(Merit Award)에 이어

 

3) IOC쿠베르탱 메달리스트

4) IOC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회 위원 임명장 수여(2024131) 등으로 올림픽운동사에 있어서 4번째 영예를 맞이하였습니다.

 

이어 제4회 동계청소년올림픽 폐회식을 하루 앞둔 131일 강릉올림픽박물관을 방문한 Thomas Bach IOC위원장은 필자에게 다시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수식어를 사용하기에 적절한 IOC문화 및 올림픽 헤리티지 위원회 위원 임명장을 또 다시 직접 수여해 주었습니다.

 

이로써 필자는 IOC 족보에만 3번씩 등재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제 시작된 스포츠외교인생 제3막에 한국스포츠외교 중흥과 후배들의 국제스포츠무대진출을 적극적으로 돕도록 필자에게 부여된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은혜로 알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봉헌합니다.

 

다음은 한국 스포츠 기록 보관(Archives)역사에 기증하고 싶은 IOC쿠베르탱 메달 수여식 동영상(Full Version)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Posted by 윤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