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마음씀2018. 4. 7. 19:31

[강릉 명주군왕릉 유래와 주변에 살포시 핀 봄꽃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자태]

 

강릉으로 주민등록을 옮긴 지 벌써 2년이 되어 갑니다.

 

평창2018 조직위원회 주 사무소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로 이동하면서 숙소를 편리한 횡계 인근 보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전통도시 중 하나인 강릉에 숙소를 잡으면서 주민등록지를 변경한 것입니다.

 

이제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도 끝나고 정들었던 평창2018조직위원회 근무도 완전히 종료되고 나니 강릉시민으로서 강릉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습니다.

 

매 주말 시간 날 때 마다 강원도 최북단 고성-거진-양구-인제-원통-평창-영월-춘천-정선-태백-속초-양양-정동진-동해-주문진-삼척-울진은 물론 경상북도 안동-봉화-영주-풍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동쪽지역은 거의 섭렵한 터였습니다.

 

오늘 오전 꽃샘바람이 마치 겨울바람처럼 매서웠지만 강릉의 옛 이름 명주군의 명주군 왕릉이란 명소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명주군왕릉/사진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강릉은 강원도 명칭의 첫 단어로 원주와 함께 강원도 대표 도시이며 신라시대에는 명주(溟州)라고 불리웠는데 명주군왕 (溟州郡王)은 곧 강릉 김씨의 시조이자 강릉의 독자적 최초 통치자 격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습니다.

 

신라 원성왕은 786(원성왕 2) 자신의 즉위과정에서 경쟁하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명주(溟州: 현재 강릉)로 퇴거한 김주원(金周元)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하고 명주 일대를 그의 식읍(食邑)으로 하사하였다고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신라 하대의 진골 귀족으로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은 명주군왕으로 봉해졌기에 왕릉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태종무열왕의 둘째아들인 김인문의 5세손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무열왕의 셋째아들인 문왕의 5세손이라고 하며, 선덕왕이 죽은 후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어 왕가의 혈족인 그가 왕으로 추대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경주로 가는 중에 큰 비가 내려 강을 건널 수 없어 회의에 참석치 못하게 되었는 바, 신하들은 하늘이 그를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함이니 다른 사람을 뽑자고 하여 김경신(후의 원성왕)을 왕으로 추대하였다고 합니다.

 

김주원은 이듬해 선대로부터 인연이 있는 명주(지금의 강릉)로 와서 중앙과 대립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명주군왕으로 봉해졌으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원성왕은 그에게 통천에서 평해까지의 동해안 일대를 식읍(食邑:공신에게 주는 땅)으로 주었다고 합니다”(출처:http://kongkaru.tistory.com/52 [콩가루]

 

그것의 배경에는 원성왕의 왕권강화와 관련되는데 우선 명주가 김주원의 선대(先代)부터 연고권이 있는 곳으로 그가 자진해 퇴거한 지역이고, 또 신라 변방의 공적 군사력이 기능을 상실해 가는 상황에서 중앙정부로서는 당시 대외관계상 동북방(東北方)문제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김주원을 명주군왕에 책봉해 정치사회적으로 예우와 신분보장을 해 줌과 더불어 자신을 신라 중앙정부의 군주(君主)로 인정하게 한 것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이에 김주원 세력은 명주군왕의 봉작과 아울러 식읍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면서, 명주지역에 성()을 쌓아 치소(治所)를 마련하고 ‘명주군국(溟州郡國)’이란 독자적 국호(國號)를 갖기도 하였다는 역사의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독자적인 통치조직과 군사기반을 가지고 신라의 북방수비와 일본의 동해안 일대의 침공을 대비하면서 발해와 일본의 동해연안 해로를 통한 통교(通交)를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하니 원조 독도 수비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특수구역의 관리자적 지위는 김주원의 자손(子孫)이 계속 보유해갔으며. 그의 아들 종기(宗基)는 명주군왕, 종기의 아들 정여(貞茹)는 명원공(溟源公)으로 책봉되었고, 정여의 아들 양()은 명원군왕(溟源郡王)으로 추봉(追封)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명주군왕의 작위는 김주원 계의 분지화(分枝化)를 초래하였다고 합니다. 원성왕의 즉위 이후 김주원 계 내의 각 소가계는 동향을 달리하였는데 이는 처음에는 무열왕 계(武烈王系)의 왕위상실과 원성왕의 회유책에 의한 것이었지만, 점차 원성왕계 내에서 인겸 계(仁謙系)와 예영 계(禮英系)의 갈등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이용하려 했던 것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 집니다.

 

특히 명주군왕의 작위를 김주원의 직계 자손(直系子孫)이 계속 갖게 됨으로써 이에서 벗어난 가계의 인물들은 극단적인 방법인 반란을 통해 보다 나은 지위를 획득고자 했으나 실패한 바 있었으며, 그리하여 김주원 계 후손들은 자신이 속한 소가계의 이익추구를 도모한 결과 가계의 분지화에 따라 세력이 분산되었다고 합니다(출처: Daum백과발췌)

 

강릉 명주군왕릉 주변에 살포시 핀 봄꽃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마치 명주군왕릉을 보필하는 듯 보였습니다.

 

아름다운 봄꽃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선명하게 빛나는 노란 색은 우아함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명주군왕릉꽃" 이라고 이름 지을려고 했는데 지인에게 문의한 결과 "노랑제비꽃"이랍니다.

 

 

 

 

 

 

 

Posted by 윤강로
말씀과 마음씀2018. 4. 7. 10:47

[대관령 봄꽃 '분홍 노루귀"의 생명력]

 

4월 첫 주 토요일 꽃샘추위와 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꿋꿋이 피어나는 봄꽃의 자태가 낙엽속에서 청초하게 피어나 자연의 생명력과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오묘함과 고귀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인이 오늘 아침 대관령에서 보내준 "분홍 노루귀"라는 봄꽃을 함께 공유하며 자연을 찬미해 봅니다.

 

 

 

 

Posted by 윤강로